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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모듈 가구, 어디까지 알아보셨나요?

Writer: 전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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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슈의 테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깔끔하고 여기저기 잘 어울리면서 기깔 나는 물건이 탁월한 기능과 효율까지 타고났다면 이를 사랑하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요. 요즘 잘 꾸며놓은 주거 공간, 사무 공간 할 것 없이 하나씩은 꼭 있을 법한 마법의 아이템은 바로 모듈 가구입니다. 그런데 모듈 가구 하나 사려면 정말 골치 아픈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다양한 브랜드 중에 무엇을 어떻게 골라야 하나 선택 장애가 오기 쉽고, 저렴한 가격에 겉모습만 그럴듯한 제품이 넘쳐나니 지름신에 혹해서 장만했다가 길거리에 버리지도 못하고 짐 덩어리가 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이럴 때는 정석이 최고입니다. 모듈 가구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며 만인의 호감을 얻은 검증 받은 근본 브랜드만 골라보았습니다. 여러분의 소비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아티클에서 모듈 가구의 세계와 영접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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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ntana

몇 년 전부터 모듈 가구가 한국에 상륙해 인기를 끌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거의 광풍이 풀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난다 긴다 하는 인테리어 고수뿐 아니라, 신혼부부, 1인 가구에도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모듈 가구. 자연스레 카드를 긁기 전에 과연 내가 모듈 가구에 대해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볼 때다.

사실 ‘모듈module 가구’라는 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콩글리시다. 외국에서는 ‘모듈러modular 가구’로 지칭한다. 모듈이나 모듈러나 발음 비슷하고 뜻 통하면 되지 않나, 싶지만 엄연히 차이가 존재한다. 모듈은 규격화된 구성 요소를 말하며, 모듈러는 이런 모듈을 활용해 전체를 구축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곧, 모듈러 가구는 모듈이란 부품으로 완성물을 만드는 방법론에 가깝다. 모듈러라는 표현이 입에 붙지 않는다면, ‘모듈식 가구’ 혹은 ‘모듈형 가구’라고 말하는 게 옳다. 하지만 이미 모듈 가구라는 단어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것 같으니, 잔소리는 그만하고 독자가 애호할 만한 브랜드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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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듈식 가구의 대명사인 USM. © USM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유명한 모듈식 가구 브랜드는 단연 스위스의 USM이다. 세간에는 ‘세계 최초의 모듈식 가구’로 알려져 있는데, 마케팅 수사에 가깝다. 모듈식 가구는 20세기 중반부터 많은 디자이너가 조금씩 발전시킨 개념이다. 특정 요소가 개별화되는 흐름으로 모듈식 가구의 진화를 살펴본다면, 1950년대 세간의 시선을 끈 찰스&레이 임스 부부의 ‘임스 스토리지 유닛(ESU)’, 조지 넬슨의 수납 및 선반 시스템 ‘CSS’, 놀Knoll의 창립자인 플로렌스 놀의 ‘라운지 컬렉션’ 등 다양한 사례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USM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결코 아니다. 규격화된 몇 가지 부품만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생성하는 USM은 지금 이 시대에 봐도 충분히 혁신적이며, 가구에서 모듈성(modularity)을 온전히 구현한 개척자다. 금속 창호를 만들던 회사가 오늘날 모듈식 가구의 대명사가 된 계기는 스위스 건축가 프리츠 할러와의 협업이다. 1961년 새롭고 유연한 공장 설계를 요청받은 할러는 USM 창호 제품에서 영감받아 철골을 활용해 근사한 모듈식 건물을 지었는데, 분위기가 너무 현대적이라 공간에 어울리는 오피스 가구가 마땅치 않자 건축물에 사용한 방법을 뒤틀어 철제 가구를 내놓았다. 바로 1965년 특허를 딴 ‘USM 할러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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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M 할러 시스템을 만든 건축가 프리츠 할러. © U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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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할러가 설계한 USM 공장 전경. © U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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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길이의 철제 튜브, 이를 연결하는 혁신적인 볼 조인트, 그리고 프레임을 채우는 철제 패널을 결합하면 단단하고 아름다운 가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 USM은 ‘스위스 메이드’를 전면에 내세워 최고급 가구를 지향한다. 덕분에 가격이 꽤 사악한데 거실에 작게 놓을 법한 가로 3단, 세로 2단짜리 구조물이 500만원 정도다. 비싼 가격에 대한 이유도 나름 존재한다. 튜브와 볼, 패널을 추가 구매하면 가구를 확장할 수 있고, 공간이 작아지거나 사용성이 줄어들면 도리어 축소할 수 있다. 즉, 초기 투자 비용을 감당하면 평생 활용할 수 있지만, 그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상당히 많은 유닛을 확보해야 하니 결국 자금력이 필수다. 그러나 극도로 간결하고 아름다운 미니멀리즘 디자인 덕분에 주거 공간과 사무 공간 모두에 잘 어울리며 유행에 구애받지 않기에, 잘만 보관하면 대물림도 가능하고, 독립, 분가, 이혼(?) 등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고자 본사 차원에서 DIY를 금지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권유하니 중고장터에서 유닛을 구매하더라도 혼자 힘쓰지 말길. 대신 정품이라면 묻고 따지지 않고 정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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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M 할러 시스템은 필요에 따라 계속 확장할 수 있다. © U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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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에 바이크숍 내부를 USM 할러 시스템으로 교체해버렸다. © USM

모듈식 가구는 규격화된 요소가 핵심이기 때문에 그 형태가 미니멀리즘으로 흐르는 경향이 강하다. 간결하고, 단순하며, 시대를 타지 않는 영구적인 가구를 좋아한다면, 비초에Vitsœ를 추천한다. 1959년 독일에서 가구를 판매하던 닐스 비초에와 디자이너 오토 자프가 세운 비초에의 철학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더 나은 삶이란 낭비하지 않고 줄이는 것이며,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이다.’ 게다가 비초에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산업 디자이너 중 한 명이자, 전설적인 미니멀리즘 디자이너로 불리는 디터 람스가 가구 디자인을 맡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전자제품회사 브라운에 다니던 람스는 회사 CEO에게 허락을 맡고 비초에의 첫 번째 가구를 디자인했는데, 그게 바로 영원한 스테디셀러인 ‘606 유니버설 쉘빙 시스템Universal Shelving System’이다. 담백한 디자인에 간단한 구조, 높은 내구성을 바탕으로 얇은 강판 소재의 선반, 서랍, 트레이, 책장 상판, 옷걸이 등 여러 옵션을 결합하는 606 유니버설 쉘빙 시스템은 각기 다른 요구를 충족하는 기적을 발휘한다. 두 가지 너비와 네 가지 깊이의 선반을 조합하면 오피스 공간에 어울리는 스토리지가 되거나 서재로 변신하고, 침실 옆 드레스 룸에 설치하면 패션에 관한 다양한 아이템을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다. 아이들이 뛰노는 거실에 놓으면 장난감 선반으로 사용하며, 주방에서는 조리도구를 놓는다. 선반의 폭과 위아래 간격을 어떻게 조절하는지에 따라 우아하고 여유롭거나, 실용적이고 알뜰해지니 결국 쓰는 사람 마음에 달린 요물 같은 만능 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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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방에 설치한 606 유니버설 쉘빙 시스템. © Vits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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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침실에 설치한 606 유니버설 쉘빙 시스템. © Vitsoe

(우) 606 유니버설 쉘빙 시스템은 주방에도 유용하다. © Vitsoe

컬러를 좋아한다면 덴마크 가구 브랜드 몬타나를 놓치지 말자. 프리츠 한센에서 CEO를 지내다 1982년 자신의 회사를 차린 페터 라센은 ‘몬타나 시스템’이라는 모듈식 가구를 개발했다. 6가지 가로 너비와 6가지 세로 높이를 조합한 36가지 기본 모듈을 바탕으로 4가지 깊이, 43가지 색상을 통해 정말 다채로운 개인화가 가능하다. 모듈 바닥을 그대로 놔둘지, 다리나 바퀴를 달지, 모듈에 문 기능을 더한다면 손잡이를 붙일지, 푸시로 할지, 유리로 처리할지, 공간을 나눈다면 선반, 서랍, 트레이 기능 중 무엇을 넣을지, 예상 시나리오를 짜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특히 앞서 소개한 두 브랜드와는 다르게 패널 소재로 12mm MDF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가 훨씬 부드럽고 따스하다. 간결하면서도 인간적인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특징과 개인 기호에 맞춘 다양성을 결합한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흐뭇해지는 애정이 생긴다. 컬러 플레이가 선사하는 자유롭고 활기찬 느낌은 집 안 공기까지 바꾼다. EU 에코라벨 인증을 받아 독성물질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 또한 혹여 모를 MDF 재질에 대한 의심을 거두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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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모듈에 다양한 색을 적용해 생동감이 넘친다. © Mont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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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일한 모듈에 색채만 적용해도 화사해진다. © Montana

모듈식 가구가 일찍부터 발전한 유럽 브랜드만 나타나서 아쉬운 사람을 위해 ‘메이드 인 코리아’도 하나 찔러본다. USM이 본격적으로 열어젖힌 모듈성을 극도로 끌어올린 빌드웰러builddweller다. USM 할러 시스템을 만든 주인공이 건축가였던 것처럼 빌드웰러를 공동 창업한 김유석, 정우열도 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 설계를 하다가 가구 세계로 넘어왔다. 건물과 인테리어를 부수고 새로 짓는 사이클이 점점 빨라지는 상황에서 만들고 버리는 짓거리의 반복이 매우 비효율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무에서 유를 만들고, 유에서 무로 돌아가는데 거리낌 없는 모듈식 가구에 주목했다. 특정 공간에서 사용하던 가구를 다른 공간에 옮겨서 쓰임새를 바꿀 때 어떤 시스템을 취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중 최대한 적은 부품을 손쉬운 방법으로 결합하기 위해 화학적인 접합이 아니라 물리적인 체결 방식을 선택한 건 당연한 귀결이다. 그 핵심에는 투명 플라스틱 조인트가 있다. 엔지니어링 소재로 쓰이는 폴리카보네이트로 제작한 조인트는 망치로 내리쳐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데, X, Y, Z 축 방향에 맞춰 6면에 나사 구멍을 냈다. 그리고 건설 산업에서 사용하는 기다란 스테인리스 스틸 파이프를 기본 뼈대로 삼고, 구조적인 안정성을 위해 다리 건설에 활용하는 트러스 구조의 빗변 부분 부재인 브레이싱과 머리가 납작한 볼트를 패널과 함께 조인트에 결부시킨다. 덕분에 건축물 느낌이 물씬 나는 선반, 스토리지, 테이블, 의자가 탄생한다. 빌드웰러를 대표하는 패널 소재는 수족관 유리 대신 사용하는 아크릴. 같은 색상의 패널이 겹칠 때 농도가 달라지는 특성과 아크릴 패널에 어스름하게 비치는 내부의 모습은 오묘한 이미지를 형성하며 빌드웰러만의 매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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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노란 아크릴과 흰 아크릴이 겹쳐서 그래디언트 효과를 낸다. © Builddweller

(우) 에메랄드색 아크릴이 겹쳐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 Builddw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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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반부터 의자까지 다양하게 변신한다. © Builddweller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옵션을 지정할 수 있고, 타고난 유연함 덕분에 확장과 축소가 용이하며, 간결한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특성을 극대화하고, 팬데믹으로 인한 집과 사무실의 경계가 무너진 상황에 적합한 적응력까지, 모듈식 가구의 장점은 요즘 소비자를 혹하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 동시에, 지속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번 살 때 제대로 알아봐야 하며, 오래오래 쓸 수 있도록 지속적인 애정을 보이는 것은 소비자로서 참고해야 할 최소한의 미덕이기도 하다. 부디 겉보기에 멋있다고 유행에 휘둘리지 말고, 필요한 만큼 똑똑해지는 탁월한 소비 생활이 되길 기원한다.

덧. 위 글은 «조선일보» 럭셔리 라이프 스타일 섹션 ‘더부티크THE BOUTIQUE’에 기고한 원고를 편집했습니다.

Writer

전종현(@harry.jun)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등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고,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기아글로벌디자인센터와 함께 «기아 디자인 매거진» 창간 작업과 콘텐츠를 총괄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 기고 중이며, 동시대 한국의 기발한 창작자에 주목하는 «비애티튜드»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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