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의 작업실을 방문해 공간, 일상과 창작을 위한 도구 그리고 소중한 오브제를 글과 이미지로 소개하는 독창적인 섹션입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디자인 스튜디오 ‘서비스센터Service Center’에서 브랜드 디렉터를 맡고 있는 전수민입니다.
회사 이름이 무척 독특합니다. 서비스센터는 어떤 회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서비스센터는 간단한 이름이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희는 어떤 브랜드나 공간의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클라이언트의 어려운 문제와 고민을 경청하고 그것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돕고 있다고 생각해요. 프로젝트를 위한 어떤 서비스든 제공하는 곳인 거죠. ‘해결 사무소’ 같은 공간이라고 할까요.
서비스센터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정식으로 이름을 걸고 시작한 건 2018년부터였어요. 개인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쌓아온 시간은 8년 가까이 되고요. 졸업 후에 프리랜서로 디자인 활동을 하다가 디자인 스튜디오 ‘더퍼스트펭귄’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개인 프로젝트를 병행해도 좋다는 조건으로 입사했어요. 그곳에서 2년간 브랜드를 위한 공간 설계와 브랜딩에 관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는데요. 버거샵Burger Shop, 베르크로스터스WERK ROASTERS (이하 베르크) 등의 개인 작업이 계속 늘어나서 결국 퇴사 후 서비스센터를 만들게 됐어요.
어릴 때부터 디자이너의 꿈을 갖고 있었나요?
초등학생 때에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어요. 아버지의 지인인 어느 건축가분 댁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건축가가 되면 이렇게 멋진 집에 살 수 있구나’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중학교 때 영국의 소규모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를 다룬 «월간 디자인» 기사를 읽고 그래픽 디자인에 관심이 생겼고, 전공까지 하게 되었죠. 저의 진로를 바꿔버린 잡지는 아직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어요.
서비스센터가 프로젝트를 대하는 방식과 여기에 비롯되는 강점이 궁금합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마치 저희가 운영하는 가게를 만드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 마음과 자세는 제가 혼자 일했을 때부터 지금의 서비스센터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어요. 단순히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이 전부가 아니라 유니폼, 매장의 음악과 향기, 직원들의 서비스 태도 같은 디테일까지 제안해 드리는 건 물론이고, 오너와의 오랜 대화를 통해 공간과 비즈니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너의 취향, 분위기와 온기 등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그 공간이 완성되는 법이니까요.
지금까지 커리어를 쌓으면서 전환점으로 꼽을 만한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서비스센터를 시작하기 전에 개인 프로젝트로 진행했던 부산의 버거샵입니다. 오너와 처음부터 함께 만들어낸 브랜드가 폭풍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봐서 그런지 저에게는 의미가 남달라요. 제 지분이 있다고 많은 분이 착각할 정도였죠. (웃음) 버거샵 대표님이 프로젝트 종료 이후 주변 분을 많이 소개해 주셨는데, 그 인연으로 맡은 프로젝트가 베르크예요. 두 공간 모두 금요일 저녁 비행기로 부산에 내려갔다가 월요일 새벽에 서울로 올라와 회사에 출근할 정도로 열정을 많이 쏟았죠.
버거샵 디자인 및 브랜딩
베르크로스터스 디자인 및 브랜딩
베르크로스터스 디자인 및 브랜딩
서비스센터를 대표하는 프로젝트를 꼽아 보신다면요.
베르크는 함께한 지 7년째 되는 브랜드에요. 두 번의 리뉴얼을 모두 저희가 맡았어요. 부산을 대표하는 장소로 자리 잡을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성장의 여정을 함께 해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파묘›, ‹노량›, ‹범죄도시› 등의 영화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준 김태성 음악감독님의 주거 공간 디자인은 서비스센터의 첫 레지던스 프로젝트입니다. 단순히 인테리어에 그치지 않고 감독님의 라이프스타일을 함께 고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커요. 감독님이 새로운 삶에 행복을 느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무척 보람찼습니다. ‘조스개러지JOE’S GARAGE’의 현대카드 다빈치모텔 팝업 스토어를 통해 아메카지アメカジ 문화를 대표하는 조스개러지의 매대 디자인과 그래픽을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창의적인 공간 연출을 통해 독창적인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컴포즈커피COMPOSE COFFEE’의 리브랜딩 작업도 여러모로 기억에 남아요. 리브랜딩 후 가치를 인정받아 높은 가격에 매각된 점도 만족스럽습니다.
김태성 음악감독 레지던스 프로젝트
김태성 음악감독 레지던스 프로젝트
‘조스개러지’ 현대카드 다빈치모텔 팝업
‘조스개러지’ 현대카드 다빈치모텔 팝업
컴포즈커피 리브랜딩 프로젝트
현재 진행 중이거나 공개를 앞둔 프로젝트가 궁금해요.
김포의 대형 카페, 제주의 마을 브랜딩, 공주의 마을 단위 호텔 브랜딩, 그리고 미국 워싱턴 D.C.의 유명 카페 브랜드 리브랜딩을 준비 중입니다.
올해 초에 지금 계신 사무실로 이전하셨어요. 공간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기존 사무실은 인천에 위치한 ‘코스모40’ 건물에 있었는데, 클라이언트가 방문하기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서울로 이전하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었는데, 드디어 올해 실행에 옮긴 거죠. 많은 지역을 돌아보다 지금의 노량진 건물을 발견하게 됐는데, 저도 팀원들도 마음에 들어서 결정했습니다. 지하이지만 다른 층보다 공간도 넓고, 작은 선큰 가든sunken garden도 있어서 좋았어요.
공간의 기본 콘셉트는 어떻게 정하셨나요?
미국 뉴욕 근교에 위치한 ‘그레이스 팜Grace Farms’에 갔을 때 유리 벽으로 둘러싼 회의실을 중심으로 그 앞뒤에 오픈된 책꽂이를 나란히 놓은 공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그래서 새로운 오피스에 그 구조를 녹여보고 싶었죠. 구성원끼리 서로의 생각을 잘 나누려면 회의실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개인 책상을 놓은 공간보다 더 큰 규모로 만들었어요. 오랫동안 회의해도 힘들지 않은 편안한 분위기를 위해 바닥에는 카펫을 시공했죠. 회의가 없을 때도 다들 회의실에 모여서 간식을 먹거나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각자의 일을 하기도 해요.
회의실 의자로 레드 컬러의 스노우피크 캠핑 체어를 쓰고 계세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우선은 제가 ‘스노우피크Snow Peak’라는 브랜드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웃음) 스노우피크의 ‘FD 체어’는 캠핑 체어로서는 가격대가 높은 편이지만, 사무실에 놓는 용도라면 오히려 비용이 괜찮다고 봤어요. 인원과 상황에 따라 접고 펴거나 이동하기에 용이하고, 식탁 높이에 맞는 캠핑 체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스노우피크가 단순히 캠핑만을 위한 아이템이 아니라 집의 일부를 자연으로 옮긴다는 브랜드 철학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이렇게 회사 회의실에 캠핑 체어를 다량으로 사용한 경우가 흔치 않아서인지, 스노우피크 코리아 직원들도 저희 사무실에 답사를 왔답니다. 사무실 한쪽에 스노우피크 ‘로우체어’와 테이블로 만들어 놓은 휴식 공간에도 큰 관심을 보이셨어요.
스노우피크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지네요.
사실 원래는 그리 캠핑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한두 번 경험해 보니 그 자체로 너무 좋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몸은 고돼도 내면에 쌓인 스트레스가 회복되고 자연으로부터 치유받는 기분이었거든요. 일단 캠핑에 관심이 생기면 스노우피크를 모를 수가 없는데요. 디자인도 예쁘고 내구성도 좋아서 관심을 두고 있던 차에 스노우피크에 확신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어느 날 캠핑을 하러 갔는데 옆자리에 계신 노부부가 스노우피크 체어에서 3시간가량 가만히 앉아서 그저 자연을 즐기고 계시더군요. 사실 아무리 편한 캠핑 체어라도 그렇게 장시간 앉아 있기는 쉽지 않거든요. 그 모습을 보니까 ‘하나를 사더라도 나이가 들어서까지 가족들과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선택하는 게 낫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 후로 스노우피크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최근에는 스노우피크에서 어떤 아이템을 구매하셨어요?
사실 대부분의 아이템을 품목별로 갖고 있어서 이제는 더 이상 살 게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주시하는 중입니다. (웃음)
사무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을 알려주세요.
도서관을 꼽고 싶어요. 무인양품 SUS 선반 세트로 구성한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개인적으로 가장 유용하게 사용 중인 공간이기도 해서요. 제가 오래전부터 읽었던 디자인 서적이나 도록, 에세이, 인터뷰집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두루 꽂혀 있죠. 사무실을 방문한 클라이언트도 책장에 있는 책을 유심히 보면서 제 취향이나 관심사를 공유하기도 해요. 도서관 공간을 보고 계약을 결심한 분도 계시고요. 팀원들은 여유 시간에 이곳에서 책을 읽거나, 퇴근길에 원하는 책을 대여할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의미가 있는 책들을 골라주시겠어요?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도예가 스티브 해리슨Steve Harrison의 도록을 소개하고 싶어요. 작가 특유의 텍스처와 우아한 푸른 색채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작품 이미지로 가득하죠. 언젠가는 그가 만든 컵을 소장하고 싶은데, 지금은 엄두가 나질 않아서 대신 도록을 구입했어요. 도록도 꽤 값이 나간답니다. 그리고 남다른 창작자의 물건을 보여주는 책도 좋아해요. ‘아트 앤 사이언스Arts & Science’의 오너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소냐 박Sonya Park, 일본 스트리트 패션을 선도했던 디자이너 겸 뮤지션 후지와라 히로시(藤原ヒロシ)의 책을 보면서 디자인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어요.
특별히 좋아하거나 영감을 받는 크리에이터가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이탈리아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한 그래픽 디자이너, 마시모 비녤리Massimo Vignelli를 좋아해요. 그의 직관적인 디자인 접근법과 간결한 스타일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요. 『비녤리의 디자인 원칙』에서 그는 “창의적인 것은 지식이 있어야 비로소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라고 말했는데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영감과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올라도 적합한 지식이나 배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가장 완벽한 결과물을 도출할 수 없거든요. 그의 말처럼 항상 준비된 디자이너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평소에 좋아하거나 영감을 받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여유가 생기면 종종 파주에 있는 열화당책박물관에 들러요. 시즌마다 하나의 주제로 전시를 여는데, 주제에 맞는 책을 공간 중앙에 배치한 큰 테이블에 늘어놓은 풍경이 무척이나 의미 있게 느껴져요. 정혜경 학예연구실장님이 전시된 책을 모두 읽으시고 관련된 이야기를 도슨트처럼 말씀하시는데, 그분의 축적된 지식을 요약판으로 듣는 시간과 경험이 정말 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관람객이 드문 시간에 가면 혼자 관람할 때도 있거든요. 저에게는 조용히 여유를 즐기는 꿈 같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죠.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도 즐겨 찾습니다. 평일 아침 일찍 부지런히 가면 미술관을 둘러싸고 있는 전통 정원인 희원을 여유롭게 산책할 수 있어서 좋아요. 시간이 허락되면 근처의 스노우피크 캠프 필드에도 가고요. 아쉽게도 요즘은 주말조차 여유로웠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네요.
가방 속에 항상 휴대하는 도구는 무엇인가요?
3년 전에 구입한 라이카 ‘Q2’를 항상 들고 다녀요. 반자동이라 비전문가가 사용하기 정말 좋은 친구죠. 그래서 평소에도 스마트폰보다 Q2를 더 자주 사용해요. 여행 중일 때에도 스마트폰으로 거의 사진을 찍지 않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후지 자동카메라를 사용했는데, Q2의 사진 색감에 매혹돼 큰맘 먹고 구입했어요. 모든 면에서 최고의 카메라라고 생각할 만큼 만족스럽지만, 조금 무거운 게 단점입니다. 그래도 매일 갖고 다녀서 그런지, 이제는 적응했어요.
노트도 여러 권을 갖고 다니시네요.
독일 브랜드 ‘로이텀Leuchtturm’을 사용하고 있어요. 100년이 넘은 문구 브랜드인데, 4대에 걸쳐 패밀리 비즈니스로 운영하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몰스킨도 사용해 봤는데 로이텀 노트의 커버 재질이 훨씬 가볍고, 무엇보다 부드럽고 유연해서 개인적으로 좀 더 편하더군요. 판형도 마음에 들고요. 북마크도 두 개라 프로젝트마다 구분해서 사용할 수 있어요.
노트에는 주로 어떤 걸 기록하시나요?
머리가 복잡하거나 고민거리가 많을 때 노트에 쓰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편이라 무척 다양한 내용을 적게 돼요. 미팅할 때 메모하거나, 아이디어를 기록하기도 하고요. 손 글씨는 타이핑과 전혀 다른 느낌을 선사하기 때문에, 메모 앱도 사용하지만 주로 노트를 애용하는 편이에요. 노트 옆에 펜을 걸 수 있는 액세서리인 펜 루프pen loop도 로이텀 제품인데, 색상이 다양해서 기호대로 선택할 수 있답니다. 워낙 펜을 자주 잃어버리는 편이라 제게는 필수 아이템이에요. 펜 루트를 사용한 후로는 한 번도 펜을 잃어버린 적이 없어요.
해외 출장을 다닐 때마다 노트와 카메라 또한 늘 휴대하시겠어요.
그럼요, 가장 먼저 챙깁니다. 비행기 내부는 다른 어떤 공간보다 집중이 잘 되는 편이라, 서면 인터뷰를 정리하거나 타이핑할 것을 챙겨서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일하곤 해요. 기내에서 읽을 책도 몇 권 고르고요. 최근 읽기 시작한 책은 일본의 작가이자 역사평설가인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의 저서에요. 어릴 적 그의 베스트셀러인 『로마인 이야기』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요즘 다시 관심이 생겨서 『시오노 나나미의 국가 이야기』와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을 읽고 있어요. 연이어 읽으려고 수학자 김민형의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도 대기하고 있습니다.
책상 위에 디자인 분야보다 다른 분야의 서적이 더 많이 보여요.
예전에는 디자인 관련 서적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는데, 요즘에는 인문학이나 역사 같은 다른 학문의 지식을 쌓는 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와요. 브랜딩을 하는 데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해요.
회의실 한쪽에는 향 관련 제품을 모아 놓았습니다.
룸 스프레이 종류는 이솝을 선호하고요, 산타마리아 노벨라의 포푸리potpourri도 애용합니다. 지금까지 10봉지는 넘게 구입한 것 같아요. 처음 봉투를 열면 향긋하고 숙성된 허브 향이 올라오는데요. 포푸리가 마를 때마다 물을 조금씩 뿌리면 다시 향이 살아나요. 공간에 은은한 향을 더해줘서 꾸준히 애용 중입니다.
가구 브랜드 USM의 애호가로 알고 있어요. USM의 모듈러 가구가 지금 이곳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네요.
학생 때 디자인 역사 수업에서 처음으로 USM의 모듈식 가구인 ‘할러Haller’를 알게 됐어요. 처음 본 순간, 그 어떤 아이코닉한 가구보다 독보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죠. 대학생 때는 가격 때문에 상상만 했지만, 직장인이 되고서 단기간 사용하고 버릴 가구보다 오랫동안 함께할 ‘반려 가구’를 찾다 보니 곧바로 USM이 떠올랐어요. 결국 위로 두 칸, 옆으로 세 칸, 총 여섯 칸짜리 모듈 세트를 통 크게 3개나 구입했어요. 거의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이었죠. 중고차와 USM 사이에서 고민하다 USM을 선택했는데, 당시 인천에서 서울까지 통근하던 시절이라 꽤 무모한 선택이었죠. (웃음) 그 후 집을 확장할 때마다 조금씩 추가로 구입했어요.
사무실에 배치한 USM, 지금 입고 있는 셔츠를 보면, 네이비 컬러를 유독 선호하시는 듯합니다.
이미 소문난 네이비 마니아라고 할 수 있죠. 지금도 물론 좋아하지만, 한때는 물건을 사거나 그날 입을 옷을 고를 때 네이비만 고집한 적도 있답니다.
마니아가 생각하는 네이비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유행을 타지 않는 은은한 아름다움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색과 매치해도 잘 어울리고요. ‘도큐먼트DOCUMENT’라는 국내 패션 브랜드 대표님이 거의 네이비 옷만 만드실 정도의 마니아로 유명하셨어요. 브랜드 초기에는 성수동의 작은 개인 작업실에서 옷을 판매하셨는데, 월급을 받을 때마다 한 벌씩 사러 가곤 했죠. 어느 날 작업실에 갔는데, 대표님과 저 모두 위아래를 네이비로 입고 있었어요. 심지어 휴대폰 케이스까지요. (웃음) 용기를 내어 여쭤봤죠. 왜 네이버를 좋아하게 됐는지. 대표님이 어느 날 옷장을 열었는데, 온통 네이비 옷밖에 없었다고 해요. ‘내가 좋아하고 옷장 안에 남는 게 결국 네이비 옷이구나’ 싶어서, 그 후로 네이비 옷을 만들게 됐다고 하시더군요. 저도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니아들은 서로를 알아보는군요.
일본에 여행 갔을 때 겪은 재미있는 일화도 있어요. 모노클 스토어에서 우연히 «모노클Monocle» 에디터를 만나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 당시 제 집 풍경과 소셜미디어를 보더니 ‘너는 네이비 컬렉터’라고 말하더군요. 그 말을 들으니, 네이비가 저만의 취향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요소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요새는 다른 컬러에도 조금씩 관심을 두기 시작했지만요.
요즘 새롭게 알아가는 컬러는 무엇인가요?
캠핑 체어를 보면 아시겠지만, 요즘 물건을 살 때마다 레드 컬러를 선택하기 시작했어요. 사용해 보니까 공간과 일상에 포인트를 더하는 다채로운 색이더라고요. 네이비처럼 레드도 수많은 매력을 지니고 있을 테니, 차근차근 알아보려고 합니다.
테이블 스탠드, 플로어 스탠드 등 다양한 조명이 사무실 곳곳에서 눈에 띄네요.
회의실과 개인 업무 공간에는 아르테미데의 ‘톨로메오Tolomeo’ 테이블 스탠드를 놓았어요. 그중 하나는 제가 10년 전에 구입해서 사용하던 조명이고, 팀원이 늘어날 때마다 하나씩 구입해서 자리마다 놓았죠. 회의실에는 플로스의 ‘루미네이터Luminator’ 플로어 조명을 배치했고, USM 위에 올려놓은 테이블 스탠드는 이케아의 빈티지 조명이에요. 스틸 소재와 심플한 디자인이 USM과 잘 어울려서 빈티지 마켓에서 사봤는데요. 마음에 쏙 들어서 이베이에서 추가로 하나 더 구입했어요.
오랫동안 사용하며 느낀 톨로메오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마치 평양냉면 같은 슴슴하고 은은한 조화로움이랄까요. 담백한 분위기와 깔끔한 디자인 덕분에 어느 공간에도 잘 어울리고, 책상이나 테이블에서 기본 이상의 역할을 해내는 조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수집하는 물건이 있으신가요?
안경을 꾸준히 구입하는 편이에요. 현재 20개 정도 갖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썼으니 꽤 오랫동안 사용한 셈이죠. 제게 어울리는 형태와 소재, 브랜드는 이제 웬만큼 잘 알고 있어요. 요즘은 독일 안경 브랜드인 ‘마이키타MYKITA’를 가장 좋아해요. 극강의 가벼움과 편안함이 특징인데요. 특히 나사 없이 금속을 구부려 만든 일체형 안경이라 디자인 또한 명확해요. 가격이 조금 비싼 게 흠이지만, 잃어버린다 해도 다시 동일한 안경을 사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듭니다.
지인에게 어떤 물건을 자주 선물 받는 편이세요?
음반과 위스키요. 오래전부터 CD와 LP를 많이 소장하고 있고, 위스키도 좋아하기 때문에 제 취향을 아는 분들은 음반과 위스키, 이 두 가지를 선물로 주시는 편이에요.
탕비실 쪽 선반에 위스키가 한가득인 이유군요.
위스키를 수납하기 위해서 선반을 설치한 건 아니고요. (웃음) 남는 선반을 달았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위스키를 놓게 됐습니다. 운전 때문에 사무실에서는 사실 잘 안 마시게 돼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위스키가 궁금해지네요.
스코틀랜드 아일라 지역에서 생산하는 ‘라프로익Laphroaic’을 얘기하고 싶어요. 지인들과 부산에 있는 바에 갔을 때 처음 접했는데요. “지금은 맛이 별로여도, 집에 가면 생각나실 거예요”라며 바텐더분이 권유하셨어요. 처음에는 소독약처럼 화학적인 향도 진하고 독해서 다 못 마시겠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그분 말씀처럼 다음 날 라프로익 특유의 맛이 묘하게 생각나더라고요. 지금은 바에서 여러 잔의 위스키를 마셔도, 마지막 잔은 꼭 라프로익을 마셔요. 특유의 향을 여유롭게 즐기며 마실 수 있게 됐습니다.
커피 머신 옆에는 베르크의 원두가 놓여 있습니다.
베르크에서 감사하게도 원두를 무료로 보내주고 계세요. 구독 서비스 덕분에 도전하기 망설였을 법한 다양한 맛과 향의 원두를 두루 즐길 수 있어서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스테이에이치STAY H’가 크리에이터스룸을 위해 준비한 아이템에 관해 얘기해 볼게요. 인터뷰이가 자신의 공간에 어울리는 아이템을 큐레이팅 리스트에서 한 점 고르면 선물로 드리는 방식이죠. 어떤 아이템을 선택하셨나요?
덴마크의 건축가 겸 디자이너 빌헬름 라우리첸Vilhelm Lauritzen이 디자인한 칼한센앤선의 ‘VLA26P 베가 체어’ 코랄 베이지 컬러를 선택했습니다. 예전에는 금속이나 플라스틱처럼 차가운 재질을 선호했는데 요즘은 점점 따뜻한 패브릭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어요. 핑크빛이 감도는 패브릭과 섬세한 금속 보디의 조화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등받이가 상반신을 감싸는 듯한 착석감 또한 무척 편안했어요. 라우리첸이 코펜하겐의 유명 콘서트홀 베가VEGA를 설계하며 맞춤형으로 디자인한 의자라는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모든 점에서 이상적이었어요.
VLA26P 베가 체어를 앞으로 어떻게 사용하실 계획인가요?
당분간 회의실에 두고 팀원들과 다 같이 체험해 보려고 해요. 멋진 디자인 아이템을 자주 사용하는 것은 저를 비롯한 디자이너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Artist
전수민(@min.is.here)은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현재 디자인 스튜디오 ‘서비스센터’를 운영한다. 서비스센터는 공간 디자인은 물론이거니와, 기획과 브랜딩, 전시, 스타일링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전략, 서비스, 컨설팅을 제공하는 중이다. 최근 주거 프로젝트를 새롭게 시도하며 디자인 영역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 service-center.kr
Editor
정윤주(@chungyunjoo)는 대학에서 실내 디자인을 전공하고 «메종 코리아» 인테리어 에디터와 «보그 걸» 피처 디렉터로 일했다. 온라인 매거진 «디퍼differ»의 디렉터 겸 편집장도 역임했다. 영화 속 인테리어와 데커레이션에 주목한 책 『영화 속의 방』의 저자이며, «엘르 데코 코리아»의 객원 에디터이기도 하다. 현재는 프리랜스 에디터 겸 EYES and EARS 디렉터로 다양한 매체에 인터뷰와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글을 기고하고 있다.
Photographer
이우정(@iopppic)은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수년간의 어시스턴트 생활을 거쳤다. 현재 «보그 코리아», «엘르 코리아», «GQ 코리아», «하퍼스 바자 코리아» 등 다양한 매체와 협업하며 앨범, 광고 등 커머셜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