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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브라보! : «시대의 아이콘: 아놀드 뉴먼과 매거진, 1938-2000»

Writer: 전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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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비애티튜드가 주목하는 요즘 ‘무엇’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숨어있는 보석 같은 미술관을 아시나요?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시작해 개관 20주년을 맞아 2022년 삼청동의 새로운 건물로 이전한 뮤지엄한미가 그 주인공입니다. 지금 이곳에서는 «시대의 아이콘: 아놀드 뉴먼과 매거진, 1938-2000»라는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어요. 아놀드 뉴먼은 미국에서 활동하며 ‘환경 초상(environmental portrait)’의 개념을 공고히 한 전설적인 포토그래퍼입니다. 환경 초상은 피사체의 삶과 특징, 업적과 관련된 환경을 배경으로 조성해 인물에 관한 정보를 풍부하면서도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인데요. 현재 잡지용 포트레이트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각종 문법이 바로 뉴먼의 유산에서 파생됐답니다. 당대 유명 잡지의 의뢰를 받아 그가 찍은 저명인사만 모아도 ‘20세기 위인 어벤저스’라 할 만 한데요. 드디어 미루고 미루던 뮤지엄한미를 방문해 뉴먼의 전시까지 해치웠답니다. 실로 만족스러운 주말이었어요. 오는 3월 23일까지 열리는 전시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 궁금하시다면, 이번 아티클을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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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nold Newman, ‹Marcel Duchamp, artist, New York, USA›, 1942, Gelatin silver print, 32.6 × 24.7 cm. Art Gallery of Ontario. Anonymous Gift, 2012 © Arnold Newman Properties/Getty Images (2024). 2015/428. 

아주 오랜만이었다. 적어도 10년은 된 듯싶다. 주말 낮의 삼청동 걸음 말이다. 강북 핫플레이스의 원조 격으로 승승장구하다가 지금은 젠트리피케이션과 더불어, 비슷한 결의 서촌과 북촌에 밀려 이도 저도 아니게 된 동네. 쇠락한 거리 곳곳에 임대 딱지가 붙고, 약속 장소로 삼는 리스트에서 온전히 사라져 버린 동네. 내게 남겨진 삼청동의 심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작년 봄 ‘아트 부산’ 때문에 부산에 머물렀을 때 숙소를 잡은 해운대 인근을 돌아다니다 고은사진미술관을 마주했다. 정말 생뚱맞게. 고은사진미술관은 지방에 생긴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전시 소식이 들릴 때마다 관심이 가면서도 ‘부산이잖아…’라고 되뇌게 하던 곳이다. 직접 실물로 보니 감격(?)에 가까운 심정이 들다가, 이내 내 머릿속을 후려치는 죽비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뮤지엄한미는요?”

국내 최초로 설립된 사진 전문 미술관인 한미사진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뮤지엄한미’라는 이름으로 삼청동 끝자락에 본관을 신축한 게 지난 2022년 겨울. 사진 전문 수장고를 갖춘 제대로 된 사진 전문 뮤지엄이 열릴 당시, 각종 매체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 나 또한 꽤나 기대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서울이니까, 삼청동이니까, 언제든 방문할 수 있으니까, 라는 오만한 마음으로 가보지 않았다가, 결국 생각지도 않은 곳을 먼저 만나버리는 사고를 겪으면서 뮤지엄한미에 대한 일종의 부채 의식이 눈을 떠버렸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일상에서 허우적대며 개관 2년이 지나도록 가지 못한 뮤지엄한미를 이제서야 가게 된 계기는 어이없게도 질투였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뮤지엄한미 관련 전시 포스팅을 보자, 말 그대로 열폭했다. ‘아니니니니, 알아도 내가 먼저 알았는데! 나는 무려 송파구 한미약품 건물에 있을 때부터 그 존재를 알았단 말이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고, 뮤지엄한미에 꼭 가고야 말리라 마음을 먹었고, 설날 황금연휴에 급성 통풍 증세로 걸음이 불편해지는 일을 겪자 두려움이 엄습하며,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아, 이제 신체가 고장 나고 있고, 의사가 매번 강력하게 권하는 운동은 전혀 안 하고 있고, 이러다 또 발이 아프면 어디 나가는 것도 힘들어지는 건가’ 등등 오만 가지 상상이 부풀어 오르자, 택시를 타서라도 삼청동을 가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이다.

예전부터 침 발라놨던 곳을 가는 게 욕망의 최우선이었던 지라, 전시에 대한 기대는 사실 크지 않았다. 사진에 대한 전문 지식이 일천하기도 하고, 기회 있을 때 살펴보는 걸 즐기는 입장에서 «시대의 아이콘: 아놀드 뉴먼과 매거진, 1938-2000»이라는 전시 제목은 마음을 확 낚아채는 매력이 없었다. ‘아놀드 뉴먼Arnold Newman이 누구야?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멘트는 딱 광고성인데? 그리고 매거진은 갑자기 왜 붙지?’라는 의문만 증폭됐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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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포스터 © Museum Hanmi

그러나 요즘 시대가 무슨 시대인가. AI 시대 아니던가. 채찍질할수록 더 정확히 말한다는 현대판 지식 노예 챗GPT, 일명 ‘채찍이’를 매달 유료로 구독하는 입장에서 막막함은 곧 사라졌다. “아놀드 뉴먼이라는 포토그래퍼 알아?”라고 물어보니 우리 채찍이가 찰떡같이 대답한다. “환경 초상(environmental portrait)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미국의 유명한 포토그래퍼야.” 환경 초상이라는 낯선 단어을 설명하라고 쪼아보니 채찍이 가라사대, “환경 초상은 피사체(인물)와 그의 환경을 함께 담아, 그 사람의 삶이나 정체성을 표현하는 사진 기법이야. 피사체가 속한 공간과 배경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지. 즉, 배경과 함께 인물을 설명하는 초상 사진이라고 이해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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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사람을 가르치는 말세가 왔다. © Harry Jun

순간, 한국인 특유의 심술보가 도졌다. 아니, 이렇게 안 찍는 포트레이트가 어딨어? 에디터 경력이 10년은 훌쩍 넘은 상황에서, 대면 인터뷰를 진행할 때 언제나 신경 쓰이는 게 바로 포트레이트 촬영이다. 맛깔나게 찍을수록, 기사의 때깔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에디터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지식이 있다. ‘배경은 말을 한다.’ 포트레이트의 주인공인 인물을 잘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느 배경에서, 어느 포즈로, 어떤 소품을 활용하는지에 따라 이미지가 지니는 정보값이 달라진다.

얼마 전에 목격한 극단적인 사례는 한 펀드매니저의 인터뷰였다. 차곡차곡 투자하라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멀쩡한 펀드 매니저가 돼지저금통을 머리에 올린 채 찍은 포트레이트를 보자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열심히 인터뷰한 대가는 이렇게 흑역사로 돌아오고…’ 그에 비해 예술가는 상황이 훨씬 낫다. 보통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터라 온갖 재료와 소품, 작품이 즐비해서 자연광만으로도 아주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아름다움과 정보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포트레이트가 기본인 세상에서, 환경 초상에 대한 설명은 마치 ‘사진은 좋은 곳에서 찍어야 잘 나온다’처럼 당연한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채찍이를 좀 더 굴려보니, 맙소사! 내가 당연시하던 인터뷰 포트레이트의 문법이 바로 환경 초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게 아닌가. 인터뷰이, 특히 예술가의 집이나 작업실에 가서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한 모습과 더불어 그가 쌓아 올린 흔적과 취향을 배경으로 포트레이트를 찍은 방식을 베이식&클래식으로 확립한 주인공이 바로 뉴먼이라니. 낯선 외국인 선각자에 대한 충격과 존경과 사랑의 기운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시 제목에 ‘시대의 아이콘’과 ‘매거진’이 들어가는 이유가 온전히 이해됐다. 유명한 사람을 셀 수 없이 많이 찍었으니 ‘시대의 아이콘’을 볼 수 있는 거고, 잡지에서 의뢰한 기사용 편집 사진을 주로 찍었으니 ‘매거진’이 키워드로 나올 수밖에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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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nold Newman, ‹Fernand Léger, painter, New York, USA›, 1941, Gelatin silver print, 27.9 × 35.6 cm. Art Gallery of Ontario. Anonymous Gift, 2012 © Arnold Newman Properties/Getty Images (2024). 2015/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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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nold Newman, ‹David Hockney, painter, London, England›, 1978, Colour instant print (Polaroid Type 88), 24.1 × 19.1 cm. Art Gallery of Ontario. Anonymous Gift, 2012 © Arnold Newman Properties/Getty Images (2024). 2015/4115. Commissioned by the London Portrait Gallery and «Sunday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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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nold Newman, ‹Henry Luce, founder of «LIFE» Magazine›, 1962, Gelatin silver print, 33.7 × 27.3 cm. Art Gallery of Ontario. Anonymous Gift, 2012 © Arnold Newman Properties/Getty Images (2024). 2015/4144.

이번 전시는 지난 2023년 캐나다 온타리오 미술관(AGO)에서 열린 «Building Icons: Arnold Newman’s Magazine World, 1938-2000»을 뮤지엄한미에서 재구성한 해외 순회전이다. 뉴먼이 찍은 유명인의 포트레이트는 점점 더 널리 쓰이면서 해당 인물을 상징하는 강력한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런 포트레이트의 상당수가 애초에 매거진 기사를 위해 촬영했다는 사실이 이미지의 존재감 때문에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한다. 생산의 맥락에서 탈출해 그 자체로 작품이 된 덕분이다. 결국 매거진과의 밀접한 관계성에 주목해 아놀드 뉴먼의 60년 포트레이트 인생을 망라하는 게 뮤지엄한미에서 주목하는 지점이다. 전시를 대하는 내 태도 또한 크게 바뀌었다. 그저 잘 찍은 유명인의 사진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뉴먼이 어느 잡지의 어느 아티클을 위해 찍었는지, 그에 맞춰 세계적으로 위명 높던 인사들은 어떤 콘셉트로 카메라 앞에 섰는지, 그리고 뉴먼은 이를 어떻게 포착했길래 작업이 독자적인 생명력을 획득했는지, 궁금증이 끊임없이 떠올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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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une» 1948년 10월호에 실린 기획 기사 ‘The Scientists’에 대한 설명문. 뉴먼의 사진 대부분은 당대 유명 매거진이 외뢰하며 탄생했기 때문에, 따로 보면 독립적으로 느껴져도 전체적으로 명확한 콘셉트와 특유의 내러티브를 공유할 때가 많다. © Harry Jun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도착했습니다. 손님”이라고 말하는 택시 기사님의 안내에 엉거주춤 내리니, 신세계가 펼쳐졌다. 삼청동이 이런 곳이었나 싶을 정도로 약간의 두메산골 느낌을 풍기는 마을 끄트막에 나 홀로 남겨지면서, 서울에 있는 문화 시설이 이토록 고요한 곳에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사실에 당황스럽고도 신비롭고, 약간 현타가 오면서도 고요한 감정이 양가적으로 들었다. 주말인데도 주차장에 차량 두세 대가 세워진 모습에서 평화로움과 함께 ‘혹시 나 낚인 건가?’ 싶은 느낌이 동시에 왔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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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나무부터 예사롭지 않다. © Harry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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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는 맑고, 차량은 없는 인서울 뮤지엄의 귀한 풍경 © Harry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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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세련되고 모던한 1층 풍경. © Museum Han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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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면 지하 1층 전시장으로 바로 연결된다. © Museum Han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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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에서 바라본 미술관 공용 공간 © Museum Han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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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난간 덕분에 이미지가 매우 단정하다. © Museum Hanmi

건물 한 면을 크게 차지하는 현수막을 빼면 뮤지엄인지 긴가민가한 장면은 곧 사라졌다. 내부로 진입하니 아주 정갈한 모습의 공간이 펼쳐졌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기오헌의 민현식 건축가 작업이었다. 역시 건물이 다는 아니지만, 건물은 정말 중요하다! 믿음 약한 중생에게 확신을 더해주니까.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다. 지상 2층은 업무공간이라 공개하지 않고, 지하 1층과 지상 1층에 배치한 전시장을 하나의 전시가 모두 쓰는 형식이다. 티켓값은 1만원. 꽤 적당한 입장료라고 생각하며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매대 옆에 비치된 엽서 두 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전시의 메인 이미지로 꼽히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파격적인 흑백 포트레이트와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컬러 포트레이트다. 당연히 파는 물품인 줄 알았는데, 공짜라고 해서 빠르게 한 장씩 챙겼다. 여기 의외로 인심이 넉넉한 곳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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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포트레이트로 만든 엽서. 무려 공짜! © Harry Jun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경험은 굉장히 새로웠다. 보통 입장권을 사면 그대로 프리 패스이거나, 앞에서 누군가 표를 검사하는데, 여긴 셀프 입장이다. 표에 인쇄된 바코드를 입구에 있는 기계에서 찍는 방식. 다만, 정말 잘 찍어야 한다. 몇 번을 해도 인식이 안 되고 옆에 있는 안내판을 따라 해도 안 돼서 혼자 동동거리니, 갑자기 뒤에서 소리 없이 스태프분이 등장하며 도와주셨다. “처음 오신 분은 당황하시곤 해요. 센서가 10cm 정도 거리를 두고 바코드를 인식한답니다.” 개관 4년 차 뮤지엄의 첨단 보안 시스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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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바로 통과하지 못하는 최첨단 보안 시스템 © Harry Jun

전시는 총 6개의 섹션으로 구분된다. 뉴먼이 환경 초상의 세계로 뛰어들기 전의 초기 작업 섹션, 유명 아티스트를 개인적으로 찾아다니며 환경 초상 기법으로 찍은 아티스트 포트레이트 연작으로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며 주목받은 섹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초호황으로 진입한 미국의 매거진 업계에서 의뢰받아 1945년부터 1950년대까지 촬영한 작업에 집중한 섹션, 이후 높게 쌓아 올린 명성을 바탕으로 매거진 의뢰, 개인 의뢰, 개인 작업 등을 병행하며 수많은 문화계 유명 인사를 기록한 섹션, 정치인, 기업인부터 기업 의뢰까지 다각도로 활동한 면모를 보여주는 섹션, 그리고 1946년 찍은 전설적인 지휘자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포트레이트와 더불어 스트라빈스키의 신곡 준비를 곁에서 지켜보며 기록한 출판물에 대한 섹션까지, 연대기적 형식을 따라가면서도 주제를 설정해 강약을 세심하게 배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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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섹션 ‘Early Work’의 시작점 © Museum Han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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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섹션 ‘Artists Look Like This’는 이 방을 모두 감싸고 있다. © Museum Han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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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섹션 ‘Magazine Commissions & The 1950s’의 일부 © Museum Han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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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면의 벽에 장대하게 펼쳐지는 네 번째 섹션 ‘Creative Vision’ © Museum Han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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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섹션 ‘Focus on the Story’의 시작점 © Museum Han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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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섹션 ‘Focus on the Story’의 연장선 © Museum Han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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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마지막 섹션 ‘Igor Stravinsky: Icon and Story’ © Museum Hanmi

전시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은 이번 리뷰에서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가서 직접 보는 게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전시보다 섹션과 그에 속하는 작업에 대한 설명을 완벽하게 갖췄다. 거의 도록을 옮겨 버린 수준으로 자세히 서술한 텍스트를 작업마다 통째로 전사시킨 수준은 경이롭다. 이걸 읽고 보는 것과 안 읽고 보는 것은 이해도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주로 미국의 유명 인사들(이라고 하지만 살펴보면 세계적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사람들)을 다루는 미국 매거진의 의뢰로 사진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이해는 재미와 직결된다. 무엇보다 인물과 그의 환경을 담는 게 환경 초상의 핵심이다. 인물의 배경지식을 모르고 전시를 보면 의미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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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을 가득 채운 두 남자의 포트레이트를 기억해 두자. © Museum Hanmi

아니다. 의미가 없진 않고, 매우 반감된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우리가 지금은 4K, 많게는 8K 화질의 디스플레이로 세상의 모든 이미지를 살피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 실재하는 색감과 텍스처를 그대로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 이는 회화, 조각뿐 아니라 사진에도 적용된다. 우리가 보는 디스플레이는 RGB 기반이다. 빛을 쏘아서 색을 구현한다. 하지만 사진, 특히 흑백 사진은 암실에서 필름을 인화한 결과물이다. 세상을 흑백조의 그레이스케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미묘한 그러데이션과 검정의 깊이, 망점의 정교함을 반사광을 통해 동공으로 느끼는 경험은 실물을 보지 않고 제대로 겪을 재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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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할 정도로 세세한 월 텍스트를 통해 포트레이트에 담긴 무수한 이야기와 가치를 깨달을 수 있다. 뉴먼의 저작권 사수와 작업 재활용에 관한 일화는 지금 봐도 엄청나다. © Harry Jun

개인적으로 이런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두 번째 섹션에 나온 피에트 몬드리안(우리가 아는 ‘차가운 추상’의 그 몬드리안 맞다!)의 포트레이트를 보면서 예상보다 큰 사진의 스케일에 놀랐고, 세부적인 질감의 섬세함에 감동했다. 몬드리안이 쓴 안경테의 날카로운 금속 질감, 그의 이지적이면서 냉정한 눈빛, 깊이를 파악할 수 없는 짙은 검정 재킷, 미세한 손의 주름, 그리고 선으로 면을 분할하는 듯한 추상적이고 차가운 배경까지, 젤라틴 실버 프린팅이 줄 수 있는 흑백 인화의 즐거움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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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이미지만으로는 실제 원본의 감동을 그대로 전달할 방법이 없음에 안타까울 뿐이다. Arnold Newman, ‹Piet Mondrian, painter, Netherlands›, 1942, Gelatin silver print, 32.5 × 19 cm. Art Gallery of Ontario. Anonymous Gift, 2012 © Arnold Newman Properties/Getty Images (2024). 2015/3944.

세 번째 섹션에서 발견한 미국의 극작가 유진 오닐은 또 어떤가. 꼿꼿한 자세, 명석하고 지적인 분위기, 고집스러운 표정,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듯한 눈빛, 그리고 그의 지식을 대변하는 듯 셀 수 없는 책이 꽂힌 배경, 그의 희곡과 연계되는 이국적인 드럼 소장품이 머금은 생명력이라니. 한 장의 이미지가 열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는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들었지만, 풍경 초상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니 발견하는 족족 기쁨의 연속이었다.

이미 작고한 터라 전설이 되어버린 수많은 사람 중 대중적으로 얼굴을 잘 비추지 않던 사람들의 실물을 바라보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이다. (물론, 이건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야 재미있다!) 섹션마다 고루 분포한 온갖 유명 인사의 포트레이트는 전시를 보는 데 지루하지 않도록 긴장감을 팽팽히 당겨준다. 사진 하나만 건너면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그 옆에는 건축가 필립 존슨, 그 옆에는 한 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으로 꼽히던 헬레나 루빈스타인(로레알 그룹의 최고급 프레스티지 브랜드 헬레나 루빈스타인의 창립자)이 툭툭 튀어나온다. 만 레이 옆으로 살바도르 달리, 그 옆으로 잭슨 폴록이 계속 출현하니, 마치 우디 앨런의 시간여행물,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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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별하기 쉽지 않지만) 왼쪽부터 읊어보면, 뉴욕현대미술관(MoMA) 사진부 디렉터로 전설적인 전시 «The Family of Man»의 도록 이미지를 고르고 있는 에드워드 스타이켄, 자신의 이름을 딴 화장품 회사를 세워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됐던 기업가 헬레나 루빈스타인, 자신이 설계한 자택 ‘글라스 하우스’에 머무는 필립 존슨,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그리고 미니멀한 그래픽 느낌을 극대화한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포트레이트 © Museum Hanmi

아니, 그래도 ‹미드나잇 인 파리›는 시간대와 인물이라도 한정됐지, 여기는 그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 네 번째 섹션에는 문화 예술계의 전설을 삼면의 벽에서 한꺼번에 소환하는데, 이걸 두고 ‘어벤저스’라고 하는 건가 싶다. 우리에게 익숙한 파블로 피카소의 포트레이트 시리즈를 비롯해, 프랜시스 베이컨, 바넷 뉴먼, 마르셀 뒤샹, 에드워드 호퍼, 로이 리히텐슈타인, 데이비드 호크니, 댄 플래빈, 에드 루샤, 조지아 오키프, 앤디 워홀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세바스티앙 살가도, 앙드레 케르테츠, 빌 브란트, 알베르토 자코메티, 헨리 무어, 루이스 칸, 이오 밍 페이, 트루먼 카포티, 장 콕토, 구로사와 아키라, 레너드 번스타인, 마사 그레이엄 등등… 정말 말도 안 되는 인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포트레이트를 들이밀어 정신이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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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서 내려다본 네 번째 섹션의 왼쪽 벽 디스플레이 모습 © Harry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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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서 내려다본 네 번째 섹션의 중앙 디스플레이 모습 © Harry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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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섹션을 시작하는 관람객의 모습 © Harry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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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nold Newman, ‹Edward Hopper, painter, and his wife, Jo Hopper, Truro, Massachusetts, USA›, 1960, Gelatin silver print, 31.8 × 25.4 cm. Art Gallery of Ontario. Anonymous Gift, 2012 © Arnold Newman Properties/Getty Images (2024). 2015/4205. Commissioned by «Horiz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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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Arnold Newman, ‹Edward Hopper, painter, and his wife, Jo Hopper, Truro, Massachusetts, USA›, 1960, Gelatin silver print, 31.8 × 25.4 cm. Art Gallery of Ontario. Anonymous Gift, 2012 © Arnold Newman Properties/Getty Images (2024). 2015/4205. Commissioned by «Horizon»

(우) Arnold Newman, ‹Georgia O’Keeffe, Ghost Ranch, New Mexico, USA›, 1968, Gelatin silver print, 50.8 × 40.6 cm. Art Gallery of Ontario. Anonymous Gift, 2012 © Arnold Newman Properties/Getty Images (2024). 2015/3973. Commissioned by «Holiday»

Arnold Newman, ‹Georgia O’Keeffe, Ghost Ranch, New Mexico, USA›, 1968, Gelatin silver print, 50.8 × 40.6 cm. Art Gallery of Ontario. Anonymous Gift, 2012 © Arnold Newman Properties/Getty Images (2024). 2015/3973. Commissioned by «Hol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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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문화계 인사들이 넘쳐나는 마법의 벽 © Museum Hanmi

다섯 번째 섹션에 나오는 정치인, 기업인과 더불어 소시민은 또 어떻고. 개인적으로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왜 미국에서 그렇게 신드롬적인 인기를 얻었나 싶었는데, 뉴먼이 찍은 사진 원본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얼굴값을 정말로 하더라. 농담이 아니다. 얼굴에서 빛이 났다. 내가 인터넷으로 볼 때 느끼던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미남으로 추앙받지? 연예인급은 아닌데…”라는 소리가 싹 들어갈 정도였다. 이러니 뉴먼에게 사진을 맡기는구나, 깨달음을 얻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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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원본을 보면 케네디 뒤의 후광이 은은하게 빛나며 잘생김을 듬뿍 뿌린다. Arnold Newman, ‹John F. Kennedy›, 1953, Gelatin silver print, 50.8 × 40.6 cm. Art Gallery of Ontario. Anonymous Gift, 2012 © Arnold Newman Properties/Getty Images (2024). 2015/3960. Commissioned by «Holiday»

세계 최대 농기계 제조업체인 존 디어(사슴이 무서울 정도로 뛰어오르는 특유의 로고로 잘 알려진)의 의뢰로 공장 설비와 노동자를 찍으며 남긴 뉴먼의 어록에 가슴이 따스해지기도 했다. “대통령과 공장 직원을 찍는 데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고유하며, 동등하게 존중해야 합니다. 오히려 대통령을 찍을 때 더 많은 시간을 가졌어요. 공장 사람들은 정말 바쁘게 일하더군요.” (이런 얘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제발 텍스트를 읽어달라는 뜻이다. 이 전시의 최고 미덕 중 하나는 풍부한 배경 설명이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전설적인 피아노 포트레이트(피아노의 덮개를 열어 마치 음표의 플랫(b)처럼 처리하고, 왼쪽 하단에 작곡가의 어깨 윗부분까지만 작게 노출했다. 이게 무려 1946년 작이다.)와 함께, 스트라빈스키가 신곡 ‘Requiem Canticles’를 구상하는 초반부터 초연하는 무대까지의 여정을 담은 책 『Bravo Stravinsky』를 만드는 과정을 가로로 긴 금속 패널에 전시한 마지막 세션까지 완주하고 나면 아주 뇌가 배부르다. 정신적인 충만감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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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nold Newman, ‹Igor Stravinsky›, 1946, Gelatin silver print, 50.8 × 61 cm. Art Gallery of Ontario. Anonymous Gift, 2012 © Arnold Newman Properties/Getty Images (2024). 2015/4030. Commissioned by «Harper’s Bazaar»

트리밍할 부분을 표시한 원본과 최종본을 살펴보며 뉴먼의 예민한 감각을 따라가고, «하퍼스 바자» «라이프» «타임» «포춘» «뉴스위크» «홀리데이» «룩» «타운&컨트리» 등 당대 최고의 잡지와 협업하며 기사의 성격에 맞게 사진가로서, 아트 디렉터로서 그가 어떤 태도를 지닌 채 작업에 임했는지 상상해 보라. 더불어 일찍이 저작권의 중요성을 간파해 사진의 저작권을 사수하며 원래 의뢰처에서 최종 탈락한 사진을 다른 매체에 판매하는 영리함(21세기 인류도 그렇게 못한다), 잡지 촬영을 매개로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며 평생 집중하던 개인 작업인 아티스트 연작을 지속하는 수완까지! 이번 전시는 여러모로 뉴먼이란 인물의 다층적인 면모를 통해 창작자에게 영감과 함께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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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찍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피아노 포트레이트’에 대한 월 텍스트. 뉴먼의 유연하고 명석한 자기 PR과 네트워크, 저작권 관리 역량은 굉장한 수준이다. © Harry Jun

글을 쓰다 보니, 아까 말한 부분에서 정정할 부분이 생겼다. ‘나 낚인 건가?’ 싶은 생각으로 소수의 인원과 함께 전시를 둘러본 최종적인 소감은, 여기가 굉장히 상호작용하는 전시장이라는 깨달음이었다. 다들 매우 조용하게 움직이는데도, 워낙 고요해서 그런지 한 사람 한 사람이 내는 소리와 행동의 파장이 그대로 느껴졌다. 전시에 고도로 집중할 수 있는 이면에는 침묵이 아니라, 함께 관람하는 사람의 존재가 큰 힘이 된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됐다. 마냥 전시장을 혼자 독차지하는 게 천국이 아니었다. 관람객끼리 보이지 않는 연대를 발휘해 서로 고양되는 사건을 직접 경험해보니, ‘나만의 비밀스러운 곳’이란 표현이 이율배반적인 허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전시장에는 고요함과 질서가 필요하다. 그리고 관람객 또한 필요하다. 뮤지엄한미에 관람객이 많아져야만 하는 당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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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쓸쓸한 풍경 같지만 사실 기둥으로 가려진 곳에는 관객이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동일한 전시를 관람하는 동료라는 사실을 서로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 Harry Jun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전시를 만끽하고 밖으로 나오니 폐장하는 뮤지엄 곳곳마다 따스한 조명이 켜졌다. 꽤나 기분이 좋아지는 작별 인사였다. 브라보. 내게도, 뉴먼에게도, 전시장에게도, 그리고 자기 모습과 공간을 사진이라는 흔적으로 남긴 수많은 시대의 아이콘에게도 똑같이 속삭여주고 싶은 삼청동 겨울의 6시였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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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

«시대의 아이콘: 아놀드 뉴먼과 매거진, 1938-2000»

기간: 2024.11.29 – 2025.03.23

10시–18시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 1만원

Place

뮤지엄한미 삼청본관: 서울 종로구 삼청로 9길 45

Writer

전종현(@harry.jun)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등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과 편집위원을 지냈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기아글로벌디자인센터와 함께 «기아 디자인 매거진» 창간 작업과 콘텐츠를 총괄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겸 아트 칼럼니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뉴닉»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 중이며, 동시대 한국의 기발한 창작자에 주목하는 «비애티튜드»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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