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작가는 영국 웨일스에서 활동하는 도예가입니다. 타고난 손재주가 좋았지만, 직업으로 풀린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취업 잘되는 전공을 선택했던 그는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가 운명처럼 아트 스쿨로 편입할 기회가 생겼어요. 여기서 접한 도예 과목에서 몰입감과 자신감을 얻어 저 멀리 웨일스의 카디프로 넘어가서 석박사까지 따고 무아지경의 마음으로 일상과 작업의 경계를 오가고 있답니다. 도예는 정말 오랜 노력과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가능성이 열리는 분야입니다. 작품이 완성되는 가마에 들어가는 최종 관문에 설 가능성이요. 가마에서 제대로 살아남는 생존율을 생각하면, 정말 실패는 숨 쉬는 행위와 다름없답니다. 김진의 작가의 도예 작업은 굉장히 독특하고 난도도 높기에 현타에 고통받고 슬럼프에 빠질 법도 하지만, 오히려 그는 실패야말로 창작의 원천이라고 믿어요. 실패에서 얻은 경험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꾸준히 발전할 때 작업에 깊이가 더해지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니까요. 더불어 창작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작은 시간과 노력과 실천이 차근차근 쌓으면 작업의 힘으로 이어지며 기회를 만든다는 믿음이라니. 그야말로 정말 ‘중꺽마’의 달인 같습니다. 세상 모든 창작자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로 가득한 김진의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OPject – Cylindrical form with lid›, 2022, D 14.1 cm × H 39.4 cm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영국을 구성하는 나라 중 하나인 웨일스의 수도, 카디프에서 도예가로 활동하는 김진의입니다. 영국과 유럽을 기반 삼아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열리는 전시와 아트페어에 참가하고 있어요. 새롭고 흥미로운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기 위해서 열심히 활동 중입니다.
2023년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V&A)에서 진행한 마스터 클래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의 놀이가 지금의 창작 활동과 깊게 관련됐다고 생각해요. 썰매 타기, 새총 쏘기, 활쏘기, 새 덫 놓기, 낚시, 연날리기 같은 놀이를 하려면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야 했는데, 잘 만든 도구일수록 놀이의 즐거움이 배가됐죠. 이런 부류의 놀이 기구를 만드는 데 재주가 꽤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시절에는 이런 재주가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죠. 그래서 성적에 맞춰서 대학교를 선택하고 취업이 잘되는 전공을 선택했답니다. 학과 과목 중 디자인과 관련된 수업이 있었는데, 제게는 너무나도 즐거운 수업이었고, 성적도 가장 잘 나오게 됐어요. 그때 처음으로 예술이나 디자인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결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호주로 어학연수를 갔다가 현지 태즈메이니아대학교(UTA)의 아트 스쿨로 편입할 기회가 생겼어요. 한국에서 틈틈이 했던 텍스타일 디자인 작업을 인정받아 2학년으로 편입할 수 있었죠. 학교에서 배운 예술 이론과 실기는 미술과 관련된 기초 지식이나 기술이 전무했던 제게 모든 순간이 새로운 경험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기초가 부족해서 흉내 내기에 급급했던 과목 중 유독 도예 관련 과목만큼은 저와 잘 맞더라고요. 특히 물레 성형 작업은 제가 도예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레 앞에 앉아 흙을 만지며 무언가를 만들 때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만큼 몰입하더군요. 오랫동안 앉아 있어도 피곤하지 않았어요. 작업을 하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떠올랐고, 그것들이 인정받자, 자신감도 생겼답니다. 그때야 스스로에게 확신하게 됐어요. “이 길로 꼭 가야겠다. 도예가가 되어야지.”라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OPject – Dual Cylindrical Form›, 2024
‹OPject – Spherical Form›, 2023, D 25.5 cm × H 33.8 cm
«Simplicity and Complexity», Llantarnam Grange Gallery, 2023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는 ‘Fireworks Clay Studios’라는 공동 작업실에서 14년째 작업을 이어오는 중입니다. 20명 이상의 도예가가 각자 독립된 공간에서 작업하며 전시와 같은 행사 기획, 재정 관리, 장비 유지 및 보수 등 다양한 역할을 나누어 협력하는 공동체를 지향해요. 창작을 막 시작한 신진 작가부터 경험이 풍부한 작가까지 어우러져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함께 성장하는 특별한 환경을 제공하죠. 더 넓고 개인적인 작업실을 마련해야 할지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이 매력적인 공동체에 속할 때 느끼는 유대감과 협력의 가치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계속 이곳에서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에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다양한 방법으로 영감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주로 박물관, 갤러리 등을 비롯해 여러 전시를 관람하고, 도시를 걸으며 건물의 형태, 외벽, 내부 등을 관찰하는 일을 즐겨요. 동일한 장소를 여러 번 방문하는 것도 중시하는데요. 반복적으로 관찰하다 보면, 처음에는 놓쳤던 디테일을 발견하거나, 작품에 관해 더 깊은 이해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키워드를 발견하면 이를 바탕으로 웹 서핑을 하며 새로운 정보를 탐구하기도 해요. 작업의 방향성을 확장하고, 관련 분야를 더욱더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죠.
저는 항상 노트를 가지고 다녀요. 떠오르는 영감을 그때그때 메모하고 나중에 정리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주로 깊고 오래 생각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데, 출퇴근길을 도보로 움직이거나 먼 거리를 운전하며 작업에 대해 계속 고민하다 보면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머릿속에서 구체화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 노트에 기록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 정리한 노트와 기억 속의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와 현재의 작업을 연결하고, 때때로 미래의 작업에 밑거름으로 쓰이는 소중한 자료로 변모합니다.
작업실 모습
작업실 모습
작업실 모습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제 작업은 사용하는 재료와 기술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어요. 첫 번째로는 물레 성형 후 초벌된 표면에 다양한 톤과 색상의 화장토(化粧土)를 붓으로 칠해 완성하는 작업이고요. 두 번째로는 컬러 흙을 사용해 코일을 만들고, 이를 링이나 블록 형태로 변형해서 손으로 쌓아 올리는 작업입니다. 세 번째로는 ‘슬립 캐스팅slip-casting’ 기법으로 반복적인 형태의 기물을 제작한 후 이를 나무 패널이나 프레임에 붙여서 완성하는 작업이에요. 이런 세 가지 작업은 각각 고유한 창작 과정을 거칩니다. 특히, 컬러 흙을 사용하는 작업은 대부분 세밀한 계획 이래 진행돼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각 톤과 색에 번호를 부여한 후 배열을 구상하고, 머릿속에서 이를 시각화하죠. 시각화가 힘들 때는 다양한 보조 방법을 활용합니다.
작품을 완성하면 다양한 각도와 거리에서 빛의 위치와 세기를 바꿔가며 오랜 시간 작품을 관찰해요. 이런 과정을 통해 의도한 결과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현상까지 기록하면서 작업의 방향성을 더욱 발전시키려고 노력합니다. 비록 작업 방식과 사용하는 재료는 다르지만, 모든 작업은 결국 하나의 일관된 콘셉트로 연결됩니다. 저는 평면적인 시각 효과를 탐구하고, 이런 효과가 입체 형태의 도자에 미치는 시각적 변화를 실험해요. 더 나아가서 이런 효과가 주변 환경과 관찰자의 움직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항상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봅니다. 제 고유하고 독창적인 콘셉트를 유지하며, 새로운 제작 방식을 개발하고 재료를 다양하게 활용해 작업에 깊이와 다양성을 더하는 중입니다.
초벌된 기물 위에 화장토(engobe)를 붓으로 칠하는 과정
손으로 흙 코일을 쌓아올리는 작업 과정의 일부
손으로 흙 코일을 쌓아올리는 작업 과정의 일부
‹The Flow on Cubes No.3›, 2021, W 80 cm x H 80 cm x D 6 cm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는 도자 표면에서 시각적 효과와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방법을 연구하는데요. 이를 위해 다양한 톤, 선의 두께와 간격에 점진적으로 변화를 가하는 방식을 활용해요. 특히 시각 효과와 착시 현상이 3D 도지 형태를 시각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제작합니다. 도자 표면에 구현되는 조건이나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거나 혹은 가리면서 관람자가 실재(reality)와 착시(illusion) 사이에서 시각적 의문이나 호기심을 느끼도록 유도합니다. 더불어 관람자의 위치, 작품의 배치, 조명 등 환경적 요소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보이는 효과를 의도적으로 작업에 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일 먼저 소개하고 싶은 작업은 ‹OPerspective – Wall Piece No.2›입니다. 지난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웨일스 예술위원회(Arts Council of Wales)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프로젝트를 통해 발전시킨 결과물이에요. 이 작업은 관람자가 작품 중심으로부터 2m 떨어진 위치에서 바라볼 때 눈높이가 소실점이 되도록 설계했어요. 원근법의 원칙에 따라 121개 육면체 형태의 정면만 보이고 옆면은 보이지 않도록 제작하고, 어두운 배경을 활용해 육면체 형태의 음영이 보이지 않게 처리했죠. 그래서 입체라는 태생적인 조건을 제한하거나 가리면서 마치 평면 작업처럼 보이도록 의도한 작업입니다. 기존의 3D 도자 작업에서 벗어나 시각적인 제한을 실험할 수 있도록 재료와 방법 면에서도 앞으로 더욱더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OPerspective – Wall piece No.2›, 2022, W 10 cm × H 100 cm × D 6 cm
«Reality and Illusion», Galerie de l’Ancienne Poste, 2022, France
‹OPerspective – Wall Piece No.1› Front view, 2022, W 100 cm × H 100 cm × D 7 cm
‹OPerspective – Wall Piece No.1› Side view, 2022, W 100 cm × H 100 cm × D 7 cm
다음으로는 가장 최근에 제작한 ‹OPject-Superposition› 시리즈를 소개하고 싶어요. 이 작업은 각각 다른 톤과 색으로 배열한 동심원 밴드를 중첩할 때 어떤 시각 효과가 나타나는지 탐구하는 과정에서 시작됐어요. 세 개의 디스크 중심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정삼각형 각 꼭짓점에 자리하며 서로 연결된 상태예요. 패턴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도록 배열했고요. 굴곡진 표면은 빛의 방향에 따라 계속 다른 음영을 만들어내고, 관람자의 위치가 변하면 밴드의 두께 또한 바뀌면서 색상이 더 강조되거나 사라지는 효과를 낸답니다. 환경적 요인에 따라 계속 변화하고, 시각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주요 특징입니다.
‹OPject – Superposition (three pieces)›, 2024, W 48 cm × H 53 cm × D 7 cm
마지막으로 ‹OPverse–Cylindrical Form (Figure and Ground)› 시리즈가 있습니다. 다양한 톤과 컬러의 흙을 손으로 쌓고, 자르고, 붙여서 만드는데요. 작품 표면의 사각형은 특정 규칙에 따라 세로로 된 그룹으로 연결돼 있고, 관람자가 주목하는 부분에 따라 형상(figure)과 배경(ground)이 뒤바뀌는 현상이 나타나요. 구체적으로, 비교적 얇은 모양으로 연결한 그룹에 집중하면 해당 부분이 ‘형상’으로 보기고, 나머지 부분이 자연스럽게 ‘배경’이 됩니다. 이와 반대로 두꺼운 모양의 그룹에 주목하면 배경과 형상의 관계가 뒤바뀌게 되죠. 어두운 부분에 집중하면 다시 풍경으로 전환되기도 하고요. 일반적으로 어두운 톤이 들어가 보이고, 밝은 톤이 도드라져 보이는 인지 방식을 활용한 결과입니다.
‹OPverse – Cylindrical form (Figure and Ground)›, 2024, D 14.6 cm × H 34 cm
‹OPverse – Cylindrical form (Figure and Ground)›, 2024, D 14.6 cm × H 34 cm
‹OPverse – Cylindrical form (Figure and Ground)›, 2024, D 15 cm × H 34 cm
‹OPverse – Cylindrical form (Figure and Ground)› 세부 모습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요즘 제가 다시 한번 중요하다고 믿고, 강조하고 싶은 지점이 있어서 이 자리에서 공유하고 싶습니다. 질문과 약간 벗어날 수도 있다는 점, 양해해 주세요. (웃음) 저는 지난 오랜 시간 ‘실재’와 다르게 보이는 착시 효과(optical illusions) 같은 현상에 흥미를 느껴, 도자 표면과 형태에 이런 형상이 시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방법을 탐구해 왔어요. 그 과정에서 제가 의도한 표현과 시도, 그리고 작품에서 나타나는 시각 현상이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과 저 또한 이를 중시하고 강조한다는 걸 깨달았답니다.
우리가 어떤 물체를 시각적으로 인지할 때, 해당 물체에 대한 시각적인 정보가 많을수록 우리 기억과 경험에 비추어 실체에 가까운 모습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아요. 다시 말해, 물체의 형태, 색, 음영 등 다양한 시각적 정보가 풍요로우면 착시가 일어나기 어려운데요. 이러한 시각 정보를 의도적으로 제한하거나 ‘실재’보다 과도하게 표현하면, 그 실체를 명확히 인식하기 힘들어지면서 ‘실재’와 다르게 보이게 되는 것이죠.
이런 기본 개념을 바탕으로 제 기억, 경험, 직관을 활용해 창작을 이어오던 중 창작의 주체인 저 자신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창작자의 육체적·정신적 상태를 작업에 최적화된 상태로 유지하고, 창작과 연결된 경험을 통해 기억을 쌓아가는 게 창작 활동에서 무척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제대로 느끼고 있거든요. 새로운 작업과 좋은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기본기로서 말이죠.
‹OPject – Lower form›, 2019, D 33.3 cm × H 6 cm
‹A group of OPject – Lidded box›, 2018
‹OPjects – Inversion VI Installation 2›, 2018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요즘 진행하는 작업은 컬러 흙을 이용해 쌓고, 자르고, 다시 붙이는 방식으로 제작해요. 지금 사용하는 흙은 백색도에서는 시각적인 만족감이 크지만, 점력과 안정성 측면에서 실패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게 함정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흙을 교체하고, 새로운 작업 방식을 시도하기 위한 도구 제작도 필요해요. 정말 다행스럽게도 웨일스 예술위원회에 신청했던 프로젝트 지원금이 통과되면서 최근 승인을 받았어요. 이제 1년 동안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흙을 이용한 작업 방식을 시도할 거예요. 과도하게 높은 실패율을 낮추고, 스케일이 큰 작품을 보다 안정적으로 제작하고, 보다 다양한 형태를 구현하는 가능성을 열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어려움이 산재하지만, 이를 감내하면서도 지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업이라고 저는 굳게 믿고 있어요. 전체 과정을 완전히 수공예로 진행하는 데도, 동일한 형태의 반복적인 배열을 통해 강렬하고 독창적인 시각 효과를 표현할 수 있거든요. 해당 작업의 핵심적인 매력 포인트이자, 제가 계속 이러한 방식을 고수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작업을 완료한 후 가마에서 작품이 나올 때마다 기쁨과 실망은 동시에 찾아오지만요. (웃음) 작업 과정에서 찾아오는 어려움과 높은 실패율이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서도, 일단 작품이 완성되어 세상에 나올 때 느끼는 만족감은 어마어마하답니다.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악업을 더욱더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합니다.
작업은 일상이 되면서, 어느덧 작업과 일상의 경계가 사라진 듯해요. 일상에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작업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찰 때가 많죠. 운전하다가도 생각에 빠져 목적지를 지나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일이 종종(?) 발생해서 딸아이에게 핀잔을 듣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즘은 되도록 주말만큼은 작업실에 가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더불어 매주 태권도를 꾸준히 수련하고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면서 신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작업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만 좋은 작업이 나올 거라는 강박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런 강박이 오히려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고 긴장되게 만들어서 늘 좋은 작품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는 저 자신에게 여유를 주는 행위가 지속적인 창작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계속 인지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작업실에 갈 때는 일부러 도보로 이동해요. 그런 빈틈이 저에게 영감을 주고, 정신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주거든요. 이런 시간이야말로 작업을 이어가도록 하는 원동력이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소중한 순간입니다. 일상과 작업이 맞물린 삶을 사는 입장에서, 삶의 작은 요소 하나하나가 작업에 영향을 주고, 작업 역시 제 삶의 방향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부분이 되더군요. 이런 균형을 유지하며 작업과 일상을 함께 즐기고 싶습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작년 프랑스 파리에 소재한 갤러리와 협업을 시작하면서 이전보다 더 큰 규모의 작품에 몰두하기 시작했어요. 스케일이 큰 작업을 하다 보면, 작품과 이를 만드는 과정에 저 자신이 완전히 몰입되면서 마치 하나가 된 듯한 특별한 경험을 느끼는데요.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작품 구상부터 제작까지의 모든 과정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긴장감과 몰입감이 개인적으로 커다란 만족감을 선사합니다. 더불어 작품이 클수록 제 시야에서 차지하는 영역 또한 늘어나서, 시각적인 효과 역시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작업의 스케일과 그에 따른 표현의 가능성에 대해 요즘 계속 고민 중입니다.
또 다른 관심사는,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작가로서 어떻게 자신을 알리고 지속가능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을까?’입니다.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게 필수라는 걸 실감하니, 소셜미디어 같은 채널을 활용해 좀 더 적극적인 홍보와 마케팅의 필요성 또한 느낀답니다.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편이고, 점점 뒤처지는 게 현실이지만, 소셜미디어 같은 매체가 현대 예술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방향으로 활용하려고 해요.
저는 전업 작가인데요.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실패를 대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학업을 마치고 전업 작가의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을 땐, 경험과 정보가 부족해 어려움이 많았고,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어요. 그러나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점차 경험이 쌓이자, 작업의 발전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므로 실패했다고 침울해하거나 좌절할 여유조차 없었기에, 실패한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작업 방향을 조정하고, 시장 조사를 통해 실패를 줄여나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공의 가능성을 실감하게 되자, 지금까지 전업 작가로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도예는 본질적으로 많은 실패가 따르는 분야입니다. 저는 작업 과정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실패를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해요. 끊임없는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도리어 이를 통해 배움을 얻으며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제 작업에서 중요한 강점으로 작용한 태도입니다.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일과 고치는 일을 좋아하던 제 성향은 문제를 발견하고 원인을 파악해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으로 이어졌는데요. 도예 작업을 할 때 특히 큰 도움이 됩니다. 더불어 힘든 상황에서도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는 긍정적인 태도 또한 제 삶과 작업 모두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어요.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도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죠.
제 작업에서는 이런 삶의 태도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극복하면서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이 작업에 그대로 녹아 있죠. 작가의 성향이나 의지에 따라 작업이 변하거나 방향성이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요. 저는 일관성과 지속적인 발전을 중시해요. 실패를 극복하면서 쌓은 경험과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제 작업에 깊이를 더하고, 나아가 새로운 가능성까지 열어주는 원천이라고 믿습니다.
초벌된 기물 위에 화장토를 칠하기 전 과정
초벌된 기물 표면에 페인팅하는 과정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브렉시트Brexit와 팬데믹의 영향으로 영국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많은 도예가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저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그래서 1~2년 전부터는 직접 참가하는 공예페어, 도예페어, 그룹 전시의 횟수를 줄이고, 개인전이나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는 방향으로 전환을 시도해 왔어요. 하지만 작품 크기가 커지면서 제작 기간이 길어지고, 작품가도 상승해 갤러리가 제 작품을 알리고 안정적으로 판매를 이어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해요. 하지만 이런 기대와 계획이 여러 외적·내적 요인 때문에 점차 불확실해지면서, 이 기간을 기다릴 여유도 점점 줄고 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랬듯 저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겁니다.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창작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고, 지속가능한 방향을 모색하며 나아가야죠.
‹OPot – Lidded box (Geometrical forms)› 시리즈, 2024
‹OPject – Spherical form with Lid›, 2024, D 32.4 cm × H 36.7 cm
‹OPot – Moon Jar› 시리즈, 2024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창작자에게 실패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실패는 창작에서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과정의 일부이며,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창작을 지속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해요. 저 역시 지금도 가마에서 실패한 작품을 마주하는 일이 잦은데요. 이에 좌절하기보다는 성공적으로 완성된 작품에서 기쁨과 성취감을 느끼려고 노력합니다. 실패에 대한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러나 이를 극복하는 긍정적인 태도가 작업을 지속가능하게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더불어 저는 작업에서 깊이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얕고 넓게 펼치기보다는, 하나의 영역을 좁고 깊게 탐구하며 발전시키려고 노력하죠. 예술적, 기술적 측면에서 저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창작하는 게 제 작업 철학의 핵심입니다. 특정 영역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제한과 한계에 부딪히지만, 저는 깊이에는 한계가 없다고 믿으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려고 노력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이런 질문 자체가 가장 중요한 답이 된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지만, 꾸준함이 가장 큰 열쇠가 되곤 합니다. 여러 이유로 좋아하는 일에 온전히 시간을 쏟지 못하거나 제한된 여건에서 작업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끈을 놓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이어간다면 실력과 경험이 쌓이면서 점차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기회가 생길 거예요.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이어가는 과정은 사람마다 속도가 다릅니다. 천천히 진행될 수도 있고, 때로는 예상보다 빠르게 열매를 맺는 경우도 있죠. 제 주변에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자기 작업을 놓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는 작가들이 많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경력이 쌓이고, 갤러리와의 협업이 성사되고, 자기 작업이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으면서 전업 작가로 전환하는 경우도 자주 보았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끈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려는 마음가짐과 작은 실천이 쌓이면, 작업의 힘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더 큰 기회를 만들어냅니다. 아무리 작은 시간이나 노력이더라도, 차근차근 쌓여서 더 나은 내일을 만든다는 믿음을 가져 보세요.
한 컬렉터가 보낸 메시지를 매우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어요. “굉장히 혁신적이고 현대적이고 아름답다. 도예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그때 정말 커다란 기쁨과 보람을 느꼈는데요. 정말 그분의 말처럼 기억된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 것입니다.
Artist
김진의(@jineuikimceramics)는 영국 웨일스의 카디프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도예가다. 착시를 포함한 다양한 시각 현상이 도자의 형태와 상호작용하며 나타나는 새로운 면모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University of Tasmania)에서 학부를 마치고, 영국 웨일스 카디프에 소재한 카디프 메트로폴리탄대학교(Cardiff Metropolitan University)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다수의 개인전, 그룹전, 아트페어를 통해 알려진 그의 작품은 카디프 국립박물관,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 맨체스터 미술관 등 유수의 기관에서 소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