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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Writer: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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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티튜드가 주목하는 요즘 ‘무엇’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고(故) 박서보 화백의 책 두 권이 전 세계에서 동시에 출간되었어요. 생전에 마치지 못한 자서전 『박서보의 말』과 그래픽 노블 『박서보』인데요.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린 박서보의 작품은 누구나 알아볼 만큼 독창적이지만, 그의 예술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죠. 이 두 권의 책은 한 예술가의 내면과 삶의 여정을 꾸밈없이 보여줍니다. 특히 그래픽 노블 『박서보』는 사이언스 카툰 작가로 잘 알려진 조진호 작가가 글과 그림을 맡아, 남녀노소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어요. 김환기, 박수근, 유영국, 윤형근, 이응노, 이우환 등 한국 현대미술을 빚어낸 작가들과의 일화도 곳곳에 등장합니다. 한 사람의 자전적 기록을 넘어, 현대미술의 흐름을 살펴보는 특별한 경험이 될 거예요. 비록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에요. 독서의 계절, 쉽고도 깊게 박서보의 예술을 만날 수 있는 반가운 책. 문화 전문 기자 이소영 님이 그 감동을 리뷰로 전했습니다. BE(ATTITUDE) 웹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묘법 No.190411› (부분 확대), 사진 출처 『박서보의 말』 ©박서보재단

Chapter 1: 자서전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회고전을 가졌습니다. 그해에 손자 두 녀석이 태어났습니다. 핏덩이 같은 녀석들이 성장해 이 자리에 함께 있습니다. 30년이 그렇게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축복처럼 더해진 시간이었습니다. 그 30년의 세월을 더하여 오늘 이곳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두 번째 회고전을 갖게 되었어요. 영광스럽습니다.”

자서전 『박서보의 말은 2019년 5월 열린 국립현대미술관의 회고전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를 회상하며 시작한다. 박 화백은 개막식과 기자간담회에 전례 없는 엄청난 관람객이 몰린 상황이 감동스럽다고 했다. 생존 작가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두 번이나 회고전을 연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일생에 한 번 열기도 어려운 회고전이니 말이다. 

그는 구순의 나이에도 이 마지막 회고전에 두 점의 신작을 냈다. 분홍색, 하늘색 바탕에 유백색 물감을 얹고 무수히 연필로 그은 작품이다. 사실 아주 크고 새로운 작품을 내고 싶었지만, 과로로 체력이 저하될 것을 염려해 2m 규모의 작품을 완성한 것. 하지만 2m라 해도 결코 작은 규모의 작품은 아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작업실에서 하루에 10시간씩 작업해 얻은 작품이라, 이는 곧 자신의 분신이라고까지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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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 No.190411›, 2019, 캔버스에 연필과 유채, 아크릴릭, 130 × 200 cm, 박서보재단 소장, 사진 출처 『박서보의 말』 ©박서보재단

“그간 주춤했던 창작욕을 자극해 구상과 제작에 몰입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 이들 신작입니다. 작가에게 창작 욕구는 삶의 의욕과 일치합니다. 신기하게도 70년 화업의 첨병 노릇을 해 온 내 손, 특히 오른손이 전과 다른 큰 몸짓으로 먼저 반응하며 앞장설 태세입니다. 내 의식과는 별개로 말입니다. 이 두 점은 절대 시장에 내놓지 않을 않을뿐더러 1,000만 달러를 준다고 해도 팔지 않겠습니다.”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연계 전시 «단색화» 이후 그는 세계 유수의 갤러리와 협업하며 단색화 열풍을 이끌었다. 1980년대 160cm 규모의 작품이 300만 원이었는데, 100만 달러 클럽에 진입하게 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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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홍익대 교수 연구실에서(임응식 촬영), 사진 출처 『박서보의 말』 ©박서보재단

그의 자서전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한국 대표 미술가와 교류한 내용이다. 서평을 쓴 평론가 이정우–임우근준 역시 알려진 이야기가 아니라 박서보의 관점에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흥미롭다고 평했다. “박서보 특유의 직설적 화법은 시원시원합니다. 말을 돌리지 않으니 여느 한국인 미술가의 자서전과는 달라도 한참 다릅니다. 일단 동료와 경쟁자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중략) 이우환이 1968년 동경국립근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한국현대회화전»에서 선배 화가들에게 봉변을 당한 일에 대한 묘사는 다소 톤다운되어 있습니다. 이우환과 논쟁을 벌인 가장 선배 격인 작가는 알파벳 약자 Y로만 표기됐는데, 아마도 유영국 선생님일 터입니다.”

이우환은 당시 화단의 인정을 받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그를 인정하고 1969년 상파울루비엔날레에 강력하게 추천한 사람이 바로 박서보였다. 박 화백은 1968년 여름, 일본에서 이우환을 처음 만나서 21일간 도쿄를 함께 돌아다니며 그에게 매료되었다.

“이우환은 내가 만난 화가들과는 어법이 전혀 달랐습니다.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사실 말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화가라고 해서 논리적 사고나 이론적 검증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우환은 한국현대미술의 약점을 통렬하게 꼬집었습니다. 그가 우리 미술계를 위해 할 일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 역시 배울 것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박 화백은 도쿄에서 만났던 곽인식과 이우환을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추천하게 되었던 것. 특히 132쪽에는 박서보와 이우환이 속옷만 입고 작업하는 사진도 실려 있어 두 사람의 특별한 우정을 짐작하게 한다. 두 사람은 한국미술 발전이라는 목표가 같았기에 교류를 지속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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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8월, 신촌 작업실에서 이우환과 함께, 사진 출처 『박서보의 말』 ©박서보재단

그가 이렇게 세계 미술 행사의 한국 작가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1961년 세계청년화가 파리대회 ‘샤르셀’에 직접 참가해 주제 콩쿠르 1위를 수상한 사연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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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2월 발행된 박서보의 여권. 파리행에 사용되었다. 사진 출처 『박서보의 말』 ©박서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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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월, 일본 하네다국제공항에서 재일교포작가 황청동과 함께, 사진 출처『박서보의 말』 ©박서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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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세계청년화가 파리대회 사진(하단 글씨는 박서보 화백의 친필 메모), 사진 출처. 박서보재단 홈페이지 ©박서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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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0월, «세계청년화가 파리대회» 출품작 ‹원죄 No.8›와 박서보, 파리에서, 사진 출처 『박서보의 말』 ©박서보재단

대회가 연기되었다는 프랑스어 통지서를 담당자가 무시한 바람에 10개월이나 먼저 파리에 가서 고생한 뒷이야기에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자서전과 그래픽 노블 모두 박서보와 한국미술을 세계에 알린 세계청년화가 파리대회를 비중 있게 다루었다. 그 외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점쟁이의 예언, 이름을 바꾼 이유, 국전을 공식적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 김창열 화백 간 우정, 이사장을 맡은 둘째 아들 박승호의 낙서를 보고 신작을 구상한 이야기 등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서전은 8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지막 장은 ‹한국현대미술 세계화 시대를 열다-일본을 매료시킨 한국의 단색화›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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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의 흰색» 리플릿 표지, 사진 출처 『박서보의 말』 ©박서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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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화랑, «한국·현대미술의 단면»(1977) 전시 개막 장면,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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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합정동 작업실에서(류기성 촬영), 사진 출처 『박서보의 말』 ©박서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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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 No.6-67›, 1967, 캔버스에 연필과 유채, 64.8 × 64.8 cm, 박서보재단 소장 ©박서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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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 No.55-73›, 1973, 캔버스에 연필과 유채, 194.5 × 290.5 cm,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 ©박서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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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 No.35-78›, 1978, 마포에 연필과 유채, 130 ×162 cm, 테이트 모던 소장 ©박서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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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그래픽 노블  

그래픽 노블 『박서보는 흥미롭게도 사이언스 카툰 작가 조진호가 글과 그림을 맡아 제작되었다. 미술과는 인연이 없었던 조진호이기에 선입견 없는 날것 그대로의 박서보를 소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박승호 이사장의 판단에서이다. 그리고 이는 제대로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노블은 7개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 장은 ‘인연’이다. 1958년 가을 안국동 이봉상회화연구소에서 처음 만난 총명한 여학생 윤명숙과 이뤄진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다.

그 당시 윤명숙은 홍익대학 미술학부 학생이었지만, 박서보와 결혼하면서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박 화백은 장인에게 숙명여대로 윤명숙을 편입시키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윤명숙 여사는 세계를 쏘다니는 박 화백을 대신해 가정을 돌보느라 결국 대학 졸업장을 따지 못했다. 윤명숙 여사는 후에 전시회를 열며 미술가가 됐지만, 박 화백은 평생 이를 미안해했다. 박서보재단의 대표이자 둘째 며느리인 김영림은 윤명숙 여사에게 완성된 책을 보여주자 “아버지가 좋아하시겠다. 깔끔하게 책이 잘 만들어졌다”라며 칭찬하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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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1 ‹인연› 18-19p ©박서보재단

또한 박서보 작품의 특징인 ‘나를 비우는 것’이 오랜 고민 끝에 발현되었음을 알 수 있는 일화도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나혜석과 함께 신여성을 대표했던 문인이자 종교인이었던 일엽 스님과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된 비움에 대한 고민은 그래픽 노블에서 세 차례나 언급되었고, 이는 그의 작품 세계의 근간이 된다.

“스님, 제가 화가입니다. 좋은 예술가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자신을 비워 내야지요.”

“비운다. 어떻게요?”(중략)

“자신에게 집중하세요. 그걸 계속 반복 반복……그러다 보면 결국 부처를 만나게 될 거요. 지금이라도 만나려면 금방 부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중략) 만나고 보니 나입데다.”

박서보의 오랜 고민은 둘째 아들 박승호 이사장이 어린 시절 형의 글씨를 따라 쓰다가 잘 되지 않자, 연필로 빗금을 찍찍 긋고 있던 종이를 보고 현실화되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모두 지워 낼 수 있을까? 비워낼 수 있을까?”

쉬지 않고 손을 움직이는 연필의 반복적 행위는 ‹묘법› 연작으로 이어졌고, 그에게 영감을 준 박승호 이사장이 이제 재단을 운영하며 책을 내었으니, 이것이 바로 인연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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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3 ‹좌충우돌 나를 찾아가다› 62-63p ©박서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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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5 ‹나를 비우는 방법› 110-111p ©박서보재단

그래픽 노블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이다. 2000년 일본 도쿄화랑 개인전에 갔다가 후쿠시마현에서 아름다운 단풍을 보고 다채로운 색깔을 입힌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계기가 간결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타계로 책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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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7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140-141p ©박서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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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 No.170430›, 2017, 캔버스에 한지와 혼합매체, 130×170 cm, 폴라미술관 소장 ©박서보재단

“시간이 없어. 할 일이 많아. 아프다고 쉬는 동안 내가 깨달은 것이 있어요. 작업을 안 하니까 아팠던 거요. 내가 살려면 작업을 하는 수밖에 없어.”

박 화백의 마지막 말은 퇴원하자마자 작업을 해야 하니 캔버스에 배접해 놓으라는 당부였다. 그렇게 배접해 놓은 캔버스가 너무 많아서 요즘 박서보재단에서 전시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박 화백의 캔버스를 기증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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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7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154-155p @박서보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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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의 작업 도구들 @박서보재단

세트로 구성한 두 권의 책은 이탈리아 출판사 스키라(SKIRA)에서 한국어와 영어로 출간되어 세계 어디에서나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에 관심이 있는 미술 애호가 그리고 전쟁과 가난을 딛고 거장이 된 박서보의 소설 같은 일생을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박서보의 글을 편집한 박승호 이사장은 홍릉에서 홍익대로, 경기도 안성에서 서울 성산동으로 그리고 말년의 연희동까지 이어진 작업실의 변화와 부친의 내면세계까지 자서전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서보의 열정적인 목소리는 이제 들을 수 없지만, 그의 삶이 담긴 두 권의 책이 우리 곁에 있다.

Artist

박서보(@parkseobo) 작가는 경북 예천에서 출생했다(1931~202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저항해 반국전을 선언하며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혁신에 이바지했다. 1961년 세계청년화가 파리대회 ‘샤르셀’에 직접 참가해 주제 콩쿠르 1위를 수상했고, 상파울루비엔날레와 파리비엔날레에 한국 작가를 참여시키는 데도 큰 공을 세우며 우리나라 작가의 세계 진출을 위해 노력해 왔다. 2015년 워싱턴DC 허시혼미술관에서 40주년 기념 시각미술상을 수상했고, 2021년에는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제19회 문화의달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와 학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행정가이기도 했다.

Foundation

박서보재단(@parkseobo.foundation)은 2019년 박서보의 재원으로 세운 비영리재단법인이다. 박서보 작가의 둘째 아들인 박승호 이사장(@sam.seungho.park)이 이끌고 있다. 박서보의 작품을 보존ㆍ관리하고, 한국근현대미술 관련 자료를 아카이빙하고 연구한다. 그와 함께 박서보의 예술 정신을 잇는 전시를 기획하고, 젊은세대 미술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한다. 2026년에는 서울에 새로운 전시 공간을 개관한다. 우리의 예술이 세계 어느 곳에서나 향유될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던 박서보의 뜻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Writer

이소영(@soyoung_lee_art)은 문화기자다.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스타일 H», «더 갤러리아»에서 일했고, 최근에는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서울, 그 카페 좋더라』, 『전통 혼례』의 저자이며, 『와인과 사람』, 『노래하지 않는 피아노』, 『미국에서 서바이벌하기』, 『나를 마케팅하고, 세계를 PR하라』, 『브로드웨이의 노래를 들어라』 등을 기획, 편집했다.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의 개관 콘텐츠를 총괄했고, 서울시가 발간한 『서울한류여행안내서 Person:able SEOUL』을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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