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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낙관론자에게 건네는 덕담: 아트부산 2024

Writer: 전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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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티튜드가 주목하는 요즘 ‘무엇’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지난 5월 9일부터 12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아트부산 2024’가 열렸습니다. 올해로 벌써 열세 번째 행사인데요. 이제 명실공히 국내 상반기 최대 규모의 국제 아트 페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아트 페어에 별 관심 없어도 아트바젤 홍콩, 프리즈 서울, 키아프 등 이곳저곳 다닐 수밖에 없던 필자는 올해 처음으로 아트부산에 도전했어요. 그 와중에 아트부산이 추구하는 예술, 문화, 휴식, 미식을 고루 체험하려는 강박증으로 1박 2일이 아니라 2박 3일 출장을 떠났습니다. 계획을 열심히 짤수록 고통스러운 성격이라 이번에는 아트부산이 만든 가이드북 하나만 믿고 무작정 길을 나섰는데요. 과연 2박 3일 아트부산 탐험은 무사히 마쳤을까요? 우당탕탕 아트부산 출장기를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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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 BUSAN

“종현 씨는 아트 페어 안 가요?”

“돈이 없는데 가서 뭐해요…?”

지금까지 아트 페어에 냉소적인 논리는 참으로 간단했다. 아트 페어는 말 그대로 그림을 사러 가는 장터인데, 돈 없는 가난뱅이가 침 흘리며 아트 페어에 가봤자 속만 쓰리지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그 선입견이 사라진 계기는 ‘아트바젤 홍콩’이었다. 하도 기사가 많이 나오고 지인도 많이 가길래 ‘그러면 나도 한번 가볼까?’ 생각이 들어 훌쩍 떠난 아트바젤 홍콩은 한 마디로 신세계였다. 수많은 부스에 들어찬 예술품이 한 점 한 점 빛나는 모습은 마치 백화점 명품 매장의 화려한 윈도를 보는 듯했고, 중간중간 거대한 규모로 설치한 작업은 뮤지엄 피스를 연상시켰다. 각종 셀러브리티가 휙휙 지나가는 장면은 브랜드 행사장에서 마주하는 모습과는 또 달랐다. 마치 내 삶이 순간 붕 뜬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환상적인 느낌은 금세 증발했다. 국제적인 아트 페어에 비해서 한국의 아트 페어는 너무 초라했다. 그리고 팬데믹이 터지면서 모든 오프라인 경험이 막혔다. 엔데믹이 도래했지만 상황은 쉬이 바뀌지 않았다. 2022년 ‘프리즈 서울’이 런칭했을 때에는 내가 기대하던 느낌이 아니라서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지금에야 말하지만, 첫 번째 프리즈 서울은 운영 면에서 무척이나 엉망이었다. 함께 열렸던 키아프는 발이 너무 아파서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작년에 열린 프리즈 서울은 단기간에 놀라울 정도로 단점을 고쳤지만, 많은 사람이 바글거리는 행사장을 헤치며 부스마다 걸린 수많은 작품을 진지하게 바라보기엔 이미 내 몸이 낡고 있다고 느꼈다. 아트바젤 홍콩은 맛이 갔다는 소문이 들렸고, 스위스 바젤이나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아트바젤과 프리즈 본진을 향해 비행기를 타는 일은 각종 금전적인 이슈 이전에, 장거리 여행에 대한 계획을 자세하게 짜면 짤수록 실제 여행 욕구가 곤두박질치는 극 P의 입장에서는 자학 행위에 가까웠다.

지난 4월, 큰 결심 끝에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와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 미술전’의 오프닝이 굉장히 붙어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 장장 15일을 투자했다. 돈도 돈이지만, 넘쳐나는 인풋, 정리되지 않는 아웃풋, 그리고 혼절할 정도로 증발한 체력의 삼각형에 갇혀 방황하다 보니, 귀국 후 2주간 제정신을 못 차렸다. 지상 최대의 디자인 축제와 미술 축제를 경험한 덕에 눈은 엄청나게 높아졌고, 체력은 극적으로 추락하고, 뇌에는 광기가 어린 상태로 기어이 출장을 떠난 곳이 바로 ‘아트부산 202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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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3회를 맞이하는 아트부산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다. ‘한국의 마이애미’를 표방하며 예술, 문화, 휴양, 미식을 함께 즐기는 색다른 아트페어를 지향한다는 설명을 처음 들었을 땐 나도 모르게 혀에서 독침이 나갈 뻔했다. 요 몇 년 부산에 당일 출장을 갈 일이 많았는데, 기분이 정말 그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여 년 전 친구들과 함께 부산으로 1박 2일 여행을 갔던 때를 희미하게 떠올려보면, 무언가 낭만도 있었다. 몇 달간 스케줄링하느라 고통받은 정신과 해외 체류로 만신창이가 된 저질 체력을 핑계 삼아, 이번에는 직접 확인한 사실만 믿는 성정을 죽이고, 남의 말도 어디 한번 조신하게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아트부산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자고 결심했다. 게다가 이번이 첫 방문이니까.

그런데 프레스 자격으로 취재를 가면 교통비와 호텔 1박을 제공한다는 말을 듣자, 급발진이 시작됐다. ‘아트부산이 말한 대로 도시와 아트 페어를 모두 즐기려면 절대적으로 더 오래 머물러야 하는 거 아냐?’ 이때 아트부산에서 만든 가이드북이 내 광기를 잠재웠다. 아트부산을 중심으로 여러 문화 행사와 맛집, 갈 곳을 추천하니 이것만 믿고 가보자는 용기가 생긴 것이다. 드디어 아무런 사전 조사도 하지 않고 호텔 1박을 따로 예약하고 총 2박 3일 동안 쓸 개인 여비만 챙겨서 부산으로 떠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아트부산을 취재하러 가는 건지, 이를 핑계로 무계획 부산 여행을 떠나는 건지 스스로 헷갈릴 지경이었지만, 정확한 리뷰를 위해 내 시간을 쏟아붓는다는 명분은 상상외로 강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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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타지(특히 서울) 사람이 보통 1박 2일 일정으로 즐기는 아트부산에 2박 3일을 꽉 채워 투자하며 얻은 교훈은 의외로 단순했다. ‘아트부산은 다 생각이 있었구나?’ 부산 현지에 대해 아는 게 없고 생활 눈치도 0에 수렴하는 입장에서 아트부산이 큐레이션한 가이드북 하나만 믿고 동선에 맞게 짠 계획은 실로 놀라웠다. 단순히 벡스코에서 열리는 거대한 미술 장터가 아니라, 부산에서 열리는 미술 행사로 아트부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광의적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 예술을 좋아하는 서울 사람이 부산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에 들러 취향껏 시간을 보내 보니, 옛 조상님 말씀이 퍼뜩 떠오른다. ‘뭐든지 직접 당해봐야(?) 안다’는 진리 말이다.

가이드에 기반을 두고 내가 2박 3일 동안 부산에서 경험한 것은 다음과 같다.

프리뷰를 포함한 이틀 간의 아트부산 행사, 부산의 노포 두 곳, 장소성이 돋보이는 카페 한 곳, 미쉐린 맛집 한 곳, 야간 개장한 갤러리 한 곳, 그리고 밤과 아침의 해운대 해변 풍경과 경쾌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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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빠꼼한 사람이라면 1박 2일에 모두 가능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야레야레,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고! 하루 혹은 하루 반에 걸쳐 집중적으로 보는 것과 이틀에 걸쳐 천천히 나눠 보는 건 큰 차이가 있었다. 지금 못 보면 끝장이라는 다급함이 없어지고 여유롭게 관람하는 태도가 생겼다. 좋은 작품, 비싼 작품,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빠르게 훑어보겠다는 야심이 없어지니, 평소 보지 못하던 게 눈에 들어왔다. 예상치 못한 경험을 마주한 일은 정말 큰 수확이었다.

노포도 비슷하다. 아트부산이 열리는 벡스코는 센텀시티에 위치해 있다. 센텀시티는 상업, 문화, 산업 시설이 밀집한 부산의 혁신 지구다. 이 말인즉슨 노포라는 개념의 로컬 맛집이 주변에 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뜻이다. 노포는 도시의 옛 중심지, 즉 원도심에 밀집하는 경향을 띤다. 그곳 바깥에 있다 하더라도 센텀시티가 속해있는 부산의 새로운 중심지인 해운대구에 있을 확률은 극히 낮다. 결국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해 이동해야 하는데, 아트부산을 보러 부산에 온 입장에서 노포 가려고 앞뒤 시간을 잘라먹는 건 꽤나 비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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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성이 돋보이는 카페는 또 어떻고! 특히 (나처럼) 역사적인 장소를 리모델링한 곳을 특정한다면 시간과 거리에 얽매이게 된다. 갤러리 야간 개장은 아트부산 오픈 날에만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일정 조정이 필요하고, 밤과 아침의 해운대를 여유롭게 즐기는 경험에는 날랜 몸과 마음, 그리고 J적인 특질이 필수다. 결국, 시간과 일정을 제대로 못 챙기는 나에게 있어 하루라는 시간을 더 갖는 것은 아트부산 방문이 부산 아트 여행으로 바뀌는 기적(?)을 성취하는 든든한 바탕이 됐다.

5월 9일 프리뷰를 시작으로 12일까지 총 나흘 동안 진행한 이번 아트부산 2024에는 20개국에서 갤러리 129곳이 참여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부스의 배치였다. 작년부터 행사장의 면적을 늘린 덕분에 부스에 돌아가는 너비가 상당했다. 대형 갤러리는 부스 외부와 내부 가벽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독특한 공간적인 경험을 창출했고, 소형 갤러리도 아이디어만 뾰족하면 작업을 보여주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자금과 공간이 풍부한 대형 부스는 대부분 구성이 훌륭했고, 소형 부스 또한 전통적인 화이트큐브 방식의 플랫함에서 벗어나 오밀조밀하게 꾸미거나 개념적으로 구성하며 눈길을 사로잡은 비교군들이 곳곳에서 출몰했다. 응당 부스 풍경은 해당 갤러리의 능력과 노력에 비례하는 결과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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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환상적인 것은 F&B 시설을 배치하며 자연스럽게 정리한 동선이었다. 심각한 길치이기 때문에 복잡한 곳에 가면 행사장 맵을 하나하나 체크하느라 혼돈에 빠지기 일쑤인데, 이번 아트부산은 가장 중심부에 자리 잡은 세 부분을 F&B 업장에 내어주고 사람들이 충분히 앉을 수 있는 공공장소를 마련해 마치 세 개의 광장이 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에 따른 장점은 너무나도 확실하다. 아트 페어 같은 고밀도 행사에서 가장 힘든 점은 소모하는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먹을거리가 터무니없이 적다는 사실이다. 긴 줄을 서야 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앉아서 먹을 곳이 협소해서 넓은 전시장 곳곳에 놓인 작은 쉼터를 열심히 찾아야만 한다. 이에 대한 불편함과 분노는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프리즈 서울 첫 회에 대한 기억이 안 좋았던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더불어 F&B 업장은 가고 싶은 갤러리를 찾을 때 유용한 가이드 역할을 한다. 이쪽 길에서 저쪽 길로 꺾어서 간다는 생각보다 F&B 업장까지 간 후 밑으로 내려가면 된다는 계산이 설 때, ‘큰길 우선’이라는 네이버 지도 기능이 떠오른다. 명확하게 길을 찾고 싶거나 혹은 아무리 해도 길을 찾기 힘들어 좌절하는 사람에게 효과적인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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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 시설의 입점 기준 또한 칭찬하고 싶은데, 로컬 디저트 가게에 가고 싶은 타지인의 니즈에 맞춰 부산에 있는 (게다가 가이드에서도 추천한) 업장을 전시장에서 만나니 거의 눈물의 상봉 수준으로 반가웠다. 밖에서 따로 찾아간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VIP와 프레스, 컬렉터스 패스를 구매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컬렉터스 라운지의 경우, 일반티켓을 가진 사람에겐 배타적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익스클루시브 포인트를 가진다. 예컨대, 부산에만 있는 모모스 커피가 컬렉터스 라운지에 들어왔는데, 당시 바로 며칠 전에 오픈한 마린시티점의 시그너처 메뉴를 맛볼 수 있었다. 커피 한 잔 마시기 위해 모모스 커피 마린시티점에 들리는 것도 힘들지만, 막 오픈한 핫플이라서 사람이 득실대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서 미리 접한 터라 아예 포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굉장히 영리한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부산에 위치한 미쉐린 레스토랑과 협업한 디저트 세트 등을 개발한 것도 컬렉터스 라운지를 이용하는 주된 사람들이 아트 페어에서 가장 중요한 구매 계층이란 사실을 염두에 두면 세일즈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면 됐지, 부정적인 효과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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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부산에 이틀 전부를 쓸 수 있다는 나름의 장점을 활용해 프리뷰에는 대형 부스 위주로 훑어보고, 다음날에는 예전이라면 집중하기 힘들었던 소형 부스를 천천히 둘러봤다. 대형 부스를 가장 먼저 방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컬렉션과 공간 구성이 제일 좋기 때문에 관람의 즐거움이 탁월하고, 프리뷰 때 팔린 작품은 다음날 치워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므로 주요 작품을 제대로 보려면 첫날에 집중해야 한다. 유명 아트 페어에서 프리뷰 기간에 입장할 수 있는 패스를 비싼 가격에 파는 이유이기도 하다. 첫날에 주요 대형 부스를 살핀 덕분에, 두 번째 날 소형 부스끼리 콘셉트를 다르게 구성해 갤러리의 아이덴티티와 작품 홍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확인하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다. 예를 들어, 작품 확인하기도 바쁘던 부스에서 각자 어떻게 작품과 작업을 표시하는 크레딧을 준비했는지 보는 재미가 상당했다. 거의 미술 전시 수준으로 친절하게 작품 설명을 써 붙인 곳(예를 들어, 갤러리 밈MEME)에는 무심결에 호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눈에 확 띄지 않아서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뻔한 보석 같은 곳을 조우하는 행운도 뒤따랐다. 서울 삼청동 부근에 자리 잡은 갤러리 도올은 故 권훈칠 작가의 작고 20주년을 맞이해 그의 유작들을 모아 개인전 형태로 전시하고 있었다. 작품이 보여주는 깊이와 힘에 비해 너무나도 낯선 이름이라 이것저것 물어보니 생전에 개인전을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은둔자적인 태도로 그림에만 집중하다 갑자기 사망해 ‘잊힌 천재’라고 불리던 인물이었다. 그를 추모하는 입장에서 부스를 마련한 갤러리와 그림이 지닌 내러티브는 머리가 시릴 정도로 각인되었고, 이는 많은 사람이 오가는 아트 페어이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워킹위드프렌드는 장 줄리앙, 이원우, 목정욱, 토담 등 평소 협업하는 작가들을 소개하는 부스를 만들면서 서울 한남동에 운영하는 전시 공간의 특징을 감각적으로 변형하며 부스 디자인 측면에서 굉장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했다. 갤러리신라는 부스 입구를 하얀 테이프로 칭칭 막아놓고 ‘아트페어 기간 중 갤러리신라 부스는 닫혀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벽에 남겼다. 로버트 배리Robert Barry라는 이름과 함께 ‘1936~2024’라는 연도가 쓰여있어서 처음에는 부스에 참여한 작가가 급사해 추모의 뜻으로 닫아놓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어떻게든 팔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개념미술의 일종이었다. 마음이 촉박했다면 그냥 사고라고 치부했을 현장을 만끽하며 해당 갤러리와 작업에 대한 생각을 골똘히 할 수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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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아트부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너 중 하나는 바로 ‘커넥트Connect’다. 홍익대학교 주연화 교수가 디렉터를 맡아, 총 9개 부스에 중심 테마를 설정하고 기획전과 개인전을 섞은 형식으로 끌어갔는데, 국제적인 아트 페어에서 상업성을 희석하고 예술적인 분위기를 고조하는 장치를 효과적으로 이식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부스는 한국과 영국의 신인 작가들을 매치한 아트부산의 시그너처 부스인 ‘아트 악센트Art Accent’와 존 지오르노John Giorno의 작업 ‹다이얼 어 포엠Dial-A-Poem›을 설치한 부스였다. 아트 악센트에서 가로로 거대하게 확장하는 캔버스 작업과 이미지를 입힌 전동 블라인드가 그 앞을 막아서며 상호 조응하는 모습은 이번 아트부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다이얼 어 포엠›은 부스 중앙에 옛날 버튼식 검정 유선 전화기를 놓고, 무작위로 번호를 누르면 35명의 예술가, 시인, 음악가 중 한 명이 시를 낭송한 음성을 수화기로 들을 수 있는 작품인데, 인터랙션 측면에서 단연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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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를 쓰기 직전 김지수 선배가 연재하는 인터뷰 시리즈 ‘인터스텔라’에서 흥미로운 인터뷰를 읽었다. 돈과 심리 분야의 글로벌 일타 강사라 불리는 모건 하우절Morgan Housel이 베스트셀러 『돈의 심리학』 이후 3년 만에 출간한 『불변의 법칙』에 대해 설명하는데, 몇 가지 대목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은 정확한 통계와 정보가 아니라 불확실성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걸 원한다고. 그래서 측정할 수 있는 통계보다 측정할 수 없는 스토리가 사람을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큰 숫자를 이해하면 바깥에서 먼 곳을 볼 수 있어요. 무엇이든 크게 만들려면 시간이 걸려요. 단기간에 일어나는 마법은 없어요. 결국 관건은 작은 변화가 아니라 축적의 시간입니다.” 완벽한 예견 대신 적당한 예측 아래 시간이 흐를수록 문제 해결을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아트부산이 떠올랐다. 우리나라에 아트 페어라는 단어가 익숙해진 게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서울도 아닌 부산에서 2012년부터 국제적인 아트 페어를 목표로 달려온 주인공이 아트부산이다. 심지어 그 고난의 팬데믹 때에도 문을 닫지 않아 국제적인 화제를 모으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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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절은 불확실성을 대하는 최선의 자세에 대해 합리적 낙관론자가 되라고 조언한다. “제가 말하는 합리적 낙관론자란 자신이 지향하는 장기적 목표에 대한 확신을 갖고 낙관적 시간을 유지하되 그 목표에 이르는 길에서 만날 역경과 실패에 관해서는 현실적 시각을 갖는 사람입니다.” 주변에서 이게 제대로 되겠냐고 만류하고 비릿한 웃음을 날릴 때 부산을 대표하는 아트 페어라는 목표 하나로 끊임없이 달려온 아트부산을 보자니 합리적 낙관론으로 가득 찬 집단이 아닐까 싶다. 매번 행사를 치르며 단점을 보완하고, 동시에 새로운 갤러리를 끌어들이고 새로운 요소를 실험하면서, 작년에는 자매 페어인 ‘디파인 서울’까지 런칭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이 리뷰는 올해로 벌써 열세 번째, 합리적으로 낙관하기를 멈추지 않은 집단에 건네는 애정 어린 덕담일 수도 있겠다.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는, 기대한다는, 또 가보고 싶다는, 그리고 결코 멈추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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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이번 2박 3일 동안의 아트부산 출장은 부산 아트위크의 일환으로 만든 가이드북에 절대적으로 기대어 진행했다. 그에 대한 간단한 인증샷과 설명을 남기니, 부산 여행에 관심 있는 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신발원 (부산광역시 동구 대영로243번길 62)

1951년 창업해 70여 년이 흐른 노포로 차이나타운의 터줏대감이다. 튀김만두와 고기만두가 맛있다고 해서 시켰는데, 내 입맛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부산 출신 큐레이터에게 물어보니 다른 곳을 추천해서 역시 노포라고 다 맛있는 건 아니구나, 현타가 왔다. 특히 매니저가 다른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참으로 별로라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코카콜라보다 비싼 우롱차는 매우 양이 적고 리필도 안 되니 절대 시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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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리순대 (부산광역시 연제구 월드컵대로 162)

겉보기에는 낡았는데 그만큼 찐맛집 느낌이 솔솔 나는 엄청난 노포. 늦은 시간에 갔는데도 젊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동성 친구끼리 테이블을 차지한 모습에 여기는 술 먹으러 오는 맛집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절대로 같은 이름의 다른 집을 찾아가지 말 것. 내가 당했다. 혼자 온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사장님이 직접 순댓국에 물김치 국물을 넣고 양념 부추도 팍팍 쳐주셔서 당황했는데, 어라. 약간 애매하던 국물 맛이 완전히 바뀌면서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하지만 엄청 맛있는 음식으로 탈바꿈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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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사부사노 부산근현대역사관점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로 112)

부산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건물 1층을 리모델링한 카페. 예전 한국은행 영업소를 개조했는데, 옛날에 쓰던 은행 금고 공간을 그대로 남겨놨다. 금고의 상징은 아무래도 금괴라, 금괴 모양으로 만들고 금박지로 포장한 케이크를 파는 게 흥미롭다. 전체적인 인테리어 수준이 높고, 기물들도 꽤나 좋은 편이라 아주 여유롭게 F&B를 즐길 수 있다. 우리 집 앞에 있으면 매일 들르고 싶은, 그런 평온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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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복국 해운대본점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1로43번길 23)

서울, 부산에 여러 지점이 있는 복국 명가 금수 복국. 그래도 본점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 가봤다. 무엇보다 24시간 영업을 하므로 (나처럼) 해운대 근처에 숙박하는데 저녁 시간을 놓쳤거나 해운대 밤 풍경을 즐기다가 배고프면 언제든지 들릴 수 있는 점이 매력이다. 가끔 금수복국 압구정점을 가는데, 맛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알 수 있다면 아마 절대 미각일 듯. 하지만 미쉐린 리스트에는 해운대본점만 올랐으니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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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NP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292 그랜드 조선 부산 4층)

해운대에서 가장 최근 지은 호텔이라 욕 나오게 비싸지만, 위치가 너무나도 좋은 그랜드 조선 부산 4층에 위치한 갤러리. 지난 5월 2일부터 6월 9일까지 타이포그래퍼 안상수(날개)의 개인전 «홀려라»가 열렸다. 5월 9일 한정으로 저녁 10시까지 야간 개장을 진행해서 해운대 산책과 맞물려 조용히 관람할 수 있었다. 여러 전시가 열리는 곳이니, 해운대에 들린다면 전시 스케줄을 한 번 확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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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해수욕장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264)

여름이면 100만 인파가 몰린다는 물 반 사람 반 해운대 해수욕장. 극성수기에 가지 않으면 이처럼 좋은 곳도 드물다. 특히 밤에 보는 해운대 풍경은 해변 근처에 자리 잡은 조명 덕분에 무섭지도 않고 고즈넉하다. 비리의 온상으로 유명해진 초고층 빌딩 LCT는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아침에 보는 해운대는 아주 청명하고, 점심에 보아도 아주 좋다. 사람이 좀 더 적은 아침을 추천하는데, 혹 고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면 바닷가 호텔 카페에서 무언가 먹으면서 여유롭게 멍때리기도 좋다. 지인 왈 웨스틴 조선 부산에서 마시는 아침 커피가 참으로 분위기 있다고. 참고로 2인용 애프터눈 세트도 판매한다. 나는 혼자라 감히 주문할 생각조차 못 해서 아직도 약간 억울한 상태. 하지만 바다가 보이는 근처 고깃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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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t

아트부산 2024

기간: 2024.05.09 – 2024.05.12

Place

벡스코 제1전시장: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APEC로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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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등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기아글로벌디자인센터와 함께 «기아 디자인 매거진» 창간 작업과 콘텐츠를 총괄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기고 중이며, 동시대 한국의 기발한 창작자에 주목하는 «비애티튜드»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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