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내 뇌를 끊임없이 부유하는 한마디 말이 있다. “에헤이~ 조졌네 이거.” 시골에서 농작물 먹방 ASMR을 진행하시는 유튜버 ‘순자엄마’는 자신의 생방송을 방해하는 꼬꼬댁 닭의 존재를 참지 못해 결국 손수 백숙으로 ‘진행’시킨다. 그러다 가마솥에서 뽀얀 닭을 꺼내는 순간 흙바닥에 철퍽하는데, 이때 나오는 찐텐의 반응이 바로 “에헤이 조졌네 이거.” 유튜브 쇼츠에서 무한 반복된 덕분인지 알 사람은 다 아는 밈으로 등극했다. 지금 내 마음이 딱 그렇다. “에헤이~이번 리뷰 조졌네 이거.”
관람한 전시에 대한 저격은 결코 아니다. 아니, 일단 저격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나는 전시를 보러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전시 사진을 포토그래퍼에게 의뢰해서 보정까지 다 끝내놓고, 룰라랄라 나만 리뷰를 쓰면 된다는 생각으로 지난 주말 MMCA 서울관에 방문하려고 했는데 해당 전시가 이미 끝났다는 참혹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한 주만 있다 가자, 조금만 있다 가자, 질질 끌던 바로 그때가 막차였던 것이다. 이미 떠나버린 전시의 이름은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5월 26일 개막해 7월 16일에 끝났다. 약간 의아한 지점은 있다. 보통 MMCA에서 열리는 기획 전시는 적어도 3개월, 길면 6개월이 넘는 장기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데 시작한 지 두 달도 채 안 된 시점에서 철수했으니, 게으른 내 관람 시계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한 것이다. 아, 이렇게까지 말하는 심정이 매우 구차하여 다시 한번 외쳐본다. “에헤이 조졌네 이거.”
사실 이번 전시는 기대를 많이 한 전시였다. 뉴욕에 위치한 솔로몬 R. 구겐하임 뮤지엄과 공동으로 기획해 한국 실험미술 초창기를 집대성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적 배경인 1960-70년대는 군사 정변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개발독재 정권이 북한과의 이념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압축적인 근대화와 산업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때를 보릿고개 탈출, 부국강병, 수출보국을 외치며 대한민국 전체가 꿈틀대던 시기로 기억하지만, 사실 당시 국제 사회는 프랑스에서 일어난 6.8 혁명,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반전 평화 운동, 페미니즘, 제3세계 문제 등 인식 면에서 첨예한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마치 갈라파고스섬처럼 독재 정권 아래서 오직 경제 부흥에만 집중하던 상황에서 동시대적 실험미술이 꿈틀거렸다니! 지금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9명의 작가가 제작한 99점의 작품과 31점의 아카이브 자료로 구성한 이번 전시는 오는 9월 1일 뉴욕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다시 개막한다. 날짜를 보니 작품 운송과 전시 준비 때문에 생각보다 빠르게 떠난 것 같다. 한국에서는 소소한 교통비와 티켓비로 즐길 수 있는 전시를 다시 영접하려면 저 멀리 뉴욕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속이 뒤집히고, 후회막심이다. 그러게, ‘있을 때 잘하라’는 명언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우리 곁에 있는 존재감이 자연스러워서 그 귀중함을 놓칠 때가 얼마나 많던가. 이는 언제나 우리를 환대하는 전시, 행사뿐 아니라 친구, 연인, 가족 등 인간관계와 각종 애착 물건에도 모두 통용되는 법칙이다. 있을 때 잘할걸! 후회를 남발하지 않는 삶을 위해 우리 주변의 당연한 것들에 좀 더 관심을 쏟길 기원한다. 일단 나 자신부터 시작이다.
Exhibition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
기간: 2023. 05. 26 – 2023. 07. 16
Place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Artist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Photographer
박도현(@dhyvnpark)은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사진 기술자다. 렌즈 기반의 ‘좋은 이미지’ 제작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