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다은 작가는 우리가 과거를 완벽하게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오래된 기억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기에 작가는 모든 장면을 억지로 채우기보다 기록 속에서 찾아낸 단서들을 하나씩 꺼내 놓습니다. 부서진 잔재와 비어 있는 자리를 그대로 두어 관객이 그 사이를 천천히 거닐게 하죠. 무엇을 남기고 어디에서 멈출지 고민하며 정돈한 이 장면들은 이제 전시장이라는 무대 위에서 관객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기록과 기억 사이에서 구축한 장다은 작가만의 이야기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파랑 커튼›, 2024, 합판 위에 유채, 74.8×14.4×240cm, 사진: 이의록, 이미지 제공: 두산아트센터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장다은입니다. 저는 기원과 기억의 관계를 입체와 평면,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로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선택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관찰하고 표현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사람들이 자기만의 언어와 눈으로 발화하는 세계를 추적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저의 언어와 눈에 더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Chorus›, 2025, 나무 위에 아크릴, 가변크기, «CHORUS»,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사진: CJY ART STUDIO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작업실은 사직로 쪽에 있습니다. 이전엔 친구들이랑 작업실을 함께 사용했지만 이곳은 처음으로 혼자 사용하게 된 공간이에요. 이사 온 지는 벌써 2년 정도 되어가고 있어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어서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공간을 찾게 되었어요. 작업실 창문으로 인왕산이 보여요. 그래서 작업 중에 산을 자주 보게 됩니다. 크지 않은 공간이라 배치를 매번 바꾸고 있지만 작업의 방으로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빨간 선›, 2025, 나무 위에 아크릴, 가변크기, «CHORUS», 2025,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사진: CJY ART STUDIO
‹빨간 선›, 2025, 나무 위에 아크릴, 가변크기, «CHORUS», 2025,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사진: CJY ART STUDIO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반복되는 형태와 행위가 왜 계속 지속되는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과거의 기록된 글과 이미지로밖에 대면할 수 없는 것들과 제가 살로 감각한 것들 사이에서 완벽히 포개지지 못하는 간극이 작업을 유발합니다.
‹Chorus_score›, 2025, 아사천에 아크릴, 연필, 49×49cm, «CHORUS»,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사진: CJY ART STUDIO
‹ㅁ›, 2025, 나무 위에 아크릴, 수채화, 바니쉬, 가변크기, «CHORUS»,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사진: CJY ART STUDIO
‹Chorus›, 2025, 나무 위에 아크릴, 가변크기, «CHORUS», 2025,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사진: CJY ART STUDIO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가님은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작업을 시작할 때 보이는 잔상과 의문이 엉켜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자문자답하고, 보이지 않는 작업에 관한 글을 적어 가는 편입니다. 그중 하나의 꼭지를 잡고 다시 엮어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뭔가에 기반한 규칙들이 형성되어 잡히는 것들과 규칙에 속하지 못하는 것들이 발생합니다. 이런 연쇄적 증식 속에서 각각을 설명할 수 있는 재료와 매체로 다루게 됩니다.
작업 과정에서 저는 작업이 놓일 공간을 미리 상정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간은 전시장이 아니라 무언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그 안에서 작업이 작업자, 타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상상합니다. 제가 상정한 곳을 ‘무대’라고 칭하며 진행하는데, 이는 재현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대상과 나 사이에 관통되는 경유지로 생각합니다. 붙잡힌 시간과 흐르는 시간이 충돌하며 생기는 틈이 일어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CHORUS», 2025,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사진: CJY ART STUDIO
‹Landing›, 2025, 나무 패널 위에 종이 드로잉, 한지 아교, 가변크기, «CHORUS», 2025,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사진: CJY ART STUDIO
‹2›, 2025, 나무 위에 수채화, 한지, 아교, 13×5×2.5cm, «CHORUS», 2025,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사진: CJY ART STUDIO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최근 작업으로 지난해 12월, 프라이머리 프랙티스에서 개인전 «CHORUS», 2025를 열었습니다. 작업 전반에서는 신체를 대리하며 사라진 대상을 대신하는 인장과 낙관의 형태, 무대의 흐르는 시간 위에서 사건에 직접 개입하진 않지만 시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서사의 균열을 만들고 길을 안내하는 코러스의 성격을 빌리고 있습니다. 작업 속에서 사용된 다양한 기호와 상징화된 서사는 서로를 빗대보게 합니다. 그와 동시에 의미에서 이탈하며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원본이 부재한 잔상들은 시간의 축을 잃고, 분절된 파편들은 여백을 따라 관계를 구축합니다.
‹일곱 번째 아이›, 2025, 나무 위에 아크릴, 바니쉬, 150cmר×3cm, «CHORUS», 2025,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사진: CJY ART STUDIO
이전 2023년 레인보우큐브에서 진행한 개인전 «howling»에서는 플라니우스 『박물지』 제35권 151절에서 등장하는 그림의 기원을 경유해 자신의 그림자를 징검다리 삼아 부재하고 있는 ‘p’의 존재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러나 몸은 계속해서 온전하게 고정되지 못한 채 흔들리는 궤적을 남깁니다.
‹bark›, 2023, 나무 위에 유채, 경첩, 가변크기, «howling», 2023, 레인보우큐브, 사진: 김성근
이미지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실재를 대신하는 기호적 흔적에 가깝다고 느낍니다. 부재를 약속하고 있는 이미지, 그 미완의 감각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만족하는 부분과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작업이 작업실을 넘어 다른 공간에 어떻게 놓이고, 타인과 어떤 성격으로 마주하게 되는지까지가 계속 작업의연장선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는 작업을 상상한 방식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기 위해 전시가 관객과 관계할 수 있도록 많은 분과 함께 전시를 준비하게 돼요. 이런 과정에서 제가 잘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직접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 큰 감사와 만족을 느낍니다. 작업 자체에선 아쉬웠던 부분이 좋았던 선택이 될 때도 있고, 반대일 때도 있어서 아쉬움의 기억이 다음 작업을 할 때 참조할 점이 되기도 합니다.
‹파랑 커튼›, 2024, 합판 위에 유채, 74.8×14.4×240cm, 사진: 이의록, 이미지 제공: 두산아트센터
‹7718 / BILL›, 2024, 합판 위에 유채, 캔버스 천, 가변크기, 사진: 이의록, 이미지 제공: 두산아트센터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을 여쭤봐도 될까요?
아침마다 스스로 채찍질하며 작업실에 나가거나 아니면 타협해 버리는 날을 보내곤 합니다. 올 한 해는 개인전 준비로 여름부터 거의 날마다 작업실에 나갔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예열하는 시간이 긴 편이라 마음이 불편한 상태로 작업실에 가는 날이 많습니다. 그런 마음이 심한 날에는 주로 동생과 작업실에서 유치하게 놀거나 친구와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폭주 기관차처럼 몰아치듯 작업을 하게 됩니다. 작업에서 해결점을 못 찾은 날은 밤새 요리를 하면서 에너지를 다 소진하는 일상을 보내게 됩니다.
새롭게 경험하고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 많아져서 슬럼프보다는 이해하고 적응하는 것들이 더 어렵게 느껴져요. 다만 제가 자신을 회피하고 미루려 할 때 왜 두려워하는 것인지 정면으로 마주하려고 노력합니다.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사람이 살아가며 가질 수 있는 시간은 너무 한정적이고, 우연적이며 어쩔 수 없이 운명적이기까지 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 보니 제 작업이 가질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나의 주변 사람들과 가족이 가진 이 한정된 시간 안에서 제가 후회하지 않으며 어떻게 시간을 쓸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검은 실›, 2023, 창문 위 드로잉, 테이프, 사진: 황아림, 이미지 제공: 더 윌로
‹page – leaf›, 2019, 퍼포먼스, 20mins, 퍼포머: 장다은, 사진: 황아림, 이미지 제공: 더 윌로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제 작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가 막지 않는 것입니다.
‹Phony rain echo›, 2019, 설치 전경, «물은 피를 씻는다» 졸업 전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사진: 소마킴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기억될 수 있을 만한 작업을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잠시 모두 멈출 수 있는 미래.
Artist
장다은(@qoo_jang)은 기원적인 형태와 행위 사이의 간극에 관심을 둔다. 기록과 시간의 층위를 탐구하며, 기억과 이미지의 반복 속에서 미완의 형태로 증식하는 사건의 조건을 다룬다. «CHORUS»(2025, 프라이머리 프랙티스, 서울), «howling»(2023, 레인보우큐브,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리고 «두산아트랩 2025»(2025, 두산갤러리, 서울)에 선정되어, «솔라의 무대»(2023, 더 윌로, 서울)에서 단체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