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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자기 재능을 의심하지 마세요

Writer: 이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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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이준아 작가는 광기에 대해 작업합니다. 사회적 객관성의 한계를 초월하는 정신적 힘으로서의 광기를 캔버스에 드러내죠. 최근에 마무리한 개인전 «미친 뱀에게 경배를»은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데요. 늘 마음에 잠재해 있던 삶의 경험이 터져 나온 산물입니다. 너무 뛰어났기에 집중력이 선을 넘으면 병적인 증상을 앓던 아버지의 생전 모습에서 용이 되고 싶어 몸부림치는 이무기를 떠올렸다고 해요. 광기란 우리 모두에 내재한 에너지이지, 신성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그는 자신의 것이 모두의 것이 되도록 노력하는 게 창작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자기에 대한 이해와 집중이 필요하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진짜였던 작가로 기억되길 원하는 이준아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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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2024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회화 작가 이준아입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어요. 수학을 가르치는 남편과 함께 고양이 두 마리, 세 살배기 남자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영화 작업을 했는데, 집단으로 뭔가를 만드는 일이 제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법무사나 검사 같은 걸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막상 법 공부를 하려니 거부감이 많이 들더라고요. 어차피 한 번 뿐인 인생, 창작을 하고 싶었으면 그걸 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혼자 할 수 있으면서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뭘까, 고민 끝에 미대 입시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미술대학에 진학해서 지금의 제가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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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om Studies (petite loin)›,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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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Random Studies (petite loin)›, 2017 

(우) ‹Random Studies (bouncing rasping)›, 2017 

‹Random Studies (bouncing rasping)›, 2017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집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작업실이 있어요. 건물 2층, 27여 평 규모인데 원래 사무실로 쓰던 공간이에요. 큰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작업실 평수가 좀 되는 편이죠. 그래서 어시스턴트 한 다섯 명 쓰는 60대 노작가 작업실 같다고 놀림을 받곤 해요. 책이 무척 많고, 공간의 1/3은 수장고로 사용 중입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어떤 문화적 영향 같은 게 늘 마음에 잠재해 있다가 삶의 경험과 만나면서 하나씩 터져 나오는 느낌이에요. 최근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작업에서 많이 하고 있어요. 얼마 전 더 윌로The WilloW에서 가진 개인전에서는 아버지 생전에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 제가 지켜본 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반영했어요. 소재를 많이 얻는 또 다른 출처는 책인 것 같아요. 특히 책에 실린 도판이요. 실제로 그런 도판을 그림에 직접적으로 이용하기도 하고요. 아주 예전에 읽었던 책을 비롯해 책과 관련된 의미심장한 기억들이 뒤늦게 소화되고 서로 연결되면서 그 내용이 그림과 함께 풀려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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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iptych (A Kiss on the Dead Forehead)›,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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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두운 숲 속을 걷고 있지만 별들은 흔들리지 않지», d/p, 2023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평소 이런저런 단상이나 떠오르는 문구 같은 걸 휴대전화에 메모로 남겨놔요. 그리고 전시할 기회가 만들어지면 그중 한 가지를 골라 이를 주제로 여러 작업을 스케치해나가요. 어떤 도상을 어떻게 종합해서 그림을 그릴 건지 고민하는 게, 마치 말하자면 콜라주 같은 형태랄까요. 전시 콘셉트에 대한 글도 많이 쓰고, 이를 정리해서 공모를 내고, 이후 준비한 것을 캔버스에 그리기 시작합니다.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뱀의 기적›은 용이 되려고 천년을 기다리는 이무기를 모티프 삼아, 인간의 광기에 대해 다룬 작품이에요. 가로 9.6m, 세로 1.9m 정도로 스케일이 남다른 그림의 출발점은 저희 아버지예요. 아버지는 평생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분인데, 반평생 정신질환을 앓으셨어요. 성취욕이 많으셨는데, 집중력이 선을 넘으면 병적인 증상으로 빠져들곤 하셨죠. 저는 그런 모습의 아버지가 용이 되고 싶어 몸부림치는 이무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지상의 현실을 초월해서, 불가능한 이상을 향해 날아오르고 싶어서 요동치는 아주 커다란 뱀이요. 제게는 그런 초월에 대한 욕구가 인간 본연의 지적인 집념이자 광기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광기의 강렬한 에너지와 이에 대한 경외감 같은 것을 그림에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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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기적›, 2024, «미친 뱀에게 경배를», 더 윌로,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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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2024

‹뱀의 기적›이 광적인 에너지에 관한 작품이라면, ‹만다라›는 광적인 사고에 대한 작품이에요. 서로 무관한 맥락을 지닌 도상들을 ‘원형’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묶었죠. 칼 융이 수집한 정신이상자의 그림들, 단청 무늬, 후광 그래픽, 자연물, 상징적인 삽화 등 서로 접점이 별로 없고, 그 출처가 거의 책이에요. 이 그림들에는 확고하고 동일한 체계가 있는데요. 소스가 되는 이미지를 살펴보면 자체적인 예술성은 조금 부족하지만 이를 하나로 통합할 때 강렬한 이미지가 탄생하지 않을까, 이를 촘촘히 엮어서 강고한 질서를 탄생시키는 게 바로 편집증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작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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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dala (alpha)›,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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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dala (sunbird)›,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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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dala (alpha)›, 2024

‹Mandala (sunbird)›, 2024

‹Mandala (goddess)›, 2024

최근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광기가 무엇인지 재정의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단지 진단서 몇 줄로는 정의할 수 없을 만큼 폭넓은 함의를 지니고 있다는 점, 우리 모두에 내재한 에너지이자 우리가 가진 신성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뱀의 기적›은 ‘내가 이런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 나왔어요. 정말 힘들게 그렸기에 앞으로 두 번 다시 못할 것 같은 느낌도 있고요.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유지하지 못한 게 좀 아쉬워서 그림을 몇 번 고쳤네요. ‹만다라›는 시리즈를 균질하게 뽑아내는 데 실패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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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기적›, 2024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단순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저는 작업실에 출근해요. 작업하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서 마무리 짓고, 저녁에는 아이를 돌보죠.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저도 자요. 주말은 친정이나 시댁 식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요. 지인의 전시 오프닝이 있을 땐, 아이 맡기고 술 많이 먹고요. 그게 제 일탈입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옛 신비주의 여성미술가에 큰 관심을 두고 있어요. 작업 외적으로는, 최근에 캠핑에 눈을 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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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om Studies (reaction producer)›, 2019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뭔가에 꽂히면 앞뒤 안 따지고 돌진하는 편이에요. 연애나 결혼부터 삶의 모든 것이 그랬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 친한 친구가 ‘경주마’라는 별명을 붙여줬는데, 작업도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일단 스케치가 나오고, 계획을 세우면서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해내서 결국 끝을 봐요. 친구들이 말하길 제가 지독하다고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그림에도 지독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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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ctal Studies (disco)›,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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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ctal Studies (double moon)›,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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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ctal Studies (disco)›, 2020 

‹Fractal Studies (double moon)›, 2020

‹Fractal Studies (aurora)›, 2020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잠을 잡니다. 많이 자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작업실에 절대 안 가요. 그러면서 심신의 피로가 회복되면 좀 심심해지고 약간 근질거리는데요. 그때가 다시 작업을 시작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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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뱀에게 경배를», 더 윌로, 2024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시간 부족입니다. 하루의 1/3은 작업, 1/3은 육아, 1/3은 수면에 쓰는데, 가끔 이런 밸런스가 무너질 때가 있어요. 무언가 다른 걸 하고 싶으면 셋 중 한 가지를 약간씩 포기해야 하죠. 작업량을 줄이면 완성도가 안 나오고, 육아를 줄이면 아이와 멀어지고, 잠을 줄이면 건강을 해칩니다. 그래서 다른 일을 도모하기 어려운 게 아쉽습니다. 여행은 꿈도 못 꾸고, 읽고 싶은 책도 정말 많은데, 시간이 없어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저는 ‘자신의 것이 모두의 것이 되도록’ 노력하는 존재가 창작자라고 생각합니다. 부지런히 자기 내면에서 무언가 길어 올려 만지고, 다듬고, 다른 사람과 잇고, 빗대어 가면서 세상에 내놓는 일이 창작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은 만큼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위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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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tych (As Above)›, 2023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눈치를 보며 자기 재능을 의심하지 않아도 돼요.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고(심지어 자신마저 아직 잘 모르는 경우도 많지만요), 그 완성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지 처음부터 개인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여태까지 버텨온 정신 승리법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미술이 먼저 있고 미술계가 있는 것이지, 미술계가 먼저 있고 거기 맞는 미술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많은 것이 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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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tych (So Below)›, 2023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처음부터 끝까지 진짜였던 작가!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기념전 오프닝에서 증손자 손을 잡고 두 발로 걸어 들어갈 만큼 건강히 장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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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이준아(@crazy_hermit_painter)는 광기에 대해 작업한다. 무작위와 무한을 회화적으로 다루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객관성의 한계를 초월하는 정신적 힘으로서의 광기를 드러낸다. 2012년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2015년 동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그 후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 순수 예술 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개인전으로 «미친 뱀에게 경배를»(더 윌로, 2024), «나는 어두운 숲 속을 걷고 있지만 별들은 흔들리지 않지»(d/p, 2023), «W/O»(학고재 아트센터, 2021)를 열었다. «이제 다시, 일어나»(김근태기념도서관, 2023), «두산아트랩 2021»(두산갤러리 서울, 2021), «AFTERLIFE»(탈영역우정국, 2019) , «Letter from the East»(항저우 미술학원, 중국, 2019), «Tactics, Works, Terms, Forms, Statements»(뉴욕 371 브로드웨이, 미국, 2018) 등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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