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베네치아에서 열린 비엔날레에서 박재용 작가는 수많은 QR에 둘러싸였답니다. 예전 같았으면 도록과 리플렛으로 가득했을 두 손은 가볍고, 대신 스마트폰 화면에 뜨는 QR코드와 연결된 가상의 정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죠. 이런 디지털이 에너지 도둑이 되어가는 현대미술의 해결책이 될까요? 디지털도, 아날로그도 완벽한 답이 될 수 없다는 박재용 작가는 과연 무슨 해답을 발견했을까요? 아래 에세이에서 그의 고뇌를 확인해보세요.
베네치아 비엔날레 병행전시 «Kehinde Wiley: An Archaeology of Silence» 월텍스트
큐알 이즈 더 뉴 프린트
지난 7월 초 다녀온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예전과 가장 다른 풍경은 어디서나 마주친 QR코드다. 처음에는 이탈리아 사람이 특별히 QR코드에 열광하는 건가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조차 메뉴판 대신 QR코드를 권하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현지인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코로나19로 인해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QR코드 사용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백신 접종 인증에 필요하기도 하거니와, 공공장소에서 접촉으로 인한 감염을 최대한 줄일 방법으로 QR 코드가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이런 QR코드를 다른 어느 곳보다 자주 볼 수 있는 장소는 도시 전역에 흩어진 전시장이었다. 오래전부터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참여한 독일, 영국뿐 아니라 아제르바이잔, 키르기스스탄처럼 비교적 최근에야 비엔날레에 참여한 곳까지 80개가 넘는 나라에서 각자 마련한 국가관에서는 평균적으로 최소 2개 이상의 QR코드를 만날 수 있었다. 전시장 입구에 출력해 붙여두기도 하고, 아예 월텍스트에 코드를 삽입하기도 했다. 보도자료, 리플렛, 전시장 배치도, 웹사이트 도록까지,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QR코드가 빠지는 곳은 없었다.
사미 파빌리온의 QR코드
QR코드는 아주 간편하다. 예전이라면 멋진 디자인의 폴더에 담아 나눠주던 보도자료, 관람객 수를 예상하고 A4 용지에 출력하던 전시 안내 인쇄물 등을 굳이 실물로 만들어 놓을 필요가 없어졌다. 전시와 관련한 웹사이트를 연결하기에도 편하고, 심지어 전시를 관람하며 감상할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도 제공할 수 있다. 게다가 QR코드에는 무엇이든 연결할 수 있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세 나라가 함께 쓰던 기존의 ‘노르딕 파빌리온’을 북극 지방에 거주하는 사미족을 위한 전시장으로 바꿔놓은 ‘사미 파빌리온’에 들렀는데, 유명 출판사와 함께 만든 멋진 도록이 눈에 띄었다. 어디서 구매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실물로 인쇄한 책이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QR코드로 내려받는 게 좋지 않겠어요?”
물론, QR코드가 만능해결사는 아니다. 웹사이트나 오디오 가이드처럼 전통적인 인쇄 매체로 제공할 수 없는 자료의 경우 QR 코드의 효용성이 빛나지만, 프린터로 출력해놓던 자료를 가상의 QR코드에 접속해 오직 스마트폰 화면으로만 봐야 하는 상황은 꽤나 곤혹스럽다. 그럼에도 베네치아의 전시장을 뒤덮은 QR코드의 풍경이 던지는 메시지는 퍽 명확하다. QR is the new print. 멋진 디자인을 곁들여 무언가 출력한 종이를 쌓아두는 건 더 이상 ‘쿨’하지 않다.
디지털이 답일까?
그런데 손에 잡히는 인쇄물은 줄이고, 대신 각자의 모바일 기기에서 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태도가 과연 정답일까? 지난 글 «현대미술은 에너지 도둑일까?»에서 우리는 이미 비물질적으로 보이는 디지털 매체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확인한 바 있다. 게다가 한번 이런 상상을 해보자. 어느 날 데이터센터의 자료에 접속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리고 그 이유가 (지금으로선 막을 길이 없어 보이는) 지구 온난화라면…!? 한국에서는 아직 일어난 적 없는 상상의 가설은 불과 얼마 전인 7월 19일 영국에서 실제로 벌어졌다. 낮 기온이 섭씨 40도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한 런던 지역에 있는 오라클과 구글의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가 기기 과열을 막기 위해 갑자기 작동을 멈췄다. 어떤 서버에 무슨 웹사이트와 서비스를 연결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레 접속이 끊긴 사용자들은 그저 먹통인 상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만일 당신이 웹 기반의 ‘메타버스’ 전시나 오프라인 전시를 그대로 복제한 ‘디지털 트윈’ 전시를 치르는 상황이라고 치자. 공교롭게도 과열로 작동을 멈춘 데이터 센터의 서버에 당신의 전시가 저장돼 있었다면, 그 길로 전시는 그대로 멈추고 마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의 여파로 말이다.
웹 전시 https://www.hinterland.kr/exhibition 구동 화면
그럼, 아날로그가 답일까?
아날로그가 답이 아니라는 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 미술의 이름 아래 만들어지는 부산물 중 멈출 수 없는 엔트로피의 증가를 가속하지 않는 건 단언컨대 ‘없다’. 사실상 인간의 생존을 위한 모든 활동이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무한히 증식하는 엔트로피를 가속하지 않는 미술 활동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손을 놓아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컨대, 아트 페어로 대표되는 단기간의 미술 행사를 위해 전 세계에 오가는 미술품 보관 상자에 관해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크레이트’라고 부르는 이 나무 상자는 소중한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튼튼히 만들었다. 고로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빠른 운송을 위하여 대부분의 경우 항공편을 이용해 이동하며, 지상에 도착한 후에도 무진동차와 같은 특수 차량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미술품 운송에 드는 탄소를 계산하는 공식도 이미 도출돼 있다. ‘무게 x 거리 x 운송 수단별 배기가스 기준’의 공식을 활용하면 작품 운송 과정에서 총 몇k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지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춰 팬데믹으로 인해 국경을 넘나드는 작품 운송비가 3배 이상 폭등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전부터 이미 여러 국제 운송 업체가 ‘탄소 중립 운송’ 서비스를 앞다투어 내놓기도 했다. 물론, 이런 수단을 통한다고 하더라도 완전한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는 없다. 구글에 ‘Carbon neutral art shipping(탄소 중립 미술품 운송)’을 키워드로 검색해 나온 운송 회사 몇 군데의 웹사이트를 살펴보기만 해도 금세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갖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더라도, 최대한 노력한다.”
지난 2021년 이맘때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전시에서 이런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미술관 웹사이트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전시 도록 PDF 파일을 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독자를 맞이한다.
“이 책은 종이 낭비를 줄이기 위해 줄 바꿈을 최소화하고 종이의 공백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며 잉크 사용량 또한 줄이기 위해 한 가지 색으로만 인쇄한다. 이 책의 컬러판은 64쪽에 있는QR코드를 통해 내려 받을 수 있다.이러한 노력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프롤로그3: 책에 관하여”(p. 4)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100 % 재생 펄프로 만들어진 종이 시로에코 120 g/m2를 사용해 제작했다.”
본 전시는 해상으로 작품을 운송했다. 인쇄물 제작 과정에서 어떻게 낭비를 줄이고자 했는지, 전시장에서 사용한 장비에는 전기를 얼마나 사용했는지, 전시 준비와 진행, 기록 과정에서 어느 정도 크기의 파일을 주고받았는지 상세히 도록에 기록하기도 했다. 종이 낭비를 줄이기 위한 디자인이 ‘가독성’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지는 않지만, ‘갤러리 기후 연합(Gallery Climate Coalition)’ 등 실질적으로 참고할 만한 자료와 출처도 제공한다.
전시 이후 부산현대미술관은 «그 후, 그 뒤» 전시장에 설치했던 천을 이용해 에코백을 만들었다.
이보다 좀 더 접근성 높은 자료는 없을까? 2020-21년에 진행한 공공예술 프로젝트 ‘제로의 예술’을 통해 생산한 ‘비거니즘 전시 매뉴얼’은 작가나 기획자 차원에서 실천할 수 있는 실용적 차원의 행동을 제안한다. 작품 포장, 전시장 조명, 홍보와 디자인, 전시 운영 등 하나의 전시를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 전반에 걸쳐 어떤 관습이 존재하는지 소개하고, 이를 좀 더 지속가능한(혹은 엔트로피 증가 속도를 늦추는) 방식으로 대체하는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현대미술은 에너지 도둑이다!
지난번에 기고한 «현대미술은 에너지 도둑일까?»에 대한 몇 가지 피드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대미술이 에너지 도둑인 건 알겠다. 그래서 어떡하라는 거냐!’ 우리가 어떻게 한들, 현대미술이 에너지 도둑이라는 사실을 바꿀 수 없다. 다만, 그것이 어떤 종류의 에너지 도둑인지는 우리가 미술을 어떻게 만들고 보여주는지에 달렸다. 탄소 중립을 지향하는 미술품 운송 업체들이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한 노력에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닫고도 적극적으로 배출량을 상쇄하려 애쓰는 것처럼, 미술관 건물의 에너지 사용을 더 효율적으로 개선하거나 작업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무심코 낭비하던 걸 줄이는 행동도 몇 가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재활용이 불가능하고 대형 폐기물 신고를 통해서도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할 수 있다고 해서 시도하는 대신 잠시 연필과 종이를 들고 에스키스(esquisse)를 다듬어 보는 것도 방법 아닐까.
개인적으로 몇 개월 후 진행할 예정인 전시에서는 비닐 시트지 활용을 최대한 줄여볼 요량이다. 인쇄물로 구비해야 하는 여러 자료는 베네치아에서 본 것처럼 가능한 한 실제 수량을 줄이고 모바일에서 보기 편한 페이지로 만들어 QR코드로 제공해볼까 한다. 작가들이 작품을 보여주는 데 활용할 장비를 의식적으로 제한하거나 줄이지는 않겠지만, 세팅 값이 바뀔까 봐 재생 장비를 계속 켜둔 채 화면만 껐다 켰다 하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더라도, 최대한 노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루지 않고 바로 실천하는 것 아닐까.
Writer
박재용(@publicly.jaeyong)은 현대미술서가 ‘서울리딩룸(@seoulreadingroom)’을 운영하며, 공간 ‘영콤마영(@0_comma_0)’에서 문제해결가(solutions architect)를 맡고 있다. 전시기획자로 일하기도 하며, 다양한 글과 말을 번역, 통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