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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사라지는가: ‹OPAQUE VISIBLE : 그›

Writer: 마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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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비애티튜드가 주목하는 요즘 ‘무엇’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현대 무용을 떠올리면 대부분의 사람이 일치하는 반응이 있습니다. “이해하기 너무 어려워!” 우리에게 익숙한 시각 예술, 청각 예술과 비교하면, 사람의 신체를 통해 창작자의 의도와 메시지를 파악하는 일은 어쩌면 이미 저 멀리 혼돈의 영역에 가 있을지도요. 그래도 현대 무용을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내뱉는 이유는 현장에서 내뿜는 분위기와 이어지기 때문일 거예요. BE(ATTITUDE)가 주목한 도도무브댄스시어터의 신작 ‹OPAQUE VISIBLE : 그›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이해하려는 머리보다 느끼는 몸에 말을 거는” 이번 공연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란 오히려 몸으로 더욱더 잘 표현할 수 있다는 믿음 위에 구축한 무대입니다.

도도무브댄스시어터의 예술감독이자 안무가로 활동하는 이준욱이 갑작스레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느낀 감각에서 창작의 실마리를 얻은 작품은 장황한 설명 대한 감정의 곡선을 따라 흐르며 기억, 사라짐, 부재, 죽음 등의 주제를 다루는데요. 관객이 작품을 세세히 이해하기보다 자연스레 공명하길 바라면서, 감각의 떨림이 남긴 여운을 안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도록 독려하는 공연에 대해 마동은 님이 친절한 리뷰를 보내주셨습니다. 흥미로운 글과 생동감 넘치는 실황 사진, 더불어 이준욱 예술감독의 미니 인터뷰까지! 풍부하고 매력적인 면면을 BE(ATTITUDE) 웹 아티클에서 어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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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AQUE VISIBLE : 그› 공연 실황 © Hwang Chanyoung. M극장 제공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감각의 거울이다.”

2025년 6월 1일, 서울 M극장. 도도무브댄스시어터DODOMOOV Dance Theater의 신작 ‹OPAQUE VISIBLE : 그›가 마지막 무대를 올렸다. 말 대신 움직임으로 감정을 풀어낸 세 명의 무용수―표혜인, 정필균, 최민선―는 밀고, 기대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며, 반복되는 움직임 속에서 끝없이 관계를 만들어냈다. 몸짓은 언어보다 솔직했고, 감정보다 깊었다. 공연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어둡지 않다. 도리어 죽음을 통해 삶의 결을 다시 들여다 보게 만든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사라지는가?” 예술감독을 맡은 안무가 이준욱의 개인적인 질문은 이내 우리 모두의 질문이 된다. 그 어떤 말보다 생생히 몸과 소리, 그림자와 잔향이 감각을 건드린다. 말로는 닿을 수 없는 그 세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마주하고 싶은 이에게 ‹OPAQUE VISIBLE : 그›는 조용하지만 강렬한 초대장을 보낸다.

기억처럼 스며드는 몸짓

세 명의 무용수가 서로의 몸에 얽혀 하나의 모습이 된다. 어디까지가 팔이고, 누구의 다리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마치 여러 기억이 겹쳐 흐릿해지는 것처럼. ‹OPAQUE VISIBLE : 그›는 이준욱이 갑작스레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느낀 감각들, 이를테면 익숙한 냄새, 말투, 리듬 등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그러나 공연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향기처럼, 그림자처럼, 또는 문득 떠오르는 익숙한 몸짓처럼 희미하게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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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AQUE VISIBLE : 그› 공연 실황 © Hwang Chanyoung. M극장 제공

공연의 출발은 안무가의 개인적 기억이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죽음을 그대로 표현하지도 않고,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아주 가볍게, 감각으로만 느껴진다. 이는 냄새일 수도, 소리일 수도, 무심코 나오는 몸짓일 수도 있다. 분명하게 보이진 않지만 우리 마음 한쪽에 남아 있는 기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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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AQUE VISIBLE : 그› 공연 실황 © Hwang Chanyoung. M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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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AQUE VISIBLE : 그›의 키워드는 바로 ‘기억’이다. 그런데 그 기억은 또렷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흐릿해지거나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무대 위 움직임은 어떤 뚜렷한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는다. 대신 낯익은 동작, 그림자처럼 남은 잔상, 숨결의 리듬 같은 것으로 감정을 전한다. 무용수의 몸은 그런 ‘기억’처럼 움직인다. 관객은 이런 몸짓을 보며 자신만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동일한 동작을 반복해도 매번 느낌이 다르다. 어떤 순간에는 부드럽고, 혹은 무거우며, 마구 흔들리기도 한다. 하나의 감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공연은 마치 ‘기억이 움직이는 방식’을 닮았다.

세 명의 무용수, 네 번째 존재의 부재

공연은 세 명의 무용수가 약 한 시간 동안 무대를 채운다. 하지만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무대에는 또 하나의 자리가 늘 비어 있는 듯하다. 이준욱은 이를 ‘네 번째’ 존재라 부른다. 네 번째 존재는 실체가 없다. 망자일 수도, 지나간 기억일 수도, 아직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일 수도 있다. 특히 두 무용수가 마주 서 있을 때, 그 사이의 공간은 더욱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 빈자리는 잊힌 사람 혹은 남겨진 사람의 마음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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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AQUE VISIBLE : 그› 공연 실황 © Hwang Chanyoung. M극장 제공

공연이 절정에 치달을 즈음, 두 여성 무용수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며 천천히 무너진다. 여기에는 슬픔과 피로, 그리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의지가 뒤섞여 있다. 둘 다 고개를 돌린 채, 그 누구도 상대방을 바라보지 않는다. 감정은 가득한데 어디로도 흐르지 못하고 멈춰 있는 것이다. 그 옆에 떨어져 서 있는 남성 무용수는 구부정한 자세로 침묵한다. 마치 세 사람 사이에 또 하나의 말못한 감정이 끼어든 느낌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네 번째 존재다. 이는 잊힌 기억일 수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일 수도 있다. 세 사람의 구도는 끊임없이 바뀐다. 둘이 가까워지면 남은 하나는 멀어지고, 셋은 함께인 듯하다가도 곧 흩어진다. 실제로 무용수는 무대에 네 명이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춤추길 요구받았다고 한다. 네 번째 존재가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거리감은 ‹OPAQUE VISIBLE : 그›에서 가장 짙게 흐르는 감정인 ‘상실’을 무대 위에 조용히 새겨 넣는다.

몸의 언어로 묻는 죽음 이후의 삶

현대 무용은 종종 ‘이해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OPAQUE VISIBLE : 그›는 그런 말이 조금은 무색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해하려는 머리’보다 ‘느끼는 몸’에 말을 걸기 때문일 테다. 이는 해당 공연을 더욱더 매혹적으로 만드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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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AQUE VISIBLE : 그› 공연 실황 © Hwang Chanyoung. M극장 제공

이준욱은 말한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은 오히려 몸으로 더욱더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이런 믿음 위에 구축한 무대는 장황한 설명 대신 감정의 곡선 하나만 따라 흐른다. 무대 위에서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다. 어떤 감정이 흐르고, 에너지가 퍼지고, 다시 모이는, ‘움직이는 시간’이다. 멈추기보다는 천천히 소진되고, 때로는 세차게 밀려나고, 휘청이다가도 다시 연결되는 그런 것이다. 그는 ‹OPAQUE VISIBLE : 그›를 설명하며 ‘저장 기억의 변형과 분리’라는 다소 낯선 표현을 꺼냈는데, 흥미롭게도 이는 무대 위에서 꽤 명확하게 다가온다.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더라도, 리듬이 조금씩 달라지고 타이밍이 비껴가면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진다. 기억이란 게 늘 왜곡되고, 덧입혀지고, 흐려지는 것처럼. 또 하나의 키워드인 ‘신체 응력’은 무용수가 서로에 기대고 밀치며 만들어내는 긴장 속에서 구체화된다. 이때의 긴장은 불편하거나 위협적이지 않다. 오히려 낯선 감정이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처럼 다가온다. 죽음을 직접 말하지 않고, 끝을 선언하지도 않으면서, ‹OPAQUE VISIBLE : 그›는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에게 사라짐은 어떤 감각인가요?”

감각을 위한 다층적 장치들 – 음악, 조명 그리고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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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AQUE VISIBLE : 그› 공연 실황 © Hwang Chanyoung. M극장 제공

‹OPAQUE VISIBLE : 그›는 단순히 신체의 움직임만으로 완성되는 공연이 아니다. 음악, 조명, 의상, 무대까지 여러 감각이 한데 얽혀 고유의 분위기를 만든다. 마치 서로 다른 예술 장르가 특정 감정에 맞춰 조심스럽게 하나가 되어 연주하는 앙상블과도 같다. 유지완이 공연을 위해 작곡한 음악은 흔히 말하는 ‘감정을 밀어주는 배경 음악’과는 조금 다르다. 그의 음악은 무용수의 몸에서 빠져나온 감정의 잔향을 조용히 따라가거나, 때론 아직 남아 있는 어떤 감각을 슬쩍 끌어올린다. 리허설 초기만 하더라도 아무런 사운드 없이 무용수의 움직임만으로 진행했고, 그 후 무용수의 몸짓에 맞춰서 음악을 입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음악은 움직임을 따르면서도 한 박자 늦게 따라오거나, 때론 살짝 앞질러 가며 감정을 미묘하게 비튼다.

조명은 이번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무대 위에 드리운 그림자는 단순히 빛에서 파생된 결과물이 아니다. 이미 사라진 누군가의 흔적으로 다가오거나, 때로는 살아남은 감정의 분신처럼 느껴진다. 어떤 장면에서는 실제 무용수보다 그림자가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의상은 또 어떤가. 반투명한 삼베로 만든 옷은 몸의 피부와 윤곽을 감추지 않는다. 살짝 비쳐 보이며 감정의 미세한 떨림까지 드러낸다. 삼베라는 재질이 주는 분위기는 명확하다. 어딘가 죽음을 떠올리게 하고, 인간이 생애 마지막에 입는 옷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이 옷은 살아 있는 피부이자, 사라지는 순간을 감싸는 ‘얇은 막’ 같은 게 아닐까? ‹OPAQUE VISIBLE : 그›는 이처럼 무대 위에 펼쳐진 모든 요소로 ‘느낌’을 이야기한다. 무대는 춤추는 육체뿐 아니라, 들리고 보이고 스쳐 가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

관객과 함께 만들어낸 감각의 파장

공연이 시작되기 전, 한 무용수가 리셉션 공간을 천천히 가로지른다. 관객이 제 감각을 서서히 깨우는 순간을 조성하는 의식과도 같은 퍼포먼스다. 현실 공간을 천천히 비현실로 데려가는 이 예열은 어쩌면 삶과 죽음 사이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작은 전이를 닮았다. 무용수의 몸짓은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경계를 허물고, 이를 통해 관객은 어느새 이세계(異世界)로 자연스럽게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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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AQUE VISIBLE : 그› 리셉션 퍼포먼스 실황 © Hwang Chanyoung. M극장 제공

공연을 마치고 진행한 ‘관객과의 대화’는 마치 또 하나의 ‘무대’ 같았다. 관객은 공연에서 느낀 감각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며 저마다 작품을 재구성했다. 이준욱은 ‹OPAQUE VISIBLE : 그›를 통해 ‘이해’보다 ‘공명’을 바란다는 의견을 밝혔다. 무언가 애써 해석하길 요구하지 않고, 그저 감각의 떨림을 따라가길 독려하는 마음. 어쩌면 이야말로 현대 무용이 지닌 가장 근원적인 힘일지도 모른다.

“형태보다 감각의 기억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번 작품에 대한 이준욱의 발언은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관객 각자의 몸 어딘가에 오래 남는 잔향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일 테다. 하긴, 감각이야말로 누군가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진한 흔적이 아니던가. ‹OPAQUE VISIBLE : 그›는 죽음을 말하지만, 그렇다고 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삶과 죽음 사이, 언어와 감각 사이, 의미와 흔적 사이, 그 어딘가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남기고 사라질까?

Interview
이준욱 도도무브댄스시어터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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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무브댄스시어터를 이루는 구성원들 © Hwang Chanyoung. M극장 제공

도도무브댄스시어터의 창단 계기를 여쭤보고 싶어요.

도도무브댄스시어터(이하 도도무브)는 2010년 시작했어요. 저는 ‘움직임’을 단순한 기술이나 동작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적 질문으로 바라보고 싶었어요. ‘왜 이 몸은 움직일까? 왜 지금, 이 방식으로 타인과 마주할까?’ 이런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면서요. ‘도도’라는 이름만 봐도, 한자로 ‘길 도(道)’와 ‘이를 도(到)’를 쓰는데요. ‘길에 도달한다, 도에 이르다’란 뜻이에요. 몸이 제 움직임을 따라 자기만의 길에 도달한다는 의미랄까요. 요즘 현대 무용이 점점 더 기술 중심으로 흐르는 경향을 보이는데요. 도도무브는 그 반대편에서 움직임의 이유에 집중해 왔습니다. 몸을 통해 삶을 탐색하는 여정을 이어가는 거죠.

도도무브의 특성에서 자연스러운 움직임, 우연성, 반복성을 빼놓을 수 없어요.

저희는 리허설할 때, 동작보다 감각을 먼저 훈련해요. 예를 들어, 말할 때 무심코 나오는 손짓, 불편할 때 움츠러드는 자세, 무언가를 기억할 때 고개를 기울이는 식의 일상적인 몸의 반응이 아주 중요한 출발점이 되죠. 정형화되지 않았기에 더욱더 생생하고 예측할 수 없어서 우연성을 품고 있거든요. 반복은 그런 우연을 다시 불러내는 방식이에요.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더라도 감각이 달라지면 그 결도 확 바뀝니다. 그렇게 하나의 움직임에 다양한 감정을 새겨넣는 방식으로, 도도무브만의 ‘조용하지만 강렬한’ 몸의 언어를 다듬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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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욱 도도무브댄스시어터 예술감독 프로필 사진

지난 활동을 돌이켜 보면 ‘신체의 기억’이란 키워드가 떠오릅니다. 준욱 님이 생각하는 신체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몸의 기억은 단순히 동작을 기억하는 기능이라기보다, 감각과 감정, 어떤 사건이 응축된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겨울 아침의 공기 내음에서 어린 시절 눈사람을 떠올리거나, 어떤 촉감에서 오래전 상실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처럼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는 그 순간을 몸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어요. 도도무브는 이런 신체의 기억을 꺼낸 후 왜곡과 재조합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이를 매개로 관객 또한 자기 안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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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IUM›, 2024, 봉산문화회관, 대구 © 주영빈

지금까지의 작업 중 도도무브의 방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을 꼽아본다면요?

바로 이번 작품인 ‹OPAQUE VISIBLE : 그›입니다. 전에는 감정이나 관계, 일상의 순간을 주로 다뤘는데, 이번에는 존재와 기억이라는 조금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 봤어요. 이야기의 구조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감각 중심의 구성과 반복, 그리고 소진되는 리듬으로 무대를 전개하죠.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의 미세한 결이 도도무브가 추구하는 미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준욱 님은 해외 무용수나 기관과도 자주 협업하셨죠, 도도무브의 ‘움직임 언어’는 다른 문화권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던가요?

가장 인상 깊은 지점은 배경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몸을 통한 감정의 결은 서로 통한다는 거예요. 특히 동유럽이나 북유럽 출신 무용수와 작업할 때, ‘감각 중심의 움직임’은 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어요. 도도무브의 안무는 구조적이라기보다 정서적인 흐름에 가까워요. 그런 감정적 접근이 문화적 차이를 넘어 공감대를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설명할 수는 없는데, 뭔가 느껴진다”라는 관객 피드백 또한 자주 있었고요. 이런 반응이 저희에게 가장 큰 확신의 힘을 심어줘요.

도도무브의 작품에는 인간의 내면이나 관계성 같은 철학적 주제가 기본으로 깔려 있어요. 이를 무대에서 구현할 때 중시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저희는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것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철저히 개인적인 감각에서 움직임이  출발하더라도, 인간적인 공통점을 지닌다면 관객과 이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어떤 형식을 만들기보다 감정의 진정성, 움직임의 밀도, 관계의 조율 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접촉하거나 충돌하거나, 혹은 거리를 두고 소진하는 몸의 관계는 사회적 연결과도 닮았어요. 그게 도도무브가 무대에서 말하고 싶은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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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곡선 – 숨쉬는 몸›, 2024, 성수아트홀, 서울 © 주영빈

음악, 시각 예술 등 다른 장르와 활발히 진행하는 협업이 창작 방식에는 어떤 영향을 주나요?

저희는 협업을 단순히 ‘무대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로 간주하지 않아요. 오히려 창작 구조 자체를 뒤흔드는 동력이라고 생각하죠. 음악, 디자인, 드라마투르그dramaturg의 개입이 들어오면, 도도무브의 움직임 언어도 새로운 결을 입습니다. 저희는 무용이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다양한 감각 언어와의 대화에서 확장된다고 믿어요. 협업은 예측불가능한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새로운 형식이 자라날 수 있잖아요. 그렇기에 도도무브는 그 틈과 우연을 기꺼이 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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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IUM›, 2024, 봉산문화회관, 대구 © 주영빈

요즘 관심 가는 새로운 움직임이나 형식적인 실험은 무엇인가요?

움직임을 어떻게 지각할 것인가에 대한 실험을 꼽을 수 있겠네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걸 넘어서, 듣거나 느끼는 방식으로 몸을 감각하게 만드는 작업이랄까요. 그래서 최근 시각 중심에서 벗어나 청각, 촉각 중심의 안무 구조를 탐색하거나, 무대 바깥에서 펼쳐지는 비가시적 퍼포먼스, 전시와 공연을 결합한 형식 등을 상상하곤 합니다. 관객이 직접 몸을 움직여 보는 신체 탐색형 퍼포먼스도 흥미로워요. 결국 우리의 관심은, ‘존재의 감각을 어떻게 다르게 구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있어요. 무대라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움직임이 아닌 감각으로 존재를 느끼는 공간을 만든다면, 그 자체로 새로운 차원의 무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관객에게 가장 던지고 싶은 질문이 궁금합니다.

“당신은 지금, 살아 있나요?” 숨 쉬고 있으니 살아 있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저희가 말하고 싶은 바는 조금 달라요. 감각하고, 느끼고, 타인과 관계 맺으며 ‘살아 있음’을 실감하는지 묻고 싶어요. 저희 작업은 언제나 이런 물음표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대를 통해 관객에게 조용히 물어봐요. “당신 안의 감각은 지금 깨어 있나요? 당신의 몸은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있나요?” 그때 관객은 각자의 방식으로 답하곤 하죠. 어떤 감정의 떨림으로, 잊고 있던 어떤 감각의 여운으로요. 우리는 그 여운이 오랫동안 머물렀으면 합니다.

올해로 벌써 창단 15주년입니다. 도도무브가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요?

기술이나 스타일로 규정되는 팀이라기보다, ‘감각의 결’을 만들어내는 무용단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관객에게 잔잔하지만 오래 남는 인상을 선사하고, 언어화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감각으로 남는 공연을 계속 만들고 싶어요. 도도무브가 동시대 감각적이고 철학적인 움직임의 지형을 조금씩 열어가는 존재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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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ormance

‹OPAQUE VISIBLE : 그›

기간: 2025.05.30 – 2025.06.01

출연: 도도무브댄스시어터DODOMOOV Dance Theater

Place

M극장: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4길 36

Choreographer

이준욱(@dodomoov_jw)은 안무가이자 현재 도도무브댄스시어터DODOMOOV Dance Theater 대표와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그의 작업은 인간과 사회의 관계성, 삶의 본질적 형태에 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움직임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내면, 인간관계에 대한 철학적 관점을 탐구하며, 다양한 매체와의 융합을 통해 기존의 감각을 보다 유연하고 깊이 있게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반복과 유연성에 기반한 그의 안무는 기존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로 이어지면서 도도무브댄스시어터 특유의 섬세하고 강렬한 신체 언어를 생성한다. 슬로베니아 DANCE JSKD(JIVA POZIVI), 독일 프랑크푸르트 Tanz und Theater Werkstatt 등 해외 안무 교류 활동을 비롯해, 대구시립무용단 리허설 디렉터, 국립현대무용단 ‹정글› 리허설 디렉터 등 동시대 무용 현장에서 다양하게 활동해 왔다.

Writer

마동은(Ma Dong Eun)은 2005년 프랑스 파리에서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현대미술 전시기획과 미술 비평 작업,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한 다원예술 기획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광주비엔날레 재단, 대구미술관 등 공공미술 기관에서 다양한 전시와 예술 행정을 맡았고,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융복합 미술과 다매체성 중심의 다원예술에 특히 관심이 깊다. 현재 대학교에서 현대 미술과 미술 경영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며, 새로운 시각의 ‘현대미술 읽기’를 제안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술관의 스마트화’를 화두로 디지털 기술이 예술 창작과 장르간 협업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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