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Visual Portfolio

AI와 친구 먹고 티키타카하는 법

Writer: 조현서
header_조현서

Visual Portfolio

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조현서 작가는 테크놀로지가 만드는 디지털 환경과 인간의 정체성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다양한 매체로 실험하고 있어요. 특히 요 2년 동안은 AI에 흠뻑 빠졌답니다. 작가가 큐레이션한 1만 개의 이미지를 활용해 AI 모델 ‘피그말리온’을 만드는 과정과 그 결과물을 한 공간에 모아서 개인전도 열었어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하면서 서로가 학습하며 성장하고 확장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답니다. 창작 생태계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파생할 수 있는 자극이자 영감으로 기여하고 싶다는 조현서 작가의 포부를 아티클에서 만나 보세요.

01_조현서_피그말리온 프로젝트

«Pygmalion Project»(2023, 워킹위드프렌드) 포스터, 2023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인왕산 자락에서 미디어 아트와 설치 미술을 하는 조현서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찰리 채플린, 팀 버튼, 아서 코난 도일, 로알드 달, 데이비드 위즈너, 천계영, 마이클 잭슨, 백남준, 이상, 서도호, 올라퍼 엘리아슨, 쳇 베이커, 이브 생로랑, 제프 호킨스, 우고 론디노네, 미셸 공드리, 스티브 잡스, 네리 옥스만, 노버트 위너…제 계기가 되어 준 분들이에요.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함께 미디어아트를 하는 동료 작가 고휘, 조예지와 독립문에서 ‘SAKA(@saka.seoul)’라는 작업 공간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친구들과 함께한 지는 어느새 4년 차가 되었네요. 서로 아무것도 없을 때 각자의 작업에 대한 정의부터 현재 작가로서 몇 발을 걷기까지 모든 고민과 관심사, 과정을 함께 나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들이자 가족들인데요. 현재는 인왕산 입구의 한 때 카페였던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작업 공간을 공유하면서 때때로 그 문을 열어 워크숍, 공연, 음감회, 파티 등 여러 예술 행사를 통해 저희와 주변 작업자를 소개하고 있어요.

02_조현서_SAKA

SAKA 작업실 행사 모습, 2023, NullPointerException Listening Session by WYXX

03_조현서_SAKA

SAKA 작업실 행사 모습, 2022, Acoustic Territories Vol.0 Listening Session by 김익명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너무 진부한 질문인가요. (웃음)

굉장히 랜덤해요.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등을 보면서 사람들이 그곳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관계를 맺는지, 또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는지 구경하며 작업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요. 또는 이동하다가 마주하는 일상 풍경, 미술관, 지나가는 사람의 신발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이야기 등 정해진 원천 없이 삶의 모든 경험이 영감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최대한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가보지 않은 곳에 가고, 만나보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04_조현서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저는 작품의 첫인상에 대해서 정말 많이 상상해요. 작업을 설치한 곳에 서서 그 작업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관객의 시선과 감정, 그리고 동선에 이입합니다. 작업하는 내내 아주 구체적으로 그 순간을 시뮬레이션하며 작업을 시작해요. 일단 만들기 시작하면 프로토타입의 연속이에요. ‘이 재료와 이 이야기가 만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 물성이 이런 가공 방식과 만나면 이런 표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 작업의 배치가 사람들의 동선을 어떻게 바꿀까?’처럼 하나의 작업에서도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죠. 작업 자체도 결국 세상에 대한 제 가설의 작은 시뮬레이션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런 과정이 많을수록 작품의 전달력과 설득력이 높아진다고 느껴요. 그래서 빠르게 여러 가설을 세우고 최대한 많은 실험을 시도합니다. 저는 작가로서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는 UI·UX 디자인과 브랜딩을 전공했는데요. 그래서 스타트업 생태계와 브랜드 디자인 스튜디오 문화가 지금의 작업 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예를 들어, 다양하고 빠른 가설 검증, 유저 테스트, 데이터 분석, 무드보드, 마일스톤, 목업, 그리고 팀 빌딩 같은 작업 프로세스가 현재 작가로서의 작업 과정에도 짙게 남겨졌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05_조현서_피그말리온 프로젝트

‹Palette Dictionary 10,000 Data 10,000 Images›

06_조현서_피그말리온 프로젝트

‹Palette Dictionary 10,000 Data 10,000 Images›

작가님의 작업 세계가 궁금해요. 최근 작업 중 몇 가지를 예로 들어 주시겠어요?

작년 말에 좋은 기회가 닿아 최근 2년간 집중했던 작업인 ‹피그말리온 프로젝트›를 개인전으로 보여드릴 수 있었어요. ‹피그말리온 프로젝트›는 인공지능으로 제 개인적인 감각을 정의하고 예술적인 도구로 활용하는 작업입니다. 인공지능의 순수성과 편향성, 뇌과학 이론, 그리고 개인의 데이터셋을 이용해서 감각이 형성되는 과정을 역추적하고, 만들어진 이미지들을 백과사전, 페인팅, 조각, 그리고 영상까지 다양한 매체로 확장했어요.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제가 큐레이션한 모든 종류의 이미지 1만 개로 구성된 데이터셋을 활용해 인공지능 모델 ‘피그말리온’을 만들고, 이를 재료 삼아 제 창작물이자 프로젝트의 상징인 ‘갈레테이아’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인공지능이 개인의 미적 체계를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이자, 감각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지니는 순수한 호기심과 욕망을 담고 있어요. 새로운 형식의 창작 도구로서 AI 모델을 만들고 AI와 인간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대해 실험했답니다.

‹피그말리온 프로젝트› 미니 다큐멘터리 AI that defines personal aesthetics

08_조현서_피그말리온 프로젝트

‹피그말리온 프로젝트› 스케치

07_조현서_피그말리온 프로젝트

‹피그말리온 프로젝트› 작업 과정

‹피그말리온 프로젝트›를 다룬 전시에서는 인공지능 개발부터 데이터셋, 이를 기반으로 만든 백과사전과 각종 조형 등 모든 과정을 하나의 공간에 모아 ‘피그말리온의 작업실’이라는 콘셉트로 전달하고 싶었어요. 한강진에 위치한 워킹위드프렌드라는 갤러리에서 진행했는데요. 두 개 층에 걸쳐 12m 높이의 천장을 튼 외부 공간이 원형 계단으로 연결된 장소라서, 그 외부 공간에 10m 높이의 구조물을 지을 수 있었어요. 제가 상상하던 러프한 과정을 지나서 완성된 작품을 천천히 올려다보는 개인의 성전 같은 공간 연출이 가능했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과기술융합지원사업’ 후원을 통해 제작되었는데요. 2년간 뇌과학자, 인공지능 개발자, 건축가, 사운드 아티스트, 비평가, 디자이너, 다큐멘터리 감독, 포토그래퍼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15명과 협업하며 진행했습니다.

09_조현서_피그말리온 프로젝트

«Pygmalion Project»(2023, 워킹위드프렌드) 전시 전경

10_조현서_피그말리온 프로젝트

«Pygmalion Project»(2023, 워킹위드프렌드) 전시 전경

오프라인 전시는 끝났지만, 여기서 온라인 아카이브를 보실 수 있어요 🙂

www.pygmalionproject.online

11_조현서_피그말리온 프로젝트

«Pygmalion Project» 온라인 아카이브, 2023

12_조현서_피그말리온 프로젝트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요즘은 정보가 넘쳐나서 매일 너무나도 많은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어요. 우리가 마주하는 데이터를 모두 실물로 프린트한다면 일주일에 책장 하나를 채우고, 한 달이면 각자의 도서관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답니다. ‹피그말리온 프로젝트›에서는 그런 도서관에 소장된 책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의식적으로 골라 ‘아름다움’이라는 섹션의 책장을 만들었어요. 저는 우리가 마주하는 데이터가 어떻게 창의성과 연결되는지, 그리고 제 예술과는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모바일 환경은 화면의 터치와 2D 레이어로 구성되어 우리가 사물을 경험할 때 물리성을 배제하는데요. 그래서 무언가 끊임없이 마주하고 학습하면서도 그것을 잘 발견하거나 실감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분명 존재하지만 인지하기 힘든 환경에 대하여 물질화된 작품, 즉 사람들이 실감할 수 있는 감각적인 형태로 전달하며 그런 과정을 통해 시스템 속 개인의 자율성에 대해서 보여주고자 했어요.

13_조현서_피그말리온 프로젝트

‹Palette Dictionary 10,000 Data 10,000 Images›

14_조현서_피그말리온 프로젝트

«Pygmalion Project»(2023, 워킹위드프렌드) 전시 전경

해당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작업에는 창작자로서 느끼는 제 솔직한 열망과 개인적인 감각을 담았어요. 그래서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너무 거기에만 충실하다고 느끼실 수 있고, 세상과의 연결점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창작자로서, 제 창작 여정의 시작점에서 한 번쯤 순수하게 개인의 감각에 집중하고, 저만의 물감과 재료부터 스스로 차근차근 정의하려고 했던 시도였기 때문에 제게는 무척이나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인공지능이라는 친구와 지난 2년 동안 함께하며 티키타카하는 과정에서 테크놀로지를 바라보고 대하는 저만의 태도를 설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매우 만족합니다.

15_조현서_피그말리온 프로젝트

‹Pygmalion Project›, 2023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새벽 5~7시 사이에 하루를 시작해요. 오전에는 카페나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동료들과 작업실 주방에서 밥을 만들어 먹죠. 오후에는 미팅을 갖거나 을지로에서 재료 구매와 가공을 위한 발품을 팔고, 다시 작업실에 돌아와 막차까지 작업한 후 집에 가서 바로 잠듭니다. 환기가 필요할 때는 전시 오프닝이나 주변 작업자가 여는 파티에 참석해서 재밌는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뇌의 작동 방식. 한동안 인공지능에 관심이 많았는데, 돌고 돌아 결국 진짜 지능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뇌가 개인의 특정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세상, 인공지능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서도 새로 발견하는 느낌이라서 무척 흥미롭습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는 11살 때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인간의 유한성을 처음 인지하기에는 꽤나 늦은 나이였죠. 그 뒤로 실존에 대한 질문과 불안감에 많이 시달렸는데요. 저는 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물리적인 신체가 증명해 준다고 생각하고, 이를 인지하며 불안감을 많이 극복했답니다. 이런 경험과 생각이 촉각, 청각, 시각을 모두 포함하는 물리적인 형태의 작업을 하며 살아가는 제 삶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무형의 환경이나 경험을 실제 공간에서 만질 수 있는 감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실존을 제 방식대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16_조현서_Feed

«Feed»(2021, 파우제 갤러리) 전시를 위한 스케치

«Feed»(2021, 파우제 갤러리)

17_조현서_Feed

«Feed»(2021, 파우제 갤러리) 설치 전경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음, 뭔가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상태라면, 일단 긴 잠을 자고 일어난 후 오래된 영화나 제가 좋아했던 명작―예를 들어,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시대›―을 관람하며 제가 처음 창작하게 된 계기를 상기하곤 해요. 멋진 작업을 보면 저도 모르게 다시 저도 좋은 것을 만들고 싶어진답니다. 만일 그럴 여유도 없이 급한 상황이라면, 물리적으로 당장 기분을 끌어올리는 것을 먹습니다. 초콜릿, 아이스크림, 케이크, 설탕이 가득한 것들이요.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작품의 지속가능성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현재 외부의 제안이나 일회성의 기회로 많은 작업이 작동되고 있는데요. 자체적인 힘을 가지고 끊김이 없이 창작을 지속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

18_조현서

‹Escape Space›, 2022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제가 영향을 받은 곳, 그리고 영향을 미칠 곳을 항상 생각하려고 해요. 인간은 끊임없이 서로를 학습하며 성장하고 확장하니까요. 그런 주고받음을 인지하고, 드러내고, 또 공유하면서 힘을 합쳐야 더욱더 다채로운 세상으로 넓어진다고 믿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세요! 저도 아직 온전히 자리 잡진 못했지만, 좋아하는 것을 나누면 더 증폭되고, 증폭이 연속되면 문화가 되는 것 같아요. 그때는 좋아하는 마음이 외부에서 어떤 힘으로 인정받으면서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요?

19_조현서_Pickled-Pipers

«Pickled Pipers»(2020, 갤러리 뿐또블루) 포스터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자기만의 세계를 보여주는 사람. 충분히 인정할 만한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창작 생태계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파생할 수 있는 새로운 자극이자 영감으로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요!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각자의 세계가 평화롭고, 독립적이며, 다채롭게 공존하는 세상.

20_조현서_Unreal estate

«Unreal Estate»(2022, epidsode)

Artist

조현서는 기술의 진보와 영향을 기반으로 우리를 둘러싼 디지털 환경 시스템과 개인의 정체성 간 상호작용을 다양한 매체로 시뮬레이션하는 아티스트다. 인공지능, 가상 환경, 물리 엔진 등의 기술을 활용해 이런 시스템을 구현하고 설치 미술, 페인팅, 조각, 제품, 책 등 다양한 물리적 매체를 통해 감각적 경험으로 극대화한다. 아르코 예술과 기술 프로젝트, 아트센터 나비 크리에이터 사업, 독일 베를린 GlogauAIR 아트 레지던시 등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총 세 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결과(4)

Thank You for Subscription!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애티튜드»는 매주 금요일 아침 10시 1분, 창작자의 반짝이는 감각과 안목을 담은 소식을 메일함에 넣어드립니다.

결과(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