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오브서울Piece of Seoul’은 대중음악평론가 김윤하 님이 최근 새롭게 발매한 한국 대중음악 앨범 중 가장 인상 깊은 피스를 꼽고, 해당 뮤지션과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피스오브서울에서 피스는 조각(piece)이면서 동시에 평화(peace)를 뜻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태어난 새로운 음악의 조각과 여기에서 길어 올린 마음의 평화를 뮤지션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세요. 다섯 번째 피스는 사람을 너무나도 좋아하고 사랑해서, 마치 호흡하듯 자연스럽게 사랑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표현하는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이 5년 만에 발표한 정규 4집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입니다.
새해 첫날, 드물게도 깨끗하게 정리된 빈 책상에 앉아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의 신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를 틀었다. 첫 번째 트랙인 ‘어떤 겨울은’의 기타 첫 음이 울리는 순간, 꼭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솔이라는 뮤지션을 안 지 벌써 10년. 이번 신보처럼 창작자의 지난 시간이 꾹꾹 눌러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드는 앨범은 처음이었다. 강아솔답게 여전히 따뜻했지만,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싸움을 어렵게 끝낸 이의 얼굴에 떠오를 법한 쓸쓸한 미소가 앨범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실제로 강아솔은 이 앨범을 두고 ‘정말 긴 터널을 통과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강아솔의 네 번째 정규 앨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는 제목 그대로 서사를 전개하는 앨범이다. 사랑이 전부였던 한 사람이 그 전부를 잃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났다가 다시 모두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이야기. 무척 사적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 같기도 한 여정을 뮤지션 특유의 포근한 터치로 그려낸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 무작정 떠난 삿포로행 기차에서 태어난 연주곡(‘어떤 겨울은’)으로 시작해 결국 다시 사랑을 부르며(‘사랑을 하고 있어’) 마무리되는 앨범은 태어나서 처음 겪어봤다는, 그의 생애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서 길어낸 혼돈과 어둠의 기록이다. 그런 앨범이 이토록 푹신하고 따뜻할 수 있다니. 다 무너져 다시 돌아온 곳에서, 그를 기꺼이 기다려준 모두의 품에서 그만의 사랑이 다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기 때문일 테다. 언제나처럼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분명 전과는 다른 사랑일 거라는 강아솔과 새 앨범에 관한 긴 이야기를 나눴다.
강아솔 4집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 커버
얼마 전 ‘제주도 홍보대사’가 되면서 입신양명하게 되었어요. 소감부터 들어볼까요?
정말 한 번도 예상한 적 없던 일이라서 너무 얼떨떨해요. 도지사님께 임명장을 받고 2년 동안 제주도 홍보대사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제 행보를 저도 모르겠어요. (웃음) 앞으로 더 노골적으로 제주도를 노래할까 봐요. 가문의 영광입니다.
‘제주’는 꽤 오랫동안 강아솔을 대표한 키워드였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자부심이 있죠? 제주도에서 찍은 ‘온스테이지’ 영상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아직 많잖아요.
이런 기분이 들어요. 해외에서 큰 상을 받으면 국내에서 화제가 되잖아요? 육지에서 열심히 해서 제주에 역수입된 거죠. (웃음) 정말 과거급제 느낌이에요. 고향 친구에게도 축하 많이 받았습니다.
본격적인 새 앨범 얘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5년 만의 정규앨범이에요. 그런 것치고는 곡 숫자가 좀 적어요. 예전에 발표한 ‘사랑을 하고 있어’를 포함해 총 일곱 곡이잖아요.
정규로 내겠다는 말을 너무 오래 해와서, 중간에 EP로 바꾸거나 싱글을 낸다고 할 수 없었어요. 그러면 정말 새빨간 거짓말쟁이가 돼버려서요. 더불어 이 앨범은 정규로밖에 묶을 수 없는 마음의 크기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앨범 제목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잖아요. 긴 호흡의 장편 소설처럼 가고 싶었어요. 좀 무겁다면 무겁고, 내밀한 얘기가 많거든요. 계속 무겁기만 하면 힘드니까 좀 더 편안한 곡을 몇 곡을 더 넣어볼까 했는데 잘 안 써지더라고요. 이렇게 저렇게 정리하다 보니 일곱 곡밖에 남지 않았네요. 죄송합니다.
사과를 유도한 질문은 아니었어요. (웃음) 이전 앨범보다 완결성 있는 앨범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맞아요. 예전 앨범은 맨 마지막에 앨범 제목을 지었는데, 이번에는 이미 중간을 넘어갈 때 정할 수 있었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딱 정해져 있었거든요. 주제를 먼저 놓고 이에 맞춰 곡을 모은 건 이번 앨범이 처음이에요.
제목이 정해진 순간을 기억하세요?
저는 보통 앨범을 만들 때 주위에 앨범 얘기를 많이 해요. 사람들 만날 때마다 내가 이런 걸 준비하고 있고, 요즘 이런 마음이고, 이런 걸 쓰고 있다는 얘기를 끊임없이 하거든요. 그러다가 이 문장이 나왔어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 가는 이야기야.” 말하는 순간 굉장히 직관적이고 누구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따로 메모를 해놨어요. 이후에도 제목을 생각했는데, 이보다 더 좋은 후보가 없더라고요. 완전히 확정한 건 앨범과 함께 발간한 책의 원고를 청탁하면서였어요. 작가님들께 이번 제목 한 줄만 보내드렸거든요. 사실 제게도 이 문장이 가진 힘이 굉장히 컸어요. 길었던 여정이 자연스럽게 딱 정리가 되더라고요. 다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하다가 결국 다시 모두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되잖아요. 우리는 이 문장을 계속 반복하며 살아가는구나 싶었어요.
앨범을 책과 함께 발매한 점도 독특했어요.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책을 먼저 구매했는데, 더 풍성하게 앨범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사실 이 정도 규모로 일을 키울 생각은 없었어요. 처음 계획은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들께 짧은 글이라도 받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최근 노래를 낼 때 작가님들께 앨범 소개 글을 받았는데 그게 너무 좋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은 정규앨범이니까 내가 곡을 쓸 때 의지하던 작가 여러 분을 모아서 글을 받아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거죠. 원래는 브로슈어처럼 만들어서 무료로 배포하려 했는데요. 출판사 ‘픽션들’의 이아립 님에게 아이디어를 말했더니 이런 작가분들이랑 하는 거라면 규모가 너무 아쉽다면서 아예 책을 만들자고 먼저 제안을 해주셨어요. 청탁 메일 담당은 저였는데, 다들 너무 흔쾌히 하겠다고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출판사와 작가님들께 다시 한번 너무 감사해요. 그래서 이 책이 앨범 홍보 목적으로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예술 장르로 존재하길 바라요.
커버는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목정원 작가님의 작품이에요. 사실 앨범 커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번 앨범과 책 디자인을 도와준 픽션들 아립 언니가 목정원 작가님 작품 몇 개를 제안했어요. 작가님도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죠. 사실 커버 디자인도 재미있는 구석이 있어요. 작품 원본은 사람들이 왼쪽으로 가는데요. 책 커버에서는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앨범 커버는 위쪽으로 움직여요. 해가 뜨는 곳, 해가 있는 곳으로 가는 사람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2019년에 발표한 노래 ‘아무 말도 더 하지 않고’가 앨범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당시 겨울에 떠난 삿포로 여행이 큰 모티브였는데, 벌써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네요. 그때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어요.
해당 곡을 만든 건 2018년이에요, 너무 힘든 시기였어요. 노랫말 그대로 처음으로 누군가를 너무 미워하면서 나도 미워졌어요. 말도 안 통하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어요. 제가 눈을 좋아해서 한겨울의 홋카이도가 바로 떠오르더라고요. 그때 혼자 참 많이 걸었어요. 혼자 등산하고, 혼자 걷고, 진짜 하염없이 걸으면서 계속 자책했어요. ‘내가 왜 그랬지, 내가 믿는 사랑이 뭘까, 내가 하던 사랑이 진짜 사랑이었을까?’ 모든 게 다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어요. 제가 사람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사람 좋아하고 사랑 좋아하고 누구를 믿는 걸 너무도 좋아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모든 의미를 잃은 거예요. ‘아무 말도 더 하지 않고’ 노래를 보면 ‘불을 밝히지 말아요 어둠을 해치지 말아요 환한 불빛만이 모든 슬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건 아니에요’라는 가사가 있거든요. 정말 혼자, 완벽한 어둠에 있고 싶었어요.
그렇게 며칠을 보내니 좋아하는 친구들, 행복했던 기억이 막 떠오르는 거예요. 고민과 어둠이 무색하게요. 제가 직접 쓴 가사는 아니지만, 노래 ‘사랑은’에 보면 ‘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거’라는 대목이 있는데, 그때 제 마음 그대로였어요. ‘사랑은 어쩔 수 없는 거구나, 다들 진짜 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다시 서울로 돌아왔어요. 물론 돌아왔다고 바로 벌떡 회복하지는 못했죠. 이후로도 침잠의 시간을 오래 겪다가 새 친구도 사귀고 주위의 돌봄도 받으면서 자연스레 치유했어요. 어느 순간 사람들에 둘러싸여 맛있는 밥 먹고, 수다 떨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제가 있더라고요. 그때 이제 비로소 아무도 없는 곳에서의 여행이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족하지만, 어서 빨리 앨범을 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정말 긴 터널을 통과한 기분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앨범 마지막 곡명이 ‘사랑을 하고 있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네요.
정확해요. ‘나 이제 돌아왔어, 괜찮아’라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어요. 다음 앨범 기대하셔도 좋아요. 원래 아픔을 딛고 쓴 사랑 노래가…(웃음) 비록 제 힘든 시간을 잔뜩 담았지만, 이번 앨범이 저는 너무 좋아요. 그만큼 작업 과정이 충만하고 행복했거든요.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들을까, 고민하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만 이렇게까지 집중한 건 이번 앨범이 처음이에요. 정말 건강하게 사랑받으면서 태어난 앨범입니다. 저는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이 제 곡을 좋아할 때가 제일 행복한데요. 프로듀서 전진희 씨도 그렇고 권영찬 씨를 비롯한 연주자분들도 다들 작업을 좋아해 주시니까 너무나도 행복하고 고마웠어요. 정말 아무것도 무섭지 않더라고요. 앞으로 그분들에게 평생 순종하고 은혜를 갚으면서 살 생각입니다. (웃음)
앨범에서 깊은 허무와 슬픔만큼 따뜻함과 사랑까지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유를 이제 좀 알 것 같네요. 앨범 제목만큼 제 마음을 울린 게 타이틀곡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의 첫 소절이었어요.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다 / 나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되었고 / 모두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려다 / 나는 나를 외로이 버려두었지.’ 으아, 정말 이런 가사는 어떻게 쓸 수 있는 거죠?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은 앨범 첫 곡인 ‘어떤 겨울은’과 함께 삿포로에서 쓴 곡이에요. 말씀하신 딱 그 부분만 써놓고, 3~4년 동안 묵혀놨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나머지를 써보려고 한참을 고생했는데요. 와, 도저히 안 되더라고요. 그 구절만으로 이미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고생고생하다가 실제로 완성한 건 1년도 채 안 됐어요.
그래서 델리 스파이스도 ‘차우차우’를 그렇게 완성했나 봐요.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웃음)
진짜 별생각을 다 했어요. 뒷부분을 다 허밍으로 정리하라는 말도 들었는데 그럴 배짱은 없더라고요. (웃음)
앨범을 들으면서 ‘이렇게 감정만으로 이루어진 앨범은 정말 오랜만이다’라는 감상이 들었어요. 특히 최소한의 단어로 이루어진 시적인 노랫말 때문에 그렇게 더 느꼈던 것 같아요.
실제로 가사에 신경을 정말 많이 써요. 저를 포크 뮤지션으로 많이들 말씀해 주시는데, 보통 포크하면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음악으로 이해하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포크는 이야기 같아요. 삶의 이야기를 진하게 풀어내는 게 포크라는 장르인 것 같고, 그래서 저는 제가 포크 뮤지션으로 불리는 게 너무 자랑스럽고 계속 그렇게 불리고 싶어요. 제 정체성이 포크이기에 내 이야기를 음악에 솔직히 잘 담아내야 한다는 책임감, 사명감 같은 게 있답니다. 그래서인지 같이 작업하는 분들조차 가사에 있어서는 기다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줘요.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죠. 제 가사 초고를 보시면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시간을 들일수록 나오는 케이스예요
가사에 공을 얼마나 들이는지 마음으로 느껴지네요.
발음도 엄청 중요해요. 저는 단어 하나하나 사전으로 다 찾아보는데요. 의미는 좋은데 발음이 애매하다 싶으면 유의어와 반의어를 검색하고, 사전적 의미로 풀어낸 문장도 다 체크해요. 거의 집착 수준이죠. 가사든 산문이든 글을 읽다가 걸려 넘어지는 단어들도 최대한 수집하고요. 예를 들어,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에서 ‘나를 키운 건’이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어느 날 ‘키우다’라는 단어가 엄청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그럴 땐 관련 단어를 있는 대로 모아놓고 하나씩 지워나가며 작업해요. 진부하지 않으면서 쉽고, 남용하지 않는 표현을 쓰고 싶어서 정성을 많이 들여요. 가사에 욕심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저도 퇴고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라, 지금 엄청나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고민한 시간이 쌓여서 결과가 된다는 말을 믿어요. 예를 들어, ‘사랑한다’라는 말을 쓸 때 그냥 무작정 ‘사랑한다’라고 쓰는 것보다 뭔가 다른 표현이 없을까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다시 돌아와서 쓴 ‘사랑한다’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 사이에 단어가 품고 있는 게 달라져 버린 거죠. 그런 단어를 모아 부르면, 문장의 두께도 달라져요. 이런 집착 때문에 진희가 애를 많이 먹어요.
안 그래도 마침 전진희 씨 얘기를 하려는 참이었어요. 이번 앨범에서 대활약하셨더라고요. 프로듀싱도 담당하고, 4번 트랙 ‘헤어지지 말아요’는 물론 앨범 전반의 피아노 연주도 하시고, 편곡자 명단에서도 이름을 찾을 수 있었어요.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특별한 애정을 드러내셨는데, 이 자리를 빌려 공식적으로 고백 한 번 더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웃음)
저는 지금 이 자리에 불러서 마주 앉아서도 바로 고백할 수 있어요. (웃음) 진희는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친구이자, 정말 존경하는 뮤지션입니다. 작업도 무척 열심히 하고, 자기 색깔도 뚜렷하고요. 무엇보다 제 앨범을 자기 앨범 대하듯이 만들어줬어요. 실제로 작년에 진희의 앨범도 나와 버리는 바람에 ‘내 앨범 하나 더 만드는 것 같다’는 말을 할 정도였죠. 진희의 피아노 연주도 정말 좋아해요. 아름답잖아요. 진희가 피아노를 쳐 준 ‘헤어지지 말아요’는 처음 데모를 듣자마자 ‘이건 연주가 아니다. 전진희의 피아노가 나와 같은 목소리의 하나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목에 ‘with 전진희’라는 표기를 꼭 하고 싶었죠. 이외에도 정신적으로도 의지를 많이 하고 있고요. 제가 갑자기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여서 ‘안 돼. 안될 거 같아’라고 하면 진희가 옆에서 ‘아니야. 어렵지 않아. 쉬워’하면서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돌봐줬어요. 앨범과 관련된 일이라면 녹음에서 사적인 것까지 항상 도와줬죠. 누구보다도 애정을 가지고 제 앨범을 지지해 준 사람이에요. 심지어 작업하면서 서로 싸운 적도 없어요.
정말 한 번도 없어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보통 앨범 작업을 함께하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자주 대립한다고 하던데, 저희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우선, 제가 프로듀서 말에 좀 순종하는 타입이긴 해요. 절대복종. (웃음) 물론 아무한테나 그러는 건 아니고 이 사람과 하기로 했으면 그 사람을 100% 신뢰해 버려요. ‘이 사람 말고는 나를 위해서 더 무언가를 해줄 사람은 없다’라는 마음으로 프로듀서 말을 하나하나 새겨듣죠. 진희가 ‘프로듀서 할 맛 난다’라는 말도 했다니까요. 무슨 말을 해도 우선 고민해 보겠다는 자세가 너무 좋다면서요. 그런데 문제는 그 피드백이 한 1년 뒤에 오는… (웃음)
강적이네요. (웃음) 그러면 혹시 서로 조율하는 경우도 없었어요?
그건 자주 있었죠. 예를 들어서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이 제게 일종의 도전 같은 곡이었어요. 대부분 어쿠스틱 악기로 시작하는 경향과는 다르게, 이 곡은 앰비언스도 있고 일렉트릭 피아노로 시작해서 제게 굉장히 낯선 편곡이었어요. 그 얘기를 좀 깊게 했던 걸 제외하면… 제가 사실 전진희를 정말 사랑하거든요. (웃음)
사랑 고백이 끊이지 않네요. (웃음) 이쯤에서 사랑하는 분이 더 나올 때가 됐거든요. 앨범의 또 다른 with의 주인공, 안미옥 시인님이요.
피지컬 앨범에는 lyrics로 표기되어 있어요. 전부 lyrics로 하고 싶었는데 유통사에서 음원 사이트 시스템상 표기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with로 바꿨어요. ‘사랑은’이라는 곡의 가사를 의뢰할 때는 그래도 에세이보다 구체적이었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앨범을 만들 때 저는 당시까지 내린 인생의 정의에 대한 의심과 무너짐을 경험하고 있었어요. ‘도대체 사랑이 뭘까’, ‘내가 아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쏟아지니까 아예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곡을 하나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이미 무너졌으니까요. 그래서 ‘우우우우 사랑은, 우우우 사랑은’ 이런 식으로 데모를 녹음해서 미옥 언니에게 드렸어요. 사랑에 대해 제가 생각하던 추상적인 말들도 다 모아서 함께 전달하면서, 언니한테 ‘언니, 잘 써주세요’ 했어요. 나빴죠? (웃음) 그런데 언니가 가사와 시는 완전히 다르다면서 너무 힘들어하는 거예요. 별별 방법을 써봐도 안 돼서, 문장 써놓은 거를 다 받으니까 A4 2장 분량이었어요. 거기에 있던 문장을 조합해 지금의 가사가 됐어요.
그래서 그런지, 묘하게 강아솔의 가사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저도 그게 재미있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도 은근히 비슷하면서, 달라요. 저와 색깔이 맞지만,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글이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평소에 언니 시집을 보면서 자주 작업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녹음 엔지니어분도 귀신같이 ‘사랑은’을 콕 집어서 가사가 너무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안미옥 시인님과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6년 전쯤 행사를 하나 같이 했어요. 그 뒤로 제가 언니를 너무 좋아해서 따라다녔고요. 밥도 먹고, 차도 마시다가, 언니가 너무 좋아서 ‘어떻게 하면 더 자주 만날 수 있지’ 고민해 보니 같이 작업하면 되겠더라고요. 정말 좋아하는 시인이자 언니예요.
사람을 정말 좋아하시네요.
맞아요. 처음엔 작품으로 좋아하다가도 나중에는 그냥 사람 그 자체를 좋아해 버려요. 사람은 다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 아름다움이 하나하나 다 사랑스러워요. 누가 예쁘다 못생겼다, 이런 것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사람 너무 좋아’ 인간입니다. (웃음) 제가 평생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살아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정말 도움을 많이 받거든요. 좋은 사람들이 항상 곁에 있었고, 그래서 사람을 좋아할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놀고 수다 떠는 게 정말 너무너무 좋아요.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데,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은 시기가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네요.
돌이켜 보니까,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진짜 힘들었어요. 정말 사랑해서 정말 미워했어요. 태어나서 처음 겪는 감정이었어요. 마음에서 독이 피어나는 게 이런 거구나 했죠. 그렇게 변한 상황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주체가 바로 저였어요. 진짜 미칠 것 같은 거예요. 미움이라는 게 결국 사랑에서 오는 거잖아요. 사실 이 사람은 정말 고맙고 좋은 사람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내게 너무 상처를 줘서 미운데요. 그렇다고 미워할 수만은 없어서, 한마디로 속 시원하게 마음껏 미워하지 못하는 저 자신 때문에 더 힘들었어요. 그런 게 이번 앨범에 다 담겼어요. 성숙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아픈 성장 같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강아솔의 앨범에서 ‘사랑’은 언제나 중요한 테마예요. ‘이렇게 시작된 사랑’, ‘이게 바로 사랑’, ‘사랑은’처럼 제목에 사랑이 들어간 곡도 많고요. 정규 3집 앨범도 ‹사랑의 시절›이었죠. 이번 앨범에는 제목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멀리 떠났던 강아솔의 사랑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리는 느낌이었어요. 지금까지 강아솔이 부르던 사랑 노래의 에필로그 같은 앨범이랄까요.
에필로그라는 말이 정말 딱 맞는 것 같아요. 앨범을 완성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쭉 듣는데, 처음 들었던 생각이 ‘내가 진짜 많이 아팠고, 많이 슬펐구나’였어요. 스스로 짠했어요. 작업하면서 울컥했던 가사가 있거든요. ‘모두가 있는 곳으로’이란 곡의 ‘발길을 돌려 걸어가네 / 내가 있을 곳으로 / 모두가 있는 곳으로’였어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썼던 곡들을 정리하는 단계에서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네가 있을 곳은 여기야’라고 얘기해주는 친구들이 있구나.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엄청나게 크게 다가왔어요. 그때 비로소 실감했던 것 같아요. ‘아, 내가 정말 모두가 있는 곳으로 왔구나. 힘든 시간을 잘 통과했구나. 사랑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사랑하고 싶은 사람으로 거듭났구나.’
강아솔 3집 ‹사랑의 시절› 커버
앨범에서 느낀 안심과 안도감이 착각이 아니었네요.
저도 제 노래를 들으면서 안심했어요. 다음에는 지금의 나를 노래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얼마나 따뜻한 마음들이 노래에 배어 나올까, 저도 기대돼요. 이제 새해잖아요. 그래서 올해에는 곡을 많이 쓰려고 다짐하고 있어요. 지난 몇 년 동안은 회피하고 싶은 감정을 곡으로 쓰는 게 괴롭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똑바로 마주 봐도 행복한 감정밖에 없어서 덜 괴롭게 곡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힘들 때 만든 노래로 라이브 하기가 힘들지는 않나요?
그냥 ‘노래 잘 썼네’, ‘가사 좋네’ 해요. (웃음) 앨범 발매 전에 진행한 단독 공연에서 이번 앨범 수록곡을 들려 드릴 기회가 있었는데요. 따지고 보면 ‘제가 이렇게 아주 힘들었답니다’라는 걸 처음으로 밝히는 자리잖아요. 그래서 관객분들이 다 제 친구들 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냥 ‘얘들아. 나 이렇게 힘들었다’라는 마음으로 편하게 칭얼댔어요. 오래 담아온 마음을 풀어내는 자리이다 보니까 벅차기도 했고요. 오히려 제 친구들이 가끔 놀려요. “너 이런 사람 아니잖아!” 그럼, 제가 말하죠. “니들이 뭘 알아!” (웃음) 제가 하는 창작 활동이 대부분 내밀하고 밀도 있는 일이다 보니, 일상에서는 명랑하고 단순하고 가벼워지고 싶어요. 다만 음악 할 때만큼은 진중하고 깊어지지요. 그래서 음악은 제 삶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존재 같아요.
‘밸런스 강’, 강아솔의 2024년 계획을 알려주세요.
올해에는 연주곡을 많이 만들어 보고 싶어요. 연주곡 만들기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앨범마다 연주곡을 수록하기도 하고요. 원래 저는 작곡가 지망생이었어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싱어송라이터로 살고 있는데, 아직 연주곡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답니다. 이번 앨범 첫 곡 ‘어떤 겨울은’이 제가 처음으로 발표한 기타 독주곡이기도 해요. 올해는 그런 곡을 많이 작업해 볼까 합니다. 다른 기타리스트분과 협업 계획도 세웠어요. 진행 중인 멜론 스테이션 팟캐스트도 계속 이어갈 것 같고요. 얼마 전부터 와우산 레코드와 함께하기로 해서 회사 분들과 재미난 계획을 도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든 기쁘게, 또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마지막으로 이거 하나 물어보고 싶어요. 강아솔이 생각하는 ‘사랑’은 뭔가요?
‘라디오스타’ 식 진행이네요. (웃음) 강아솔에게 사랑이란 ‘매일 하는 것’입니다. 일상이나 호흡처럼요. 사랑이라는 말을 저는 정말 매일 쓰거든요. 친구, 연인, 지인 누구에게나 사랑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표현해요. 그냥 그게 제 사랑인 것 같아요.
Artist
강아솔은 포크 싱어송라이터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2012년 그 동안 만든 노래를 모아 정규 1집 ‹당신이 놓고 왔던 짧은 기억›을 발표한다. 앨범에 담긴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는 목소리와 노래가 진심 어린 음악을 찾아 헤매는 이들을 빠르게 끌어당겼고, 강아솔은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정규 2집 ‹정직한 마음›(2013), 정규 3집 ‹사랑의 시절›(2018)을 비롯해 싱어송라이터 수상한 커튼, 이아립과 함께한 ‹우리의 만춘›(2019), 피아니스트 임보라와 호흡을 맞춘 EP ‹유영›을 발표하고, 다수의 싱어송라이터가 모인 음악동아리 ‘작은평화’를 결성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치열한 시간 중 저만 알고 있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결국 다시 빛을 찾은 여정 끝에 2023년 5년 만의 정규작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를 발표했다.
Writer
김윤하(@romanflare)는 K팝에서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관해 쓰고 이야기하는 대중음악평론가다. 다양한 온오프라인 매체에 글을 기고하거나 출연하면서, 가끔은 작가 겸 기획자, 음악 콘텐츠 프로듀서로 일한다. 2023년 TVING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K-POP GENERATION›에 스토리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현재 «한국일보»«국민일보»«시사IN»«채널예스»에 칼럼을 연재하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랑과 음악이 끝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