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Project
아티스트와 나눈 깊은 대화를 시리즈로 만나봅니다
«비애티튜드»는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세 번째 주인공은 노상호 작가입니다. 혁오 밴드의 앨범 커버 작업으로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그것만으로 한 사람의 참모습을 알기란 쉽지 않죠. 현대미술, 일러스트레이션, 그래픽노블, 아트디렉팅, 3D 프로덕션, 3D 스튜디오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활동하는 창작자로서 노상호 작가는 말합니다. “많이 보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가 작업을 시작하고, 전개하며, 완성하는 과정과 그 태도를 아티클 시리즈에서 만나보세요!
아티스트 프로젝트 03: 노상호
«비애티튜드»는 깊이 있는 인터뷰를 통해 특정 아티스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Artist Project’를 진행 중이다. 우리는 그 세 번째 주인공으로 노상호를 선택했다. 혁오 밴드의 앨범 커버 작업으로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그것만으로 한 사람의 참모습을 알기란 쉽지 않다. 현대 미술, 일러스트레이션, 그래픽 노블, 아트 디렉팅, 3D 프로덕션, 3D 스튜디오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활동하는 창작자로서 그는 말한다. “많이 보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활짝 열려 있는 자세로 실제와 가상 세계 사이에 ‘얇게’ 서 있는 것이 자신의 창작 태도라고 자처하는 노상호. 우리는 그가 작업을 시작하고, 전개하며, 완성하는 과정과 그 태도에 주목하며 총 두 편의 인터뷰를 발행한다.
Part 1.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
Part 2. 창작자로서의 애티튜드
«비애티튜드»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창작자가 다양한 영감과 정보를 얻고, 서로의 입장과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지속가능하고 흥미로운 창작 생태계가 구축되길 응원해본다.
Part 1. 척척박사 노상호의 비밀들
노상호는 ‘The Great Chapbook’이라는 단어의 조합 아래 자신의 작업 세계를 전개해왔다. ‘1달러짜리 싸구려 책자’라는 뜻의 ‘챕북’ 앞에 ‘위대하다’를 붙이는 그 절묘함을 보라. 과다한 이미지에 파묻힌 실제와 가상 세계 사이에 ‘얇게’ 서 있는 노상호는 보이는 것은 모조리 그려버리고자 한다. 이미지에 대한 왕성한 식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The Great Chapbook› 시리즈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시각 환경을 반영하며 진화해왔다. 노상호의 다채로운 작업 세계에 지금 여러분을 초대한다.
2012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미술계에 데뷔한 지 11년 차세요. 3040세대를 대표하는 작가군에서 빠지지 않고, 작품도 정말 잘 팔린다고 들었어요. 감회가 어떠신가요?
크게 뿌듯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런 걸 따지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런가봐요. 딱히 제가 대단하다는 감각도 없고, 미술사에 획을 긋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MZ 세대 작가군에 호명될 때에도 세대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잘나가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요. 왜냐하면 제 마음속엔 늘 잘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이런 거랑 비슷한 거죠. 제가 홍익대학교에서 판화를 전공했는데요.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홍대생이 너무 멋있었어요. 근데 막상 홍대에 들어가면 주변에 다 홍대생이거든요? 그러면 거기서 홍대생은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어떤 단계를 올라간다고 하면, 올라가는 느낌이 즐거운 것보단 거기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이 재미있어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게 또 다른 재미일 수도 있죠. 게다가 미술 작가가 더이상 멋있는 직업으로 다가오지 않는 점도 있어요. 실제 지난 2019년에는 작가 생활을 쉴 생각까지 했었어요.
왜요?
저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안정된 시스템도 물론 중요하지만, 굳이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제가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게 앞서요. 이게 어떨 때는 굉장히 바보 같은 행동이에요. 평소 아내와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요. 당시 제가 미래 계획을 쫙 얘기하니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목적이 뭔데?’라는 질문이 날라왔어요. 앞에 전제를 깔아놓긴 했지만 결국 목적은 돈이라고 말하니까, ‘그럼 돈 버는 일을 해. 왜 굳이 미술 작업으로 돈을 벌려고 해?’라는 충고를 받았죠. 사실 목적이 돈에만 있던 건 아니고, 제가 멋있고 좋다고 생각하는 걸 받쳐줄 수 있는 환경을 고민했던 건데, 이런 고민이 계속 늘어나며 작업을 공격하게 되니까 작업에 대한 생각이 왔다 갔다 하면서 딜레마가 되더라고요. 더불어 작가를 쉬려 했던 건 그런 배경뿐 아니라, 충동적인 면도 있었어요. ‘미술계에서 이야기하는 게 내가 보고 있는 것과 너무 다르고, 내가 생각하는 미술은 아무도 미술이라고 불러주지 않고, 그래서 미술이 재미가 없어지는데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보니 직업을 바꾸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작업을 평생 하려면 제가 좋아하는 걸 해야 하는데 제가 멋있다고 생각지도 않은 걸 하면서 굳이 왜 계속해서 고생을 해야 하나 의문이 들었어요.
작가님께서 말씀하시는 ‘미술을 미술로 보지 않는다’는 말이 어떤 의미죠?
사람들은 아니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미술인 것들이 좀 많은 거죠. 당시 3D 아트워크를 굉장히 많이 접하고 있었는데요. 제 인스타그램 피드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런 작업을 만드는 사람들은 수익을 미술에서 내지 않았지만, 제게는 작가로 다가오는 지점이 꽤나 많았어요. 실제 강연을 하러 가면 저는 작가라는 직업이 미래에 없어질 거라고 말해요. 왜냐하면, 미래에는 모두가 작가가 될 테니까요. 예를 들어 작년에 게임 GTA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어요. 갑자기 초록색 옷을 입은 유저 세 명이 나타나서 난데없이 몽둥이로 다른 유저를 패고 다닌 거예요.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데 계속 패니까 어떤 사람이 짜증 나서 보라색으로 똑같이 옷을 맞춰 입고 그들을 쫓아서 패고 다녔어요. 이게 갑자기 유행이 되어 유저들이 미션 수행은 안 하고 초록색, 보라색 진영으로 나뉘어서 몽둥이 전쟁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게임 회사도 이걸 막지 않고 오히려 자기네 공식 이벤트로 선정하고 초록색 옷과 보라색 옷을 무료로 배포해서 게임 세계가 난장판이 됐었죠. 여기서 저는 처음 몽둥이를 들고 출현한 세 명이 결국 작가라고 생각해요. GTA라는 메타버스 안에서 활동하는 작가요. 근데 그 친구들이 작가로서 수익을 얻었을 까요? 공식 이벤트가 됐지만 로열티를 얻지 못했죠. 하지만 500만 명이 넘는 유저가 활동하는 GTA에서는 굉장한 사건으로 남았죠. 저는 이런 일이 앞으로 계속 늘어날 거라고 보고, 이런 게 훨씬 작업적이고 미술적인 일이라고 느껴요. 앞으로 메타버스와 현실을 오가며 살 거로 예측하는데 실제 세계에서 작가인 저는 메타버스에서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고, 반대인 경우도 생겨나겠죠. 이런 상황이 형성되면 굳이 작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가 존재할까 생각이 들어서 작가가 재미없어진 거예요. 왜냐면 현실에서 작가로 활동하려면 어떤 안정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마련해야 하는 창구들이 존재하거든요. 이런 일들이 제가 가진 진보적인 태도와 맞지 않는다고 느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봐요.
그럼 작가님은 작품을 어떻게 판매하세요? 결국 컬렉터들은 기존 미술 시장의 법칙에서 움직일 텐데요.
제가 생각하는 미술의 범위는 기존 미술계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거 같아요. 그래서 설득을 하기보다 미술계에 맞추고 있어요. 먹고 사는 문제를 생각해야 하니까요. 제가 장르마다 통용되는 언어를 정말 열심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저 자신이 장르에 대한 구분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장르 구분이 없는 상태에서 먹고 살려고 하니 장르를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는 거죠.
그러면 지금 작가님에게 장르가 구분된 일은 몇 가지가 있을까요?
제가 지금 일하는 장르는 다들 잘 아시는 현대미술이 있고요. 더불어 일러스트레이션, 만화,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가 있죠. 그리고 3D 아트워크와 3D 스튜디오가 있어요. 아트 디렉팅도 포함될 수 있겠네요. 제가 운영하는 ‘.Pic’은 아트 디렉팅 회사로 출발했는데요. 포토그래피와 영상에서 3D로 아트 디렉팅의 기반이 확장되면서 이제는 자체적으로 3D 스튜디오 일도 맡고 있어요. 사실 제가 인스타그램 계정이 네 개예요. 이 중 활동하는 장르에 따라 사람들은 두 개를 알기도 하고, 한 개를 알기도 해요. 다들 다른 식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메일이 오면 이제 앞줄만 읽어도 상황 파악이 돼요. 노상호 실장님이라고 하면 .Pic으로 온 거고, 노상호 작가님이라고 하면 현대미술이나 기타 등등으로 왔겠지, 뭐 그런 거죠. 그렇다고 제가 이걸 꼭꼭 숨기는 것도 아니에요. 제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다른 계정들이 붙어 있어서 알고 싶으면 알 수 있는 구조라서요.
노상호 작가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들 © Artist
아침 8시 30분에 일어나서 9시부터 작업을 시작해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오후 5시까지 일을 마무리 짓고 그 이후로는 자유 시간 혹은 밀린 일을 처리하는 루틴한 생활 습관으로 유명하세요. 이게 현대미술 작가 노상호의 하루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인간 노상호의 일과는 어떤가요?
오후 6시 이후에도 일이 계속 존재하죠. 그래픽 노블을 하기도 했고 아트 디렉팅 미팅도 했죠. 너무 과로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 2019년에 작가를 쉬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던 거예요. 지금은 더 심해졌어요. 3D 스튜디오 일까지 하니까 지금 장르가 한 네 개 되거든요? 장르 별로 일을 제대로 하려면 다른 사람은 1인분 할 때 저는 4인분을 해야 해요. 오전에는 제 작업을 온전히 하고, 오후에 미팅이 없으면 작업과 3D 일을 겹쳐서 해요. 미팅이 있을 땐 12시 이후로 잡아서 돌리고 서류 업무가 필요할 땐 6시 전에 끝내요. 그리고 저녁 6시 이후에 퇴근하면 집에서 3D 스튜디오 일을 하죠.
대체 몇 시에 주무세요?
다행히 잠은 잘 자요. 여덟 시간 이하로 자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들어서요. 근데 이렇게 시시콜콜한 얘기도 인터뷰로 쓸 수 있나요?
최선을 다해야죠. (웃음) 그나저나 작가님 말씀대로라면 저희가 본의 아니게 작가님의 하루를 온전히 차지하게 된 셈이네요. 오늘 인터뷰는 일정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너무 당연하게도, 야근하겠죠. 직장인도 그러잖아요. 그냥 이런 거 있으면 야근하는 거예요. 일이 생기면 뒤로 밀리는 거죠. 그래서 진짜 이렇게 온종일 인터뷰 잡는 경우는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해요. 다행히 1월에는 모든 기업이 계획을 세우는 달이라서 일감이 좀 없는 편이고, 지금 스튜디오 일은 주말에 몇 번 만지면 보낼 수 있는 정도만 남은 터라 오늘은 온전히 그림만 그리면 되는 날이었어요. 그림 그리기도 최소로 줄일 때가 있는데, 그 최소가 드로잉 한 장이죠. 이건 최후의 보루라서 이따 집에서 할 거예요.
저희가 운이 정말 좋네요. 일단, 계속 작가를 하실 테니까 본격적으로 작업에 대한 질문을 드려볼까요. 스스로 ‘먹지 혹은 필터처럼 아주 얇고 팔랑거리게 서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셨어요. 그리고 “나는 이미지가 소비되고 파편화되는 것, 그리고 그 이미지가 가상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에 대해 주목한다”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죠. 초기작인 ‹데일리 픽션› 때부터 이런 태도는 변함이 없나요?
사실 ‹데일리 픽션›을 할 때는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학부 때부터 그냥 불안해서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아무런 생각 없이 인스타그램에서 본 이미지를 프린트한 후 먹지에 대고 막 그렸어요. 빨리 그려서 결과물이 많아야 자기 증명이 될 거 같았거든요. 나를 증명해야 작가로 살아남을 것 같으니 일단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에 작업을 하고 전시를 했죠. 지금 보면 전시 주제도 없고 자기 증명에 대한 의지밖에 없었어요. ‘나를 봐라. 나, 이만큼 많이 한다’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다 작가의 깊은 생각이 담긴 주제 문장, 즉 인생의 문장을 찾게 된 건 2016년 웨스트웨어하우스에서 연 개인전 «The Great Chapbook 1»을 준비할 때였어요. 이미 1000장의 그림과 200호 그림 아홉 점을 그리고 지난날을 뒤돌아보다 제가 무슨 행동을 한 건지 그때서야 이해하게 되었어요. 되짚어보면서 알게 된 거죠.
‹밴드›. A4용지에 매일 그린 ‹데일리 픽션› 연작의 일부다.
‹밴드›. A4용지에 매일 그린 ‹데일리 픽션› 연작의 일부다. © Artist and Arario Gallery
‹투명한 그물›, 2015. ‹데일리 픽션› 연작 중 캔버스천에 유화로 그린 독특한 작업이다. © Artist and Arario Gallery
«The Great Chapbook 1» 전시 전경. 챕북(Chapbook)은 이야기와 판화가 담긴 얇고 저렴한 대량생산 출판물로, 가볍게 읽히고 쉽게 소비되는 특징을 가진다. 노상호 작가는 이런 챕북에서 파생한 ‘The Great Chapbook’이란 시그니처로 2016년 이후 자신의 작업과 전시를 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 Artist and Arario Gallery
무엇이죠?
사람들이 제 작업에 대해 글을 써주거나 기획전에 초대할 때 오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매일매일 꾸준히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 이야기에 무언가 담겨 있어서 이를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제가 규정되어 있었어요. 사실 전 이야기에 별로 집착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미술이 이야기를 말하는 장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데일리 픽션›에서는 이야기를 왜 하셨어요?
그때는 미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당시 직업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라 그냥 하고 싶은 걸 했는데 미술이 자꾸 저를 부른 거였죠.
이미 2012년부터 전업 작가로 직업을 선택하신 거로 아는데요.
당시 작가라는 개념이 모호했어요. 일러스트레이터도 작가였고요. 현대미술이라고 굳이 생각하지 않았어요.
프리랜서로서 삶을 꾸릴 수 있는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지, 현대미술이란 장르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작가가 아니었다는 의미인가요?
사실 그래요. 의지도 없었고요. 의지가 없는데 자꾸 호출하니까 그냥 했어요. 근데 하다 보니 제가 생각하는 미술 언어와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딱 맞진 않지만, 자꾸 시켜주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열심히 했는데, 약간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니까 계속 이러다간 제가 정의하는 미술 자체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하겠다는 불안감이 찾아왔죠. 미술은 태도라고 믿는 입장에서 이미지를 파편화시키고 계속 순환시키며 제가 보는 것과 내보내는 것 사이에 가만히 서 있는 제 태도만 보여주는 전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태도를 비주얼로 정리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옷걸이에 걸었고, 1000장의 그림을 다 볼 수도, 아니면 프리뷰만 잠시 보고 가도 되는 태도가 들어간 전시가 «The Great Chapbook 1»이었어요. 제 커리어에서 그때 처음으로 ‘현대미술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장르적 구분에 대한 생각도 확연해지고, 앞으로는 이야기를 그래픽 노블로 빼서 그 장르에서 소화해야겠다고 다짐했죠. 다만 이미 써놓은 이야기를 지울 필요는 없으니 파편화시키려고 홈페이지를 따로 만들고 이미지와 글을 난잡하게 모두 때려 박아서 굉장히 불친절하게 읽도록 했어요.
«The Great Chapbook 1»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거대한 걸개그림 형태의 ‹The Great Chapbook 1›. 기존에 발표한 작업에 새로운 작업을 더하고 이를 ‘The Great Chapbook 1’으로 새롭게 명명했다. © Artist and Arario Gallery
«The Great Chapbook 1» 전시 전경. ‹데일리 픽션› 연작을 투명한 파우치에 넣고 옷걸이에 걸어 하나의 상품처럼 보이도록 디스플레이해 화제를 모았다. © Artist and Arario Gallery
혹시 후폭풍은 없었나요?
그때 많은 분이 절 떠나가셨죠. (웃음) ‘아, 노상호가 이야기꾼이 아니구나!’ 하면서요. 사실 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열었던 전시였어요. 이제 그만 이야기꾼이라고 부르라고 어떤 선언을 하는 전시였던 것 같아요. ‘노상호는 오히려 이미지를 굉장히 소비적으로 많이 쏟아내고 그 태도에 집중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죠. 사실 그때 스토리텔러로서 스스로를 규정하고 그런 작업을 지속할 수는 없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미술계 여기저기서 계속 호명되고 있었으니까요. 근데 제 자신이 동의가 안되니까 굳이 지속해야 할 이유를 못 찾았어요. 그런 판단 때문에 이렇게 바꾸는 것 자체가 되게 무섭기도 했죠.
거대한 걸개그림은 «젋은 모색 2014»에서 선보이신 작업과 결이 비슷하게 다가와요.
사실 그때 발표한 커다란 작업을 ‹The Great Chapbook 1›으로 이름을 바꾸고 다섯 점을 더해서 «The Great Chapbook 1»전시에 아홉 점짜리 시리즈로 다시 걸었어요. 저는 전시를 그림 한 장, 한 장으로 짜지 않고 전시장 단위로 짜거든요. 같은 그림이라도 다른 전시에 쓰이면 그에 맞춰 제목을 바꿔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더 내 작업에 맞는 태도라고 믿었죠.
2018년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열린 «The Great Chapbook 2»에 출품한 작업들은 «The Great Chapbook 1»과 꽤 달라졌어요.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빠지고 이미지만 남겼죠. 커다란 걸개 작업도 어떤 이야기를 상징하는 배경을 빼고 이미지만 조합하는 형태로 작업했어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수채화에서 수성 유화로 재료를 바꾸고 반투명 바니쉬를 발랐고요. 근데 여기에도 비밀이 하나 있답니다. 전시에서 조그마한 액자 1000개를 붙인 방을 선보였는데요. 사실 그 방은 «The Great Chapbook 1»에 전시했던 1000장의 그림을 자른 후 규격을 다르게 만들어서 방 전체에 다른 제목으로 붙여놓은 거예요.
‹The Great Chapbook 2›, 2018, 캔버스에 수성 유채, 270 x 220cm. 2018년 열린 개인전 «The Great Chapbook 2»에서 노상호는 이미지의 조합에 집중했다. 특히 거대한 걸개그림의 경우, 기존 수채화 대신 수성 유화를 사용해 훨씬 더 선명한 이미지를 추구했다. © Artist and Arario Gallery
«The Great Chapbook 2» 전시 전경 © Artist and Arario Gallery
작은 액자 1000개를 붙인 방은 2016년 «The Great Chapbook 1» 전시에 출품했던 작업을 재구성해 새로운 작업으로 명명한 결과다. © Artist and Arario Gallery
혹시 자르지 않고 그대로 갖고 와도 신작이었을까요?
당연하죠. 꼭 그림을 새로 그려야만 신작은 아니니까요. 생각을 바꿔도 신작이에요. 저는 전시할 때 늘 그렇게 생각해요. 전시는 게임 타이틀 나오는 것과 비슷해요. 대주제를 바꾸지 않으면 제목은 굳이 새롭게 만들 필요가 없어요. 세계관이 바뀌지 않지만 디테일한 건 바뀌니까 1, 2, 3, 4로 숫자가 올라가죠. 그런 와중에 2에서는 1에서 등장했던 여러 유산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2에 맞게 사용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아이템 혹은 모델링 같은 거라고 여겨요.
2018년 이후 전시 몇 개를 취소하고 시간을 내어 3D 프로그램을 배웠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저는 인스타그램 피드에 계속 보이는 것을 그대로 내보내는 사람이에요. 그때 3D 이미지를 자주 접하게 됐는데요. 보는 것이 바뀌는 와중에 그걸 쫓아가지 못하는 감각이 느껴져서 불편했어요. 이전에 쌓아놓은 루틴이 제 태도를 망치는 건 아닐까, 그림을 더 고착화하는 게 아닐까 고민이 됐죠. 3D 언어와 어법이 계속 보이고 흥미로움을 생기니까 이를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받아들이는 걸 더 적극적으로 해보자는 태도였죠. 처음에는 취미 활동처럼 하려고 했어요. 먼저 이해한 후에 아웃풋이 어떻게 나갈지 고민해도 되니까요. 덧붙여서, 전시를 최소화하겠다는 결심에는 다른 요소도 영향을 미쳤어요. 전시장이라는 구조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있었거든요. 사실상 저는 매일 인스타그램에서 전시를 하고 있어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3만 명이 넘는 팔로워에게 선보일 수 있으니 가성비도 좋은데 오프라인 전시장에서 전시회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겐 두 가지의 위계가 동일해요. 전시는 인스타그램에서 늘 열리고, 전시장은 마치 팝업스토어를 여는 것과 비슷하죠. 어떤 사람에겐 현실의 전시장이 전부이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 부차적으로 인스타그램을 쓰겠지만 저는 아니거든요. 인스타그램이 전시장인데 굳이 밖으로 꺼내와야 할 이유가 없는 거죠. 지금도 같은 생각이고요. 저는 현 미술계에서 바라보는 전시의 전통적인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작가는 CV를 작성할 때 전시 기간, 장소를 적어야 하는데요. 기간과 장소가 없어도 인스타그램으로 전시가 가능한 지금 상황에서 현재의 CV 작성법은 잘못된 거라고 볼 수 있죠. 특정한 형태의 전시만 전시라고 규정하며 표기한다는 측면에서요.
2017년 열린 제 5회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에 참여한 노상호는 자신의 전시 공간을 마치 브랜드 팝업 스토어처럼 꾸몄다. © Artist and Arario Gallery
새로운 시리즈인 ‹The Great Chapbook 3›는 2020년에 열린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에서 처음 발표됐어요. 전작과 어떻게 다른가요?
다시 ‹The Great Chapbook 1›의 형태로 돌아온 게 있어요. 화면 구성 방식도 그렇고요. 플랫한 화면에 다시 볼륨감을 주고 싶었어요. 배경을 다시 가져오고 마치 어떤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인물들을 배치했죠. 대신 전작처럼 수성 유화와 바니쉬를 사용해 명확하고 자극적인 색깔은 살렸고요. 요즘 작업하는 ‹The Great Chapbook 3›는 전처럼 A4 용지에 먹지 드로잉을 한 후 이를 바탕으로 다시 캔버스에 먹지로 그리는 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출력물을 캔버스에 대고 먹지 드로잉을 수행하며 색을 칠하는 방식으로 단순화시키고 있어요.
‹The Great Chapbook 3›, 2021, 캔버스에 수채, 91 x 116.8cm. © Artist and Arario Gallery
‹The Great Chapbook 3›, 2021, 캔버스에 유채, 130 x 97cm. © Artist and Arario Gallery
현재 ‹The Great Chapbook 3›와 더불어 신작인 ‹The Great Chapbook 4›를 함께 작업 중인데요.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2020년 말이요. 3D 작업을 하다 보니 2D 이미지를 모은 후 작품의 소스로 삼아 무언가 그리는 작업 과정에서 소스값을 바꿔보고 싶었어요. 인터넷에 무료로 배포된 정크 3D 모델이 엄청 많아요. 그걸 다운받아서 조합하면 기존에 2D로 구성한 이미지와 같은 프로세스로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죠. 혹은 평소 하는 게임에서 가져오기도 해요. 스캐닝 프로그램을 이용해 다각도로 게임의 스크린 캡처를 찍은 후 다른 프로그램에서 돌리면 알아서 3D 모델링으로 바꿔줘요. 아주 단순히 말하면 저는 제 삶에서 만나는 2D를 계속 그려왔는데 이제 3D를 만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2D만 그리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삶에서 만나는 모든 걸 그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3D도 모아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여러 저기서 가져온 요소를 3D적으로 배치를 해서 영상을 만드는데 스킨까지 입힐 때도 있어요. 이런 인물을 2D로 변형해서 현재 작업하는 ‹The Great Chapbook 3› 캔버스 중간중간에 가끔 집어넣고 있고요. ‹The Great Chapbook 4›는 3D 영상, 3D 캡처, 그리고 이 3D 캡처를 독립적으로 캔버스에 그리는 방법으로 풀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 아웃풋을 끝내야 하나 고민 중이에요.
‹The Great Chapbook 4_Lola›, 2021, 캔버스에 아크릴, 116.8 x 91cm. © Artist and Arario Gallery
‹The Great Chapbook 4_Lola›, 2021, 캔버스에 아크릴, 116.8 x 91cm. © Artist and Arario Gallery
‹The Great Chapbook 4_Joyful›, 2021, 캔버스에 아크릴, 116.8 x 91cm. © Artist and Arario Gallery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니 수많은 A4 용지들이 모여 기존보다 훨씬 큰 크기의 작업을 시도한 게 눈에 띄었어요.
원래 A4 용지로는 작은 드로잉만 그렸는데요. 앞으로 200호 걸개그림보다 더 큰 작업을 어떻게 생성하느냐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제가 원래 매일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 이걸 역으로 생각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하나의 거대한 화면을 A4 크기로 분할해서 36일 동안 매일 한 부분씩 그리는 거죠. 3D 렌더링은 조각조각 나뉘어 차차 렌더링이 되면서 전체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방식을 취해요. 이런 3D적인 감각에서 배운 언어를 가지고 와서 회화에 은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전체 화면을 분할해서 하루에 A4 크기만큼 그리다 보면 결국 하나의 그림이 되는데 3D 렌더링의 사고하는 방식과 제가 이미지를 바라보는 방식이 동일하다는 걸 보여줄 수 있더라고요. 전통적으로 그림은 근경, 중경, 원경 순으로 그리거든요. 이렇게 조각낸 부분을 하루에 할당한 만큼 그리면 어떤 게 먼저고 어떤 게 나중인지 인식하지 않고 플랫하게 완성할 수 있어요. 여기서 착안해 에어브러시로 그림을 나눠 그리는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 더불어 앞서 말한 3D 캡처 이미지를 50호 캔버스에 에어브러시로 그려서 1년에 80여 점을 만든 후 각 그림에 등장한 인물들을 걸개그림처럼 뭉쳐도 뭔가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죠. 이 두 가지 안을 두고 개인전을 고민 중이에요.
‹The Great Chapbook 3›, 2020, 종이에 수채, 60 x 63cm. © Artist and Arario Gallery
‹The Great Chapbook 3›, 2020, 종이에 수채, 60 x 63cm. © Artist and Arario Gallery
‹The Great Chapbook 3›, 2020, 종이에 수채, 60 x 63cm. © Artist and Arario Gallery
‹There Are Only Two Ways to Get Out of Here›, 2021, 종이에 수채, 180 x 126cm. © Artist and Arario Gallery
2018년 이후 기약 없던 개인전을 드디어 하시나요?
올해 말이나 내년 초를 생각하고 있어요. 아마 제목은 ‹The Great Chapbook 4›가 될 거고요. 형식은 방금 말한 두 가지 안 중 하나로 정하거나 정 안 되면 믹스할 수도 있어요.
‘전시장에 실제로 가야 하는 이유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신 적이 있죠. 실제 전시도 그림 잘라 팔기, 그림 일력처럼 뜯기, jpg 파일 판매, 옷가게처럼 디스플레이하기, 인스타그램 인증을 위한 포토존 구축 등 독특한 점이 많았어요. 코로나 19 팬데믹 때문에 ‘가야 할 이유가 있게 하는 것’은 시대적 화두가 됐어요. 이런 맥락에서 다음 개인전은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온라인에서 전시가 계속 이루어지는 상황인 만큼 오프라인 전시는 온라인과 대치되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해요. 물리적인 신체적 경험을 포괄하는 체험존처럼 전시장이 진화하기 때문에 그런 흐름을 따르겠죠. 최근에 고민하는 건 인스타그램에서는 알 수 없는 크기에 대한 거예요. 압도적으로 큰 크기 말이죠. 현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스케일감은 전시장이 가진 유일한 감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시에 적용하겠죠? 그리고 반대로 아주 작게 그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에서 동일해지는 크기에 대한 위계를 전시장에서 보여주는 게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요. 전시를 구성하는 훈련은 전시를 통해 늘 하고 있기에 기존에 하던 언어와 크게 달라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요.
근데, 작가님 정말 말을 잘하세요. 거침없이 하시는 말씀마다 생각이 명확하시네요.
사람들이 만나면 다 그런 얘기를 해요. “네 작업은 나이브하고 되게 쉽다고 생각했는데 만나서 얘기하니까 다 생각이 있구나.” 이런 걸 되돌아보면 ‘아, 내가 잘못 살았구나’ 싶죠. 허허.
팔랑거리는 필터처럼 이미지를 흡수하고 다시 내뱉으며 동시대를 탐구하는 노상호. 그의 작업실에서 포착한 척척박사 노상호의 일상들.
Artist
노상호는 현실과 가상 세계 속 쏟아지는 이미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얇은 사람’이다. 그는 매일 가상환경을 부유하는 저화질 스톡 이미지를 다수 수집한 후, 먹지를 이용해 장면 속의 조각을 연결해가며 상상력에 기반한 특유의 감각으로 새 화면을 구성한다. 먹지를 매개로 한 제작 방식은 이미지의 범람, 그리고 다양한 플랫폼으로의 이동과 변환으로 정의되는 디지털 시대를 대하는 작가만의 유연한 이미지 철학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최근 2D 회화와 3D 입체 영상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NFT 시리즈를 선보이는 등 이미지의 입체적 구현에 앞장서고 있다. 노상호는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2018), 송은 아트큐브(2017), 서울시립미술관 웨스트웨어하우스(2016)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아뜰리에 에르메스, 일민미술관, 아라리오갤러리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Edito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LUXURY» 등 다양한 매체에 디자인, 건축, 공간, 라이프스타일 관련 글을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Photographer
김영훈은 2006년부터 사진 커리어를 시작해 2008년 미국 뉴욕의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 사진 전공 최우수 장학생으로 입학해 4년간 공부와 전시를 병행하며 2012년 Honor Student로 졸업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2013년 솔트 스튜디오를 열고 비주얼 아트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NYLON» 포토 디렉터를 지냈으며, 현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IKEA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의 제품과 라이프스타일을 사진이라는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