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운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면 온갖 게 뒤섞인 모둠 같아요. 출처를 알 수 없는 깨진 파편이 한데 모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두고 그는 화합의 조각이라고 말해요. 소외된 것을 조명해 그 이야기를 찾아주고, 포용을 통해 한데 모아 새롭게 태어나는 거죠. 포용의 이정표로서 조각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은 게 요즘 작가의 화두랍니다. 세라믹 작업은 결국 하늘에 모든 걸 맡겨야 한다고 하죠. 가마 안으로 들어가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거든요.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낙담하기 마련인데, 작가는 오히려 그런 결과물이 항상 아름답고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해요. 결국 좋은 쪽으로 흐르리라는 강력한 믿음 덕분인 것 같아요. 창작의 기쁨 때문에 매달 내는 월세를 기쁨비라고 생각한다는, 포용과 사랑이 넘치는 이 창작자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다시 만난 주전자›, 2022, 점토, 유약, 43 × 39 × 31 cm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김대운입니다. 조각을 통해 포용을 부르짖고, 사랑하고자 합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뭔가 딱 ‘작가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요. 유희적인 행위를 좇다 보니 계속 창작 활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처음 세라믹에 흥미를 느끼게 된 계기도 단순했어요. 제가 만든 요리를 담을 수 있는 예쁜 접시를 만들려고 관련 수업을 들었다가 세라믹에 빠져버렸고, 이게 조각으로 발전한 케이스입니다. 그렇게 졸업하자마자 팬데믹이 터지면서 한국에 돌아왔고, 자신감이 차올랐을 때 전시하며 창작의 기쁨을 알아버리는 바람에 계속 작업하고 있네요. 맨날 놀아야 하는 게 운명 같아요. 작업하는 게 노는 것과 똑같이 즐겁고 행복하거든요.
‹발랄한 볕›, 2022, 점토, 유약, 28 × 30 × 8 cm
‹어지러운 쾌감›, 2022, 점토, 유약, 32 x 28 x 11 cm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현재 남양주에 있는 창고를 개조해서 작업실로 쓰고 있습니다. 벽에 석고 보드를 치는 일부터, 페인트칠과 바닥 시공까지 모두 제 손으로 진행했어요. 저렴한 버전의 셀프 인테리어랄까요. 작업실을 꾸미다 보니 마치 하나의 거대한 조각을 작업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즐겁게 작업했어요. 재미있고, 즐겁고, 힘든 게 꼭 작업의 프리뷰 같았습니다. 작업하면서 쉬기도 하고 노래를 틀어놓고 춤추기도 하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제 공간을 떠올릴 때는 뭔가 마당도 있고, 거기서 누워서 흥얼거리며 파티도 하는 모습을 막연하게 상상했는데요. 지금 공간은 창고로 나가면 바로 도로가 있다는 점에서 예전에 꿈꾸던 외관과는 거리가 멀어서 당황스럽긴 해요. 그래도 작업을 위한 실용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고, 작업하면서 쉬기도 하고, 노래를 틀어놓고 춤출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공간에서 어떤 작업이 탄생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가슴이 설레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들,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요. 물론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상상에 기대기도 하지만 주로 손으로 느끼는 촉각적인 면모가 가져오는 신기한 감각에 집중하게 됩니다. 점토를 만지작거리면서 EQ 발달을 꾀하는 가운데 떠오르고 휘발하는 생각을 붙잡고 형상으로 작업하는 과정이 늘 흥미롭습니다. 작업의 특성상, 다른 작가들의 깨진 조각을 수집하는데요. 그렇게 다른 작가들의 작업을 만지고 살피면서 알게 되는 각 파편에 담긴 이야기와 그 촉각성이 작업 방향을 더욱더 다채롭게 합니다.
‹율동(유약) 보랏빛 디디디›, 2022, 점토, 유약, 63 x 42 x 45 cm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책을 읽고, 유명 작가의 작업론을 관찰하며 음미해 봐요. 그 후 점토를 만지면서 여러 기물을 만들어 보는데요. 컵, 화병, 그릇처럼 보이지만 실용성은 없는 그냥 도자기를 만들면서 새로운 감각을 손으로 익혀봅니다. 그런 후에 작업을 시작해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2023, 점토, 유약, 33 x 25 x 24cm
작가님의 작업 세계가 궁금해요. 최근 작업 중 몇 가지를 예로 들어 주시겠어요?
최근에는 깨지고 버려진 조각을 수집해서 작업하고 있어요. 젠더와 포용성, 다양성을 주제로 삼는데요. 이런 문제의식을 조각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중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회 제도, 권력, 규범에 대한 투쟁이기도 하고, 소수에 대한 차별을 타파해 모두가 가져야 할 자신의 권리를 나누고자 하는 것에 더 큰 힘을 싣고 있어요. 비주류의 것을 수집하는 일을 포용적 행위로 정의하는 가운데 새로운 조각으로 탄생한답니다. 화합의 조각, 수용하고 포용하는 조각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위로하려고 해요. 2023년 GCS Creative studio에서 열린 개인전 «불가사리»에서 선보였던 작업을 소개해 드릴게요.
‹엉덩이는 꽃으로 쳐주세요›, 2023, 도자, 유약, 한지, 120 × 55 × 70 cm 이 작업은 파편이 지닌 이야기 중에 비하인드 스토리가 가장 흥미로워요. 어느 도자기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폭탄세일을 하길래 달려갔죠. 깨져서 팔지 못하는 도자기, 쓸모가 없는 애들이 있을까 해서요. 거기에 정말 멋있는 항아리 한 점이 있었는데, 뒤편에 결혼을 축하하는 메시지와 함께 결혼하는 분들의 성함이 쓰여 있었어요. 1997년 10월 2일 결혼하는 손님이 제작을 의뢰했는데, 어쩐 일인지 가져가지 않아서 남아 있더라고요. 상상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나더라고요. 버려지는 모든 것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를 모으면서 흥미로운 작업이 되고 있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2023, 도자, 유약, 은행나무, 플라스틱, 오간자, 공단, 245 × 100 × 100 cm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 2023, 도자, 유약, 은행나무, 플라스틱, 오간자, 공단, 245 × 100 × 100 cm 이 작업들에는 다양한 관념이 뒤섞였어요. 제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잘 보여줘요. 깨진 조각이 모여, 새로운 조각으로 탄생하고, 화합의 조각으로서 존재합니다. 깨진 조각이 뒤섞여 지전(한지 부분)을 통해 한을 덜어주고, 장막으로 결점을 포용하는데요. 마치 드랙Drag이 자신을 뽐내고자 가장 주변의 것들로 스스로를 치장하듯, 주변의 오브제로 만든 헤어피스를 활용했어요. 포용의 이정표로서 조각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나아가고 싶었어요.
«불가사리», 2023, GCS Creative Studio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2023, 도자, 유약, 은행나무, 플라스틱, 오간자, 공단, 245 × 100 × 100 cm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포용성, 소외된 것을 조명하기, 그리고 사랑이 가득하길!
해당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조각들이 무거워서 만족해요. 어디든 무게감이 느껴지니까 단단하게 땅을 딛고 서 있을 수 있으니, 조각으로서 잘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무거워서 저 혼자 감당하기 버거울 때가 있지만, 다른 분들이 많이 도와주세요. 비록 제 손목은 박살 나더라도 모두가 참여한 조각으로서 의의를 지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사랑스럽게 다가옵니다.
‹김대운 페르소나 #1›, 2021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일상은 단조로워요. 작업하고, 밥 먹고, 사유하고, 이것저것 친구들과 함께 많은 일을 벌이고 수습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작업에 대한 글도 항상 쓰고, 전시와 책을 보고, 이제는 공유하는 일에도 많이 익숙해져서 항상 공유하고 이를 논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써요. 가끔은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음파에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요즘 민원이 들어와서 조금 소리를 낮췄어요. 아쉽습니다. (웃음) 이렇게 보니, 단조롭기보다는 하루하루 부단히 살고자 용쓰는 듯하네요.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작가로서 살아남기, 그리고 동료와 함께 행복하게 작업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저에게는 항상 같이하며 재미있게 노는 것(전시하기, 토론하기 등등)이 가장 주된 관심 같아요. 세상에는 재미있는 친구도, 힘이 되는 친구도 많거든요.
‹율동(유약) 이브의 화려한 싱글›, 2022, 점토, 유약, 58 × 25 × 26 cm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제가 별자리 사주 보는 걸 좋아해서 자주 가는 곳이 있는데요. 지금까지 정말 많은 친구를 데려갔어요. 근데 말하는 걸 자세히 들어보면 모든 사람의 사주가 다 좋은 거예요. 그렇다고 개인의 고민과 각자 처한 상황이 막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필연적으로 다가와 상황을 헤집어 놓는달까요. 치열하게 살아가며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믿으면 좋은 틀에서 일어나는 작은 충돌 정도로 생각하게 되더군요. 이런 생각이 작업을 하다 보면 맞아떨어지기도 하고요. 특히 점토 작업은 제 마음대로, 생각한 대로 되기 힘들거든요. 가마에서 최종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 없죠. 가마 안에서 깨지는 경우도 부지기수고요. 하지만 그런 결과물이 항상 아름답고 특별하더군요. 깨졌을 땐 슬프지만 결국 좋은 쪽으로 풀렸어요. 그러니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겠나요. 이미 일어난 일은 어서 해결하고, 재미있게 즐겨야죠. 어쩌면 저는 벌어진 일을 해결하는 걸 즐기는 듯하기도 해요. 재미있게 작업하기에도 바쁜 나날입니다.
‹흙에 관한 본질적인 관찰 일렁이는 덩어리›, 2022, 점토, 유약, 37 × 33 × 29 cm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제가 둔감해서 그런가 슬럼프가 왔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작업이 괜히 못나 보이고, 부족해 보일 때가 있을 때 오히려 저는 그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아요. 그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작업으로 자라나곤 하거든요. 그래서 좀 설레기도 해요. ‘드디어 왔구나. 이번에는 어떻게 변할까? 짜릿해.’ 쓰고 보니 변태 같은 면모가 있네요.
«콘체르토Concerto», 2022, ThisWeekendRoom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애써 부정하려고 하지만 금전적인 부분이 가장 현실적인 문제죠. 하지만 지금은 비현실적으로 창작의 기쁨이 크기 때문에 매달 내는 월세를 기쁨비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친구 비용이랄까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어떤 것을 싫다고 생각하고 넘겨버리면 제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좁아진다고 봐요. 그래서 싫어하는 것에서 좋음을 찾아내고 소유하는 게 창작자로서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시도하고, 포용하고, 사랑하는 것. 물론 저도 힘들지만, 노력하면 조금씩 돼요. 제가 잘 못하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판게아 : 다시 만난 세계», 2022, WHITE NOISE
«판게아 : 다시 만난 세계», 2022, WHITE NOISE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무엇인가를 지속하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그래서 지속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박수받아야 마땅합니다. 엄청난 일이거든요. 우리 같이 계속해 보아요. 그 끝은 창대하리라!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잘 놀고, 잘 먹고, 잘 즐기고, 잘 나누는, 포용과 사랑이 넘치는 창작자가 되고 싶어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2022, 점토, 유약, 은행나무, 오간자, 종이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저는 한국에서 자라면서 소수자로서 힘들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괴로웠던 경험도 없고요. 제가 하는 일과 예술의 영역에서 만난 사람들이 저를 이해해 주고 포용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복 받았다는 마음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자기혐오와 사회혐오에 맞서 힘들어하는 소수자들이 존재해요. 그냥 조용히 있길 바라는 사람도 많고요.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포용과 이해를 통해 일상의 순간이 당당해지기를 바랍니다.
Artist
김대운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조각을 통해 포용을 부르짖는 작가다. 미국 알프레드대학교를 졸업하고 도자의 물성과 즉흥성을 조각 언어에 대입해 작업 중이다. 개인전으로 «불가사리»(GCS Creative Studio, 2023), «판게아 : 다시 만난 세계»(화이트 노이즈, 2022) 등을 열었고, 조각에서 촉각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촉각폭격»(인가희갤러리, THEO, 다이브서울, 2023)이란 전시를 기획했다. «제우스와 박수무당»(금호 알베르, 2023), «치유공간»(안계미술관, 2023) 등 다수의 단체전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2022년 미국 오리건의 LH PROJECT 레지던시, 2023년 프랑스 니스의 Villa Arson 레지던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