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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시간을 가지고 노는 남자: «전지적 백남준 시점»

Writer: 마동은
[리뷰]전지적 백남준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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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티튜드가 주목하는 요즘 ‘무엇’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지금 바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를 한 명 떠올린다면, 가장 먼저 누가 생각나시나요. 아마 많은 분이 자기도 모르게 한 사람의 이름을 동시에 외칠지도 몰라요. 바로 백남준(1932-2006)입니다. 미디어 아트, 비디오 아트의 독보적인 선구자로, 당대는 물론 후대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에요. 세계적인 작가들이 공개적으로 존경심을 표하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죠. 그의 고향 대한민국에는 백남준의 예술 정신을 기반 삼아 여러 작품을 소장, 연구, 전시, 보존하는 백남준아트센터가 운영되고 있어요. 우리나라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 같은 곳인데요. 백남준의 작품 세계를 시간성과 결부해 친절히 풀어내는 기획전 «전지적 백남준 시점»이 지난 4월부터 열리고 있어요. 큐레이터이자 교육자, 연구자로 활동하는 마동은 님이 이번 전시에서 놓칠 수 없는 주요 작품을 쏙쏙 뽑아 내공 있게 소개하는 리뷰를 보내주셨는데요. 시간을 가지고 노는 남자, 백남준을 이해하는 데 아주 유익합니다. BE(ATTITUDE) 웹 아티클에서 어서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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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아베 슈야,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 1969 (1972) ©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은 시간을 예술의 놀잇감으로 삼은 예술가다.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재료로 20세기 예술의 지형을 바꾼 그는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시간’이라는 개념마저 비틀며 새로운 감각의 예술을 펼쳐 보였다. 경기도 용인시에 자리 잡은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전지적 백남준 시점»은 이러한 시간을 중심으로 구성한 기획전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관람객이 마주하는 것은 과거 인터뷰 영상 속 백남준의 모습이다.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비디오 아트가 뭔지 아세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낯선 미디어를 자연스럽게 설명해 낸다. 그림을 예로 들고, 손수 만든 전자장치를 시연하며, 영상 매체가 어떻게 새로운 시간의 감각을 만들어내는지 직접 보여준다. 비디오가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해당 매체가 단순한 화면을 넘어 시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여는 열쇠라는 사실을 백남준은 그 누구보다 먼저 알아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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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에서 바라본 전시 전경 © 마동은

앞서 말했듯 이번 전시의 포인트는 시간이다. 음악과 텔레비전으로 촘촘히 엮인 백남준의 시간 실험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직선적인 시간 개념을 가볍게 비튼다. 때론 쏜살같고, 때론 정지한 듯한 그 흐름 속에서 백남준은 기억과 망각, 절대와 상대, 직선과 비선형 등 시간의 여러 얼굴을 작품에 풀어놓는다. 관람객은 이런 다양한 시간의 조각 사이를 마치 편집자가 된 듯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한 작품에서 다음 작품으로 건너뛰는 순간조차 해석가능한 일종의 시간 경험이 되는 것이다. 어떤 작품 앞에서는 조금 더 머물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스치듯 지나가면서, 그렇게 관람객은 스스로 시간의 편집자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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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찰스 아틀라스와 머스 커닝햄과 시게코 구보타와 협력, ‹머스 바이 머스 바이 백Merce by Merce by Paik›, 1978 ©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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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무어, ‹필름을 위한 선›, 1965, «뉴 시네마 페스티벌 I», 필름메이커스 시네마테크, 미국 뉴욕 ©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아트센터 소장품을 중심으로 구성한 전시의 일부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등에서 대여했다. 특히 지난 2006년 리움미술관 소장품 전시 이후 매우 오랜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천왕성›(1991)은 시선을 사로잡는 하이라이트로 손색이 없다. 태양계에서 가장 느린 행성의 이미지를 따온 이 작품은 24대의 모니터와 네온을 활용해 ‘우주의 시간’의 무한한 확장과 유영을 시각화한다. 과연 우주의 시간이란 어떤 것일까?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화면의 리듬을 마주하며 관람객은 그 답을 스스로 상상하며 시간의 미궁을 여행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전시장 곳곳에 숨은 장치들은 관객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참여하고, 반응하고, 나만의 속도로 시간을 감각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나 마찬가지다. 백남준이 생전에 늘 꿈꿨던 “관객이 예술의 일부가 되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실현하는 셈이다. 그럼,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직조한 전시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자.

1. ‹비디오 샹들리에 No.1›(1989)

라틴어 칸델라브룸candelabrum에 뿌리를 두고 있는 단어 샹들리에chandelier는 ‘촛불을 밝히는 화려한 등잔’을 뜻한다. 백남준은 전통적인 샹들리에 개념을 뒤집어 비디오 샹들리에를 만들었다. 38대의 작은 흑백 TV 모니터를 촛불 삼아 빛을 내는데, 전선 뭉치와 꼬마전구로 장식한 TV는 마치 크리스털처럼 반짝이며 현란한 영상을 쏟아낸다. 발표 당시에는 최첨단이었던 컴퓨터 그래픽 영상을 흘려보내고, 혁신적인 휴대용 무선 텔레비전 기술을 활용한 이 작품은 과거의 촛불과 현재의 전자기술이 어우러진 백남준식 시간 예술이다. 오래된 빛(촛불)과 새로운 빛(모니터)이 한데 어우러져 미디어가 빚어낸 시대의 빛을 형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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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비디오 샹들리에 No.1›, 1989, 텔레스타 흑백 CRT TV 모니터 38대, 크리스마스 전구, 영상선, 분배기, 1-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LD, 가변 크기 ©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2. ‹모음곡 212 : 뉴욕판매›(1975/1977)

작품명에 나오는 숫자 212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지역 전화번호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작품은 1970년대 뉴욕의 다양성을 경쾌하게 담아낸 비디오 시리즈 중 하나다. 뉴욕의 공영방송 WNET에서 제작한 30여 편 분량의 비디오 프로그램 ‹Suite 212› 중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가 바로 ‹뉴욕판매›다. 매일 밤 방송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이 5분 남짓한 영상은 신시사이저synthesizer로 만든 화려한 영상 콜라주와 재치 있는 음향 편집으로 마치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킨다.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의 다문화적 풍경을 빠른 편집을 통해 보여주면서, 방송과 TV 네트워크가 장악한 도시인의 삶을 유쾌하게 풍자한다. 영상 속 이미지는 뉴욕의 상업적, 정치적 방송 권력과 이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 백남준 특유의 익살스러움으로 표현했다. 요즘의 유튜브나 틱톡의 몽타주 영상이 떠오를 만큼 시대를 앞서간 감각은 당시의 시청자에게 꽤 신선한 충격을 주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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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모음곡 212 : 뉴욕판매›, 1975 (1977), 8:10, 컬러, 유성 ©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3. ‹TV 정원›(1974/2002)

전시장 한쪽에서는 정원을 가꾸어 놓은 듯 실제 열대 식물 사이사이마다 TV 모니터를 놓은 설치 작품, ‹TV 정원›을 만날 수 있다. 싱그러운 잎사귀 틈에서 여러 대의 TV가 일제히 백남준의 또 다른 비디오 작품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1974)를 재생하는 모습은 마치 전자 정글에 들어온 듯한 인상을 준다. 백남준은 자연과 전자를 연결하는 이 작품을 통해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행위는 시간을 구성하는 차원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남긴 글을 보면, “비디오 작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계절마다 색이 다르듯, 색채 역시 시간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라고 회고한다. 봄에는 연둣빛 새싹, 여름에는 짙푸른 녹음,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처럼 자연의 색이 시간에 따라 변하듯, 텔레비전 화면도 전파의 크로마 사이클에 따라 파란색, 노란색, 붉은색으로 시시각각 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의 시간과 전자의 시간을 직접 대비시킨 ‹TV 정원›을 통해 푸르른 정원에서 펼쳐지는 전자 영상의 향연을 경험하고 기술과 자연이 빚어내는 시간의 리듬을 느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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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TV 정원›, 1974 (2002), CRT TV 모니터, LCD TV 모니터, 살아 있는 식물, 앰프, 비디오 분배기, 스피커, 1-채널 비디오, ‹글로벌 그루브›(1974), 컬러, 유성, 가변 크기 ©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4.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1960)

1960년 10월 6일 독일 쾰른의 한 콘서트장에서 백남준은 평범하게 쇼팽의 피아노곡을 연주하던 중 돌연 피아노 건반 뚜껑을 꽝 닫았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피아노를 난타하며 해체한 후, 관객석 첫 줄에 앉아 있던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에게 달려가 그의 넥타이를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곤 무대 밖으로 달아나 버렸다. 현장에 있던 관객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든 이 사건은 젊은 백남준이 준비한 전위예술 퍼포먼스의 클라이맥스였다. 음악계의 권위를 전복한 상징적인 장면으로 회자되며 백남준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퍼포먼스이기도 하다.

훗날 그는 자신의 퍼포먼스에 대해 “내가 의도한 것은 폭력이 아니라 충격을 통한 카타르시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공연에서는 피아노를 부수는 행동과 더불어 베토벤 교향곡과 개 짖는 소리 등을 뒤섞은 테이프도 함께 재생되는데, 소리와 행동을 결합한 이러한 액션 음악은 관객에게 강렬한 감정의 해방을 선사하려는 백남준만의 실험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독일의 포토그래퍼 클라우스 바리시Klaus Barish가 촬영한 당시의 공연장 사진을 통해 1960년 그날의 뜨거웠던 예술 현장을 살며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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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바리시가 사진으로 기록한 백남준의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 ©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6. ‹달은 가장 오래된 TV›(1965/2000)

백남준은 1960년대 중반부터 텔레비전 수상기 내부에 강력한 자석을 붙여 화면을 일그러뜨리는 실험을 시작했다. 그중 하나인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밤하늘의 달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 보여주는 듯하지만, 사실 어떤 영상도 재생하지 않는 텔레비전이다. 브라운관에 전자석을 갖다 댄 덕분에 화면에는 대신 동그란 달의 형상이 떠오른다. 구체적인 내용은 없고 희미한 빛이 추상적인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관람객은 마치 달빛을 바라보듯 멍하니 흐르는 시간 그 자체를 감상하게 된다. 특별히 이번 전시에 나온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12개의 달에 영상 작업 ‹E-Moon›(1999)을 추가한 13대의 모니터로 구성됐다. 작품 제목인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백남준이 즐겨 쓰던 기발한 표현으로,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 인류가 밤하늘의 달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 앞에 서면 내용 없는 화면을 통해 ‘현재를 흘러가는 시간’ 그 자체와 오롯이 대면하게 되는데, 관람객 각자 다른 사색에 잠기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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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 1965 (2000), CRT TV 모니터 13대, 12-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LD, 가변 크기; ‹E-Moon›, 1999, 1-채널 비디오, 컬러, 유성, DVD ©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7. ‹천왕성›(1991)

우주를 향한 백남준의 끝없는 상상력은 마침내 천왕성까지 도달했다. 청록빛 대기와 신비로운 얼음 고리를 지닌 태양계의 일곱 번째 행성, 천왕성은 24대의 텔레비전 모니터와 네온 조명을 통해 지구 위에 착륙했다. 이 작품은 그저 모니터를 나열한 비디오 설치물이 아니다. 여러 대의 텔레비전을 가로지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영상은 마치 별빛처럼 반짝이며 찰나의 순간과 영원의 시간을 넘나드는 우주의 시적인 풍경을 펼쳐 보인다. 백남준은 위성 생중계로 뉴욕과 파리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혁신적인 퍼포먼스를 통해 지구촌 시대를 예고했는데, ‹천왕성›은 그런 상상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는 예술과 기술, 인간과 우주를 넘나드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의 꿈을 작품에 녹이며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주는 멀리 있지만, 그 신비는 지금 여기, 당신의 눈앞에서도 펼쳐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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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천왕성›, 1991, 원형 철제빔, 모니터 24대, 2-채널 비디오, 243.8 × 243.8 × 81.2 cm. 리움미술관 소장 ©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8. ‹세 대의 카메라 참여›(1969/2002)

관람객이 작품 앞에 서면 벽에 걸린 모니터에서 제 모습이 나오는데, 그 색깔이 조금 이상하다. 자신의 실루엣이 마치 무지개 그림자처럼 빨강, 초록, 파랑으로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세 대의 카메라 참여›는 제목처럼 카메라 세 대를 활용해 만든 설치 작품이다. 각각의 흑백 카메라에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필터(전자빔)를 장착하고 관람객이 움직이는 모습을 RGB라는 기초 색상으로 나누어 촬영한다. 이렇게 얻은 세 가지 영상 신호가 다시 합쳐지면서 모니터에 나타나는데, 마치 여러 색의 그림자가 겹친 것 같은 컬러 영상으로 재탄생한다. 그 옆에 연결한 프로젝터를 통해 벽에도 동일한 영상을 투사하기 때문에 공간 가득 형형색색의 분신 군무가 펼쳐지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재미있는 이유는 관람객이 직접 작품을 완성한다는 점이다. 눈앞의 RGB 분산은 내가 움직이는 대로 실시간으로 바뀌기 때문에 몸을 흔들고 손을 휘저어가며 그림자놀이 하듯 한바탕 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작품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백남준은 값비싼 컬러 카메라 대신 흑백 카메라 여러 대와 간단한 회로만으로 이런 효과를 구현함으로써 비디오 실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현했다. 기술의 제한을 창의적으로 돌파한 발상은 관람객에게 색다른 현실 인식의 경험까지 선사한다. 평범한 내 모습도 이렇게 ‘색채의 시간차’로 보면 낯설고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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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세 대의 카메라 참여›, 1969 (2001), 비디오카메라 3대, 비디오 분배 증폭기, 비디오 부스트 앰프, RGB 입출력 모니터와 프로젝터, 조명등, 가변 크기. 브레멘 미술관 소장 ©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9. ‹자석 TV›(1965/1969)

빈티지한 흑백 텔레비전 위에 뭉툭한 자석 덩어리가 얹혀 있다. 화면을 들여다보면 방송은커녕 형형색색의 추상무늬가 일그러진 채 어지럽게 춤추고 있다. 1965년 뉴욕에서 처음 선보인 ‹자석 TV›는 TV 수상기에 자석을 가까이 대어 내부 전자빔을 교란한 작품이다. 브라운관 안 전자빔이 자석 때문에 정상적으로 흐르지 못하고 휘어져 빨강, 초록, 파랑의 RGB 색대역이 어긋나며 기하학적인 추상 영상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관객의 개입이다. 텔레비전 옆에 놓인 자석을 직접 움직이며 그 위치에 따라 실시간으로 요동치는 빛의 형태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백남준은 텔레비전이라는 일방향 매체를 쌍방향 경험으로 전환함으로써 매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오늘날 흔히 접하는 인터랙티브 아트의 효시 격이다. 자석 하나로 화면을 마음껏 휘저으며 매 순간 새롭게 생성되는 시각 예술을 체험하는 ‹자석 TV›는 백남준이 처음으로 텔레비전에 추상 형상을 펼쳐 보인 작품으로서 미디어아트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참고로, 백남준아트센터가 소장한 ‹자석 TV›(1965/1969)는 2025년 9월 14일까지 대중에게 공개되고, 이후로는 작품 보존을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동명의 작품(1963)이 9월 16일부터 2026년 2월 22일까지 전시장을 지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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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자석 TV›, 1965 (1969), CRT TV 모니터 1대, 자석 1개, TV 32 × 43 × 40 cm, 자석 4 × 14 × 4 cm ©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10. ‹촛불 TV›(1975/1999)

텔레비전이라더니, 막상 화면이 없다. 텅 빈 브라운관 자리에는 작은 촛불 하나가 아련히 타오른다. ‹촛불 TV›는 텔레비전 수상기의 내부 부품을 모두 들어내고 그 안에 실제 촛불을 담은 작품이다. 백남준은 번쩍이는 전자 영상 대신 흔들리는 촛불을 집어넣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기술 매체의 본질을 뒤집어 보여준다. 보통 전자기기라면 복잡한 기술을 깜깜한 상자 속에 숨겨두지만, 이 작품은 껍데기(텔레비전 틀)와 빛(촛불)만 남긴 채 나머지 구조를 모두 노출한다. 덕분에 관객은 텔레비전이라는 사물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기가 꺼진 텔레비전에서 촛불이 타는 모습은 언뜻 코믹하면서도 특별한 상징성을 내보인다. 끊임없이 신기술이 등장하는 시대에 가장 낡은 기술인 불꽃으로 되돌아간 모순이라니. 촛불은 한번 켜면 일정 시간이 지나야 꺼지고, 다시 빛을 내려면 사람의 손으로 새롭게 갈아 끼워야 한다. 스스로 빛을 내는 텔레비전과 달리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 아날로그 빛이다. 이렇듯 새것이 낡은 것으로 대체되는 아이러니를 통해 ‹촛불 TV›는 첨단 기술의 인간 중심적 한계를 드러낸다. 촛불이 타는 고요한 시간은 우리에게 느릿한 성찰을 허용하고, 촛농이 다하면 꺼져버리는 불씨는 영원할 것만 같던 기술도 결국 사라진다는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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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촛불 TV›, 1975 (1999), 초 1개, 철제 TV 케이스 1대, 34 × 36 × 41 cm ©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11. ‹참여 TV›(1963/1998)

오래된 브라운관 텔레비전 앞에 설치한 스탠드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내자 텔레비전 화면에 이상한 무늬가 나타난다. ‹참여 TV›는 마이크를 통해 입력된 소리를 추상적인 패턴 영상으로 변환해 보여주는 일종의 실험적 텔레비전이다. 1963년 백남준의 첫 개인전에서 선보일 당시, 관람객이 내는 소리에 따라 텔레비전 화면의 리본 모양 영상이 춤추듯 그 형태를 바꾸는 인터랙티브 형식을 취했다. 손뼉을 치거나 노래를 부르면, 그 음향 신호가 텔레비전의 영상 신호로 변환되어 실시간으로 요동치는 패턴을 만들어낸다. 일명 ‘댄싱 패턴dancing patterns’이라 불리는 이 추상적 영상은 소리의 높낮이와 크기에 반응하며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동일한 장면이 단 한 순간도 반복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백남준은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가 곧 작품의 생성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더 이상 수동적으로 바라보기만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몇 초 전의 함성이 영상 형태의 피드백으로 되돌아오는 경험은 관람객에게 자신의 ‘현재’가 예술이 되는 순간을 체감하도록 돕는다. 음악을 시각화하는 미디어 플레이어 화면, 오디오 스펙트럼 애니메이션 등은 오늘날 흔한 개념이지만, 백남준은 이미 60여 년 전에 이를 예술로 구현해 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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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참여 TV›, 1963 (1998), 회로 조작 CRT TV 모니터 1대, 신호 발생기 2대, 온도 조절기 1대, 앰프 2대, 마이크 2개, 가변 크기 ©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12. ‹TV 피아노›(1998)

클래식 피아노 위에 크고 작은 CRT 모니터들이 불규칙하게 쌓여 있다. 건반 덮개를 열어보면 내부에 카메라도 한 대 설치한 모습을 볼 수 있다. ‹TV 피아노›는 말 그대로 TV와 피아노를 합쳐 놓은 작품이다. 피아노에 설치한 카메라가 건반을 누르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촬영해 일부 모니터에서 비추고, 다른 몇 대의 모니터는 백남준 본인이 과거에 촬영한 퍼포먼스 영상을 재생한다. 특이한 장면은 영상 속 백남준이 카메라를 손에 쥔 채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마치 카메라가 그의 손가락인 양, 피아노 건반을 누르듯 카메라를 이리저리 두드리며 연주하는 퍼포먼스라니. 결국 카메라에 담긴 흔들리는 화면과 실제 피아노 건반 영상, 그리고 과거 녹화된 백남준의 연주는 16대의 텔레비전을 통해 한데 섞여 다채널 영상 교향곡을 이루게 된다.

백남준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작곡을 배워 음악가를 꿈꾸기도 했지만, 훗날 전자매체를 예술 도구로 삼으면서 비디오 아트 역시 시간 예술이며 음악과 같다고 보았다. 그는 피아노라는 전통적 악기에 비디오 모니터라는 현대 매체를 겹쳐 놓아, 시간 예술인 음악을 시각 매체인 영상으로 바꿔버렸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선율이 아닌 화면의 향연, 즉 눈으로 연주하는 피아노이다. ‹TV 피아노› 앞에 서면, 우리는 소리를 듣는 대신 화면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시간의 변주를 눈으로 좇게 된다. 건반을 눌러 음을 내는 동작이 화면을 통해 시각적으로 변주되는 광경은 백남준이 평생 탐구한 음악적 시간과 영상적 시간이 교차하는 순간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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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TV 피아노›, 1998, 비디오카메라 1대, TV 16대, 피아노 1대, 3-채널 비디오, 265 × 100 × 269 cm. 애경산업 소장 ©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13. ‹TV 물고기›(1975/1997)

‹TV 물고기›는 백남준의 생태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일렬로 길게 늘어선 24개의 어항 뒤편으로 24대의 작은 CRT 텔레비전 모니터가 각각 자리하고 있다. 어항마다 살아있는 열대어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가운데, 모니터 화면에는 현대무용가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이 춤추는 영상, 바닷속을 누비는 물고기 영상, 창공을 나는 비행기 영상 등이 채널별로 흘러나온다. 한 발짝 떨어져 이 광경을 바라보면, 투명한 어항을 사이에 두고 실제 물고기와 영상 속 이미지가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유리 어항 속 실제 물고기는 모니터 화면 속 가짜 물고기와 한 공간에서 어울려 노니는 듯하고, 춤추는 무용수는 물고기 떼와 함께 수족관 속 발레라도 하는 듯 보인다. 심지어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어항 속을 가로지르는 착시마저 일어난다.

현실과 영상이 만들어낸 이 기묘한 합일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관람객을 자문하게 만든다. 분명 눈앞 어항에 물고기가 있지만 영상에서도 물고기가 움직이니,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한다. 실제 물고기는 살아 숨 쉬며 물리적 시간을 따라가고, 텔레비전 속 영상은 녹화된 가상의 시간을 재생할 뿐이지만, 우리의 뇌는 이 둘을 자연스럽게 합쳐 하나의 장면으로 인식한다. 현실과 가상이 맞물려 새로운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어딘가 몽환적이면서 유쾌하기까지 하다. 어항 속 물고기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지만, 영상의 시간은 반복적으로 재생하며 맴돌 뿐이다. 그 사이에서 관람객은 자연의 리듬과 미디어의 리듬을 동시에 체험하며 새로운 감각의 시간 여행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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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TV 물고기›, 1975 (1997), CRT TV 모니터 24대, 어항 24개, 살아 있는 물고기, 비디오 분배기, 3-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LD, 가변 크기 ©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전지적 백남준 시점»은 백남준이 남긴 시간의 조각을 모아 종합선물세트 같은 ‘시간 실험실’로 꾸며 놓은 전시다. 천천히 거닐다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느낌마저 드는데, 아날로그 전자 예술이 주는 따뜻한 감성과 함께, 그의 작업이 지금 봐도 여전히 신선하고 혁신적이라는 데 새삼 놀라게 된다. 백남준의 예술이 특정 시대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적 울림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실제 전시장에서도 다양한 세대의 관객이 각자의 방식으로 작품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젊은 세대는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직접 참여하며 놀이로써 예술을 체험하고, 기성세대는 반세기 전 처음으로 작품이 등장했을 당시의 충격을 떠올리며 회고와 향수에 잠기기도 한다. 모두가 서로 다른 시간의 기억을 안고 있지만, 백남준의 작품 앞에서 다 함께 지금 이 순간의 경이를 공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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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출구 쪽에 설치한 아카이브 키오스크의 모습 © 마동은

전시의 말미에는 백남준의 작업실에서 가져온 작은 아카이브 오브제들과 그가 직접 쓴 원고들이 방문객을 배웅한다. 낡은 전자 부품, 빛바랜 장난감, 누군가에게 보냈던 편지 등 평범해 보이는 물건에는 백남준 예술혼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옆에 비치된 그의 글을 읽으면, 마치 관객에게 다정히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1980년대 그가 발표한 에세이 「임의접속정보」에서 컴퓨터와 비디오를 통해 시간에 대한 감각을 논하는 내용은 진정 시대를 앞서간 통찰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다양한 자료는 작품과 더불어 백남준이라는 인물의 면면을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전시 관람을 마친 후에는 1층 카페 공간에서 잠시 쉬거나 뮤지엄숍에서 기념품과 도록을 둘러보는 것도 추천한다. 통유리창과 야외 테라스를 갖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전시의 여운을 즐기거나, 백남준과 관련된 아트 상품을 둘러보며 관람의 추억을 간직할 만한 아이템을 찾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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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 내 카페 공간 ©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은 생전에 이런 말을 남긴 바 있다. “흥미롭지 않으면 그건 물리학이지 예술이 아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흥미로움으로 가득한 이번 전시는 물리학이 아니라 순도 100% 예술임이 틀림 없다.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는 입장에서 백남준의 작품 세계는 오히려 신선하고 쿨하게 다가온다. 반세기 전 아날로그 전자로 그려낸 미래상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는 사실 또한 놀라운 지점이다. 눈으로 듣고 손으로 보는 체험을 통해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가 예술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의미 깊다. 전시장을 나오는 길에 문득 지금 내 손에 들린 스마트폰 화면도 조만간 현대미술의 중심에 서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상상해 보니 백남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럼, 왜 안돼?” 그라면 분명 이렇게 웃으면서 새로운 장난을 시작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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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

«전지적 백남준 시점»
기간: 2025.04.10 – 2026.02.22
10시–18시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없음

Place

백남준아트센터: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로 10

Program

전시 해설: 평일 14시, 16시, 주말 11시, 13시, 14시, 16시

Writer

마동은Ma Dong Eun은 2005년 프랑스 파리에서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현대 미술 전시기획과 미술 비평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광주비엔날레 재단, 대구미술관 등 공공미술 기관에서 다양한 전시와 예술 행정을 맡았고,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융복합 미술과 다원 예술에 특히 관심이 깊다. 현재 대학교에서 현대 미술과 미술 경영을 주제로 강의를 이어가며, 새로운 시각의 ‘현대 미술 읽기’를 제안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술관의 스마트화’를 화두로 디지털 기술이 창작과 미술관 운영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 중이다.

Artist

백남준(1932-2006)은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 독일, 미국 등에서 활동한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다. 서울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도쿄대학교에서 미학을 전공한 후, 1950년대 말 독일로 건너가 전위예술운동에 참여했다. 1963년 최초의 비디오 아트 전시회를 통해 TV를 예술 매체로 등장시켰고, 1964년 뉴욕으로 이주한 후 플럭서스Fluxus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TV 실험, 퍼포먼스 아트를 펼쳤다.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Charlotte Moorman과 협업한 ‹TV 브라›, ‹TV 첼로› 등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1969년 세계 최초로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개발해 영상 기술을 예술로 끌어들였다. 1984년 위성 중계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로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예술을 선보이며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로서 그 명성을 확고히 했고, 199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에 독일관 대표로 참가해 ‘유목민인 예술가’를 주제로 삼은 작품을 발표하며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2006년 뉴욕에서 작고한 그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오늘날 디지털 아트와 뉴미디어 아트의 토대가 되었고, 백남준아트센터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유산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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