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영화 «북촌방향»에서 술이 거나하게 취한 주인공이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 덴 이유가 없다고 역설한다. 그의 대사를 조금 빌리면, 이유없이 일어난 일들이 모여서 우리의 삶을 이루는데 사람들은 그중에 몇 개만 취사 선택해서 그걸 이유라고 선분처럼 단정 짓고 만다. 그는 사실 모든 사건은 여러 우연이 모여 연장된 무한한 선과 같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아무 의미 없던 흙에서 꽃병도 만들어내고 물잔도 건져내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사람이다. 한참 전에 보았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는 영화 한 편을 생각하며 성수동에 있는 세라믹 스튜디오 ‘선과선분’에 다녀왔다.
조부모 때부터 줄곧 성수에 터전을 잡아온 김민선 작가는 해방촌을 거쳐 이곳 성수에 세라믹 스튜디오를 차렸다. 처음부터 클래스나 쇼룸 같은 용도의 공간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공방에서 시작하다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한다. 작가는 어린시절을 보냈던 성수가 이렇게 많은 이들이 찾는 동네가 될 줄은 몰랐으며 이곳에 다시 정착해 스튜디오를 운영하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말했다. 작은 선택과 우연들이 모여 지금 이 공간이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호 스튜디오가 인테리어를 담당한 스튜디오 내부는 햇빛이 깊숙히 들어와 도자기들을 말리고 있다. 물레 옆을 지나 스튜디오 가장 안쪽으로 가자, 가마 주변에 각종 도자기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선과선분은 누군가의 작업 공간을 엿본다는 즐거움을 준다. 단순한 작업실을 넘어 도예를 함께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자, 작업을 선보일 수 있는 통창의 역할도 한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것이라는 게 공예품의 매력이다. 이곳 선과선분에서 그것들은 이미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