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전시 전경, 호암미술관, 2026, 사진 전명은, 호암미술관 제공
Review
비애티튜드가 주목하는 요즘 ‘무엇’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구순의 조각가 김윤신의 손에는 여전히 묵직한 전기톱이 들려 있습니다. 어지간한 청년조차 쉽게 들기 어려워 보이 는 전기톱으로 단단한 재료를 조각하는 김윤신의 모습은, 자신을 ‘원로’가 아닌 ‘현역’으로 정의하는 그의 말에 쉽게 수긍하도록 만들죠. 그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작가와 재료가 하나 되어 작품이라는 또 다른 하나가 탄생한다’라는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되며 세계 미술계의 뜨거운 조명을 받기도 한 그가, 이번에는 호암미술관에서 진행되는 회고전에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소영 기자가 담아낸, 70여 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자연과 생명에 관한 탐구를 수행해 온 김윤신의 예술 세계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김윤신 작업 모습, 사진 전명은, 모은발 프로덕션 제공
김윤신 작가의 회고전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은 호암미술관 최초의 한국 여성 작가 개인전이다. 지난 70년 작품 활동을 하면서 1,500여 점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초기작은 소재가 불분명해서 남아 있는 1천여 점 중 175점의 작품을 신중하게 선별했다. 한국 현대 조각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전시이며, 작품에 매진하기 위해서 파리 유학과 아르헨티나 이주를 선택한 여성 작가의 투혼을 볼 수 있기에 더욱 의미 깊다.김성원 부관장은 전시 제목 «합이합일 분이분일»는 작가의 작업 이념이며, 이를 기준으로 전시 작품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작가와 재료가 하나 되어(合) 작품이라는 또 다른 하나가 탄생한다(分)’는 뜻이다. 나무를 오랜 시간 살펴보고 그 안에서 직관적으로 형태를 이끌어내는 제작 과정에 도달한 작가의 통찰력이 이끌어낸 철학이다.
조각 124점과 평면 회화 51점으로 구성된 총 175점의 작품은 ‘조각’이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된다. 그림 속 선과 면이 조각으로 이어졌음을 느낄 수 있고, 조각 속 회화와 회화 속 조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폭넓은 작품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회고전을 서너 번을 더 할 수 있을 만큼 아직도 못 보여준 작품들이 많다고 한다. 구순의 나이에도 작품 이야기만 나오면 아이처럼 천진함을 보여주는 김윤신 작가를 미술관에서 만났다.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초대 받았을 때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고 소감을 말한 적이 있는데, 이번 호암미술관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호암미술관에서의 첫 한국 여성 작가 전시라고 하니 감개무량합니다. 베니스비엔날레 감독이 내 전시를 보고 작품을 지정했을 때 작품성을 인정받아서 기뻤는데, 이번 전시를 위해 호암미술관 모두 고생한 것을 보니 감동적이에요. 이 모든 것은 한 사람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라고 봅니다. 호암미술관에서 내 작품을 이렇게 멋지게 전시해주어 소감을 말할 순간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나 역시 이번 전시를 위해 큰 나무를 구해달라고 요청했고, 신작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요. 원로가 아니라 현역 작가의 마음으로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전시 전경, 호암미술관, 2026, 사진 전명은, 호암미술관 제공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전시 전경, 호암미술관, 2026, 사진 전명은, 호암미술관 제공
조각 작품에 나무를 즐겨 사용해 왔는데, 나무가 준 깨달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무가 바로 나예요. 어릴 적 시골 산밑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랐습니다. 내가 자연이었고, 자연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당시 고향 원산에 폭탄이 떨어졌는데, 좋은 나무가 전쟁의 폭격을 받아서 쓰러져 있는 것을보면 내 친구가 쓰러져 있다고 생각되어 너무 슬펐어요. 산속의 소나무만 거꾸로 쓰러져 있어서 놀란 적도 있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 소나무에서 기름을 채취하느라 눕혀놓은 것이었지요. 나무는 내 친구였습니다. 버려진 나무로 작업을 하여 작품으로 남기는 것은 친구로서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나무와 오늘날까지 함께 하고 있는 것이죠.
‹노래하는 나무 2013-16V1›, 2025, 알루미늄에 아크릴 물감, 사이즈 135 × 202 × 56cm, 사진 전명은, 호암미술관 제공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 2020-45›, 2020, 폐목에 아크릴 물감, 사이즈 114 × 41 × 27cm, 사진 안천호, 작가, 국제갤러리, 리만 머핀 제공
구순의 나이를 맞이한 마음은 어떤지요?
솔직히 나이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아요. 그 마음으로 내 영혼과 육신이 하나가 되어 집중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작업에 있어서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어요. 물론 나이가 드니 느낌이 다를 때는 있습니다. 젊을 때는 어떤 조각 형태를 잘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속에서 어떤 표현이 나올지 궁금해집니다. 나무 속에서 나와 나무가 하나 되어 작품으로 만들어집니다. 젊었을 때는 의욕을 갖고 작업했으며, 지금은 작품이 곧 나입니다.
이번 전시작 중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작품이 있는지요?
나에게는 모두 다 같이 중요한 작품입니다(웃음). 미국 구겐하임미술관 소장 작품은 이번에 처음 전시하는 것입니다. 아르헨티나에 이주한 지 4년째 되던 1987년에 팔로산토 나무로 만들었어요. 1984년 아르헨티나 거리에서 전기톱으로 만든 첫 작품도 정이 들었어요. 낯선 땅에서 작업실도 없고 재료를 구하기도 어려워서, 버려진 나무로 거리에서 작업했지요. 부에노스아이레스시립현대미술관 전시를 앞두고 급하게 작업을 해야 했기에, 그때 처음 전기톱을 잡았어요. 아르헨티나 나무가 그렇게 단단한지 몰랐어요. 한국에서 제작한 조각은 수평으로 단을 쌓아 올린 듯한 정적인 형태였다면, 그때부터 나무의 몸통을 파고들어 수직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운반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나 혼자 무거운 작품을 밀어서 안으로 들여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는 그림을 그리며 조각하기 전에 구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은 미리 그림으로 조각을 구상해 놓으면, 이미 지나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지요. 모든 삶이 이 순간의 찰나에 결정됩니다. 나무 속에서 모든 것을 끌어내는 것이지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톱을 들면 공간이 보이기 시작하기에, 그때부터 자르기 시작합니다. 본능적으로 조각의 형상이 보이기에 따로 구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요?
작업의 원동력은 내 정신입니다. 모든 생각이 하나가 되어 집중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돌이든 나무든 작업은 모두 힘들어요. 이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요. 이것이 남미의 강한 재료로 40년을 작업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돌과 나무를 주로 사용하십니다. 재료마다 다른 물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1984년 강의하던 대학교 방학 때, 좋은 나무가 많다는 조카의 추천으로 아르헨티나에 갔습니다. 비행기에서아래를 내려다보며 넓은 벌판에 나무가 듬성듬성 있고 산이 전혀 없었다는 점에 놀랐어요. 끝없이 펼쳐진 하늘에 감동했고, 조용하고 느리게 사는 사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은 일도 하루에 끝나지 않을 정도로 모든 진행 속도가 느렸어요. 그때 우리나라는 전쟁으로 어려운 시기였기에 아르헨티나의 평화롭고 맑은 공기가 좋았어요. 그래서 아르헨티나에 머물기로 결심했고, 아르헨티나의 모든 소재를 다 한 번씩 작품으로 만들어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여기서 1천 점의 작품을 만들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이었지요.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호암미술관에서 전시하며 지난 일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하늘이 준 기회라고 봅니다.
모든 나무는 기본적으로 부드러우며, 한국 나무는 연합니다. 아르헨티나 나무는 여러 강도를 갖는데, 대부분 단단하지요. 톱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톱이 내가 되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작업이 가능합니다.
멕시코 돌 오닉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색깔이 참 아름답습니다. 작은 공장을 빌려서 기계로 돌을 자르는 작업을 했는데, 돌의 강도가 어마어마해서 놀랐습니다. 톱이 고정되어 있어서 내 마음대로 작업하기가 어려웠고, 자를 때까지 돌 안이 무슨 색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김윤신 작업 광경, 멕시코 뿌에블라 데깔리(Puebla Tecali)의 오닉스 조각 작업장 사진, 1989, 김윤신조형예술연구소 작가 제공
2024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 출품작, 멕시코 탄광에서 채굴한 오닉스로 만든 조각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1989-211›, 1989, 오닉스, 사이즈 45 × 87 × 55 cm, 사진 Studio Kukla
미술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명동의 큰 백화점에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전시가 열렸습니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 같은 생생한 조각과 그림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친척 아저씨가 홍익대학교를 추천해서 입학하게 되었고, 조각 전공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에는 추상이 없었어요. 1학년 때는 데생을 하고, 2학년부터 모델을 보면서 조각했지요. 4학년 때 철 조각을 했는데, 미국에서 유학한 김정숙 교수에게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추상의 길로 진입하게 된 것이지요.
어린 시절부터 장난을 많이 했습니다. 나무에 무언가를 붙이거나 색을 넣기도 했어요. 팬데믹 때 밖에 나가는 것이 금지되었고, 집에는 재료가 없었습니다. 공사장에 버려진 나무 조각을 모아서 작업을 하다 보니 어릴 적에 별이랑 놀고 풀, 꽃, 나무와 이야기했던 추억이 떠올라서, 나무 조각에 그림을 그리고 색칠한 조각을 하게된 것이지요. ‹채색 조각›이라는 연작 이름은 미술가로서 무언가 하나 남기고 세상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들었어요. 내가 평생 만든 작품이 후배에게 좋은 영향을 줘서, 하고 싶은 작품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 2013-16›, 2013, 135 × 202 × 56 cm, 알가로보, 김윤신조형예술연구소 및 리만 머핀 제공
우리 시대는 여성의 사회 활동이 어려웠어요. 그때는 전공자조차도 활동이 어려웠는데, 지금은 외국보다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으니 좋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는 목표가 뚜렷해야 합니다. 젊은 작가로 인해서 우리 사회와 우리나라가 더 넓게 될 듯합니다.
나도 여전히 새롭게 하고 싶은 작품이 많지만, 그게 어떤 것인지는 명확하게 모릅니다. 사실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잖아요. 그간 한국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내가 무엇을 할지 생각 중입니다. 아르헨티나와 모국에서의 작업은 다를 것이고, 무엇을 남길지 고민 중입니다.
“아직도 길이 멀어요. 완벽이란 없고, 그저 ‘김윤신의 세계’가 선명히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김윤신 작가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도 제작 중이다.
이 영상은 호암미술관 전시장에서도 일부 볼 수 있으며, 젊은 여성 작가들의 소셜 미디어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속 김윤신은 매일 창작을 이어간다. 그녀의 평범하지만 비범한 하루를 따라가다 보면, 생의 태도를 마주하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백지숙과 정순민(모은발 프로젝트)이 제작을 맡고, 임선애 감독이 참여하고 있다. 이외에 많은 여성미술인들이 함께한 영상 작품으로, 내년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전시 전경, 호암미술관, 2026, 사진 전명은, 호암미술관 제공
Artist
김윤신 작가(1935년, 원산 출생)는 우리나라 1세대 조각가다. 한국, 프랑스, 아르헨티나로 이어진 예술적 여정에서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의 조형 이념을 실천해 왔다. 1973년 이우환, 김창열, 권영우와 제12회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1974년 한국 최초의 여성 조각가 단체 ‘한국여류조각회’ 창설을 주도했다. 1983년 아르헨티나로 떠난 김윤신은 1985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시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고 40년간 남미에서 활동했다. 2023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을 계기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으며,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받았다.
전시와 관람 정보
–전시명: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 기획: 태현선 리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 전시 기간: 2026. 03. 17(화) ~ 6. 28(일)
– 전시 장소: 호암미술관 전시실 1,2
– 관람 요금: 25,000원
– 휴관일: 매주 월요일
Writer
이소영(@soyoung_lee_art)은 문화 기자다.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스타일 H», «더 갤러리아»에서 일했고, 최근에는 여러 매체에 기사를 쓰고 있다. 『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서울, 그 카페 좋더라』, 『전통 혼례』의 저자이며, 『와인과 사람』, 『노래하지 않는 피아노』, 『미국에서 서바이벌하기』, 『나를 마케팅하고, 세계를 PR하라』, 『브로드웨이의 노래를 들어라』 등을 기획, 편집했다.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의 개관 콘텐츠를 총괄했고, 서울시가 발간한 『서울한류여행안내서 Person:able SEOUL』을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