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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이슈에 관한 다양한 오피니언을 엿봅니다
«비애티튜드» 두 번째 이슈의 테마는 ‘스테레오타입’입니다. 게이가 좋아하는 음악에도 스테리오타입이 있을까요? 칼럼니스트인 김도훈 작가는 게이 커뮤니티를 휩쓸었던 디바들의 이름을 소환합니다. 그리고 외치죠. 게이 송가는 영원하지만 스파이스걸스와 이소라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그래서 겪었던 황당한 오해와 사건사고들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마돈나부터 보아까지 게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디바의 명단도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넌 게이 같지 않네.
이 말을 처음 들은 건 영국에서였다.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나온 소리였다. 당시, 그러니까 20년 전의 나는 얼터너티브와 헤비메탈로부터 벗어나 전자음악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귀에 가장 걸린 건 하우스보다는 하드코어 테크노, 드럼 앤 베이스나 싸이 트랜스였다. 당시 영국 시골에 살던 나는 런던을 방문할 때마다 ‘헤븐Heaven’에 가곤 했다. 헤븐은 천국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다. 당신도 그건 알 것이다. 당신이 모르는 게 있다면 런던의 천국은 진짜 천국보다 더 천국답다는 사실이다. 채링크로스역 지하의 방공호로 쓰이던 공간에 만들어진 이 클럽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큰 클럽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의 땀 냄새를 맡으며 길을 잃는 일은 너무나도 흔하다.
다만 나는 헤븐의 음악이 싫었다. S클럽7, 스파이스걸스 같은 영국 아이돌 댄스곡으로 시작된 레퍼토리는 대개 카일리 미노그의 지난 히트곡 메들리로 끝나곤 했다. 가장 감명적인 순간은 강렬한 스모키 눈화장을 한 남자가 보드카에 취해 비틀거리며 춤을 추는 나에게 다가와 “나 스파이스걸스 스타일리스트인데 내일 멜라니C(스파이스걸스 멤버다) 음반 발표 파티에 같이 가지 않을래?”라고 말한 때였다. 그건 다시 말하자면 ‘오늘 밤 나랑 잘래?’라는 문장의 수컷 공작새 버전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의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나는 스파이스걸스 따위는 관심 없어.” 그의 눈동자는 지진 강도 8.0 정도로 흔들렸다. 그리고 말했다. “넌 게이 같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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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나도 게이 같은 음악을 좋아한다. 나는 비교적 올드 게이이므로 바바라 스트라이샌드와 쥬디 갈란드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곤 한다. 마돈나의 2010년대 이전 앨범들과 카일리 미노그의 베스트 앨범은 바이블에 가깝다. 다만 나는 헤비메탈의 긴 기타 솔로나 하드코어 테크노의 육중한 베이스를 그만큼이나 좋아할 따름이다. 그리고 스파이스걸스를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잠깐.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쩌면 ‘나도 게이 같은 음악을 좋아한다’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이미 기분이 상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게이 같은 음악이라. 도대체 게이 같은 음악이란 어떤 것인가. 역사적인 배경이 좀 있긴 하다. 게이 음악의 스테레오타입은 1970~1980년대를 지나며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정치·사회적으로 핍박받던 게이 커뮤니티는 가련한 사연을 지닌 듯한 디바들의 목소리에 특히 강하게 끌렸다. 글로리아 게이너의 ‹I Will Survive› 같은 노래들이 왜 게이들의 송가로 받아들여졌는지 한번 생각해보라. 그러니 게이 같은 음악은 일단 역사적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게이 같은 음악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게이 동료들의 말에도 찬성한다. 모든 게이들은 개별적으로 다양한 존재다. 세상에는 우리가 ‘게이 음악’이라고 말하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음악을 모두 싫어하는 게이도 있을 것이다. 게이인 당신은 머라이어 캐리의 끼 부리는 목소리를 참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심지어 마돈나의 ‹Vogue›를 들으면서도 손이 머리 위로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모리세이가 쓴 영국 밴드 ‘스미스The Smiths’의 가사가 지나치게 느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게이인 당신은 북유럽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씨가 말라버린 데스메탈의 마지막 신봉자일 수도 있다. 나는 세상의 모든 개가 훌륭하다는 말과 세상의 모든 게이가 트로트를 싫어한다는 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니다. 세상에는 태어나자마자 훌륭하지 않은 개도 있긴 하다(나는 성선설을 믿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임영웅을 좋아하는 게이도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Kylie Minogue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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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ria Gaynor © Udiscovermusic
주디 갈란드 콘서트 포스터 © Udiscovermusic
Madonna – ‹Vogue›
그러니까 런던의 클럽에서 마주친 나의 딜레마도 거기에 있었다. 게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클럽들은 어떻게든 그 ‘게이 음악’을 틀었다. 내가 원하는 음악에 몸을 흔들기 위해서는 드럼 앤 베이스나 싸이 트랜스를 주로 트는 클럽이나 파티에 가야 했다. 거기에는 게이들이 별로 없었다. 솔직해지자. 클럽을 왜 가는가. 좋아하는 디제이의 음악을 듣기 위해, 오랜만에 몸을 흔들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리고 (말해버리자면) 짝짓기를 위해서다. 나에게 게이 클럽이라는 장소는 종종 극락조들이 상대방에게 구애를 보내기 위해 현란하게 춤을 추는 파푸아뉴기니의 정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코를 잘 벌름거려보면 공기 중에 떠다니는 호르몬과 페로몬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다. 게이 클럽에 한 번이라도 가본 적이 있는 당신은 내 예민한 후각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나는 한때 게이 클럽이 아니라 드럼 앤 베이스와 싸이 트랜스 디제이들을 따라다니며 이성애자 레이버raver들로 가득한 언더그라운드 클럽에 드나든 적이 있다. 이런 고백을 들으면 당신은 ‘나는 드럼 앤 베이스와 싸이 트랜스를 좋아하고 종종 바바라 스트라이샌드나 카일리 미노그를 듣는 또 다른 게이를 만나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디즈니식 결론을 기대하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사귀기 시작한 남자는 운전을 할 때마다 ‹나는 가수다›에 나온 이소라의 노래만 틀어제꼈다. 나도 이소라가 한국의 게이 아이콘 중 하나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이소라 게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하는데, 그건 울고 싶을 때마다 어둠 속 디바의 목소리를 듣고 위로받고 싶어 하는 게이들을 (아주 단편적으로 분류해) 일컫는 말이다. 중요한 건 내가 이소라의 침잠하듯, 또는 토해놓듯 부르는 노래들을 그리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남자가 운전을 할 때마다 나의 고막은 침울해지곤 했다. 특히 나는 이소라가 보아의 ‹No.1›을 부를 때마다 도대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보아의 이 노래는 케이팝 역사상 최고의 명곡일 뿐만 아니라 당대의 게이들이 마음으로 아낀 한국적 게이 송가이기도 했다(‘디바 + 단조의 댄스곡 + 슬픈 가사’ 이 세 가지의 조합은 게이 송가의 기본이다). 그걸 또 다른 게이 아이콘인 이소라가 음울하게 편곡해서 불렀다니. 만약 햄버거가 게이 음식이라면 이소라의 ‹No.1›은 더블 패티를 속이 거북해질 정도로 두껍게 욱여넣은 햄버거였다. 나는 곧 그와 헤어졌는데 그게 오로지 이소라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이소라의 탓이기도 할 것이다.
보아BoA – ‹No.1›
보아BoA – ‹No.1›
이소라 – ‹No.1› © MBC
‘스테레오타입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와 ‘아직 스테레오타입은 필요하다’는 두 입장 사이에서 우리는 종종 마음의 충돌을 겪는다. 무엇이 옳은가. 우리는 더는 흑인을 스테레오타입화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더는 누구도 흑인과 수박, 프라이드치킨을 연결시키는 농담을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다. 또한 남성과 여성의 스테레오타입화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게이 음악’이라는 것이 재미있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 특히 래퍼 릴 나스 엑스Lil Nas X는 가장 마초적인 장르 중 하나인 힙합의 세계에서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폭발시켜버렸다. 나는 이렇게 빨리 이런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누가 봐도 게이임에 틀림없는 배리 매닐로우가 커밍아웃은 하지 않은 채 이성 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절절한 발라드를 부르며 여성 팬의 우상이 된 지난 세기는 이미 끝장이 나버린 것이다(매닐로우는 2017년에야 일흔세 살의 나이로 커밍아웃을 했고, 어느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국 동성결혼 법제화와 커밍아웃한 래퍼의 시대에 ‘게이 음악’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내가 확실한 결론을 알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덧씌워진 스테레오타입을 깨부수고 나와 개별적이고도 고유한 정체성을 갖기 위해 애쓰면서도, 우리가 속한 집단의 스테레오타입화를 통해 소속감과 고유의 정체성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한 스테레오타입 속에서 우리는 편안함마저 느낀다.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스테레오타입은 불편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도 필요한 안전 가옥일 수 있다. 어느 집단의 공통된 경험이 만들어내는 ‘집단적 정체성’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 나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쓴다. 그래서 스테레오타입이라는 단어는 꽤나 양가적이다. 완전하게 옳거나 완벽하게 그르지 않다.
언젠가 게이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던 글이 있다. ‘그 게이의 집에 있는 것’이라는 블로그의 이 글은 30대 싱글 남자의 집에 방문한다고 가정할 때 그 남자가 게이인지 아닌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단서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단서들은 다음과 같다. 조도가 현저히 낮은 조명, 향과 관련된 여러 물건, 짙은 회색이나 흰색으로 통일된 무지 수건들, 러쉬, 이솝, 무인양품 같은 브랜드 제품들… 당시 이 글에는 “내가 몽유병 중에 쓴 줄”이라거나 “민간인 사찰을 멈춰주세요” 따위의 댓글이 달렸다. 나는 내 집을 둘러보며 키득거렸다. 조도가 현저히 낮은 조명이 각양각색의 디퓨저와 향초를 비추고 있었다. 화장실에는 러쉬와 이솝의 제품들로 가득했다. 결국 나는 그 블로그 글에서 이야기하는 게이의 조건에 지나칠 정도로 착실하게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싸이 트랜스와 하드코어 테크노를 좋아하고, 헤비메탈의 기나긴 기타 솔로를 사랑하면서도, 바바라 스트라이샌드의 히트곡 가사를 외워 부를 수 있는데다가, 걸그룹 신곡 뮤직비디오를 보며 함께 안무를 딸 수 있는 남자를 찾고 있다. 만약 이 조건에 부합하는 분이라면 개인적으로 꼭 연락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진심이다.
Artist
김도훈은 작가,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이다. 영화주간지 «씨네21», 남성지 «GEEK»과 «허프포스트코리아»에서 일했다. 에세이집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closer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