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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nterview

늦어서 오히려 좋아!

Editor: 전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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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nterview

다채로운 대화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한국에는 디자인, 아트, 페어, 페스티벌이란 단어를 조합한 수많은 행사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혹시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visual art festival’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지난 2022년부터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을 정체성 삼아 매년 꼬박꼬박 행사를 치르는 ‘웁OOP’은 어느덧 많은 사람들이 하반기에 기대하는 독특한 이벤트로 자리 잡고 있는데요. 이들이 해석하는 비주얼 아트는 무척 넓답니다. 비단 아티스트의 작품뿐 아니라, 브랜드의 공간 디자인, 패션쇼의 무대 연출 등 일상에서 시각적 영감과 영향을 주는 모든 것을 비주얼 아트로 정의하죠. 이런 범주에서 아트, 패션, 음악, F&B, 테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웁서울 2024’를 다녀와 보니 역동적이면서 감각적인 면모와 즐거움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웁을 기획하는 아트 에이전시 악수AXOO에 대화를 청한 게 작년 10월 말. 차근차근 준비해서 연말 콘텐츠로 내려던 장대한 계획은 근 4개월간 계속된 한국의 정치적 불안정성 때문에 기약 없이 밀리고 말았습니다. 비로소 봄이 왔음을 실감하는 지금에야 고대(古代) 인터뷰를 발행하는 심정은, ‘늦어서 오히려 좋아!’랄까요. 시간대는 기묘하게 꼬였지만, 후루룩 읽는 재미로 가득한 악수와의 인터뷰를 BE(ATTITUDE)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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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서울 2024’ 입장 풍경

작년을 추억하기엔 벌써 올해의 1/4이 지나버렸다. 이제 겨우 살 만 해진 날씨가 눈 깜짝할 새에 무더운 여름으로 변해버리지 않을까 벌써 조바심이 든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사는 모두에게 해당할 테다. 작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대한민국에 갑자기 등장한 계엄령 이후 내 일상은 매일 쏟아지는 사건과 뉴스에 정신없이 점령됐다. 12월 4일 새벽 1시 1분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하는 순간을 유튜브 라이브로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몰랐다. 아니다.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4개월간 지속되리라고는. 지난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대통령 탄핵 심판이 선고된 이후에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뉴스에서 비로소 해방됐다. 그제야 일상의 시계가 1분기를 넘어갔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자각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내게 주어진 일들은 빠짐없이 진행했다. 다만 그전에 기획했던 콘텐츠가 문제였다. 사람들의 주목을 빨아들이는 이슈의 파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깐 쉬어가려던 계획이 기약 없이 미뤄졌다. 특히 아트 에이전시 악수AXOO와의 인터뷰가 곤혹스러웠다. 작년 9월 말 열렸던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 ‘웁OOP’을 우연찮게 방문했다가 솔직히 놀랐다. 좌충우돌 3회째를 맞은 웁은 그해의 행사 중 유독 자유롭고, 즐겁고, 흥미롭고,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예술·문화 카테고리에 속하는 행사가 고질적으로 지니는 구조적인 딱딱함과 쭈뼛거림 없이, 주최자, 참여자, 관람자가 물 흐르듯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현장에서 마음 편히 구경하고, 먹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이런 멋진 행사가 3일이라는 너무 짧은 기간에 끝났다는 사실이 아쉬워서, 주최 측인 악수에게 대화를 청한 때가 뒷마무리를 끝내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10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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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POP JAPAN × OOP», Osaka Panasonic Stadium Suita, 2024.11.9 – 10

그렇다. 지금 시작하는 인터뷰는 대략 6개월 전 이야기다. ‘웁 2024’의 폐막 이후, 11월에는 일본 오사카에서 웁의 첫 해외 전시가 열렸다. 12월에는 팝업 개념의 ‘웁 해프닝OOP Happening’이 더현대 서울에서 진행됐다. 악수는 아트 에이전시 활동도 계속 이어갔다. 지난 4월 13일 북촌에 있는 푸투라 서울에서 막을 내린 불가리의 브랜드 전시 «세르펜티 인피니토, Serpenti Infinito»에서 국내 아티스트 큐레이션을 맡았다. 이에 대한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인터뷰는 불완전하며 늦은 감으로 충만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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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P Happening #1. HOUSE PARTY’, 더현대 서울 5F 에픽 서울, 2024.12.14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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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펜티 인피니토, Serpenti Infinito», 푸투라 서울, 2025.3.28 – 4.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의 웁을 기억하는 내 머리와 몸은 정직하게 말하고 있다. 올해의 웁 또한 분명 즐거움과 호기심으로 가득할 것이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올해 4회째를 맞는 웁을 앞두고 매우 이례적으로 일찍 그 ‘존재’를 알리는 기묘한 인터뷰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추운 겨울을 지나, 이 찬란한 계절에 세상 밖으로 나와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2024년도 ‘웁서울OOPSeoul’이 끝났네요. 9월 22일부터 3일간 목, 금, 토에 걸쳐 성수동 에스팩토리에서 열렸는데요. 일단 마무리한 소감 한 번 여쭤볼까요?

열심히 준비한 행사가 끝나니 시원섭섭해요. 그런데 이제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스폰서십을 유치해야 내년에 좀 더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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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번 인터뷰에 참여한 악수 안지성 대표와 주귀희 이사

제가 행사에 무지해서 그런데, 스폰서십이 엄청 중요한가요?

어우, 중요하죠. 웁처럼 브랜딩을 만들어가는 신생 페스티벌에는 더욱더 중요한 것 같아요. 행사에 필요한 물건을 현물로 지원받거나 현금을 유치하는 일은 저희가 원하는 흥미로운 그림에 얼마나 가깝게 구현할 수 있는지와 직결돼요. 결국 비용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요.

스폰서십 문제가 잘 해결됐으면 좋겠네요. 개인적으로 웁서울처럼 건전(?)하게 즐거운 행사는 희귀해서 잘 돼야 한다고 봐요. 보통 즐겁고 힙한 행사라고 하면 현란한 음악이 흐르고 스탠딩으로 술 먹는 장면이 떠오르잖아요. 아니면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돈을 확 태우던가요. 웁서울은 자극적인 게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었어요. 느낌이 좋았다고나 할까. 일명, ‘느좋’ 행사?

오시는 분들에게 저희도 항상 후기를 여쭤보는데 흥미롭게도 좋아하는 이유가 모두 달라요. 이번에도 어떤 분은 공기 조형물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고, 어떤 분은 게임을 계속했다고 하고, 어떤 분은 음식이 맛있다고 했거든요. 이유가 뭐가 됐든 행사를 준비하는 저희로서는 모두 기쁜 피드백이죠.

이번에 제일 입소문 났던 곳은 어디였어요?

아무래도 2층에 부스를 만든 ‘마우스 포테이토Mouse Potato’ 아닐까 해요. 관람객이 머무르는 시간이 가장 길기도 했고, 재미있다는 부스 리스트에서 이름이 빠지지 않았거든요. 와보셔서 알겠지만 메인 공간인 1층과 3층에 비해 중간층에 속하는 2층은 다른 행사에서도 애매하게 쓰이는 경우가 잦아서 너무 아쉬운 공간이었어요. 마우스 포테이토가 2층을 점유한 후, 거의 새로운 게임 공간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준비를 제대로 해주셔서,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꾸리는 입장에서 무척 기분이 좋았어요. 그렇게 공들여 준비한 곳에 놓인 레트로 게임기, 콘솔 게임기에 다들 정신을 못 차리시는 모습에 저희도 신이 났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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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서울 2024’에 참여한 마우스 포테이토의 부스 풍경

주최 측 관점에서 가장 마음에 든 공간은요?

저희 콘텐츠라서 말하기 좀 민망하긴 한데, ‘웁플래닛OOPlanet’ 체험존이요. 웁은 고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온라인에서 웁플래닛을 먼저 공개하고, 오프라인에서 웁서울을 개최하죠. 이번 웁서울 공간 1층에 웁플래닛을 게임처럼 플레이할 수 있도록 마우스 포테이토와 협업해 체험존을 마련한 게 생각 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게임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니즈가 있구나, 생각하게 됐죠. 웁의 이름으로 웁플래닛과 웁서울, 두 가지를 동시에 준비하는 일은 정말 빡세거든요. 작년에 아쉬웠던 부분을 올해에는 무조건 잘되게 만들자고 마음먹었던지라, 사람들이 즐기는 모습에 기분이 굉장히 좋았어요. ‘우쥬러브WOULD YOU LOVE’가 3층에 구현한 공간도 무척 특별했어요. 이번 행사를 위해 세계관을 구축하고 직접 오브제를 만들어 참여했거든요.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을 기획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준비하는 분들은 마음에 오래도록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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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의 온라인 플랫폼인 웁플래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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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플래닛을 게임 형식으로 경험하도록 돕는 체험존의 모습

입국 수속을 본뜬 티켓 부스도 재미있었어요.

아, 그걸 까먹을 뻔했네요. 웁의 세계관에 따르면, 우주에 있는 웁플래닛이 서울에서 여는 행사가 바로 웁서울인데요. 티켓 부스를 입국 심사장처럼 꾸미니까 관람객이 시민증을 받고 들어와서 여러 이벤트와 연계되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됐어요. 그리고 명색이 ‘페스티벌’이잖아요. 그래서 음악이나 조명 연출에 되게 신경을 많이 쓰거든요. 지난 1~2회 때는 여건이 안 돼서 믹스셋mix을 받은 후 BGM으로 틀었어요. 근데 이번에는 디제잉을 하루 종일 라이브로 진행했죠. 커다란 스크린을 배경으로 라이브 디제잉이 몰입도를 높여주니까, 페스티벌 느낌이 한껏 강조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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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서울 2024’ 티켓 부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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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디제잉 풍경

라이브 디제잉이 진짜 신의 한 수였어요. 어두컴컴한 클럽이 아니라 개방된 공간에 흐르는 음악 사이를 쏘다니며 먹고 구경하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무엇보다 대관으로 행사를 진행하면 부스마다 가벽을 세워서 답답한데, 이번에는 듣도 보도 못한 모듈형 철제 프레임 파티션을 활용해서 시야가 더욱더 탁 트이더라고요. 여러모로 활용하기에 편리하고요. 대체 어디서 구한 거예요?

지금 진짜 정신이 없네요. 저희가 올해 구현한 역작을 자랑하지 않다니요! 예전부터 저희도 나무 가벽을 세우기 싫었거든요. 돈은 돈대로 쓰는데, 자원까지 낭비하는 꼴이라서요. 그래서 두 번, 세 번 재활용할 수 있고, 니즈에 따라 효율적으로 구조를 바꾸면서 장기적으로 쓸 수 있는 파티션을 오랜 기간 고민했어요. 그러다 3년 만에 드디어 성공한 거죠. 6개의 철제 프레임이 한 세트인데, 철판 보드, 행어, 선반 등을 필요한 만큼 더하고 빼서 자기에게 맞는 형태를 갖출 수 있어요. 이번에 어떤 참여자는 프레임 6개를 모두 철판 보드로만 꾸미기도 하고, 선반을 충분히 갖춰서 액세서리류를 담으셨더라고요. 저희 파티션이 인상이 깊었는지, 대여 문의도 받았어요. 지금은 일단 착착 접어서 공장에 보관해 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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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는 모듈형 철제 프레임 파티션

이러다 악수가 디자인 회사로 클 수도 있겠어요. (웃음) 이제 2024년도 웁에 대한 정산을 해봤을 텐데, 어떤가요? 수지는 맞았나요?

현재 웁은 매년 적자예요. 웁과 비슷한 규모의 행사를 치르려면 우선 대관비가 어마무시합니다. 설치, 철수, 운영 등 생각보다 정말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해요. 그렇다고 적자가 당연한 상황이라는 말은 아니에요. 수익을 낼 수 있는 페스티벌을 만들기 위해 3년간 적자를 감수하면서 많은 부분을 다져왔으니까요. 이제 내년에는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목표입니다. 응원해 주세요.

입장료를 받는 게 큰 도움이 되지 않나요? 1인 티켓이 2만 5000원잖아요. 1만명만 와도 이게 다 얼마예요.

훨씬 더 많이 와야 해요. 비용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짐작하시겠죠? (웃음) 스폰서 및 참여자 몫으로 돌아가는 초대권 수량도 확보해야 하고요. 올해 목표가 1만 5000명이었는데 약간 미달했어요. 게다가 올해에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일요일까지 행사를 이어가지 못해서 더욱더 아쉬웠어요. 일요일에 대관이 안 돼서 토요일 밤에 철수해야 했거든요. 저희로서는 엄청난 도전이었죠. 그래서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밤 7시가 아니라, 밤 10시까지 문을 열었어요. 늦게라도 방문할 수 있도록요. 마지막 날인 토요일에 분위기가 한껏 물어 익으니 정말 애가 닳더라고요. 조금이라도 더 늦게까지 하고 싶은데, 당일 잡힌 철수 일정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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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서울 2024’ 행사 전경

제가 토요일에 들렀을 때 끝나는 시간까지 계속 있었거든요. 공식 일정이 마감한 뒤에도 사람들이 부스를 정리하면서 다들 못내 아쉬워하더군요.

그래서 더 책임감을 느끼기도 해요. 저희 같은 행사가 거의 없거든요. 뮤직 페스티벌은 라인업을 잘 짜고 헤드라이너가 유명하면 팬들이 우르르 몰려요. 티켓값도 엄청 비싸고요. 그러면 스폰서십도 원활하게 진행되죠. 근데 저희는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이라는 지점이 사람들에게 낯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계속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남달라요. 어쩌면 그게 저희의 1차 미션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악수가 그렇게 걱정되진 않더라고요. 인스타그램을 보니까 아트 에이전시 일도 활발히 하면서 잘 살고 있는 느낌이라서요. (웃음)

악수가 아트 에이전시 일을 한 지 12년이 됐어요. 여기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웁 같은 행사를 기획할 용기가 생겼죠. 만일 웁으로만 먹고 살 생각이었다면, 1회 치르고 문 닫아야 했을 거예요. 웁은 저희의 열망이 담긴 행사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악수를 운영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해 보니, 비주얼 아트라고 정의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확장되는 걸 느꼈어요. 이렇게 흥미로운 지점이 많은데 비주얼 아트를 꼭 교과서적으로 좁게 바라봐야만 할까, 우리가 넓혀가면서 재미있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했죠

예를 들면요?

업계에서 정의하는 비주얼 아트는 보통 아트워크를 뜻하잖아요. 그런데 일을 계속하다 보니까, ‘작품뿐만 아니라 이를 보여주는 공간, 연출, 사운드 등도 비주얼 아트의 영역에서 함께 다루면 안 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와 관련해 지원 사업을 따내려고 PT도 여러 번 해봤지만, 저희가 의도하는 개념이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일단 우리가 하고 싶은 걸 시작이라도 해보자고 일을 벌인 게 2019년이었어요.

웁이 처음으로 열린 게 2022년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러니까요. 그렇게 늦어질지 몰랐어요. (웃음) 2019년에 2020년도 대관을 미리 해놨는데, 그때 하필이면 팬데믹이 터진 거예요. 팬데믹이 잠잠해질 때까지 반강제적으로 미뤄지는 과정에서 계속 고민하다 보니, 현재 웁의 뼈대가 잡혔어요. 웁플래닛라는 행성을 일구어 가는 네 명의 히어로가 존재하고, 그들이 대한민국 서울로 내려와 여는 행사가 웁서울이라는 콘셉트 말이죠. 팬데믹 때 유행하던 메타버스에서 초기 영감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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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플래닛의 히어로들과 전경

웁서울 공식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웁플래닛과 웁서울 간의 서사가 재미있게 정리돼 있더군요.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아까 들은 대로 비주얼 아트에 대한 색다른 정의였어요. “웁은 브랜드의 공간 디자인, 패션쇼의 무대 연출, 아티스트의 작품 등 일상 속에서 다양한 시각적 영감과 영향을 주는 모든 것을 비주얼 아트로 정의한다. 웁은 비주얼 아트라는 공통된 범주 안에서 아트, 패션, 음악, F&B, 테크, 환경 등 다양한 분야를 담아내는 비주얼 아트의 네트워크이자 허브다.” 웁서울에서 느꼈던 독특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이해되는 느낌이었달까요. 

저희는 병이 있어요. 저희가 독보적으로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병. 남들이 잘하는 건 그들이 하면 돼요. 저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나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놓치고 싶지 않은 거죠. 그런 면에서 비주얼 아트에 대한 흥미로운 지점과 새로운 정의에 대해서 확신이 있었어요. 예술 하면 진지하거나 고루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예술을 둘러싼 환경까지 폭넓게 포함하면 절대 지루하지 않거든요.

이번 웁서울의 디제잉 부스만 보더라도, 저희가 3D 프린터로 직접 다 만들었어요. 마치 작품처럼요. 다른 행사에서도 DJ가 자신의 부스를 엄청 신경 써서 멋지게 연출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비주얼 아트라고 부르지 않아요. 그냥 공연이라고 하죠. 그래서 저희는 아트워크에만 집중하는 상황에서 딱 집어주고 싶은 거예요. “와 이런 게 진짜 찐으로 멋있는 건데, 이건 왜 아트라고 하면 안 돼? 결국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면 모두 아트 아냐?” 창작자가 본인의 의도와 방향성을 지니고 시각적인 결과물로 만들고 표현하는 것들을 전부 비주얼 아트라고 생각하는 거죠.

한마디로 말하면, “당신이 일상에서 그냥 지나쳤던 거, 사실 다 비주얼 아트입니다.” F&B 브랜드가 맛만 좋아서 성공하지 않잖아요. 로고, 패키지, 공간 등이 시각적으로 인지되어 브랜드로 어필되기 때문인 건데, 이런 활동에서도 우리가 영감을 받을 수 있다면 웁의 이름으로 다 초대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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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서울 2024’의 라이브 디제잉을 위해 3D 프린터로 만든 부스 모습

어쩌면 악수의 본업인 에이전시의 특징일 수도 있겠네요. 발견하고 연결하고 소개하고.

맞아요. 저희가 활동하는 큰 의미이자 중요한 부분이에요. 실제 웁을 통해 소개된 브랜드와 창작자를 다시 만날 때 커리어적으로 성공한 경우가 많은데요. 저희가 조금이라도 일조했다고 생각하면, 웁을 준비하는 데 정말 큰 힘이 돼요. 뿌듯한 기분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에요. 이게 악수의 무기가 될 생각을 하면 기분이 더 좋아져요.

부담되지는 않나요?

새로운 걸 시도하는 일은 항상 힘들어요. 그리고 공감을 받는 데까지 시간이 걸려요. “이걸 왜 이렇게 정의하는 건데? 그러니까 이걸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이게 돈이 돼? 어떤 가치를 얻을 수 있는데?” 끝없는 질문을 받죠. 이런 건 회사로서 견뎌야 하는 지점이에요. 저희는 믿거든요. 백 번 말로만 웅얼거릴 바에야, 웁처럼 실체화된 행동으로 보여주면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비주얼 아트 신이 확장할 거라고요. 그러면 그 수혜는 악수에도 미칠 거고, 그렇게 성장한 저희는 또다시 더 재미난 일을 시도할 수 있어요.

그만큼 웁에 애정이 많으면, 고민거리도 생길 것 같아요. 만일 어떤 브랜드가 현금 스폰서십을 제의했는데, 그 브랜드가 웁에 어울리지 않는 톤앤매너를 가지고 있다든지, 그들의 부스가 지닌 시각적인 매력도가 너무 떨어진다든지, 이러면 돈과 퀄리티 중 뭐를 선택해야 하는 거죠?

답은 정해져 있어요. 돈이죠. 돈이 있어야 웁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요. 대신 해당 브랜드가 웁의 톤앤매너에 맞는 방향으로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에이전시로서 컨설팅도 하고, 아예 저희가 일을 받아서 외주로 브랜드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할 거예요. 누군가는 피곤한 일이라고 하겠지만, 이건 엄연히 비즈니스거든요. 악수와 웁이 함께 발전할 수 있다면, 저희는 제안하고 설득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웁을 수식하는 정의가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이죠. 참가자들이 다양한 작업과 굿즈를 파는 걸 보면 페어, 즉 마켓이라고 봐도 무방한데요. 왜 페스티벌이에요?

저희가 아트, 패션, 음악, 테크, F&B 등에서 비주얼 아트의 지점들을 쏙쏙 뽑아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잖아요. 이런 흥미로운 지점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풀릴 수 있어요. 작가들은 작품을 보여주면 되고, 전시를 꾸리면 되고, 브랜드는 쇼룸을 통해 아이덴티티를 연출할 수 있죠. 음악가는 음악을 멋지게 표현하면 되고, F&B는 자신의 음식을 멋지게 즐기는 기회를 마련하면 되고요. 대부분 구매 행위로 이어지긴 하지만, 결국 이런 면들이 복합적으로 폭발하는 장은 마켓이 아니라 페스티벌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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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서울 2024’에서는 야외 전시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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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서울 2024’의 특징 중 하나인 F&B 브랜드의 활발한 참여 모습

웁의 정체성이 페어이든, 페스티벌이든 한 가지는 확실한 거 같아요. 지금 매년 두 배씩 성장하고 있어요. 매출액이나 관람객 수는 모르지만, 일단 참여자만 보면요. 2022년 첫해에는 30팀 정도였는데, 이듬해에는 71팀이었고, 올해는 130팀에 육박했어요.

그건 온전히 저희 의지에요. 페스티벌에 걸맞은 규모를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거든요. 그래서 지난 3년간 참여팀을 매년 2배씩 늘린다는 목표를 가지고 임했어요. 디자인, 예술 관련 페어 중 유명한 곳은 부스만 몇백 개가 훌쩍 넘어가잖아요.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이라고 이름 붙는 웁이라면 목표로 삼는 수준까지 최대한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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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서울 2022’ 행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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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서울 2023’ 행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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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서울 2023’ 행사 전경

그럼 혹시 일차적으로 원하는 규모가 있어요?

‘웁이라는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의 규모는 이 정도구나!’ 남에게 인식시키고 싶은 숫자는 300에 5만. 최소한 300곳 이상의 참여팀과 5만명 이상의 유료 관람객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나씩 차근차근 성장의 그림을 그려나가며 그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노력도 중요하고요.

사실 제가 토요일에 암행어사 짓을 했어요. 예전에 매거진에서 소개한 ‘원형들’ 부스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게 됐는데요. 대표님이 계시길래 인사를 나누다 웁서울에 3년 연속 참가하셨다는 특급 정보를 들으니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웁서울의 평판과 더불어 왜 3년 연속 참가했는지 여쭤봤어요.

오, 뭐라고 하시던가요?

웁서울이 너무 재미있어서 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올해는 아예 다른 브랜드와 함께 나왔는데, 원형들을 알리는 일보다 마음에 맞는 브랜드와 참여하는 게 훨씬 기분이 좋다고요.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서 홍보도 많이 되기에, 웁서울에 오는 건 남는 장사라는 표현도 하시던데, 이거 혹시 미리 작업한 거 아니죠?

흐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근데 그 얘기가 정말 핵심을 찌르네요. 웁서울에 참여한 브랜드가 행사를 통해 멋져 보이도록 돕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참가 브랜드가 비즈니스적으로 연결이 잘 되면 기분이 진짜 좋아요. 올해에도 모 브랜드가 비즈니스와 관련한 연락을 엄청 많이 받았데요. 워낙 역량 있는 팀이고 파이팅도 넘쳐서 아마 대성할 거예요. 그리고 재밌는 건 이렇게 돌고 돌아서 악수에도 좋은 일이 생긴다는 점이죠. 어찌 됐든 페스티벌이라는 행사가 일종의 플랫폼이잖아요. 그들이 새로운 기회를 얻고 긍정적인 결과를 창출할수록, 다음에 더 좋은 곳이 참여하고, 그러면 웁서울의 가치도 높아지고, 악수의 일 또한 늘어나는 과정이야말로 선순환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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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서울 2024’ 행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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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서울 2024’ 행사 전경

그런데 제가 보기엔 문제가 하나 있어요. 웁서울이 만약 입장료 없는 페스티벌이라면 어땠을까요? 성수동에서 열리는 행사를 보러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몰리지 않았을까요? 그럼 참가자들의 매출도 크게 증대될 거고, 판매 금액에 대한 소정의 수수료를 부스 비용 대신 받는 악수 측의 자금 사정도 나아질 거고, 무엇보다 페스티벌이란 이름에 걸맞게 정말 축제처럼 와글와글했을 텐데요. 제가 경험한 웁서울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놀이공원 느낌이었어요. 한강공원이 아니라요.

이에 대한 입장은 견고해요. 저희는 웁서울의 가치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싶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무료로 입장해 저희가 애써 준비한 것들을 무료로 소비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진 않아요. 우리 팀이 준비한 행사를 좀 더 가치 있게 대하고 싶달까요. 잘 아시다시피, 입장료를 치른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 사이의 만족도는 크게 차이가 나요. 돈 내고 들어왔는데 행사가 엉망이면 피드백이 정말 최악일 테고, 그 이상의 것을 얻는다면 만족도가 확 올라갈 테죠. 

저희는 웁서울에 준비한 콘텐츠에 자신이 있거든요. 그래서 유료라는 장벽 때문에 관람객이 상대적으로 적더라도, 우리를 믿고 티켓을 구매한 사람들을 좀 더 만족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믿어요. 사람 심리하는 게 조금이라도 돈을 지불하면 미운 정 고운 정이 생기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보다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할 일은 콘텐츠의 밀도를 계속 탄탄하게 만드는 거죠. 지하철 타고 가다가 아무 이유 없이 내리는 곳이 아니라, 정말 가고 싶은 목적지가 되고픈 욕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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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서울 2024’ 행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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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서울 2024’ 행사 전경

웁이 악수에게 정말 중요한 프로젝트인 게 느껴져요. 지금까지 쌓은 노하우를 총동원해야 할 텐데, 에이전시로서 쌓은 능력이 웁에 어떤 도움이 되나요?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어요. 먼저 커뮤니케이션이죠. 참가자들과 세심하게 소통하는 게 몸에 뱄으니까요. 그리고 퀄리티 콘트롤이에요. 아무리 작업을 잘하는 작가라도 프로젝트의 성격, 클라이언트의 반응과 상황, 그리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결합하면 산으로 가는 경우가 꼭 생겨요. 그런 징후를 빨리 알아채서 교통정리를 하는 노하우가 웁에도 똑같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웁이 하루아침에 태어날 수 있는 행사가 아니었네요. 지금 인터뷰를 읽은 분 중 상당수는 악수, 그리고 웁과 직간접적인 이해관계자일 가능성이 높아요. 이 자리를 빌어 자기 PR을 해주시겠어요?

악수의 목표 중 하나는 비주얼 아트가 지닌 영향력을 시장에 증명하는 거예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산출물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거죠. 가끔 창작 행위가 돈이 되냐는 얘기를 듣는데요. 저희는 된다고 확신해요. 다만 그 수가 적을 뿐이죠. 요즘은 부족한 부분을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의 강점을 더욱더 뾰족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대요. 그러니 새로운 기회를 찾고 계신 창작자분들, 크리에이티브한 협업이 필요한 기업 및 브랜드 담당자분들은 다음 이메일로 부담 없이 연락해 주세요. hello@axoocorp.com

깨알 같은 이메일 노출까지… 내년 웁서울이 정말 기대되네요.

절대 놓치지 않을 거예요. 최고의 인터뷰였습니다. (웃음)

Interviewee

악수AXOO(@axooagency)는 전 세계 아티스트와 쌓은 네트워크와 매니지먼트 역량을 기반 삼아, 불가리, 나이키, 삼성전자, 구글플레이 코리아, SM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기업과 아트 컬래버레이션 및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생산한다. ‘비주얼 아트로 전 세계를 연결한다’라는 사명으로 지구 곳곳에서 비주얼 아트의 영향력을 증명하는 중이다. 지난 2022년부터 매년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 ‘웁OOP’을 개최하고 있으며, 오는 2025년 9월 네 번째 웁이 열릴 예정이다. 디텍팅을 총괄하는 안지성(@jisung_axoo) 대표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는 주귀희(@__girikiri__) 이사가 키 멤버로 활동한다.

Editor

전종현(@harry.jun)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등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과 편집위원을 지냈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기아글로벌디자인센터에서 발행한 «기아 디자인 매거진» 창간 작업과 콘텐츠를 총괄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겸 아트 칼럼니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뉴닉»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 중이며, 동시대 한국의 기발한 창작자에 주목하는 «비애티튜드»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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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섬네일_웁OOP & 악수AXOO
Special Interview
전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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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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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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