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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현대미술 설명서: ​​베네치아의 알곡과 쭉정이들

Writer: 박재용
header_베네치아 비엔날레_현대미술 설명서

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고, 유명한 미술 행사는 무엇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본섬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이죠.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걸요? 특히 비엔날레가 정식으로 오픈하기 직전의 프리뷰 기간에는 정말 전 세계에서 몰려든 아트 피플로 베네치아 본섬이 난리가 나는데요. 숙박료는 저세상 수준으로 올라가고, 비엔날레 주제전, 참여국이 운영하는 내셔널 파빌리온, 비엔날레 조직위원회가 인정한 공식 병행 전시, 더불어 여기저기 공간을 빌려 치르는 수많은 전시의 오프닝으로 베네치아는 말 그대로 예술의 섬으로 변모합니다. 오픈 이후에 방문하는 사람 또한 고민이 큽니다. 시간은 짧고, 볼 건 많은 상황에서 영리한 취사선택은 생존에 준하는 일이니까요. 과연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무엇을 봐야 할까요? 혹은 추천 리스트가 수없이 겹치는 가운데, 보석처럼 숨어 있는 볼거리는 무엇일까요? «비애티튜드»에 ‘현대미술 설명서’를 연재하는 박재용 님이 모든 전시를 섭렵한다는 목표 아래 동료들과 함께 베네치아에 다녀왔습니다. 그가 본 수많은 전시와 광경 중 유의미하게 남은 대상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베네치아에서 발견한 알곡과 쭉정이들에 대한 재용 님의 (말 그대로 엄청난 분량의) 대서사시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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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BIENNALE DI VENEZIA

‘전 세계 미술계 최고의 화제’라는 식으로 묘사되는 베네치아 비엔날레(La Biennale di Venezia). 1895년 시작해 120년 넘는 세월 동안 이어진 비엔날레는 누군가에겐 일생의 커리어를 건 도전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이라는 말과 함께 늘 하던 걸 스리슬쩍 (그러나 힘주어)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어떤 목소리를 내고, 어떤 포지션을 취할지 여부는 당신 스스로 누구라고 생각하냐에 달렸다. 혹은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의 위치와 남이 보는 당신의 위치, 당신이 되고 싶은 자아와 남이 당신에게 바라는 모습 사이의 어딘가에서 길을 잃을지도…

워낙 세계적인 이목이 쏠리다 보니,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관한 기사나 리뷰는 대중에게 정식으로 공개하기 전 3일간 치러지는 프리뷰 기간부터 쏟아진다. 4월 말 시작된 올해 비엔날레를 다룬 영문 자료는 이미 차고 넘친다. 하지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관한 그 어떤 정보도 결코 완전할 수 없다. 6개월에 이르는 비엔날레 전시 기간 중 베네치아 군도 곳곳에서 열리는 백 수십 개에 달하는 온갖 전시를 꼼꼼하게 보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하지만 이에 도전하지 말라는 법이 있던가. 프레스와 VIP가 입장할 수 있는 비엔날레 프리뷰 기간(4월 17~19일)과 그 이후 약 1주일간 베네치아에 머무르며 마라톤을 달리듯 100여 개가량의 전시를 모두 관람하는 것을 목표로, 혼자서는 힘들 것 같아 ‘오프투베니스’ 팀을 꾸려 매일 그날 관람한 전시를 리뷰했고, 체력의 한계에 부닥칠 땐 팀원의 눈과 귀를 빌려 간접적으로나마 전시에 대한 정보를 체득했다. 혹시나 이번 비엔날레 관람을 계획 중이라면 오프투베니스(@off.to.venice) 계정을 참고하시라. 그런데…

오프닝이 곧 클로징이라니요?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오프닝이 곧 클로징’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세라 손튼이 쓴 『걸작의 뒷모습』(세미콜론, 2011) 제7장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참고하면 좋겠다.) 굳이 비엔날레뿐일까. 미술계의 리듬이 패션 산업처럼 빠른 템포로 변하면서 요즘 모든 전시의 오프닝은 곧 클로징이나 다름 없을 때가 잦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오랜 준비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전시 오프닝을 치를 즈음이면, 아티스트와 큐레이터의 마음은 이미 다음 프로젝트, 다음 전시 생각으로 향할지 모른다. 관객 입장에서는 처음 마주하지만, 아티스트와 큐레이터 입장에선 이젠 그만 놓아주고 싶은 ‘무언가’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점은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6개월에 걸쳐 치루는 긴 행사지만, 관련 기사와 리뷰는 오프닝 전후에 쏟아진 후로 감감무소식이라는 현상에서 짐작할 수 있다. 미술계의 관심은 6개월 동안 이어지지 않는다. 매체의 지면이나 미술계 사람들의 소셜 미디어 피드는 다음 전시, 다음 아트 페어로 가려진다.

그에 비해 백수십 개에 달하는 전시가 한 번에 열리는 비엔날레 프리뷰와 오프닝 주간은 그야말로 난리 북새통이다. 공식 개막일인 4월 20일에 앞서 3일간 진행한 ‘프리뷰’ 기간에 맞춰 90개 국가는 각자 내셔널 파빌리온national pavilion의 오프닝 행사를 치렀고, 수십 여 개의 ‘공식’ 병행 전시, 더불어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장소를 대여한 수십 개의 독립 전시 역시 오프닝 행사와 파티를 치렀다. 취재진을 대상으로 오전 8시부터 프리뷰를 마련한 전시가 있는가 하면, 어느 전시 오프닝 파티는 베네치아 본섬에서 파티장으로 이동하는 전용 선박을 마련한 뒤 부둣가에 줄 선 사람들을 실어 나르기도 했다. 붐비는 시간대를 피해 밤 10시에 아티스트 토크가 열리기도 했고, 몇 개 나라들이 서로 힘을 합쳐 공동 파티를 치르기도 했다. 6개월에 걸친 비엔날레 동안 전 세계에서 수십만 명이 ‘지금의 미술’을 보려고 베네치아 섬에 몰려들지만, 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베네치아에는 한차례 폭풍이 몰아닥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 프리뷰 기간이 지난) 4월 28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베네치아에 방문했다. 교황은 베네치아 여성 교도소에서 열린 전시 «With My Eyes»를 관람하고 산 마르코 광장에 운집한 1만여 명의 신도들에게 미사를 집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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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를 타고 베네치아 여성 감옥으로 이동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 가톨릭 뉴스 서비스

알곡과 쭉정이

‘베네치아의 알곡과 쭉정이’라는 주제는 «비애티튜드» 편집진과 올해 초 ‘현대미술 설명서’ 글감을 상의하며 일찍이 점찍어 둔 바 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3장에 등장하는 알곡과 쭉정이의 비유는 사실 꽤 무서운 이야기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이렇게 외친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심판의 날이 오면 알맹이가 꽉 찬 알곡 같은 사람들이 살아남고, 겉만 번지르르한 쭉정이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에 빠지게 된다는 것. 하지만 베네치아 섬에서 열리는 방대한 양의 전시를 거의 다 봤음에도 알곡과 쭉정이를 꼽는 건 무척이나 까다로운 일이다. 동시대 예술 전시를 판단할 때는 수많은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처럼 신에 대한 믿음으로 전시를 바라보는 세상에 살지 않는다.

알곡과 쭉정이로 나누는 게 가능할지라도, 단지 ‘훌륭하다’와 ‘별로다’로 구분하고 짧은 코멘트를 덧붙이는 일은 자신의 안목을 뽐내려는 의도라면 모를까,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을 것 같다. 대신, 이번 «비애티튜드» 에세이에서는 약 2주간 베네치아에 머무르며 낱낱이 살펴본 100여 개의 전시 중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 있는 대상들을 선별해 소개해 보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실제 베네치아에 날아가서 직접 전시를 보는 경우보다, 온라인으로 전시에 대한 면모를 접할 경우가 더 많을 거로 생각하며, 최대한 꼼꼼히 정리하려고 노력해 보았다. 그럼, 알곡과 쭉정이는 어떻게 판단하는가? 바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요청해 본다. 혹 오프투베니스(@off.to.venice)로 자신만의 알곡과 쭉정이 리스트를 제보해 준다면 대환영이다.

그놈의 비엔날레가 뭐길래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대체 뭐길래 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짧게 체크해 보자. (비엔날레 구조와 역사에 능통하다면, 이 부분은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2024년 제60회를 맞이한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처음 열린 건 지금으로부터 120여 년 전인 1895년. 그때 한반도에서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세계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극동아시아의 비극과는 별개로, 첫 번째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새로운 미술’이 뭔지 궁금한 관객들이 유럽 전역에서 20만 명 넘게 몰려들었다. 당시 전시는 ‘비엔날레 공원’이라는 뜻인 ‘자르디니 델라 비엔날레’에 지은 큰 건물에서 열렸다. 현재 이곳을 리뉴얼해 비엔날레 주제전(본전시) 중 일부를 치르는 센트럴 파빌리온으로 활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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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런(?) 중인 1895년 제1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관객들. © 베네치아 비엔날레 재단

베네치아에서 비엔날레가 열리게 된 배경에는 문화를 통환 지역 활성화 정책이 있었다.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이름을 바꿀 그 무렵, 베네치아는 오랜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 유럽의 문화계 명사들에게 ‘핫플’로 거듭나고 있었다. (왠지… 21세기 한국에 출몰하는 문화를 통한 지역 활성화의 기운이 겹치는 건 착각일까?) 베네치아 시의회에는 1894년 당시 시의원들이 비엔날레에 기대하는 큰 꿈이 엿보이는 대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전시로 인해 (베네치아는) 더 많은 외국인을 유치하고, (베네치아는) 미술품 교역의 중심지로 서서히 자리매김하여, (베네치아는) 경제 성장을 촉진할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 베네치아라는 도시의 이미지는 자유로우면서도 퇴폐적이었다. 이를테면 베네치아는 세계 최초의 카지노, ‘카지노 디 베네치아’가 개업한 곳이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는 카지노 디 베네치아에서 삶을 마감한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죽음에서 영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설가 토마스 만은 1912년 대표작 중 하나인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런 이미지가 ‘보편적인’ 문화와 예술, 무엇보다 ‘국제적인 미술 전시’를 통해 새롭게 거듭나게 된 것이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탄생을 둘러싼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비토리아 마르티니Vittoria Martini의 논문 「How La Biennale as a Brand was Born: Venice as the Archetype of a Biennial City」(2020)를 참고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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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리아 마르티니의 논문이 실린 «OBOE» © OBOE

그런데 지금 우리가 접하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즉 강력한 큐레이팅을 통해 이뤄지는 주제전과 이에 호응하는 여러 국가의 내셔널 파빌리온(혹은 국가관) 전시로 구축한 모델은 비엔날레 탄생 이후 100여 년이 지난 2000년대 초반에서야 자리를 잡았다. 거대한 건물 하나만 있던 비엔날레 공원에는 한 세기에 걸쳐 25개의 내셔널 파빌리온이 차례로 세워졌고, 더는 단독 건물을 세울 자리가 남지 않은 상황에서 운 좋게 문 닫고 입성한 26번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1994년 공원 안에 남은 마지막 건물 부지를 차지하며 ‘베네치아 곳곳에 전월세로 공간을 빌리지 않고, 비엔날레 공원에 자가 건물을 소유한 나라’ 대열에 합류했고, 불과 1년 만에 건물을 완공하며 1995년 정식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1995년은 마침 문화체육부가 지정한 ‘미술의 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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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대한민국 내셔널 파빌리온 전경 © Mark Blower

비엔날레에서 대체 무엇을 봐야 할까?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그저 ‘지금의 미술’을 만날 수 있는 자리라고만 여기는 건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비엔날레 기간 동안 베네치아에서 마주치는 거의 모든 전시는 최소한 하나 이상의 미술관이나 갤러리, 재단, 정부 기관이 애를 써서 이룬 결과물이다. 단순한 미술 전시라기엔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달까? 비엔날레 공원과 아르세날레에 흩어진 90개에 이르는 내셔널 파빌리온만 하더라도, 나라마다 선정 주체와 선정 방식이 제각각이다. 한국처럼 자율권이 있는 정부 산하 기관(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 심사위원을 정하고 예산을 일부 지원하기도 하고, 뜻이 있는 (그리고 돈이 많은) 개인이 후원하거나 해당 국가의 국립 미술 기관이 알아서 큐레이터와 작가를 뽑는 등 전시를 조직하는 주체는 아주 다양하다. 밖에서 보기엔 하나의 나라로 보이지만 실은 언어, 공동체에 따른 연방국인 벨기에는 비엔날레 공원의 내셔널 파빌리온을 공동체별로 돌아가면서 사용한다. 스페인에서 독립하는 게 소원인 카탈루냐 지방은 스페인 내셔널 파빌리온과는 별개로 ‘Catalonia in Venice’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따로 열고, 대만이나 홍콩처럼 스스로 ‘국가’라고 부르면 국제적인 분쟁에 휘말리는 곳들은 ‘병행 전시’라는 딱지를 붙인 채 전시를 운영한다. 비엔날레에서 전시가 열린다는 사실만으로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미묘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오스트레일리아(호주문화예술위원회)가 온라인에서 공개적으로 진행한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 내셔널 파빌리온 지원 안내. 호주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내셔널 파빌리온 부분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게다가 각 나라를 어떤 식으로든 대표하는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 외에도 비엔날레 조직위원회로부터 인증 마크를 받고 도록에도 1~2페이지씩 소개가 실리는 병행 전시(collateral event), 비엔날레와 아무런 관계는 없지만 기간에 맞춰 전 세계 미술관, 갤러리, 미술 단체가 자발적으로 대관해 진행하는 독립 전시까지… 어떻게 보면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그게 뭐가 됐든 자신을 뽐내려는 욕망이 흘러넘치는 곳이다. 소속 작가를 세계 무대에 알리고 싶은 갤러리의 욕망일 수도, 국가별로 나름의 경쟁과 심사를 거쳐 비엔날레에 오게 된 큐레이터와 아티스트의 주목 받고 싶은 욕망일 수도, 혹은 이 거대한 비엔날레의 중심축인 주제전을 기획하는 큐레이터의 야망일 수도 있다. ‘지금의 미술’ 혹은 ‘지금의 미술이어야 하는 것’을 제시하려는 야망 말이다. 예컨대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는 ‘Foreigners Everywhere’로,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는 직역 대신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라고 옮기고 싶은데, 이번 비엔날레 예술 감독을 맡은 아드리아누 페드로자Adriano Pedrosa는 지금까지 우리가 ‘표준’이자 ‘당연한 것’으로 삼았던 서구 백인 이성애자 중심의 미술 역사를 다시 쓰려고 했고,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이 주제에 호응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검은색으로 뒤덮인 전시장 벽에 수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토착민 조상의 이름을 빼곡히 적은 호주의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 ‹Kith and Kin›이 최고의 내셔널 파빌리온에 돌아가는 황금사자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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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장과 작가 아치 무어Archie Moore. © 크리에이티브 오스트레일리아

다가오는 9월에 개막하는 광주비엔날레의 예술 감독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는 «Spike Art Magazine»에 기고한 글을 통해 ‘본인이 기획하고 있는 비엔날레에 대해서도 이 정도로 강력한 비판을 각오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신랄하게 비판한다. 부리오에 따르면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전은 모더니즘적인 세계관을 해체하는 척만 하며,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 프랑스인 비평가가 영어로 쓴 글이지만, 번역기를 통해 대략적인 의미 파악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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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ike Art Magazine

이제, 알곡 혹은 쭉정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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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과 페루의 토착민 예술가 콜렉티브 MAHKU(Movimento dos Artistas Huni Kuin)가 형형색색으로 뒤덮은 비엔날레 센트럴 파빌리온. © 베네치아 비엔날레 재단

● 베네치아 비엔날레 주제전 «Foreigners Everywhere»

권위 있는 제도를 비판할 때 항상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권위를 비판함으로써 오히려 권위를 살려주는 것은 아닌가?’ 300명이 넘는 주제전 작가 중 대부분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올해 처음 참여한다는 사실은 예술 감독 아드리아누 페드로자가 무척 강조하고 싶었던 점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전시장 벽에 붙인 캡션마다 ‘이 작가는 이번 전시가 첫 번째 베네치아 비엔날레 참가임’이라는 말을 굳이 꼬박꼬박 덧붙이는 풍경은 서구-백인-이성애자-남성 중심의 목소리로 쓰인 미술사를 비서구-비백인-논바이너리-다양한 주체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올해 비엔날레 역시 결국 기존 제도가 가진 권위에 기대는 것 아니냐는 볼멘 비판을 끌어냈다.

물론 ‘백인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바보들은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마치 제 자리를 뺏긴 기분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미술에서의 모더니즘을 서구 작가들로 이어진 내러티브가 아니라 ‘그 밖의 장소’ 취급받았던 비서구권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다시 쓰려고 시도했으니까.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중심을 차지하던 목소리의 자리를 ‘그 밖의 존재들’로 채울 거였으면, 바보들이 자기 자리를 빼앗겼다는 둥 멍청하게 성질부릴 먹잇감을 주는 대신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 혹은 어딘가에서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방식으로 기획했다면 어땠을까? 세상의 주인공인 양 목소리를 높이던 서구-백인-이성애자-남성 역시 수많은 ‘one of them’ 혹은 ‘one of us’라는 진실을 넌지시 깨닫게 해주었다면 말이다.

물론 이번 전시에 대한 가장 멍청한 반응은 비서구 작가들을 주인공으로 데려온 주제전을 보면서 ‘왜 우리나라 작가가 ‘원 오브 뎀’ 취급을 받냐고 화내는’ 것이다. 예컨대 비엔날레 프리뷰 기간 중 몇몇 한국인 관계자들이 보였던 반응이 그랬다. 전시장 벽을 뒤덮은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출신 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이쾌대의 유명한 한복 입은 자화상이나 장우성의 초상화가 섞여 있는 사실에 짐짓 불쾌한 티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쩌면 비록 몸은 동양인이지만 제 문화와 정신은 서양인이라고 착각하는 게 아닌지 의심 가는 모습이었다.

더불어, 이미 학계에서는 오래전에 많은 논의가 이뤄진 모더니티 비교 연구(comparative modernities)를 굳이 2024년, 심지어 베네치아에서 또 해야 하냐는 비판도 그리 똑똑하지 못한 의견으로는 매한가지다. 이에 동조한다면 지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미술 전시 중 99.9%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이미 누군가 그 내용을 연구해 논문으로 발표했거나 책으로 출간했을 테니까. 진짜 문제는, 식상하다고 반응하는 이슈를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이제야 다루었다는 점이다. 더불어 이번 예술 감독은 120여 년에 이르는 비엔날레 역사상 최초의 라틴아메리카계 퀴어 정체성을 지닌 큐레이터인데, 막상 우리는 아시아계 예술 감독은 아직 만나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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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co Zorzanello

● ANGA(학살금지예술연합)과 이스라엘 내셔널 파빌리온

ANGA(@angalliance)는 ‘Art Not Genocide Alliance’의 줄임말로, 직역하면 ‘학살금지예술연합’이다. 이스라엘의 베네치아 비엔날레 참가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서명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해, 이들이 내민 성명서에는 2만 4000명에 이르는 문화예술계 관계자와 일반 시민이 동참했다. 베네치아 현지에서 ANGA의 존재는 네 가지 결과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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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곳곳에 붙은 ANGA 포스터. 비엔날레 재단 공식 로고를 차용한 ANGA 로고가 흥미롭다. © Jaeyong Park

1. 프리뷰와 오프닝 위크엔드 기간에 베네치아 본섬에서 벌어진 연대 시위와 행진.
2. 거리 곳곳에 붙은 ‘학살 파빌리온’, 즉 이스라엘의 내셔널 파빌리온 반대 포스터. 붉은색 네모로 이루어진 비엔날레 재단 로고를 차용해 마치 공식 홍보물처럼 보인다.
3. ANGA에 공감하는 아티스트가 참여한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장의 안내 데스크에는 특별한 인쇄물을 비치했다. 마땅한 전시 공간을 찾을 수 없는 팔레스타인의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를 대신하는 것으로, 취지에 공감하는 전시 운영 주체라면 누구나 ANGA 웹사이트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4. 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이스라엘은 내셔널 파빌리온의 운영 중단을 선언했다. 전시장 내부에 배치한 영상 작품을 켜둔 채, 전시 기간 중 문을 열지 않기로 한 것. 아이러니하게도 전시 제목은 ‘고향’을 가리키는 ‘(M)otherland’였다. 작가 루스 파티르Ruth Patir의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전시 브로슈어를 살펴보면, 이번 전시에서 그는 “여성의 삶과 여성의 신체가 짊어지는 부담, 일인칭 스토리텔링, 전 세계 장소와 시간을 초월해 수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경험”을 풀어낼 예정이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라는 위상 때문에 작가와 큐레이터는 최선을 다해 전시를 준비했을 테지만, 자신들이 대표하는 이스라엘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민간인 거주 지역에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상황에서 이런 내용의 전시를 선보이는 게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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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rry Jun

● 폴란드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 «Repeat After Me II»

올해 폴란드 내셔널 파빌리온은 공모를 거쳐 이그나치 치바르토스Ignacy Czwartos가 전시 «Polish Practice in Tragedy. Between Germany and Russia»를 선보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2023년 10월 폴란드 총선이 끝난 후 상황이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우익과 극우 사이를 오가는 법과정의당(Prawo i Sprawiedliwość)이 여당 지위를 잃고, 친유럽 성향의 시민연합(Koalicja Obywatelska) 중심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이윽고 2023년 12월 29일 작가는 새롭게 취임한 문화부 장관이 그의 비엔날레 프로젝트를 직접 중단시켰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폴란드 내셔널 파빌리온에는 그 대신 폴란드와 국경을 접한 이웃 나라 우크라이나에서 온 콜렉티브인 오픈 그룹(@open_group_)이 전시를 선보이게 된 것.

치바르토스에 따르면, 정당한 공모를 거쳐 기회를 얻은 자신이 갑자기 전시에서 배제된 이유를 아무도 명확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과 오픈 그룹의 작품을 나란히 두고 비교하면 왠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그의 회화는 폴란드의 비극적인 역사를 소재로 삼는데, 이번 비엔날레에도 폴란드 민족이 러시아와 독일로부터 겪은 학살과 억압의 역사에서 영감받은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었다. 러시아도 싫고, 유럽도 싫고, 고통받는 우리 민족을 숭고하게 우러러보는 작가의 관점은 법과정의당 지지자가 생각하는 세계관과 맞아떨어졌다. 한편 우크라이나로부터 피신해 작업을 이어가는 오픈그룹은 전쟁으로 자기 터전을 잃은 우크라이나인이 피난 과정에서 접한 ‘전쟁의 소리’를 제 목소리로 따라 하는 영상을 선보였다.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는 마치 노래방 반주처럼 자막으로 변해 영상 위에 놓였다. 전시장에서 자막을 따라 소리를 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한편, 검열로 인해 표현의 자유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치바르토스(@czwartosignacy)는 폴란드 동포들의 도움을 받아 베네치아에서 독자적인 전시를 열었다. 29개 나라가 영구적인 내셔널 파빌리온을 가지고 있는 자르디니 담장 너머, 폴란드 내셔널 파빌리온과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공간을 빌려 회화 15점을 선보였다. 전시 제목은 ‘Polonia Uncensored’으로 ‘검열당하지 않은 옛 폴란드’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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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 전경. © Jacopo Salvi / Zacheta archive

● 벨기에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 «Petticoat Government»

벨기에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장에 들어서면 2층 건물 높이의 거대한 전통 인형 일곱 개가 관람객을 기다린다. 이들은 벨기에, 프랑스, 스페인 민담과 역사적 인물에서 영감받아 탄생한 거인들로, 2023년 벨기에 뢰번에서 출발해 오는 2025년 가을 프랑스 됭케르크 해안에 도착하는 여정 중에 베네치아에 잠시 머무르고 있다. 이게 왜 지금 내셔널 파빌리온에 있는 걸까, 궁금증을 참지 못해 웹사이트에서 전시와 동명의 프로젝트인 ‘페티코트 정부’(@petticoatgovernment.party)에 대한 소개 글을 읽다 보니 이런 구절이 눈에 띄었다. “이 프로젝트는 하나의 합창과 같은 움직이는 작업으로, 서로 공유되고 즐거운, 실비아 페데리치가 ‘즐거운 전투성’이라고 부르는 바를 떠올리게 하는 집단적이고 분야를 넘나드는 조직이 이끈다.” 그리고 실제 이 프로젝트가 이미 여러 장소를 돌면서 현지의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잠시 쉬어 가는 장소라는 표현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찐’이었던 것이다.

무릇 내셔널 파빌리온에는 그 나라에서 가장 유명하고 소위 잘나가는 작가를 선발해 ‘국가 대표’를 시켜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벨기에의 행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벨기에 방방곡곡을 넘어 이웃 나라까지 돌아다니면서 일곱 개의 거인 인형을 만들고, 현지인과 친구가 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여러 사람이 마치 작은 정부를 꾸리는 것 같은 활동을 실현하는 와중에 잠시 비엔날레에 들렸다니.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이렇게 날려 먹어도 되냐고 묻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비엔날레에서 한 국가가 내셔널 파빌리온을 활용해 (그리고 대개 그 나라의 세금을 써서)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은지는 그야말로 그 나라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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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내셔널 파빌리온의 여정을 그린 지도. 이탈리아와 유럽의 지도가 뒤집혀 있다. (벨기에 내셔널 파빌리온 웹사이트에 게재된 이미지 발췌)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그 나라 출신의 유명한 작가가 대단한 전시를 선보이는 일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올해 벨기에는 그런 이슈를 그리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벨기에의 정치 구조와 이에 따른 내셔널 파빌리온 운영 방식을 알아보면 이런 독특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벨기에는 지역과 공동체가 합쳐진 연방국으로 크게 세 개의 공동체로 구성된다. 벨기에라는 하나의 국적을 공유하면서 동시에 별개의 주체인 이 공동체들은 내셔널 파빌리온 건물도 돌아가면서 사용한다. 참고로 올해 내셔널 파빌리온의 전시는 벨기에-프랑스어 공동체인 왈롱-브뤼셀 연방 차례였다.

이런 게 바로 ‘가진 자의 여유’라고 하는 걸까. 벨기에 내셔널 파빌리온을 살펴볼수록 벨기에의 문화 주제들이 생각하는 비엔날레 참여는 어떤 작가를 더 주목받도록 만들거나, 일생일대의 기회처럼 전시를 치르는 태도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벨기에 내셔널 파빌리온은 ‘YCP(Young Curators Programme)’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여덟 명의 젊은 큐레이터를 뽑아 비엔날레 기간에 각자 한 달씩 베네치아에 머무르며 전시를 관람하고, 평소 관심 있던 주제를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격년마다 아티스트와 큐레이터를 갈아 끼워가며 소모적으로 전시를 치르는 비엔날레의 특성상, 무척 예외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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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내셔널 파빌리온이 YCP의 일환으로 선정한 젊은 큐레이터들 © Belgian Pavilion

● 독립 전시로 진행한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

비엔날레 공원에 한국의 내셔널 파빌리온이 생기기 전 마지막으로 내셔널 파빌리온을 지은 나라는 바로 일본이다. 그런 일본이 오는 2026년 내셔널 파빌리온 건립 6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연다. 멋진 제목을 붙이고, 지금까지 그곳에서 열린 모든 전시의 참여 작가들이 거의 모두 참여해 작품을 한 점씩 보여주는 큰 전시다. 전시 예산을 무척 넉넉히 책정했는데, 내셔널 파빌리온에 드는 평소 예산의 4~5배가량으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나 광주에서 열리는 광주비엔날레를 거뜬히 치를 수 있는 규모라고. 그리고 오프닝에는 지금까지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를 기획했던 거의 모든 큐레이터와 참여 작가를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개최한다. 특별히 유명한 방송 진행자까지 베네치아로 모셔 온단다. 잠시 생각해 보자. 일본 미술계에 속하지 않거나 일본인이 아닌 사람의 눈에는 이 프로젝트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처럼 보일까?

한국에서도 웬만해선 마주치기 어려운 전 직장, 전전 직장의 상사―큐레이터 혹은 아티스틱 디렉터―들이 한 걸음 건너 한 명씩 있어서 난감하면서도 즐겁고, 동시에 곤혹스러웠던 오프닝 자리의 주인공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기획한 전시 «모든 섬은 산이다»였다. 더불어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한국계 미술인 동료와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와중에, 예전 대학교 축제 사회를 보다가 화려한 불꽃놀이를 향해 “여러분의 등록금이 허공에서 팡팡 터지고 있습니다!”를 외쳤다는 어느 코미디언의 입장을 상상하게 되었달까? 수십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전시 하나 치곤 다소 과하다 싶었는데, 오프닝 행사 진행자로 방송인 겸 통역가 안현모 씨가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베네치아 사업가 가문 출신 배우자와 결혼한 한국인 친구로부터 베네치아의 건물주가 외국인 단기임대자에게 어떻게 ‘눈탱이를 치는지’ 알게 되면서 많은 부분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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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백남준 작가가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을 만난 뒤 시원하게 들이키던 박카스 이야기를 꺼내며 «모든 섬은 산이다» 전시 오프닝 건배사로 모두에게 박카스를 권하는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그 뒤로는 행사 진행과 통역을 맡은 안현모 씨가 보인다. 달을 연상케 하는 문양이 돋보이는 드레스는 디자이너 지춘희가 지난 2007년 선보인 백남준 추모 컬렉션 의상이다. © 한국문화
예술위원회

이 전시는 왜 기획된 걸까? 웹사이트에 따르면, «모든 섬은 산이다»는 자르디니 공원의 마지막 국가관인 한국관의 건립 30주년을 한 해 앞두고 이를 기념하는 전시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30주년을 기념하는 게 아니라 이를 한 해 앞두고 다음 해에 있을 30주년을 기념하는 ‘신개념 전시’라 하겠다. 사실 한국관 건립 30주년을 기념하는 건 202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건축전(베네치아 비엔날레는 매년 미술전과 건축전이 번갈아 가며 열린다)의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의 몫이다. 이는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내년 내셔널 파빌리온의 전시를 기획하는 CAC가 강조하는 바이다. «모든 섬은 산이다»는 만약 베네치아에 다시 한번 들를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꼭 한 번 다시 살펴보고 싶은 전시다. 전시장에 배치한 작가 34명의 작품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무엇보다 이 전시가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고민해 보고 싶다. 이는 결국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과연 무엇을 하는 곳이고,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점의 문제이기도 하다. 전시 제목으로는 무척 멋진 ‘모든 섬은 산이다’라는 표현과는 달리, 이 전시가 통합적으로 다루는 역대 한국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는 매번 단타에 집중하며 산처럼 대단한 일을 해왔지만, 동시에 ‘모든 산을 섬으로’ 만들어 왔던 것은 아닐까?

한편, «한겨레》에서 오랫동안 미술 분야를 담당한 노형석 기자는 이 전시에 대해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기사를 썼다. 대략 30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전시 예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특별전 기본 경비는 혈세다. 국민 대부분이 현장에 가서 향유하지 못하고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가질 만한 이슈를 잡은 기획도 아니다. 왜 거액을 써야 하는가.”

혹시 한국 내셔널 파빌리온과 베네치아 비엔날레 참가에 대한 역사가 궁금하다면 이번 특별전 웹사이트에서 더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일전에 베네치아 비엔날레 재단에서 운영하는 아카이브에 직접 방문한 적이 있다. 두 눈으로 확인해 보니, 지금으로부터 5~60년 전인 1960년~1970년대에도 이미 한국의 여러 작가나 미술 단체가 비엔날레에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며 사무국에 편지와 문서를 보냈었다. 재단은 이에 대한 원본 서류를 아카이브 시설의 보존 상자에 보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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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특별전시 웹사이트

● 독립 전시로 진행한 «Zeng Fanzhi: Near and Far/Now and Then»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과장된 표정과 캐리커처를 연상시키는 이상한 신체 비율로 요약되는, 소위 ‘중국식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 나는 아주 오랫동안 쩡판즈Zeng Fanzhi를 딱 이 정도로만 생각했다. 엄청난 고가로 팔린 작품으로 화제가 되면 될수록, 점점 더 관심이 가지 않았달까? 막상 그가 어떤 작업을 하는지 깊이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가장 비싼 작가’로 호출되는 것에 염증을 느끼며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런데 올해 베네치아에서 열린 쩡판즈의 전시 «Zeng Fanzhi: Near and Far/Now and Then»에서 만난 작품들은 정말 너무 좋아서 그날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숙소에 돌아가 감상을 다시 음미하고 싶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전시장의 거대한 작품들은 내가 알고 있던 전형적인 중국 팝아트 작품과는 확연히 달랐고, 성스러운 느낌마저 자아냈다. 최근 몇 년간 작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증을 일으킨 작품들은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인 2019년부터 약 4년 동안 작업한 산물로, 일본의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전시 공간에서 마치 성화(聖畵)를 연상케 하는 방식으로 공개됐다.

전시장 입구에 비치한 쩡판즈의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é’(출간 시점을 기준으로 작가의 모든 작품을 목록화해 정리한 책)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쩡판즈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 여부와 관련 없이 그는 이미 10대 후반부터 최고의 작가로 칭송받으며 활동을 펼쳐왔고, 계속해서 작업을 갈고 닦았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40여 년을 지속한 결과가 바로 베네치아에서 펼쳐진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작품들이었다. 동양적이면서 서구적이고, 불교적이면서 기독교적이라서, 만약 어느 날 다른 문명의 외계인이 나타나 지구를 대표할 당대 미술가를 한 명 내놓으라고 하면 쩡판즈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작품들. 웬만한 전시 공간에서는 소화하기 힘든 거대한 회화 작품은 2~3층 높이의 구조물을 세워도 충분할 만큼 천장이 높은 르네상스 시대 건물에 놓인 덕분인지 유난히 성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그런데 쩡판즈에 대한 새로운 발견보다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이 엄청난 전시의 주최자를 살펴보는 일이었다. 이제 겨우(?) 60세가 된 중국 현대미술의 대가를 위해 특별전을 조직한 주인공은 바로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현대 미술관인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심지어 별도의 입장료 없이 누구나 관람할 수 있도록 대중에 활짝 공개했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미술관이 왜 굳이 수고롭게 베네치아까지 와서 전시를 열었을까? 전시 브로슈어를 자세히 살펴보니 LACMA에는 중국 미술 담당 큐레이터가 존재하고, 중국·한국·동남아시아 미술을 전담하는 부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침, 쩡판즈의 전시가 열리는 장소 근처의 오래된 성당에서는 또 다른 중국 작가 유홍Yu Hong의 전시 «Another One Bites the Dust»가 열리고 있었는데, 여기서도 중국인 화가가 마치 인류의 대표가 된 것처럼 인류의 고난을 묘사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흥미롭게도 이 전시 역시 미국 뉴욕에 있는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의 산하 조직 ‘아시안 아트 이니셔티브Asian Art Initiative’이 주도했다. 국가 차원에서 이뤄지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내셔널 파빌리온도, 비엔날레 조직위원회에 인증받은 공식 병행 전시도 아니지만, 서구 미술사를 성립하는 주요 관계자라 할 만한 거대 미술관들이 앞장서서 비서구 미술을 선보이는 전시를 기획한 점은 확실히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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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 넓이의 오래된 성당에서 열린 유홍의 전시. © 구겐하임 미술관 아시안 아트 이니셔티브

● 러시아인데 볼리비아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 «looking to the futurepast, we are treading forward»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또다시) 침공하면서, 당시 베네치아 비엔날레 러시아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에 참여한 작가 키릴 사브첸코프Kirill Savchenkov, 알렉산드라 수카레바Alexandra Sukhareva, 큐레이터 라이문다스 말라사우스카스Raimundas Malašauskas는 공동 성명을 내며 전시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러시아 내셔널 파빌리온은 비엔날레 기간에 문을 굳게 닫은 채 텅 빈 상태로 유지됐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비엔날레 개막 한 달 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6년 만에 치른 대통령 선거에서 무려 다섯 번째 승리를 거두었고, 볼리비아의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은 87.28%라는 푸틴의 득표율을 치하했다.

볼리비아와 러시아는 최근 급속도로 절친이 되는 중이다. 러시아가 사실상 미국과 전쟁을 벌이며 여러 분야에서 제재를 받는 가운데, 볼리비아는 러시아와 함께 리튬 광산 채굴과 원자력 연구 협약을 맺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러시아는 자르디니 공원의 목 좋은 곳에 자리 잡아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핵심 요지라 부를 만한 자국의 내셔널 파빌리온을 볼리비아에 통째로 빌려주기로 했다. ‘미래과거를 바라보며,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라는 다소 혼란스러운 제목의 전시 내용에 대해서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전시장 입구 벽에 붙은 월텍스트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공유하는 게 좋을 듯싶다.

보통 전시 주제와 참여 작가를 소개하는 데 집중하는 월텍스트의 성격과는 반대로, 볼리비아 전시의 월텍스트는 러시아와 볼리비아의 우정과 친선, 두 나라의 아름다운 미래, 이 멋진 기회를 준 러시아에 대한 감사의 말로 가득했다. 러시아는 요즘 미국과 그리 친하지 않은 세계 각국에 ‘사랑의 폭탄’(love bomb)을 퍼붓고 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와도 볼리비아와 비슷한 협약을 맺었고, 지난 6월 말에는 푸틴이 북한을 친히 찾아가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했다. 그러니 202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이나, 2026년 국제미술전에서는 또 다른 ‘러시아의 절친’이 전시를 선보일지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이 건축이나 미술 전시의 주최로 출현하는 광경을 베네치아에서 보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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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건물 입구에는 러시아 라고 쓰여 있는데, 전시를 알리는 현수막은 볼리비아 를 외치고 있는 러시아 내셔널 파빌리온 풍경. © Jaeyong Park

● 불가리아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 «The Neighbors»와 대한민국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 «ODORAMA CITIES»

“저는 거기에서 한국의 냄새나 향을 맡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어요. 전시를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요.” 이번 비엔날레에서 불가리아 내셔널 파빌리온(@bulgariavenicebiennale)의 전시 기획을 맡은 큐레이터 바실 블라디미로프Vasil Vladimirov는 오랫동안 치운 적 없는 할머니의 방에서 날 것 같은 냄새가 자욱한 불가리아 전시장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불가리아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 «The Neighbors»는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를 겪은 바 있는 불가리아가 공산주의 일당독재 시절 유지했던 국가보안위원회(비밀경찰)의 피해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비밀경찰은 불가리아에서 아직 논쟁적인 주제다. 수많은 피해자가 있지만, 공식적인 증거가 딱히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1989년 체제 붕괴와 동시에 수많은 자료가 파기되었고, 2006년에는 비밀경찰 문서보관소 소장이 자료 공개를 몇 주 앞두고 의문사했다. 결국 남아 있는 것은 피해자들의 기억과 그들의 증언뿐. 이번 전시는 공산주의 시절에 있었을 법한 오래된 가구들을 놓은 가상의 집처럼 공간을 꾸미고, 그곳에 놓인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오래된 자료 화면과 (영어로 번역, 녹음된) 증언들이 흘러나오게 했다. 이 공간을 은은하게 채운 냄새는 가리거나 덮을 수 없는 무언가의 존재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지금껏 해결되지 않은 불가리아의 비극적인 현대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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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디니 공원과 멀리 떨어진 공간을 빌려 기획한 불가리아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 내부는 응접실과 침실, 부엌이 존재하는, 그러나 아무런 벽 없이 뚫린, 집처럼 꾸몄다. © Jaeyong Park

그런 전시를 기획해서였을까. 불가리아 큐레이터가 대한민국 내셔널 파빌리온(@korean_pavilion) 전시에 보인 반응은 기대와 결과가 서로 부합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실망감을 품고 있었다. «ODORAMA CITIES»는 “한반도의 향기 초상”을 그리기 위해 600명에 이르는 사람에게 “한국(코리아)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을 물어본 결과물이라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남한도 북한도 아닌 한반도를 향으로 그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냄새 혹은 향이란 무척 주관적인 것이기에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품을 테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민국 내셔널 파빌리온에서 나던 향기 혹은 어떤 냄새는 관람객이 원하던 바가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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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내셔널 파빌리온에서는 구정아 작가의 세계관을 나타내는 존재, 우스Ousss가 2분에 한 번씩 콧김을 뿜어낸다. © Jaeyong Park

베네치아에 머무르는 동안 전시장을 네다섯 번쯤 들러 무언가를 느껴보려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내 코는 (그리고 불가리아 큐레이터의 코, 베네치아에 동행한 일행의 코 역시) 전시에서 말하는 미묘한 16가지 향기를 섬세하게 감각하는 데 실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르디니 공원은 온갖 감각을 자극하는 작품과 다양한 인종이 뿜어내는 체취에 반쯤 점령당한 상태였다. 어쩌면 나는 전시가 강조한 ‘향기 메모리’ 대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거실 너머에서 밀려오던 갓 지은 밥의 향기,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며 맡던 매연 냄새처럼 좀 더 직설적인 냄새의 초상을 기대한 걸까. 결국 내가 “한반도의 향기 초상”의 한 조각이라도 제대로 맡을 수 있었던 건 한국에 돌아온 이후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옆에 있는 논픽션 삼청점에서 베네치아 비엔날레 대한민국 내셔널 파빌리온을 위해 만든 향수 ‘오도라마 시티’를 무료로 맡아볼 수 있었던 것! 비록 향수와 조향에 조예가 부족한 내게는 그저 또 다른 논픽션 향수처럼 다가왔지만… 참고로 대한민국 내셔널 파빌리온 웹사이트의 ‘Scent Memories’에서는 많은 사람이 제출한 ‘향기 메모리’를 열람할 수 있다.

●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공식 병행 전시로 참여한 방콕 아트 비엔날레와 광주비엔날레

‘party pooper’라는 표현이 있다. ‘모임의 흥을 깨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올해 비엔날레에서는 태국 방콕과 대한민국 광주에서 열리는 비엔날레 두 곳이 그 역할을 한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주최 측인 방콕 아트 비엔날레(BAB)와 광주비엔날레의 생각은 다를 테다. 방콕 아트 비엔날레는 태국을 대표하는 비엔날레로 자리매김하고 싶은 마음을 국제적으로 표현할 자리가 필요했던 것 같고, 광주비엔날레는 곧 다가오는 30주년을 맞이해서… 근데, 글쎄. 베네치아에서 왜 광주비엔날레 30주년을 기념하려고 했을까?

참여 작가만 300명이 넘는 주제전과 90개국에서 기획한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만으로도 그 규모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굳이 비엔날레에 전시장을 마련한 방콕 아트 비엔날레 전시와 광주비엔날레 전시는 대부분의 관람객에게 방문 우선순위의 하위권에 머무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물론, 나는 남의 비엔날레에 와서 차린 두 비엔날레의 전시를 꼼꼼히 다 챙겨보았다. 방콕 아트 비엔날레 전시는 호기심으로, 광주비엔날레 전시는… 애국심으로?

두 전시 모두 그럭저럭 볼만하다 싶었으나,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남는 건 여전하다. 두 비엔날레는 대체 왜 무시무시한 공간 임대료와 엄청난 작품 운송료를 치르면서까지 베네치아에서 전시를 치르고 싶었던 걸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두 전시의 웹사이트와 보도자료를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반드시 베네치아에서 전시해야만 하는 이유는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전시를 주최한 곳을 나무라긴 어렵다. 이 전시를 대체 왜 지금 베네치아에서 봐야 할까 싶은 전시가 어디 한둘인가. 아쉬움도 결국 일말의 애정이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것일진대…

참고로 올해 비엔날레에서는 내셔널 파빌리온과 공식 병행 전시 외에도 6개에 달하는 한국 미술 전시가 열렸다. 궁금한 사람은 신문 기사를 통해 간략히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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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자르디니 공원과 가까운 대로변 목 좋은 곳에 잡은 광주비엔날레 30주년 기념 전시장 입구. © Jaeyong Park

(우) 방콕 아트 비엔날레 전시장 입구에 놓인, 그들의 세계 속 우리의 위치 라는 역설적인 제목의 출판물. © Jaeyong Park

(상) 자르디니 공원과 가까운 대로변 목 좋은 곳에 잡은 광주비엔날레 30주년 기념 전시장 입구. © Jaeyong Park

(하) 방콕 아트 비엔날레 전시장 입구에 놓인, 그들의 세계 속 우리의 위치 라는 역설적인 제목의 출판물. © Jaeyong Park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기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대해, 그리고 현재 베네치아에서 열리는 100여 개의 전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아직 너무나도 많다. 그렇다고 이번 ‘현대미술 설명서’를 영원히 발행하지 못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혹시나 언젠가 비엔날레 관람을 위해 짧든 길든 베네치아에 들를지도 모르는 여러분을 위해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몇 가지 방법을 제안하려고 한다. 작은 행사 하나를 꾸릴 때도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이 드는 베네치아에서 전시(혹은 작품)을 감상할 때 이런 점을 한번 생각해 보길 권한다.

1. 전시를 주최한 주체는 어디인가? – 이를테면, 공공기금으로 만든 전시인가? 혹은 상업적인 목적이 강한 전시인가?


2. 전시를 기획한 주체는 누구인가? – 명확한 방향성을 지닌 큐레이터나 집단인가? 혹은 기획자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가?


3. 전시를 주최하거나 기획한 주체는 해당 전시가 어떤 위치에 놓이기를 원할까? – 다시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나 vs. 내가 원하는 나 vs. 남이 바라보는 나 vs. 남이 바라는 나’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각각의 방향이 일치하는가 아니면 따로 노는가?


4.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지금의 미술’을 볼 수 있는 자리라면, 지금 눈앞에 놓인 전시는 과연 이 세계의 ‘지금’과 얼마나 호흡을 맞추고 있을까? 혹은… 그러거나 말거나 그저 비엔날레에 속한다는 사실만으로 흥겨워하고 있는가?

그리 복잡하지 않은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 시간은 짧고 봐야할 전시는 많은 입장에서 베네치아의 여러 전시를 좀 더 즐겁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당신 만의 ‘알곡과 쭉정이’ 목록을 작성하고, 주변 사람과 의견을 나누는 것도 무척 좋겠다.

덧. 베네치아에서의 몇 가지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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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에 열린 아티스트 토크. 카셀 도쿠멘타 예술 감독을 맡았던 캐롤린 크리스토프-바카르기예프Carolyn Christov Bakargiev와 작가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가 참석한 행사는 사람이 너무 몰리는 바람에 문 앞에서 돌아서는 이도 많았다. © Jaeyong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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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유영국 작가의 전시가 열린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 건물에서 동시에 열린 비서구 탈식민 예술 포럼의 퍼포먼스. 예정에 없던 폭우로, 내부 전시장에서 야외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한국 모더니즘 회화의 대가가 그린 작품 앞에서 과거 식민 지배를 향해 fuck 을 반복해서 외치는 퍼포머를 보는 기분은… 어딘지 모르게 신선했다. © Jaeyong Park

(우) 위험에 처한 예술가(Artist at Risk) 파빌리온 전시는 유네스코 베네치아 사무소 사무실 한쪽을 전시장으로 빌리며 집기를 그대로 활용했다. 2013년부터 전쟁 등으로 터전을 잃은 예술가를 도운 단체에 대한 관심을 자아냈다. © Jaeyong Park

(상) 유영국 작가의 전시가 열린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 건물에서 동시에 열린 비서구 탈식민 예술 포럼의 퍼포먼스. 예정에 없던 폭우로, 내부 전시장에서 야외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한국 모더니즘 회화의 대가가 그린 작품 앞에서 과거 식민 지배를 향해 fuck 을 반복해서 외치는 퍼포머를 보는 기분은… 어딘지 모르게 신선했다. © Jaeyong Park

(하) 위험에 처한 예술가(Artist at Risk) 파빌리온 전시는 유네스코 베네치아 사무소 사무실 한쪽을 전시장으로 빌리며 집기를 그대로 활용했다. 2013년부터 전쟁 등으로 터전을 잃은 예술가를 도운 단체에 대한 관심을 자아냈다. © Jaeyong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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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20세기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예술가의 다양한 작품과 함께 놓인 한국 작가 이쾌대의 작품. 나는 여기서 비서구 예술가의 작품으로 미술사를 새로 쓰는 통쾌함을 느꼈으나, 한국 취재진 중 누군가는 한국 대가의 작품을 왜 제3세계 작품과 같이 두냐 라는 식으로 볼멘소리했다고. 여러분, 지금은 21세기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 Jaeyong Park

(우) 우크라이나는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를 확장해 지금 폭격이 일어난다면 대피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대피소 안내 포스터 를 베네치아 전역에 붙였다. © Jaeyong Park

(상) 20세기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예술가의 다양한 작품과 함께 놓인 한국 작가 이쾌대의 작품. 나는 여기서 비서구 예술가의 작품으로 미술사를 새로 쓰는 통쾌함을 느꼈으나, 한국 취재진 중 누군가는 한국 대가의 작품을 왜 제3세계 작품과 같이 두냐 라는 식으로 볼멘소리했다고. 여러분, 지금은 21세기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 Jaeyong Park

(하) 우크라이나는 내셔널 파빌리온 전시를 확장해 지금 폭격이 일어난다면 대피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대피소 안내 포스터 를 베네치아 전역에 붙였다. © Jaeyong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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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모처에서 열린, 대한민국 내셔널 파빌리온 애프터 파티.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전시를 본 터라 반쯤 넋이 나가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오후 10시쯤 도착한 파티장에서 구정아 작가를 제외한 한국인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작가의 활동 기반이 유럽이라는 것도 한몫했지만, 파티에 대한 문화적 차이가 컸다. 한국 취재진과 관계자들은 파티장이 문을 여는 오후 7시쯤 입구 앞에 줄 서서 기다리다가 핑거푸드와 음료를 먹고 떠난 반면, 이런 파티가 익숙한 유럽 아트 피플은 여유롭게 저녁 식사를 하고 술도 한 잔쯤 먹은 후 느지막이 파티장에 나타나 서로 친구가 되기 시작했다. ©Jaeyong Park

Writer

박재용(@publicly.jaeyong)은 기고가, 통·번역가, 큐레이터, 교육자이자 동료와 함께 동시대 예술 및 이론 서가 ‘서울리딩룸’을 운영한다. 리서치 밴드 ‘NHRB’(@nhrb.space)의 멤버이며, ‘서촌코미디클럽’(@westvillagecomedyclub)을 진행한다. 2024년 7월 현재, ‘큐레이팅 스쿨 서울’(@curating.school.seoul) 개교를 준비 중이다. ‘현대미술 설명서’에서 다루어 주었으면 하는 게 있다면 언제나 연락을 환영한다. seoulreadingroo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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