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어떤 몸으로 세계를 감각하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놓치곤 합니다. 감각의 출발점이 다르면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지지만, 제도와 담론은 오랫동안 그 차이를 충분히 다루지 못했죠. 누군가의 몸이 지닌 조건이 하나의 언어로 작동할 수 있다면, 그 발화는 예술의 형식과 내용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자신의 몸이 감각하는 세계를 따라 작업을 이어가다 타계한 조각가 이원형. 그는 장애를 숨기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세계와 관계 맺는 또 하나의 관점으로 받아들이는 길을 스스로 열어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장애예술’이라는 말은 그가 남긴 것들 위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그 사유의 지점을 BE(ATTITUDE) 비애티튜드 웹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이원형 작가 프로필, 출저 한국장애인예술인협회
‘장애예술(Disability Art)’이라는 말을 듣는 많은 사람은 여전히 극복 서사를 먼저 떠올린다. 그들의 작업은 서사의 부산물처럼 따라오는 것이고, 결국 예술적 논의보다 개인적인 고난을 앞세우는 실수를 범한다. 그런 세태하에 장애예술가가 자신의 작업을 그 자체로 평가받는 경험을 갖기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에서 ‘에이블 아트(Able Art)’ 운동이 존재했지만, 이는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예술 활동이 가능(Able)하다는 측면을 강조하는 용어에 가까웠다. 즉, 기존의 예술 제도 안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권리를 주장하는 차원에 머물렀고, 장애 정체성 자체가 지닌 고유한 감각적·문화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다시 말해 장애를 하나의 차이로서 존중하고 그것이 생산해 내는 고유한 미학의 가능성을 작동하기보다는 기존의 예술 기준에 가까이 다가가는 데 목표를 설정한 셈이다. 이런 접근은 장애 경험을 예술의 조건으로 전면화하려는 시도보다는 여전히 비장애 중심의 기준을 전제한 상태에서 그 주변을 확장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따라서 한국에서 ‘장애예술’이라는 말이 정책적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단순히 문화 복지나 접근성을 넓히는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예술을 바라보는 기준을 정면에서 새롭게 성립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장애를 결핍이 아니라 독립적인 감각의 한 방식으로 인식하고, 그를 통해 예술의 형태와 내용이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관점이다. 즉, 예술의 중심에 놓여야 할 기준이 ‘정상성’이 아니라 다양한 몸의 경험과 감각이라는 사실을 제도적 언어로 명문화한 셈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단지 예술가의 참여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넘어 예술이 무엇을 담아내고, 누구를 위한 언어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중요한 변화다.
‹차이와 반복 #8› 설치전경, 2019, 높이 6.5m.Tangshan De Long Sculpture Park, China, 출저 Won Lee Art
출발점 바꾸기
예술은 동일한 몸과 감각만을 전제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장애’라는 이름 아래 주변으로 밀려났던 영역은 어떤 예술적 가치를 드러낼 수 있을까? 비록 ‘장애예술’이 아직은 낯설게 느껴진다 해도 바로 그 낯섦이 예술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지점이 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캐나다에서 활동한 한국계 조각가 이원형(Won Lee)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학창 시절 그는 자신의 진로가 타인의 기준에 따라 제한되는 경험을 겪었다. 신체 조건을 ‘교정’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그는 긴 치료와 통증을 감내하면서까지 남에게 맞춰야 할 이유를 찾지 않았다. 스스로의 삶을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는 자각은 이때 분명해졌고, 이는 이후 그의 작업이 몸의 조건을 주체적인 감각으로 다루게 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그 후에도 그의 삶에는 여러 갈래의 기로가 존재했다. 생계를 위해 회계사로 안정된 기반을 다지기도 하고, 한때는 예술을 향한 욕망을 잠시 뒤로 미루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다시 작업으로 돌아오는 길을 선택했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형식과 감각을 실험해야 한다는 확신이 그의 삶의 방향을 잇달아 바꾸어 놓았다. 늦은 나이에 다시 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하고, 밤과 낮을 나누어 일과 작업을 병행했던 시간은 그의 예술이 단순한 취미나 도피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였음을 보여준다.
‹Hesitant Moment›, 2004, Bronze, 32×34×32cm 출처 Won Lee Art
‹Girl at the Outhouse›, 2004, Bronze, 100×98×83cm 출처 Won Lee Art
그럼에도 과거 기사를 살펴보면, 그에게는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었다. 신체적 결함을 극복한 예술가, 재능을 옭아맨 소아마비에서 승리한 천재 조각가. 이들 수식어가 독자를 단숨에 끌어들이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영웅 서사에 맞닿는 감정적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감당해야 했던 신체적·사회적 한계를 상상해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재료를 다루는 노동의 강도, 이동의 제약, 제도적 장벽 등 그가 마주했을 물리적 현실은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선은 결국 작가를 평가하는 중심축을 예술이 아닌 ‘극복의 여부’에 맞추고, 작품이 지닌 고유한 조형적 성취와 감각의 층위를 주변으로 밀어내는 역효과를 낳는다.
더 근본적으로는 그런 수식이 그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의 작업을 읽어내는 데는 오히려 장애가 작품의 ‘원인’이자 ‘배경’인 듯 해석 범위를 좁혀버리는 함정을 내포한다. 마치 조각이 존재하게 된 이유가 그 개인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처럼 서사를 결정지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작품 자체가 품은 물질적 긴장, 감각의 결, 내적 동력을 제대로 탐색할 기회를 잃게 된다. 장애를 응시하는 기준이 비장애인의 위치에 고착된 채로 유지되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셈이다.
‹Dreamy Afternoon #1›, 2004, Bronze, 28×8×32cm 출처 Won Lee Art
‹Image of Time #3–A Mourner›, 2014, Bronze, 16×25×21cm
‹Image of Time #2–Man from La Mancha›, 2014, 23×30×22cm
또 다른 신체
2007년 처음 주목받은 그의 작업 ‹Girl at the Outhouse› 등이 포함된 ‘Farmer’s Wife Series’가 언급되는 방식을 돌이켜보면, 장애가 있음에도 가능했던 성취라는 방식으로 소비되곤 했다. 그러나 아카이브 이미지와 기록을 통해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해석의 여지가 드러난다. 투박한 표면과 날것의 신체성은 결핍을 증명하는 흔적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를 감각화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그 에너지의 밀도는 오히려 생의 충동에 가깝다. 누군가의 기준을 향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며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극복의 서사가 부여되지 않아도 충분히 단단한 주체로 서 있는 존재 말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설명하는 데 ‘장애를 딛고’라는 말은 과연 필요했던 것일까.
그 후 이원형의 조각은 실재적 묘사를 덜어내고, 선과 덩어리만 남기는 방식으로 축약된다. 신체가 지닌 질량을 줄이는 대신에 마치 공기 속으로 뻗어 나가는 실 가닥처럼 길고 가느다란 형태가 드러난다. 그 형태는 자코메티의 인체 조각처럼 가까스로 중심을 붙든 채 흔들리는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최소한의 뼈대만 남은 듯한 신체는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바로 이곳에 머무는 한 순간의 존재감을 말없이 증명한다.
‹Meditators #2›, 2012, Bronze, 44×62×16cm
장애는 예술을 방해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의 삶을 구성해 온 경험과 감각이 조각의 형식과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몸을 둘러싼 한계가 작업의 제약으로 작용했다기보다 세계를 이해하는 고유한 관점으로 기능한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이는 장애를 예술적 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예술을 인식하는 또 다른 좌표로 삼는 태도다. 따라서 이원형의 작업은 장애를 결핍의 언어가 아닌 정체성의 한 형태로 사유하려는 오늘날 국내의 ‘장애예술’ 담론과 활성화에 긴밀히 연계된다. 그가 남긴 작업은 단순한 미적 달성을 넘어 장애와 예술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사례로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와 함께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그는 자신의 조각 실천을 통해 형성된 관점과 태도를 개인의 성취에만 두지 않고, 제도적 차원으로까지 확장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활동하며 예술적 기반을 마련한 뒤, 한국의 장애예술 지원 체계가 여전히 미비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고, 그 하나의 대응으로 2018년 ‘이원형어워드’를 제정했다. 이 상은 한국장애예술인협회와 협력으로 운영되며, 매년공모를 통해 장애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2025년 기준으로 올해 8회를 맞는다.
그는 장애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 개선에 필요한 일종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고, 이원형어워드는 그 결과물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작업에서 드러난 관심사와 별개로 그는 생전에 장애 예술가를 위한 지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 그 점에서 그의 활동은 조각가로서 행보가 사회적 차원으로도 이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그를 오랫동안 따라다닌 극복의 서사를 잠시 비켜두더라도, 이원형은 이미 충분히 주목받아야 할 조각가다. 특정한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몸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각의 변화를 조형적으로 탐구해 왔다. 형태를 단순화하고 감각의 여지를 남기는 그의 방식은 신체가 공간 속에서 균형을 잡아내는 찰나를 세밀하게 포착한다. 그 결과 그의 작업은 독립적인 미학적 완결성을 획득한다. 여기서 장애는 그의 예술을 이해하는 데 배제할 수 없는 중요한 조건이지만, 작품을 오로지 그 관점으로만 환원하는 단일한 해석의 틀은 아니다.
‹At the Edge of Immanence #8›, 2009, Bronze, 55×87.5×86cm 출처 Won Lee Art
‹차이와 반복 #6›, 2007, Bronze, 101.6×61.0×22.9cm 출처 Won Lee Art
‹Image of Time #6›, 2014, Bronze, 56×34×15cm
차이와 반복
그는 주어진 몸의 상태를 숨기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세계를 이해하는 또 다른 관점으로 받아들이며 작업을 이어갔다. 차이를 드러내고, 반복 속에서 그 차이를 새롭게 갱신하려는 태도는 그의 생애와 작업 전반을 일관되게 관통하는데, 이런 태도는 생전에 그가 마련한 지원 제도를 통해 장애예술가들이 각각 실천을 이어갈 수 있는 현실적 기반으로도 이어졌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삶과 작업을 통해 형성해 온 인식이 개인의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생전에 마련한 지원 제도라는 구체적 실천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지점에서 생각해하면. 이런 흐름 속에서 이원형 조각가가 남긴 것은 결과물에 한정되지 않으며, 이후 예술을 둘러싼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 하나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Artist
타계한 이원형 조각가(@sculptor.wonlee, 1946-2021)는 페퍼다인대학교에서 미술대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와 버몬트주립대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2020년에는 캐나다 외무부에서 선정한 대표 작가로 선정되어 캐나다 조각가협회 이사로 참여하며 국제적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했다. 한국에서는 이원형어워드를 통해 장애예술가 지원에 힘썼으며, 멕시코와 미국에서도 그의 이름을 딴 미술상이 제정되어 그 뜻이 이어지고 있다. 그의 작품은 미국과 한국을 비롯해 영국, 캐나다, 중국, 멕시코, 베트남, 싱가포르 등 여러 국가에 설치되어 있다.
Editor
이도준은 디자인조형학부를 졸업 후 기획자이자 에디터로 활동하며, 가끔은 직접 코드를 짜기도 한다. 운영체제와 화면 크기를 가리지 않고 기기와 서비스를 오가며 전시와 현장을 기록하고 묶어낸다. 최근 합창을 시작해 숨 고르기와 스케줄 조절을 함께 배워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