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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사람

Writer: 장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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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장파 작가의 작품을 보면 깜짝 놀랄 정도예요. 여성의 몸에 대한 거침 없는 표현과 형상 때문인데요. ‘여성적 그로테스크’라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할까요. 그는 여성의 신체, 에로티시즘 등을 화폭에 담아내며 끊임없이 타자화되는 여성의 몸에 대한 문제의식을 작업에 반영합니다. 여성을 재현한 이미지의 역사적 계보를 뒤집고 창세 신화를 통해 가부장제 사회 이전 혹은 이후 사회를 상상하기도 하고요. 이를 통해 결국 관습, 제도의 이름으로 고정된 형식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그에게 그림이란 폭력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존재에요. 그래서 인간적 삶을 지탱하는 순수한 비생산적 소모 행위를 예술이라고 생각하죠. 작업으로든, 한 개인으로든 타인의 고통에 응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장파 작가.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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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nning Like a Cheshire Cat›, 2015, 캔버스에 유채, 60.6 × 40.9 cm © JangPa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작가 장파입니다. 주로 회화 영역에서 타자화된 감각에 주목해, 젠더 편향적인 시각 언어에 의문을 제기하며, 기존 회화 어법을 재맥락화하는 작업에 몰두 중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성과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인간의 감성이 지닌 본질과 구조를 탐구하고 싶었어요. 그 방법의 하나가 미술이라고 생각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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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없는 밤» 전시 전경, 유머감각, 2023 © Jang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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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없는 밤» 전시 전경, 유머감각, 2023 © JangPa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기다랗고 좁은 폭의, 벽면이 많은 사무 공간이에요. 여러 점의 그림을 한 번에 펼쳐놓기 좋죠. 작은 회사가 많이 입주한 건물인데, 작업실에 한 번 들어가면 밖으로 통 나오지 않아서 주변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는 주로 사람의 욕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 욕망의 기저를 여러 방식으로 탐구해요. 어릴 적부터 제 관심사의 대부분은 근대성 비판과 관련된 것이었어요. 근대적 욕망이 어떻게 사회적 폭력을 구조화하고 고착하는지 살펴보는 데 흥미를 느꼈습니다. 특히 시각이라는 감각이 폭력과 연계되는 지점을 살펴보며 작업을 구상하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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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en Scrawled›, 2016~2018, 캔버스에 유채, 181.8 × 227.3 cm © JangPa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우선 그립니다. 그리고 형상이 왜 생겨났는지 분석합니다. 그 과정에서 리서치 및 책과 논문 등을 통해 작업 방향과 논리를 정립하고 이에 대한 글을 써요. 그 후 다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립니다. 이 과정을 반복해요.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는 하나의 시리즈를 지속하기보다는, 여러 주제를 동시에 다루고 있어요. 먼저, 제 대표작인 ‹Lady-X›는 여성적 에로티시즘을 여성의 육체성과 강렬한 색채로 표현한 작업입니다. 여성의 에로티시즘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여성의 경험을 구성하고 재현하는 데 많은 실패와 시도가 필요해요. 남성적 지식-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개입, 여성적 에로티시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과 언어의 창조가 수반되어야 하죠. 저는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그러한 것들을 풀어내려고 했어요. 최근에는 2022년에 선보였던 ‹플랫 홀Flat Hole› 시리즈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플랫 홀’이란 제목은 입체적 구조를 지닌 구멍(hole)에 납작한 의미를 지닌 형용사 플랫flat을 덧붙인 건데요. 역사적으로 여성을 재현할 때 ‘구멍’으로 수렴해 단순하게 전개하던 것을 비판적으로 접근한 작업입니다. 오랫동안 수집한 여성의 형상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 위에 직접 드로잉하고 실크스크린을 덧입혔어요. 여성 재현 이미지의 계보를 구축하면서, 기존 미술사와 시각 문화에 대한 남성중심적 해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을 담아내고자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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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X No.5›, 2015, 캔버스에 유채, 60.6 × 90.9 cm © Jang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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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X No.1›, 2015, 캔버스에 유채, 72.7 × 50 cm © Jang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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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 홀› 연작, 2022. Silkscreen, ink, pen, pencil, watercolor, acrylic and giclée print on hahnemühle paper (german etching), 29.7 × 42 cm © JangPa

2023년 아르코미술관과 송은에서 선보인 ‹할망Halmang› 시리즈는 해방 이후 발굴된 ‘마고 신화’, 즉 단군 신화 이전의 우리나라 창세 신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고할미, 구체적으로 제주도의 ‘설문대 할망’을 주제로 부계 사회가 모계 사회를 대체하기 이전을 상상한 작업이에요. 단군 신화의 등장으로 마고할미는 창조의 신에서 산신이 되었고, 민간 전승을 거치며 우스꽝스러운 거인 할머니의 이미지로 희화화됐는데요. 저는 퇴락하기 전의 마고할미의 모습을 구현하고 관습적으로 다뤄온 여성의 형상을 재고해 여성성의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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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형상: 할망›, 2023.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실크스크린, 259.1 × 486.3 cm ©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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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할망이 있었다› 연작, 2023,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 실크스크린, 259.1 × 581.7 cm, «아르코미술관 50주년 기념전: 어디로 주름이 지나가는가», 아르코미술관 © ARKO Art Center and the Artist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에로티시즘, 여성 재현 이미지의 역사적 계보, 창세 신화를 통해 가부장제 이전 혹은 이후의 사회를 상상한 각각의 프로젝트는 결국 차이를 넘어 존재의 다른 방식을 상상하고, 이를 통해 관습화되고 제도화된 고정된 형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각과 시각성을 모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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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mang : The Beginning›, 2023, 캔버스에 유채, 227.3 × 162.1 cm  © JangPa

최근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작업에서 말하는 여성성, 혹은 여성적이란 것이 단순히 생물학적 성에 닫힌 개념이 아니라, 신체의 다중성과 열림, 탈영토화된 육체를 기반으로 여성의 경계 확장을 추구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사실 제 작업에 대해서 늘 만족하지 못해요. 다만 작업을 진행하며 미술이란 이름으로 현실의 구체적인 폭력과 고통이 주변화되는 일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폭력과 고통을 정치화하고 재현하는 것을 넘어, 폭력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그림의 쓸모가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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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형상› 연작, 2023, 종이에 에칭, 38 × 26.5 cm © JangPa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겠지만, 딱히 일상이란 게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 한 잔 마시고, 작업실에서 무엇을 할지 떠올리거나 강의 준비를 해요. 몸이 아프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요. 그러다 보니 최근 삶을 가꾸지 않고 살아가는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새로운 작업과 재료를 실험하며 제게 가장 적합한 방식을 찾는 데 몰두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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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없는 여자», 갤러리 기체, 2022 © JangPa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인간적 삶을 지탱하는 순수한 비생산적 소모 행위가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합니다.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무언가를 극복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원인을 분석하는 편이에요.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소화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놔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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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싼 보석들›, 2020, 변형 캔버스에 아크릴, 혼합재료, 170 × 200 × 80 cm, «Tangible Error», d/p, © JangPa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스튜디오와 창고를 합쳐야 하는 상황.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조지 오웰은 글을 쓰는 동기로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을 꼽았는데요. 이러한 태도는 인간이 만든 제도에 대한 성찰, 인습과 관성을 거부하는 삶을 추구하는 동시에 인간의 품위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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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ful Facade›, 2013, Gold Leaf & Digital C-print on paper, 100 × 136.4 cm © JangPa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료와 머릿속에 작업 생각만 있으면 자연스럽게 지속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제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다만 저의 경우,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작업을 통해 추구하면서, 구체적 일상과 삶으로부터 유리되지 않으려고 노력한 예술가를 기억하는 편입니다.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작업으로든, 한 개인으로든, 타인의 고통에 응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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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탈 스킨스», 두산갤러리, 2018 © DOOSAN Gallery and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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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파(@jangpa_artist)는 ‘여성적 그로테스크’와 같이 타자화된 감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여성주의적 회화 언어의 확장 가능성을 탐구한다. 특히, 회화의 영역에서 소외된 여성의 감각에 주목하고, 젠더 편향적으로 형성된 시각 언어에 의문을 제기하며, 기존의 회화 어법을 재맥락화한다. 이를테면 여성의 신체성, 여성적 에로티시즘 등을 화폭에 담아내며 끊임없이 타자화되는 여성의 몸에 대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작업을 지속 중이다. 더불어, 단순히 여성 서사나 형상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여성적’이라고 불리는 비체적 이미지를 매개로 우리의 미적 규범을 구성하는 사회적 감각 체계에 질문을 던진다. 개인전으로 «눈 없는 밤»(유머감각, 2023), «특성 없는 여자»(갤러리 기체, 2022), «브루탈 스킨스»(두산갤러리, 2018), «엑스 걸레스크»(두산갤러리 뉴욕, 2017), «레이디 엑스»(갤러리 잔다리, 2015) 등을 열었고, «아르코미술관 50주년 기념전: 어디로 주름이 지나가는가»(아르코미술관, 2023), «제23회 송은미술대상»(송은, 2023), «여성의 일»(서울대학교미술관, 2018), «퇴폐미술전»(아트스페이스 풀, 2016),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서울시립미술관, 2015), «구경꾼들»(두산갤러리, 2014) 등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22), 인천아트플랫폼(2020), 금천예술공장(2019), 두산레지던시 뉴욕(2017),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12)에 입주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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