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세상 특별한 가구 브랜드가 있습니다. 모두가 죄다 특별하다고 어필하는 시대에 뭔 소리냐고요? 잠시 진정하고, 잠깐 말이라도 들어보세요. 본사는 독일 바이에른주 남부 알프스산맥과 맞닿는 지역에 있는데요. 좋게 말하면 목가적이고, 실제로는 정말 시골이에요. 소똥 냄새 진동합니다. 브랜드 창업자는 법학을 공부하다가 갑자기 브랜드를 차려 디자인하는 대표님으로 변신했고, 검증되지 않은 신예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과감히 채택해 제품으로 만들었어요. 그렇다고 매년 신제품을 내는 것도 아닙니다. 언제 나오는지 아무도 몰라요. 가구를 만드는 장인들은 목가적인(?) 본사에서 자전거로 이동할 만한 거리에 밀집돼 있죠. 무슨 생각인지 페어나 박람회에는 나가지도 않아요. 대체 사업을 하려는 건지 의심이 들지만 도리어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1982년 시작한 이래 은둔형 브랜드의 전설이 된 닐스 홀거 무어만Nils Holger Moormann 이야기랍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난 2020년 창업자가 은퇴하고, 오너와 디자인 총괄자가 바뀌었는데요. 작년 7월 외부 행사를 할 때까지 5년 동안 언론 노출을 안 했어요. 새로운 리더십 아래에서 진행한 신제품은 2021년 이후 4년 만인 올해 초 출시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 이 범상치 않은 브랜드의 핵심 인물 두 사람에게 물어봤어요. “너네 정말 어쩌려고 그러니?” 그런데 막상 답변이 매우 논리정연해서 당황스러웠어요. “우리는 정말 특별해”라고 외치는 무어만과의 티키타카를 BE(ATTITUDE) 웹 아티클에서 살펴보세요.
올해 초 4년 만에 출시한 무어만의 신제품, ‘리슬LIESL’ 시스템 선반
독일 바이에른주 시골에 자리 잡은 작은 가구 브랜드와 대한민국 서울에 기반을 둔 온라인 매체가 오프라인으로 인연을 맺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작년 7월 BE(ATTITUDE)는 독일 바이에른주 남부 아샤우 임 키엠가우Aschau im Chiemgau에서 열린 1박 2일 행사에 초대받았다. “아니, 대체 왜 우리에요?”라는 질문에 말없이 웃음으로 응답하던 용맹한 브랜드의 이름은 닐스 홀거 무어만Nils Holger Moormann. 1982년 창업해 벌써 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곳이다.
닐스 홀거 무어만(이하 무어만)은 사실 가구 브랜드 중에서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자신의 이름을 회사명으로 채택한 창업자 닐스는 법학을 전공하다 가구 회사를 세우고, 이후 디자인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자신의 취향이 깊게 배인 가구를 하나둘 세상에 내놓았다. 이제 막 커리어를 쌓아가던 신진 디자이너와 협업하며 그들을 저 멀리 날아오르게 한 적도 부지기수. 2010년대에는 주요 가구 페어에도 참여하지 않는 뚝심을 부리면서 독특한 안목과 개성에 대한 컬트적인 인기는 더욱더 높아졌다. 독일 시골에 은둔한 비밀스러운 가구 브랜드. 무어만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었다.
창업자 닐스 홀거 무어만의 포트레이트
무어만과 협업한 신진 디자이너들은 이제 다들 유명 인사가 됐다.
2019년 베를린 아트 위크 때 진행한 자전거 도심 가구 배송 서비스 ‘POP HUB’
그런데 무어만의 창립자이자 은거기인 닐스는 정작 본사에 없었다. 아니 은퇴라니요? 그것도 벌써 2020년에요? 아무리 구글링해도 나오지 않던 정보, 심지어 오는 길에도 알려주지 않아 닐스의 과거 인터뷰를 찾아본 입장에서 실로 당황스러웠다. 닐스 대신 방문객을 맞이한 두 명의 젊은 남자―회사를 인수하고 대표를 맡고 있는 크리스티안 크노르스트Christian Knorst와 브랜드의 마케팅과 디자인을 총괄하는 로버트 크리스토프Robert Christof―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 채, 당일 벌어지는 행사 ‘살로네 디 아샤우Salone di Aschau’ 준비로 표정이 들떠있었다. 여기저기서 모인 사람들과 전시인지, 워크숍인지, 축제인지 종잡을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한나절이 후딱 지나갔다. 그날 밤, 잠을 청하는 내 머릿속에는 상반되는 생각이 공존했다. ‘지금 독일 시골까지 와서 대체 뭐 하는 거지? 그런데 오늘 왠지 힐링한 느낌인걸?’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지나간 낭만적인 하루였다.
2024년 7월 13일에 열린 협업형 디자인 페스티벌, 살로네 디 아샤우
살로네 디 아샤우는 밤까지 이어졌다.
한국에 돌아와 기사를 준비하며 행사 평으로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무어만이라는 브랜드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파헤쳐보고 싶었다. 게다가 ‘곧’ 신제품이 나온단다. 무려 4년 만에 발표하는 무어만의 신제품. 신제품 소식까지 포괄하는 기사를 진행하기로 상의하고 제품 사진 찍는 걸 기다리고 있으니 어느덧 해가 넘어가 버렸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소리 소문 없이 신제품도 출시됐다. 소문으로 듣던 닐스보다 더 기인처럼 다가오는 두 사람과 이들이 이끄는 무어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내는 인터뷰가 천천히, 오랜 시간 진행됐다. 핑퐁처럼 주고받은 10개월 간의 이메일을 다시 확인하며 드는 생각은 ‘여긴 진짜 특별해.’ 크리스티안과 로버트도 안다. ‘우린 정말 특별해.’ 특별한 곳을 다룬 특별한 이야기를 직접 확인해 보시라.
작년 여름 독일 바이에른 시골에서 열렸던 살로네 디 아샤우의 즐거운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었네요. 올해 초 들려온 4년 만의 신제품 소식도 무척 축하합니다. 독일의 가구 브랜드와 한국의 온라인 매체가 꾸준히 인연을 유지하는 게 참 뜻깊네요.
로버트: 한국은 저희에게 무척 중요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에요. 그래서 한국의 미디어 환경과 콘텐츠 플랫폼을 멀리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답니다. BE(ATTITUDE)는 저희와 협업하는 «the thing magazine»의 편집장이 소개해서 알게 됐어요. 콘텐츠를 구성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에 곧장 매력을 느껴버렸죠. 무엇보다 ‘Magazine for Strange Discovery’이라는 슬로건이 마음이 쏙 들었답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살로네 디 아샤우는 독특한 행사였어요. 단 이틀만 진행했는데, 두 번째 날은 아침 등산으로 끝났잖아요. (웃음)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길게 할 걸’ 후회하지는 않으셨나요?
로버트: 솔직히 말씀드리면, 행사를 더 길게 가져갈 생각은 애초에 전혀 하지 않았답니다. 저희가 구상한 바는 첫째 날 전시와 퍼포먼스에 집중하며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활발한 교류의 장을 만드는 거였어요.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본사 건물 뒤편의 들판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할 수 있었죠. 다음 날에는 지역에 위치한 ‘캄펜반트Kampenwand’산으로 하이킹을 가면서 지난 하루의 경험을 함께 되짚고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죠. 되돌아보면, 이렇게 압축적이고 강렬하게 행사를 구성한 게 정말 딱 맞는 선택이었어요.
동네방네에서 몰려온 사람들의 모습
살로네 디 아샤우에서는 가구를 직접 만들고 체험할 수 있었다.
동네 뒷산이라기엔 과하게 높은 캄펜반트산 전경
닐스 홀거 무어만, 줄여서 ‘무어만’이라고 부르는 가구 브랜드는 창립자인 닐스의 리더십 아래 컬트적인 명성을 얻은 곳이죠. 그래서 작년 아샤우 임 키엠가우에 위치한 본사에 방문했을 때 가장 놀랐던 사실은 2020년부터 브랜드를 이끄는 리더십의 변화였어요. 관련 정보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거든요.
크리스티안: 새로운 리더십은 이전 리더십과 아주 긴밀하게 협력해 세심한 준비를 거쳤어요. 저희는 이를 요란하게 알리는 대신, 조용한 속삭임처럼 전달하려고 했죠. 신뢰는 전격적인 발표나 폭탄선언으로 얻을 수 없어요. 태도와 시간, 무엇보다도 많은 노력을 통해 쌓인다고 믿어요. 그래서 이번 세대교체는 단절보다는 일종의 바통터치였어요. 즉 저희는 창립자 닐스의 대체자가 아니라, 무어만이라는 브랜드가 지닌 사상의 연속선 위에 있는 존재입니다. 과거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 진심 어린 열정을 가지고 있어요.
리더십이 바뀐 사실을 전해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회의적이기도, 예상보다 따뜻할 때도 있었어요. 저희는 그게 바로 변화가 지닌 본질이라고 믿어요. 변화에는 마찰이 필요하고, 마찰은 온기를 만들어내니까요. 로버트와 가끔 “예전에는 어땠더라?” 대화를 나눌 때마다 결국 하나의 진실을 마주하게 돼요.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죠. 그래서 저희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훨씬 더 기대하고 있어요.
무어만 본사 내부 모습
그런 면에서 올해 초 출시한 신제품은 그 의미가 남다를 것 같네요. 2021년 출시한 ‘쿠르트KURT’가 닐스가 디자인한 마지막 유산이었다면, 4년 만에 발표한 시스템 선반 ‘리슬LIESL’은 새로운 리더십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한 산물이니까요. 무어만의 새로운 챕터를 본격적으로 여는 시작점으로 기록되지 않을까요.
크리스티안: 맞아요. 저희가 회사를 인수한 이후 처음으로 선보인 쿠르트는 닐스가 디자인한 테이블이에요. 무어만이라는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정말 잘 담고 있는 작업이죠. 40년 넘게 차곡차곡 쌓은 디자인 아카이브를 살펴보다가 발견했는데, 저희의 보물창고랍니다. (웃음) 알고 보니 과거에 제품화를 시도했지만, 모종의 이유로 완성하지 못했더군요. 그런 사실 때문이더라도 쿠르트를 꼭 세상에 내놓고 싶었어요. 수차례의 좌절, 오랜 인내와 노력을 양분 삼아 고집스레 프로젝트를 끌고 가다가 마침내 제품으로 출시하니까, 단순한 성공 그 이상으로 다가오더군요. 닐스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이자, 저희에게도 정말 의미 있는 제스처로서 말이에요.
쿠르트, 디자인: Nils Holger Moormann, 출시: 2021년
쿠르트, 디자인: Nils Holger Moormann, 출시: 2021년
쿠르트, 디자인: Nils Holger Moormann, 출시: 2021년
쿠르트 디테일
그 이후로는 무어만의 컬렉션에 새로운 소재와 부품을 더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데어 포르슈탄트Der Vorstand’ 같은 프로젝트성 작업을 진행했죠. 기존의 유산을 존중하며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균형 잡기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러다 올해 초 리슬이 탄생했습니다. 리슬은 아주 아름다운 노트의 깨끗한 공백에 써 내려간 첫 문장 같은 존재예요. 말씀하신 것처럼 ‘새로운 챕터’의 시작일지도 모르죠. 근데 솔직히 말하면, 저희가 정말 바라는 상황은 리슬이 무어만이라는 긴 이야기의 일부가 되는 거예요. 익숙한 종이에 저희만의 손 글씨로 이어가고 싶은 그런 이야기요.
데어 포르슈탄트 프로젝트 스케치
데어 포르슈탄트 프로젝트, 진행: 2021년
데어 포르슈탄트 프로젝트, 진행: 2021년
데어 포르슈탄트 프로젝트, 진행: 2021년
리슬, 디자인: Marie Luise Stein, 출시: 2025년
리슬, 디자인: Marie Luise Stein, 출시: 2025년
비교적 젊은 나이에 무어만을 인수했다고 알고 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무어만이라는 작은 가구 브랜드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셨나요?
크리스티안: 마흔이라는 나이를 젊다고 하기에는 좀 논쟁의 여지가 있겠는데요. (웃음) 무어만 인수는 평생의 꿈이나 철저한 비즈니스적 판단의 결과는 아니에요. 좀 더 직감에 가까운 선택이었고, 물론 그에 대한 결과도 뒤따랐죠. 정말 우연찮게 무어만이라는 가구 브랜드를 알게 된 후, 닐스와 만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인수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주변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으니 거의 모든 사람이 반대하더군요. “그건 불가능해!”
무어만의 새로운 오너이자 대표, 크리스티안 크노르스트Christian Knorst.
저는 무어만에서 단순한 가구 브랜드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어요. 하나의 사고방식, 하나의 캐릭터, 개인의 취향이나 선호에 의존하지 않고 매우 일관적이면서 어쩌면 다소 독단적일 만큼 명확하게 이어지는 가치 체계랄까요. 무어만의 가치를 계속 이어가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죠. 과거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 틀 안에서 신중하게 변화와 발전을 시도할 수 있는 자유를 확보하고 싶었어요. 한마디로, 무어만은 영혼을 가진 브랜드예요. 그래서 단순히 이름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이름에 가려진 책임까지 함께 떠안는 결정이었습니다. 디자인, 장인정신, 태도에 대한 생태계 전반에 관해서요. 위험한 일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강한 확신을 지닌 채 진행했답니다.
무어만은 그야말로 컬트 브랜드에요.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하고, 개성도 뚜렷하죠. 그 중심에는 창업자인 닐스가 있었고요. 법학 공부를 때려치우고 창업한 가구 회사에서 직접 디자인까지 하게 된, ‘비전공 디자이너 대표’ 이야기는 굉장히 극적이잖아요. 그의 취향이 무어만의 다양한 시그너처 제품에 반영된 사실도 유명하고요. 어찌 보면 무어만은 닐스의 분신일 수도 있는데요. 이렇게 한 사람의 정체성이 강하게 투영된 브랜드를 인수하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크리스티안: 어우. 당연하죠. 누군가의 개성이 강하게 깃든 집에 이사 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가 가구를 왜 이렇게 배치했는지 이해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건드리기 힘들어요. 무어만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태도, 비범한 사고, 사랑스러운 괴짜다움이 투사되는 스크린 같은 존재예요. 하지만 브랜드의 핵심 가치는 아주 명료하죠. 저희는 이를 투명성, 일관성, 확신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어요. 이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매우 실용적이고 강력하고 여전히 어디에서나 유효한 행동 지침이죠. 이런 세 가지 원칙은 디자인, 소통, 협업 등 무어만을 둘러싼 모든 과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부키니스트BOOKINIST, 디자인: Nils Holger Moormann, 출시: 2007년
부키니스트, 디자인: Nils Holger Moormann, 출시: 2007년
책을 읽으며 움직이는 의자라는 콘셉트에 걸맞게 독서 편의용품을 보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투명성을 살펴볼까요. 무어만의 가구를 보면 구조가 열려 있고, 보기만 해도 기능을 알아차릴 수 있으며, 거창하게 가리지 않은 표면은 그 자체로 이야기를 전달해요. 사용자와 함께 서서히 나이를 먹을 수 있죠. 저희가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도 동일한 논리를 따릅니다. 지역 내의 작은 공방과 협업해 제품을 제작하는데요. 대단히 지역 중심적이고 정직해서 만드는 과정을 하나하나 추적할 수 있어요. 이건 과거를 염두에 둔 노스탤지어와 거리가 멀어요. 그저 저희에게 가장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방식일 뿐이죠. 하지만 브랜드가 박물관은 아니잖아요? 유리관 안에 무언가를 보존하는 게 브랜드의 할 일은 아니죠. 생명력과 호기심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투명성, 일관성, 확신이라는 가치는 더욱더 중요해요. 이를 기준 삼아 앞으로 나아가면 놀랄 만큼 거대한 자유와 거의 타협을 불허하는 일이 동시에 가능해지거든요. 어쩌면 이야말로 무어만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유산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스트라머 막스Strammer Max, 디자인: Max Frommeld, 출시: 2009
스트라머 막스, 디자인: Max Frommeld, 출시: 2009
스트라머 막스 디테일
무어만은 1982년 창립해 지금 40년이 넘었어요. 지난 5년간 브랜드를 재정비하면서 고민거리가 많았을 텐데 어떻게 해결했나요? 그동안 쌓였던 유산과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되던가요?
로버트: 가장 큰 도전은 크리스티안이 앞서 말한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정확히 이해하고 해석한 후, 이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옮기는 일이었어요. 브랜드의 이름이자 창립자인 닐스가 회사를 떠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변화가 생겼으니까요. 예를 들어 2020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유통 구조, 소비자의 구매 방식, 타깃 그룹의 미디어 사용 패턴, 공급업체와의 관계, 원자재 가격 등이 완전히 다릅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내부 조직뿐만 아니라 브랜드를 둘러싼 생태계, 즉 네트워크 또한 강화해야만 했어요.
크리스티안: 지난 5년은 정말 짧고도 긴 세월이었죠. 특히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적인 격변 덕분에 더욱더 그랬고요. 뒤돌아 생각해 보면 아주 빠르고도 깊은 다이빙을 했던 것 같아요. 무어만이 지닌 미덕은 매끈하고 번쩍이는 브랜드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오히려 태도, 관계, 다르게 해보려는 열망으로 고집스럽게 뭉친 뾰족한 면모를 보이죠.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아도 된다는 기본적인 믿음이 저희에게는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어요. 더불어 무어만과 오랫동안 함께한 파트너, 클라이언트, 장인 또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고 있어요. 그래서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더 잘 듣는 법을 배우고 있답니다. 하지만 결국 닐스가 예전에 해준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네요. 독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거든요. “지식이 많다고 꼭 현명한 건 아니다.” 그래서 저와 로버트는 이런 정신을 잊지 않아요. “일단 해보자. 직접 손대어 시작해 보자”
갑자기 엉뚱한 질문이 떠오르네요. 무어만의 제품, 솔직히 좋아하시나요? (웃음) 어떤 걸 너무 좋아하면 바꾸기 어렵고, 애정이 없다면 중요한 걸 놓치기도 하잖아요. 여러분에게 무어만의 기존 제품은 어떻게 다가왔나요?
로버트: 저와 아내는 현대적이고 미니멀한 외관에 품질이 좋은 ‘타임리스 디자인’을 사랑해요. 10년이 훨씬 넘었네요. 아파트 주방에 어울릴 만한 적당한 캐비닛을 찾다가, 무어만의 ‘K1’ 캐비닛을 발견했어요. 시각적인 명쾌함뿐만 아니라 영리하게 설계한 연결 방식, 간단한 조립법, 효율적인 모듈 시스템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K1 캐비닛은 지금도 저희 주방에 멀쩡히 서 있답니다. 세 아이의 좌충우돌을 매일 견뎌내면서요. 하하. 절제된 디자인과 지적인 구조에도 여전히 큰 만족을 느끼고 있고요.
무어만의 마케팅과 디자인을 총괄하는 로버트 크리스토프Robert Christof
K1, 디자인: Neuland, Paster & Geldmacher, 출시: 2010년
K1, 디자인: Neuland, Paster & Geldmacher, 출시: 2010년
K1 디테일
이런 사적인 이야기는 무어만의 디자인 언어를 꽤 잘 설명해 주는 일화예요. 무어만이 추구하는 가구는 단순한 제품에 국한되지 않아요. 마치 특별한 아이디어에 기반한 발명품과도 같죠. 어떤 건 어이없을 정도로 엉뚱하고, 어떤 건 기막히게 영리해요. 사소한 디테일, 혹은 완전히 혁신적인 접근법에서 아이디어가 탄생했죠. 가시적인 결과물을 얻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에 걸친 탐색이 필요하고, 그 후에도 긴 시간을 들여 다듬고 또 다듬어야만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결국 제대로 완성해 출시한 제품은 사용자에게 진심으로 사랑받으며 오래도록 곁에 머무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곤 합니다. 투명성, 일관성, 확신이 낳은 힘이죠. 이는 1989년 발표한 ‘FNP’ 선반 같은 클래식 디자인부터 2011년 발표한 ‘프레스트 체어Pressed Chair’, 이번에 새로 출시한 리슬 같은 현대적인 제품 모두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FNP, 디자인: Axel Kufus, 출시: 1989년
FNP, 디자인: Axel Kufus, 출시: 1989년
FNP, 디자인: Axel Kufus, 출시: 1989년
FNP는 확장가능한 모듈형 선반이다.
프레스트 체어, 디자인: Harry Thaler, 출시: 2011년
프레스트 체어, 디자인: Harry Thaler, 출시: 2011년
질문을 약간 바꿔야겠군요. (웃음) 여러분이 특히 애정하거나 높이 평가하는 무어만의 기존 제품을 꼽아주시겠어요? 그 이유도 궁금금합니다.
크리스티안: 으… 이건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마치 “어떤 아이를 제일 좋아하니?” 같은 거잖아요. 답하기가 거의 불가능한걸요. 그래도 굳이 하나를 꼽자면 저는 볼프강 라우베르스하이머Wolfgang Laubersheimer가 디자인한 ‘게스판테 레갈Gespannte Regal’이 무척 자랑스러워요. 1984년부터 40년 넘게 무어만의 컬렉션에 속한 선반이죠. 이 제품이 특별한 이유는 긴장(tension)이라는 개념을 구조적 원리로 삼았기 때문이에요. 전통적인 지지대 위에 선반이 단순하게 올려져 있는 게 아니라, 팽팽하게 당겨진 와이어로프 시스템에 매달려 있거든요. 덕분에 선반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가벼움과 유려함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미니멀한 디자인과 독특한 긴장감이 결합해 공간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명료함과 존재감을 만들어내요.
게스판테 레갈, 디자인: Wolfgang Laubersheimer, 출시: 1984년
게스판테 레갈, 디자인: Wolfgang Laubersheimer, 출시: 1984년
게스판테 레갈의 핵심은 텐션이다.
로버트: 저는 무어만의 디자인 언어에 정말 큰 애정을 갖고 있어요. 게다가 그 디자인 언어를 컬렉션 전반에 걸쳐 무척 일관되게 구현한 터라 흐름에서 벗어나는 제품이 거의 없어요. 만약 있다고 해도,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일탈입니다. (웃음) 그래서 컬렉션에 속한 거의 모든 제품을 좋아할 수밖에 없죠. 개인적인 호오를 묻는다면, 저는 FNP 선반, ‘지벤슐레퍼Siebenschläfer’ 침대, 프레스트 체어, 그리고 새로 나온 시스템 선반 리슬을 꼽겠어요. 아, 그리고 물론 K1 캐비닛, 게스판테 레갈 선반, ‘라더Lader’ 수납장도 빼놓을 수 없고요. 이렇게 하다가 제품 목록 끝까지 이어지겠는걸요. 하하. 제가 이런 제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모던하고 미니멀하며 타임리스한 디자인, 구조적으로 영리한 아이디어, 고품질의 소재, 그리고 무엇보다도 디테일에 담긴 유머 감각 때문인데요. 결국 무어만 컬렉션 전체에 공통으로 흐르는 철학과 일치합니다.
지벤슐레퍼, 디자인: Christoffer Martens, 출시: 2007년
지벤슐레퍼, 디자인: Christoffer Martens, 출시: 2007년
지벤슐레퍼 디테일
라더, 디자인: Axel Kufus, 출시: 1996년
라더, 디자인: Axel Kufus, 출시: 1996년
라더 해체 샷
무어만은 업계 행사나 주요 페어에 참석하지 않는 등 홍보 활동이 폐쇄적인데요. 작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 때 살로네 디 아샤우를 홍보하는 맥주병 캠페인을 접하고 깜짝 놀랐어요. 내가 아는 무어만이 맞나 싶었죠. 무어만의 소셜 미디어 또한 훨씬 젊어졌어요. 이런 대변환의 비결이 뭐죠?
로버트: 칭찬 감사합니다. 저희로서는 이런 변화가 180도 전환이라기보단, 마케팅과 소통 방식을 일관되게 확장하는 중이에요. 무어만은 늘 독특한 아이디어와 콘셉트, 그리고 적당한 유머와 장난기 어린 시선을 지닌 브랜드였어요. 이런 특성에 맞춰 효과적으로 홍보해 왔습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속도와 도달 범위일 거예요. 소셜 미디어 같은 플랫폼이 이를 가능하게 했죠. 과거에는 고급스럽고 잘 디자인된 카탈로그와 브랜드 관련 책이 소수의 열성적인 팬 사이에 공유됐어요. 구하기도 쉽지 않았죠. 지금은 소셜 미디어에 올린 단 하나의 게시물만으로도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에게 즉시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어만이라는 브랜드가 지향하는 지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전달하는지 여부입니다.
2024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진행한 살로네 디 아샤우 관련 맥주 캠페인
무어만이 추구하는 소셜 미디어 이미지 방향성
무어만이 추구하는 소셜 미디어 이미지 방향성
무어만이 추구하는 소셜 미디어 이미지 방향성
무어만은 지금까지 제품을 고안할 때 두 가지 방식을 병행해 왔어요. 닐스를 중심으로 한 내부 개발과 외부 디자이너와의 협업입니다. 특히 유망한 신예 디자이너, 예를 들어 콘스탄틴 그리치치Konstantin Grcic, 타카시 사토Takashi Sato, 해리 탈러Harry Thaler, 패트릭 프레이Patrick Frey 등과 협업해 서로의 커리어를 확장하는 방법은 무어만의 특징이자 강점으로 꼽혔죠. 새로운 리더십 아래, 무어만의 제품 개발 프로세스에도 변화가 찾아왔나요?
크리스티안: 무어만은 점점 더 ‘디자인 퍼블리셔design publisher’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이에요. 즉 외부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보이고, 그들의 콘셉트를 지원하며 실현해 주는, 일종의 ‘디자인 출판사’랄까요. 지역에서 일하는 작은 공방들과 긴밀하게 협력해 무어만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제품이 실체화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이 저희뿐 아니라 전 세계에 존재하는 무어만의 팬―이곳 아샤우의 장인부터 한국에 있는 고객까지―에게 큰 기쁨을 주면 좋겠습니다.
HUT AB, 디자인: Konstantin Grcic, 출시: 1998년
HUT AB, 디자인: Konstantin Grcic, 출시: 1998년
HUT AB 디테일
외부 디자이너와 협업할 때 그들의 제안서를 블라인드 방식으로 심사한다고 들었어요. 장단점이 궁금합니다.
크리스티안: 전 세계 디자이너가 제출한 제안서를 익명으로 검토하는 방식은 디자이너의 이름이나 평판에 영향받지 않고 순수한 아이디어 그 자체에 집중해서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합니다. 가장 큰 장점은 선입견 없는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거겠죠. 종종 정말 놀라운 수준의 디자인 제안을 받곤 해요. 대신 그만큼 커다란 신뢰가 필요한 시스템이에요. 모든 참여자 사이에 투명성과 존중, 신뢰가 전제되어야 익명 심사 방식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으니까요.
올해 초 발표한 신제품 리슬이 더욱더 특별하게 보이는 순간입니다. 지난 몇 년간 새로운 리더십의 시행착오와 고민, 태도, 역량이 고스란히 담긴 산물로서 말이에요.
크리스티안: 맞아요. 리슬은 단순한 신제품이 아니에요. 저희에게는 무어만의 철학을 진정으로 담아낸 작업입니다. 가공되지 않은 알루미늄과 연결 로드를 사용해 ‘필요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적절한’ 상태를 구현하려고 했어요. 제품 개발에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죠. 과정 내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답니다. ‘무언가를 제대로 창작하려면, 과연 어느 수준까지 디자인을 고민해야 하는 걸까?’ 저희는 계속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면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단순함과 모듈러 구조를 획득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리슬은 조용한 우아함, 그리고 유연함과 변화의 가능성을 상징합니다. 겉보기에는 정말 단순하죠. 하지만 그 단순함을 끝까지 밀어붙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도가 필요했는지 밖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거예요. 정말로 긴 여정이었어요.
무어만의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는 시스템 선반 리슬
무어만의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는 시스템 선반 리슬
무어만의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는 시스템 선반 리슬
리슬 디테일
무어만이 매년 신제품을 내는 브랜드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어요. 혹시 진짜 마음에 드는 제품만 공들여 출시하는 게 앞으로의 전략이라면, 이제 사람들은 깜짝 알림을 기다려야 하나요?
크리스티안: 빠르게 신제품을 출시하는 건 결코 중요하지 않아요. 물론 재정적으로 곤란해질 때가 종종 있긴 하지만요. (웃음) 저희에게 진짜 중요한 일은 정말로 확신이 드는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구현해서 세상에 내놓는 거예요. 새로운 제품은 단순히 신제품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여야 한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느리고 신중한 움직임은 분명 저희의 전략입니다. ‘그냥 내보내기 위한’ 제품을 만들 순 없어요. 오랜 세월 동안 컬렉션 안에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제품이 필요해요. 제품이 꾸준히 검증받고, 장인이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제작에 참여하고, 고객이 언제든지 자신의 가구를 확장해 나가려면 어쩔 수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다음 무어만의 신제품은 곧 나올 수도 있고, 몇 년 더 걸릴 수도 있어요. 사실 저희도 잘 몰라요. 진짜로요! (웃음)
닐스가 회사를 이끌었을 때 무어만이 추구하던 핵심 가치는 단순함, 지성, 혁신이었어요. 유연성을 강조하던 그의 말도 떠오르네요. 이런 기존의 가치는 현재 새로운 가치로 진화했다고 봐야 할까요?
크리스티안: 계속 변하는 게 세상이고, 그만큼 우리가 처한 환경과 맥락도 달라지고 있어요. 이제 단순히 ‘간결한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사람들의 니즈에 반응하고 대응하는 방식 역시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유연성은 여전히 무어만의 핵심 가치 중 하나에요. 대신 디자인뿐 아니라, 일하는 방식과 파트너, 고객과의 관계에까지 확장해서 바라보고 있어요. 결국 언제나 목표는 동일합니다. 단순함을 지키면서 그 안에 깊이를 담아내는 것이죠. 이런 변화 속에서 저희가 길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등불은 투명성, 일관성, 그리고 확신이라는 태도입니다. 이제 남은 건 이를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뿐이에요.
살로네 디 아샤우로 잠시 돌아가 볼게요. 새로운 리더십이 공개적으로 연 유일한 브랜드 행사나 다름없는데요. 작년에 진행해야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결국 무엇을 위한 행사였나요?
로버트: 무어만은 작고 아웃사이더 기질을 가진 브랜드입니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늘 떠오르는 고민거리는 우리 제품, 그리고 제품에 얽힌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여부에요. 대부분의 박람회는 저희에게 너무 크고, 너무 복잡합니다. 그래서 그와는 다른 길을 개척해 보고 싶었어요. 분주함에서 조금 벗어난 장소에서 방문자가 전시된 제품과 프로젝트에 조금 더 천천히, 깊이 있게 몰입하며 다른 이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 말이죠. 더불어 저희는 새롭고 완벽한 제품뿐 아니라, 미완성품, 어딘가 거친 면모가 남아 있는 것을 함께 선보이고 싶었어요.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 자체에 더 많은 빛을 비출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그리고 금세 확신하게 됐죠. 이런 시도는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다른 작은 브랜드 및 디자이너와 함께여야 한다고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첫 번째 협업형 디자인 페스티벌, 살로네 디 아샤우였어요.
본사 마당에서 열린 살로네 디 아샤우 전경
살로네 디 아샤우 포스터
살로네 디 아샤우
크리스티안: 지금 생각해 봐도, 저희에게는 하나의 실험이었어요. 쇼도 아니고, 페어도 아니었죠. 무어만의 철학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에 가까웠어요. 저희는 디자인을 결과물 자체로만 바라보지 않아요. 디자인은 언제나 그 과정, 미완성, 시행착오와 함께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살로네 디 아샤우는 아이디어와 사람들의 만남,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한번 해보는 자유’를 축하하는 자리였답니다. 무엇보다… 정말 순수하게 즐거운 경험이었죠.
살로네 디 아샤우의 평화로운 모습들
살로네 디 아샤우의 평화로운 모습들
혹시 올해도 비슷한 행사를 준비하고 계신가요?
로버트: 저희는 살로네 디 아샤우와 무어만의 제품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봐요. 속도가 중요하지 않고, 행사를 가능한 한 많이, 자주 여는 것도 목표가 아니죠. 첫 번째 살로네 디 아샤우는 참여자 모두에게 아주 특별하고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이었어요. 그래서 다음 살로네 디 아샤우는 매우 신중하게 준비하고, 특별하게 구성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계획에 없어요. 물론 반드시 언제가 열릴 거예요! (웃음) 대신 올해는 규모가 좀 더 작은 행사 몇 가지를 준비하고 있답니다. 예를 들어, 저희가 ‘살로네 뮌헨Salone München’이라는 쇼룸 겸 갤러리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오는 5월 10일부터 18일까지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전시를 개최해요. 1980년대 ‘뉴 저먼 디자인New German Design’과 예술 운동 ‘다다Dada’ 사이의 교차점을 탐구하는 작업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살로네 뮌헨 전경
살로네 뮌헨 내부 이미지
살로네 뮌헨 내부 이미지
오스트리아 빈에 소재한 치펜페니히 갤러리(Galerie Zippenfenig)에서 2024년 열렸던 전시 «가가 다다GAGA DADA»가 살로네 뮌헨에서 재현된다.
오스트리아 빈에 소재한 치펜페니히 갤러리(Galerie Zippenfenig)에서 2024년 열렸던 전시 «가가 다다GAGA DADA»가 살로네 뮌헨에서 재현된다.
로버트가 했던 “장인은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해요.”라는 말이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새로운 리더십 아래에서도 장인정신과 지역성은 여전히 중요한 속성으로 보이는데요. 무어만에게 지역성은 왜 중요한가요? 최근 전 세계적인 트렌드와도 연결되는지요.
로버트: 무어만의 제품은 한 마디로 특별하죠. 그렇기에 이를 개발하고 생산하려면 창의적이고 헌신적인 장인의 도움이 필수적입니다. 장인들과 함께 일할 때는 서로 직접 만나 대화하고, 작업대 앞에 함께 서서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때로는 수정하고 다시 시도해 보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요. 그래서 장인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 되는 거죠. 실제 저희 가구를 만드는 장인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 일하세요. 이런 철학은 무어만이 처음 설립될 때부터 중시되었고, 지금도, 또 앞으로도 무어만의 전략에서 변치 않을 원칙입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공예와 지역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무어만이 그런 글로벌 트렌드에 영향을 받진 않습니다. 저희는 언제나 저희 방식대로 해왔고, 앞으로도 이는 변치 않을 거예요.
혹시 두 분이 무어만을 통해 이루고 싶은 성취가 존재하나요? 무어만이 어떤 브랜드로 성장해 나가길 바라는지 궁금합니다.
크리스티안: 음… 저는 사실 거창한 꿈을 꾸는 사람은 아니에요. 브랜드는 무언가 만들어내기보다, 태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거든요. 무어만은 저만의 뚜렷한 개성을 지녀야 하고, 때로는 거칠고 불편한 면모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무어만다운 고집스러움과 솔직함을 계속 지킬 수 있는 자유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저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것 같아요.
로버트: 다행히도 무어만이라는 브랜드는 거칠고 솔직한 개성 덕분에 잘 살아남고 있어요. 아마도 이 브랜드는 언제나 아웃사이더 중의 아웃사이더, 와일드카드, 그리고 ‘이상한 발견(strange discovery)’으로 남을 겁니다. 무어만이 지닌 본연의 특질을 잘 가꾸며 그 매력을 잃지 않도록 계속 이어가는 게 저희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왼쪽부터) 로버트 크리스토프, 크리스티안 크노르스트
드디어 마지막 질문입니다! 독자분들께 남기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부탁드려요. BE(ATTITUDE)라는 이름에 걸맞게, 창작자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여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크리스티안: 제가 지금까지 배운 교훈 중 하나는 결국 정직하고 꾸준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이에요. 특히 가벼워 보이고, 단순해 보이고, 명확하고, 장난스러워 보일수록 사실 엄청난 노력이 들어가기 마련이랍니다. 토론이 길어진다고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도 알아두세요. 어느 순간에는 그냥 직접 손을 대고, 시도해 보고, 다시 해보고, 또다시 시도하면서 마침내 제대로 완성해 내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로버트: 동감이에요. 결국 손을 움직여 직접 해보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죠. 더불어 자신의 핵심 가치에 집중하며 태도를 보여주는 것 또한 정말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Interviewee
닐스 홀거 무어만Nils Holger Moormann(@nilsholgermoormann)은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디자이너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해 제품화하고, 본사가 자리 잡은 독일 바이에른주 아샤우 임 키엠가우Aschau im Chiemgau 지역에서 장인들과 함께 실물로 구현하는 가구 퍼블리셔다. 지금까지 60개 이상의 국제적인 디자인상을 받았고, 가구뿐 아니라 예술 및 문화 프로젝트도 함께 기획 중이다. 현재 크리스티안 크노르스트Christian Knorst가 회사 오너로서 대표직을 수행하고, 로버트 크리스토프Robert Christof가 마케팅 및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Editor
전종현(@harry.jun)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등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과 편집위원을 지냈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기아글로벌디자인센터에서 발행한 «기아 디자인 매거진» 창간 작업과 콘텐츠를 총괄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겸 아트 칼럼니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뉴닉»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 중이며, 동시대 한국의 기발한 창작자에 주목하는 «비애티튜드» 편집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