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찬 작가는 스스로 ‘오브젝트 메이커Object Maker’라고 소개합니다. 아티스트, 공예가, 조각가, 교수, 디자이너, 머티리얼 리서처 등 여러 호칭이 가능하지만, 자신을 규정짓는 핵심은 ‘오브젝트’를 ‘만드는’ 행위라고 믿기 때문이에요. 특히 그는 쓰임 없는 무언가를 만드는 데 매혹을 느낍니다. 기능을 위해 형태의 가능성이 좁아지는 상황을 탈피해, 과감히 기능을 버리고 기법이 지닌 다양한 형태의 길을 탐구 중이죠. 나무와 금속을 재료 삼아 끝없는 수고로움과 시간을 들인 그의 작업은 인간이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친밀감, 겸손을 회복하는 매개로서 보는 이의 마음을 건드려요. 10년 간 개인 작업을 쉬었다가 지난 2022년부터 다시 몰두해 국제적으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김희찬 작가. 그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안녕하세요. 김희찬입니다. 저는 ‘오브젝트 메이커Object Maker’라는 호칭을 좋아합니다. 제가 지금껏 해온 일을 생각해 보면 아티스트, 공예가, 조각가, 교수, 디자이너, 머티리얼 리서처material researcher까지 모두 사용할 수 있는데요. 호칭이란 모름지기 자신을 온전하게 대변해야 한다고 믿기에, ‘make’라는 동사가 저를 규정짓는 핵심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에 해당하는 ‘object’라는 단어가 특정 쓰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요. 그래서 굳이 대중적으로 잘 쓰지 않는 오브젝트 메이커라는 호칭을 쓰고 있답니다. 중립적인 느낌이랄까요. 호칭은 내가 아닌 상대방이 판단해서 ‘부르는 것’이잖아요. 다양한 호칭이 존재하겠지만, 저는 그저 만드는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기, 만들기 등의 활동을 좋아했어요. 잘하기도 했고요. 미술학원에 보내달라고 먼저 말했답니다. 예원학교에서 중학생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어찌 보면 수동적으로) 그 후 쭉 시각적인 창작의 길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예술고등학교를 거쳐서 미대에 입학한 후로는 금속공예를 전공했어요. 사실 부모님은 제가 순수 미술을 하길 바라셨는데, 저 스스로 돈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네요. 순수미술로 돈을 버는 일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해서 디자인학부에 지원했죠. 학부를 다니면서 깨달았어요. ‘아.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스타일은 아니구나.’ 금속공예를 할 때도 몸을 많이 쓰는 작업을 주로 했어요. 주얼리보다는 대공 쪽으로요. 쉽게 얘기해서 망치질만 했답니다.
이렇게 몸을 쓰는 것에 대한 관심은 다른 예술로도 이어졌는데요. 대학 생활 내내 미대 연극부에서 활동했어요. 배우부터 세트 디자인, 연출도 맡았죠. 이때부터 몸을 쓰는 행위, 한 가지 재료를 깊게 파고들어 가는 것, 그리고 만드는 사람의 몸과 재료, 그 결과물로서의 형태와 맺는 관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공예 작업을 하면서도 주로 쓰임이 없는 오브젝트를 많이 만들었는데요. 그냥 몸을 쓰고 그 몸에 반응하는 재료가 좋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파인 아트fine art’ 체질이었던 거죠. 쓰임이 있는 물건보다 쓰임이 없는 걸 만드는 일이 더욱더 끌렸어요.
대학교에 입학할 즈음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어요. 저도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원에서 나무를 공부했어요. 새로운 재료에 대한 갈증을 느꼈던 것 같아요. 금속을 오래 다루면서 익힌 몸과 재료의 일체감을 나무를 통해서 다시 느끼고 싶었죠. 어떠한 재료로 쓰임이 있는 물건을 만들려면 재료가 지닌 물성의 특성과 한계, 그리고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경험을 통해 축적해 온 재료 다루는 방식을 모두 익혀야 해요. 쓰임이 없는 오브젝트를 만드는 것보다 어찌 보면 훨씬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가구 디자인을 전공으로 선택했어요. 또다시 공예를 선택한 거죠.
재료를 깊게 이해하고 경험하길 원했어요. 더불어 그동안 경험을 쌓아오며 생긴, 재료를 다루는 저에 대한 믿음, 결과물의 완성도에 대한 믿음, 지금껏 살아온 저에 대한 믿음이 존재했죠. 어떻게든 먹고는 살 거라고요. 그렇게 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때부터 작가로서의 활동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렇게 길게 말할 의도는 아니었는데, 이후로도 궁금하시죠? ㅎ
김희찬 작가 공식 프로필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는 현재 미국 뉴저지에 살고 있어요. 작업실도 집 근처에 있죠. 걸어서 한 30분 거리인데요. 집에 있으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성격이라, 작업실과 집을 꼭 분리해야만 하는 스타일이에요. 작가에게 작업실은 정말 중요하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공간이에요. 이런 공간에 물리적으로 머무는 시간이 꼭 필요해요. 일단 작업실에 오면 한두 시간은 그냥 그렇게 흘러가요. 청소나 정리도 하고,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죠. 공간에 저를 물들이는 시간입니다. 일종의 ‘의례(ritual)’ 같은 거죠. 살면서 짊어지게 되는 여러 역할을 내려놓고 창작자로서의 저로 들어가는 시간이에요.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죠.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꼭 집어서 말하기 힘들어요.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최근 새로운 형태를 찾아가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데요. 한 명의 인간으로 매번 새로운 이미지 형태를 뽑아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어찌 보면 그런 게 가능하다는 믿음 자체가 자만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자연에서 힌트를 많이 찾는 편이에요. 균류나 박테리아 등 미생물이 퍼져 나가는 모습, 세포 분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적인 현상,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지상의 모습처럼 거리 때문에 생경하게 다가오는 자연 이미지에서 영감을 많이 받습니다. 그렇게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생소한 느낌이 제 작업에 잘 살아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진행하는 연작은 10년 정도 휴식기를 가진 후 다시 시작하게 된 작업이에요. 대학원에서 나무를 구부리는 기법을 처음 접한 이후로 이를 이용한 형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지금 하는 작업도 그 연장선에 있어요.
전통적인 공예 기법을 살펴보면 인간의 역사가 보입니다. 자연이 가진 한계를 기능성이란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 수 있거든요. 그래서 기능과 형태, 기법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특정한 기능을 만족시키기 위해 특정한 형태가 형성됐고,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특정한 기법이 필요했고요. 만약 기능을 제일 우선순위에 둔다면 특정한 기법으로 10가지 형태의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기능에 제일 부합하는 하나의 길을 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기능을 버리는 선택을 했어요. 그 기법이 지닌 다른 형태의 길을 탐구하고 싶었죠. 전통적인 나무 보트 제작 방식, 가죽 공예, 바스켓 위빙basket weaving, 눈에 띄게 옷을 수선하는 비저블 멘딩visible mending 등 다양하게 연구를 진행했어요. 그렇게 ‹#1›로 시작된 연작이 지금 ‹#19›에 이르렀죠.
앞서 말한 것처럼 형태 연구의 핵심은 새로운 형태를 생성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거예요. 재료가 지닌 형태의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내는 어떤 시스템을 연구했죠. 재료가 능동적으로 형태를 만드는 행위에 참여하도록 말이에요. 저는 어떻게 보면 재료에 형태의 길을 안내해 주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맡고 있답니다. 정해진 디자인 없이 마치 버려진 건물에 식물이 뒤덮이는 것처럼 형태가 확장하는 거죠. 이때 저는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아요. 대신 얇은 금속 선으로 서로를 꿰맵니다. 나무는 기온이 오르고 습도가 높아지면 늘어나요.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거죠. 그래서 제 작업에서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수많은 조각은 숨을 쉬듯 다 같이 함께 움직입니다.
만드는 행위는 원래 생존과 맞닿아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생존을 위해 물건을 만들지 않아요. 원하는 모양이 있다면 재료를 다루는 어려움에 구애받지 않고 만들어낼 수 있어요. 3D 프린팅이 가장 적절한 예시일 거예요. 쾌속 조형(rapid prototyping)이라고 부르던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결과물이 다소 조악했지만, 이제는 바로 쓸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어요. 이게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상실해 버린 것들도 있답니다. 자연을 다룰 때 겪는 어려움에서 기인하는 경외감, 인간이 가져야 하는 겸손, 그리고 자연 재료를 만지면서 느끼는 친밀감 등이 대표적이에요. 이렇게 상실해 버린, 지금도 인간이 잃고 있는 걸 회복하는 수단 중 하나로 나름 제 작업을 지속 중입니다. 그러니 다른 분들도 제 작업을 접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그 과정에 참여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대학교 강의도 맡고 있어요. 제 일상의 반은 선생님이고, 그 나머지가 작업자죠. 전업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은 아무래도 작업할 때 돈에 연연하지 않는 거랄까요. 강의를 통해 큰돈을 벌진 못하지만, 그럭저럭 밥은 먹고 살아요. 전 돈도 잘 안 쓰거든요. 먹는 것과 작업에만 돈을 써요. 제가 선택했기 때문에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죠. 게다가 가르치는 일이 제 적성에도 잘 맞답니다. 학생에게서 배우는 것도 많고, 그들이 외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저와 사뭇 달라서 재미있어요. 강의를 처음 시작할 때는 학생들에게 주는 에너지와 작가로서의 에너지를 적당히 배분하지 못했어요. 누구나 잘하고 싶으니까요. 특히 외국인 신분으로 대학원을 다녔기 때문에 언어에서 오는 힘겨움을 잘 알거든요. 유학의 길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포용적인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개인 작업을 하지 않고 오래 쉰 기간에는 수업을 열심히 했답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10년 동안 쉬다가 작업을 다시 시작한 게 지난 2022년 겨울쯤이에요. 팬데믹을 거치면서 작업에 대한 동기 부여가 확실했던 것 같아요. 다시 한번 열심히 작업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죠. 전에는 작업을 통해 외부로부터 보상을 얻는 일에 관심이 없었어요. 금전적인 면부터 유력 기관과 매체의 인정, 칭찬 같은 거요. 그저 만드는 행위만으로도 제게는 의미가 있었어요. 자기만족이었죠. 그런데 나이가 들고 다시 시작하면서 작업을 대하는 자세가 많이 바뀌었어요. 보상에 욕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작업 외적인 부분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부분, 금전적인 부분 등요. 상업 갤러리와 함께하게 된 것도 2023년이 처음이었어요.
운이 좋게도 그런 일련의 보상이 잘 따라와 주고 있어요. 다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첫 작업을 2023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 때 선보였는데 감사하게도 북아일랜드 국립박물관(Museum of Northern Ireland)에서 영구 소장하게 됐어요. 이어서 만든 작업은 2024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프랑스 파리 팔레 드 도쿄에서 전시회를 가졌죠. ‘Special Mention’으로 호명되면서 로에베 재단의 소장품이 되었어요. 이어서 작년 9월에 열린 프리즈 서울에 쇼메Chaumet와 협업해 참여했고요. 쇼메의 앰배서더인 배우 송혜교 님도 만났답니다. 그 후에 만든 작업은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디자인 마이애미’에 전시했어요. 2023년부터 정말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요. 앞으로 지치지 않고 계속 작업하기 위해서 가르치는 일과 개인 작업, 그리고 가정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는 방법이 요즘 고민하는 숙제에요.
저는 어떤 일이 일어날 때 물 흐르듯 잘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스트레스도 잘 받지 않고요. 이런 삶의 태도가 작업의 특성 및 과정과도 잘 맞아요. 더불어 저는 늘 스스로 참을성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사는데, 작업을 보면 다른 것 같아요. 참을성이 없으면 못 하는 작업이거든요. (웃음) 저는 언제나 작업할 때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기 직전 정도로 난이도를 맞추는 편인데요. 그러면 계속하게 돼요.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해냈을 때 카타르시스가 오거든요. 계속 찾게 된다는 면에서 마치 약물과도 같달까요.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간단해요. 슬럼프가 오면 그냥 쉽니다. 휴식에 대한 조바심이나 두려움은 별로 없어요. 이미 10년 동안 쉬었는걸요. 쉰다고 뒤처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요. 쉬는 것도 과정이니까요. 그래도 이제는 그렇게 오래 쉬지는 않을 계획이에요. 우리에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웃음)
기세(氣勢)라고 하죠? 2023년 이후로 기세가 확 치고 올라가는 느낌이라서 작업을 더 많이 하고 싶어요. 그런데 작업 특성상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려요. 스케일에 따라 다르지만, 오브젝트 하나 만드는 데 2~3개월이 걸리거든요. 1년에 많아 봐야 3점 정도인 셈인데요. 답답하죠. 오브젝트 하나를 마칠 때마다 조금씩 배우고 또 변하니까요. 하지만 투입되는 시간을 줄일 수 없어요. 소요된 노동과 시간이 선사하는 직감적인 경의 같은 게 있거든요. 그 부분이 작업에서 중요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 팔이 10개였으면 좋겠답니다.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궁금하면 들여다보는 거죠. 공부하고, 직접 해보고요. 어릴 적에는 잡다하게 이것저것 관심이 많아서 한 우물을 못 판다고 꾸중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그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미술 쪽도 경계가 많이 모호해졌고, 다학제적 실기가 대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저는 스타일에 대한 집착도 그리 심하지 않아요. 작가로서 ‘저다움’은 제가 어떤 작업을 하더라도 나올 테니까요. 저다움은 시각적인 결과물뿐 아니라, 작가로서 취하는 자세에서 비롯됩니다.
활동 초반만 하더라도 저는 작업을 통해 외부와 소통하는 데 서투르고 관심도 없었어요. 그런데 작업을 오래 하려면 그러면 안 돼요. 작업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 계속 생각하고, 지속적인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곰곰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길 추천합니다. 보상은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작업이 재미있는 작가이고 싶어요. 미술계 종사자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작업이 재미있게 소비되고 싶어요. ‘아름답다’, ‘훌륭하다’는 표현도 좋지만, ‘재미있다’는 말이 더 끌리네요.
작가님이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균형 있게 공존하는 미래. 그런 의미에서 물질을 다루는 공예는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에서 잃어버린 친밀감을 회복시키는 매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작업의 상당 부분이 공예를 기반으로 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Artist
김희찬(@heechan_kim_art)은 인간, 재료, 자연 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오브젝트 메이커Object Maker’이다. 유기적인 형태와 자연의 형상이 떠오르는 역동적인 작품을 만들면서 재료가 창작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허용해 자연의 회복력과 작가의 직관적인 방향성이 공존하는 모습을 구현한다. 서울대학교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로체스터 공과대학교에서 가구 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파슨스 디자인 스쿨, 뉴욕시립대학교(CCNY)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가 활동을 병행 중이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 런던 Collect, PAD 런던, 프리즈 서울, 디자인 마이애미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고, 2024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후보에 올라 ‘Special Mention’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