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호 작가는 사진 매체를 중심으로 작업을 진행해요. 그가 집중하는 부분은 네트워크와 서버, 스크린으로 전송하는 세계와 육안의 세계 사이의 간격이랍니다. 예컨대, 스마트폰의 스크린에 나타나는 이미지와 실제 일상 속 이미지를 재촬영하며 여기서 발생하는 특정한 감각이나 정서를 파고들어요. 그런 면에서 기술은 그에게 풍부한 영감을 주고 있는데요. 요즘 눈부시게 발전하는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진짜 일어난 듯한 상황의 이미지’와 실제 보도 사진 속 이미지를 재촬영하면서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거든요. 기술이 사건을 인식할 때, 그리고 세계를 감각할 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광범위하게 생각의 영역을 확장하는 중입니다. 창작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명확하고 조리 있게 답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데요. 정영호 작가에게는 유연하면서 탄탄하고 뿌리 깊은 생명체 특유의 건강함이 가득했답니다. 창작에 대한 의구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번 아티클에서 영감을 발견해 보세요.
«Whispering noise», 2024, N/A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사진 작업을 하는 정영호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학부 때 사진을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작업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다만 약간의 망설임이 존재했는데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늘 의문을 품곤 했거든요. 당시 미술 관련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때야 마음을 굳혔어요.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요.
«Double Retina», 2023, 금호미술관
«Double Retina», 2023, 금호미술관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현재 작업 공간은 두 곳을 사용하고 있어요. 한 곳은 예전부터 사용하던 문래동 스튜디오에요. 본격적인 사진 촬영, 디지털 프린트, 암실 작업을 진행하는 장소입니다. 사진 작업은 기본적으로 공간과 장비를 꽤나 점유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혼자서 꾸려가기엔 부담스럽기 때문에 동료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답니다. 이제 5년 차에 접어든 스튜디오는 적당히 볕이 들고 조용해서 늘 만족해요. 다른 한 곳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운영하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요. 총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데요. 작업실이자, 쇼룸 혹은 미팅룸의 성격으로 사용 중이에요. 스튜디오 비짓studio visit을 진행할 때 레지던시를 애용하는 편입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너무 진부한 질문인가요. (웃음)
‘여기서 특별히 얻는다’라고 말하기에는 모든 것에서 영향을 받는 듯해요. 가끔 방문하는 액자 집 사장님의 작업물이나 사진 책, 인스타그램 돋보기, 지인의 발언, 동료의 작업, 가까운 사람들의 포즈 등이요. 특히 다른 매체의 작업물을 사진으로 번역할 때 흥미로움을 느낍니다. ‘저 회화가 만약 사진이라면? 저 조각이 만약 사진이라면?’ 같은 물음을 던지는 거죠.
«Double Retina», 2023, 금호미술관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요즘 몰두하는 ‹Double Retina› 시리즈는 2채널 사진 작업이에요. 하나는 스마트폰 스크린에 띄운 사진 혹은 AI 이미지를 재촬영하고, 다른 하나는 제 일상을 흑백 필름으로 담고 있죠. 기술로 경유한 세계와 육안의 세계를 동시에 제시하는 건데요. 결국 두 세계 사이의 어떤 지점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Double Retina», 2023, 금호미술관
«Double Retina», 2023, 금호미술관
«Double Retina», 2023, 금호미술관
작가님의 작업 세계가 궁금해요. 최근 작업 중 몇 가지를 예로 들어 주시겠어요?
얼마 전 N/A에서 열린 그룹전 «Whispering Noise»에서 선보인 두 점을 소개하고 싶어요. 예전부터 스마트폰에 사진을 포함한 이미지를 띄우고 재촬영하는 작업을 했는데, 이번에는 두 가지 지점이 바뀌었어요. 먼저 흑백 이미지를 촬영했다는 점이에요. 스마트폰의 스크린은 Red, Green, Blue를 조합해서 색을 내기 때문에 순수한 흑백으로 보이는 이미지도 확대하면 RGB 조합이란 사실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작업을 실제로 보면 근거리와 원거리에서 바라보는 색감이 조금 다르답니다. 두 번째 지점은 실제 사진과 AI 이미지를 촬영하고 이를 섞어서 전시했다는 건데요. 기존에도 AI를 이용한 초상 사진 작업을 진행했지만, 구체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게 어려웠어요. 최근 생성형 AI가 발달하면서 마치 뉴스에 보도될 법한 상황의 이미지를 만드는 게 가능해졌는데요. 이제 점점 실제 상황인지, 가상으로 만들어낸 건지 구분이 힘들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The Unknown No.9›은 AI로 만든 이미지를, ‹The Unknown No.10›은 보도 사진을 재촬영한 작업이에요. 전시장에 선보인 모든 작업에는 이처럼 실제 사진과 생성형 AI가 만든 이미지를 촬영한 사진을 고루 섞어 놨어요.
«Whispering Noise», 2024, N/A
«Whispering Noise», 2024, N/A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네트워크와 서버, 스크린으로 전송하는 세계와 육안의 세계 사이를 드러내고 싶어요. 처음 시리즈를 시작할 때는 구체적인 사건이 중요했기 때문에 저와 사건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 및 시차에 집중했는데요. 지금에 와서는 개별적인 사건에서 벗어나 두 세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특정한 감각 혹은 정서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결국 ‘사건을 인식할 때 기술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작은 질문에서 ‘세계를 감각할 때 기술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로 제가 생각하는 영역이 확장한 상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해당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N/A에서 진행한 그룹전 작업에 한해서 말해보면, 최종 결과물의 조율이 잘 되었다고 느껴요. 예컨대 스크린의 픽셀 크기, 청록색 톤, 사진의 크기 등이죠. 다양한 사진 혹은 이미지를 활용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건 아쉬워요. 아무래도 스크린의 픽셀이 이미지를 구성하기 때문에 사람의 초상이 아니면 관객은 어떤 피사체를 보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할 거라는 걱정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초상을 중심으로 작업을 진행했는데, 생각 외로 풍경이나 초상 외의 다른 피사체 등도 흥미롭게 보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그런 지점을 조절하는 게 늘 어려워요.
«Whispering Noise», 2024, N/A
«Whispering Noise», 2024, N/A
«Whispering Noise», 2024, N/A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전시와는 상관없이 꾸준히 진행하는 작업이 있어요. 그중 가장 중요한 게 흑백 필름으로 일상을 촬영하는 건데요. 되도록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려고 해도 심적인 여유가 없으면 카메라를 멀리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전시를 마칠 때쯤에야 다시 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외에는 가까운 일정을 소화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에요. 요즘 들어 작업 말고 다른 일이 많아지면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제 역량에 맞게 일도 조금 줄이면서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고 있어요.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창작자로서 선명하게 각인되는 것을 생각 중이에요. 창작 활동의 결과물로서 얻을 수 있는 최종적인 성취가 각인이 아닐지 요즘 점점 강하게 느끼고 있거든요. 다른 중요한 것도 분명 많겠지만 최우선으로 다가오는 과제는 역시 작가로서의 개성 그 자체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선이 굵은 작업을 하고 싶어서 추상적으로 풀어내려고 노력 중인데, 역시나 어렵네요!
«Whispering Noise», 2024, N/A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정확한 말로 설명하는 건 다소 힘들지만, 창작자의 미감이 분명 작업에 묻어나는 게 사실이에요. 제가 요즘 꽂힌 건 선명하고 텍스처가 진하고 굵은 무엇입니다. 이전에는 매끄럽고 날카로운 공산품 같은 미감을 좋아했는데…미적 방향성도 변하는 것 같아요. 창작자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유효한 형식으로 풀어내는 사람입니다. 결국 매체를 선택하고 습득하는 출발점에서부터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Whispering Noise», 2024, N/A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머리는 비우면 오히려 복잡한 문제가 선명하게 다가올 때가 많아요. 제가 겪는 슬럼프는 보통 고려해야만 하는 사항이 많거나, 선택지가 많을 때 일어나요. 그럴 때는 작업을 중단하고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해요. 그러면 제가 집착하던 디테일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느끼게 되거든요. 한 쪽에 매몰한 채 집중할 때는 디테일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오지만, 실은 프로젝트의 큰 방향성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이 아닐 때가 많아요. 디테일에 너무 집중하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물론 디테일은 늘 중요하지만요.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저는 만들고 싶고, 선보이고 싶은 작업이 많아요. 공상이 많아서 그런지 머릿속은 늘 어느 정도 차 있는 편인데요. 이걸 다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두려울 때가 있어요. 작업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어떤 외부의 변수 때문에 작업을 중단하는 상황에 부닥칠까 봐 무척 걱정돼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자신의 기준이 명확하게 서 있는 게 중요합니다. 모든 창작자는 동시에 관객이에요. 창작자의 작업을 실시간으로 제일 처음 마주하는 관객이 창작자 본인이잖아요. 스스로 너무 쉽게 만족해서도, 너무 가혹해서도 안 되는, 가장 생산적인 잣대의 영역이 존재해요. 자신에 대한 지나친 만족은 나이브한 작업을 양산하고, 지나친 엄격함 아래에서는 작업 자체를 진행할 수 없어요. 창작자의 판단 강도는 말씀드릴 수 있지만, 그 판단에 깔린 기저의 감각과 매체에 대한 이해도 등은 개인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Whispering Noise», 2024, N/A
«Whispering Noise», 2024, N/A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커리어가 정해지기 전까지는 절대적인 창작의 양이 무척 중요하다고 믿어요. 본격적인 커리어가 시작되면 일정한 방향이 정해졌다는 의미고, 이후에는 운신의 폭이 줄어들거든요. 그런 말도 있잖아요. “방향이 잘못되면 속도는 무의미하다.” 창작의 양적인 측면을 충분히 확보할수록 적절한 혹은 적합한 방향을 설정하는 데 더욱더 용이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특히 창작은 본인의 뚝심과 재능에 대한 의심을 전제로 까는 분야입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작업량은 큰 도움이 돼요.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작업으로서, 매체로서, 사진을 정말 잘하고 싶은 사람. 작업이 창작자보다 앞에 있는 사람. 그리고 작업이 선명한 사람.
«Double Retina», 2023, 금호미술관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예전에는 이런 막연한 바람이 있었어요. ‘어느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싶다. 어느 갤러리와 일하고 싶다.’ 근데 최근에는 작업 자체에 대한 욕심을 많이 느껴요. 제가 만족할 수 있는 작업을 하거나, 제 작업에 만족하고 싶습니다. 근데 그게 그렇게 어렵네요. (웃음)
Artist
정영호(@long_young_ho)는 사진 매체를 바탕으로 동시대 기계 장치가 세계를 이해하고 감각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주목한다. 스크린을 경유하는 전자적 경험과 육안을 통한 직접적 경험의 간극에 집중하며 작업한다. 중앙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사진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23 금호영 아티스트 일환으로 진행한 «Double Retina»(금호미술관, 서울, 2023), «Converted and Interpolated»(상업화랑 을지로, 서울, 2019), «Out of Photography»(송은 아트큐브, 서울, 2021) 등의 개인전을 열었고, «Whispering Noise»(N/A, 서울, 2024), «풍경들»(우손갤러리, 대구, 2023),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스위스 파빌리온 «Spaceless»(이이남 스튜디오, 광주, 2023), «In finite Interpretations: A Multiplicity of Truths»(빙엄턴대학교 미술관, 뉴욕, 미국, 2023), «Spaceless»(주한 스위스 대사관, 서울, 2022), «inter-face»(페리지갤러리, 서울, 2022), «Summer Love 2022»(송은, 서울, 2022), 성곡미술관 2022 오픈콜 «어디에 지금 우리는?»(성곡미술관, 서울,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제20회 금호영아티스트(2022), 상업화랑 Ex-UP(2021), 송은 아트큐브 전시지원(2020)에 선정된 바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17기 입주 작가로 활동 중이다. www.jeongyoungh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