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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에서 생긴 일

Writer: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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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티튜드가 주목하는 요즘 ‘무엇’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서울에서 9월은 미술 애호가들의 달력에 굵은 글씨로 표시되는 계절입니다.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 서울)가 열리는 첫 주, 도시는 전시와 파티로 들썩였고, 올해에는 ‘삼청 나이트’가 단연 하이라이트로 꼽힙니다. 국립현대미술관부터 크고 작은 갤러리까지 문을 활짝 열고, 술과 음악, 전시가 뒤섞이는 이 축제는 서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새롭게 문을 연 선혜원이 김수자 개인전을 선보이며 화제의 중심이 되어 더욱 풍성한 밤을 만들었습니다. 내년 9월을 기약하며 2025년의 삼청 나이트, 문화 전문 기자 이소영 님의 그 뜨거웠던 하루의 기록을 따라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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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萬神) 김혜경, ‹대동굿 – 비수거리(작두굿)›, 갤러리현대 마당, 2025 ©갤러리현대

세계 2대 아트페어 ‘프리즈’와 ‘아트 바젤’이 열리는 8개 도시는 매회 페어 기간에 맞추어 파티가 열린다.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열리는 파티가 중심이 되는데, 주로 VIP 대상이다. 뉴욕, 런던, 파리, 마이애미, LA, 바젤, 홍콩의 파티는 전시 오프닝에 맞추어 열리고, 화려한 의상을 입은 미술 애호가와 문화 행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대거 몰린다. 우리나라 키아프리즈는 4개 지역으로 나뉘어 대중을 위한 파티가 열린다는 점이 특별하다. 해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중 친화적 행사다. 얼마 전 프리즈 뉴욕에서 서울에서 영감을 받은 첼시 나이트(Chelsea Night), 트라이베카 나이트(Tribeca Night)를 선보였으나, 우리의 행사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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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Basel in Basel 2025», ©Art Basel

2025 프리즈 서울 삼청나잇 ‹선혜원 × 포도뮤지엄› 방문객들이 입장 팔찌를 차고 있다. ©선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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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프리즈 서울 삼청나잇 ‹선혜원 × 포도뮤지엄› ©선혜원

올해 키아프리즈 파티는 을지로 나이트(9월 1일), 한남 나이트(9월 2일), 청담 나이트(9월 3일), 삼청 나이트(9월 4일) 순으로 진행됐다. 그중에서 볼거리가 가장 많고, 먹을 것도 많은 파티는 단연 삼청 나이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있는 삼청동은 우리나라 대표 갤러리가 모여 있는 만큼 평소에도 매력적인 스팟이다. 삼청 나이트에는 선혜원, 아트선재,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 학고재, PKM, 아라리오 등을 중심으로 늦은 밤까지 파티가 열렸으니 금상첨화다. 전시도 보고,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술과 음식을 나누는 완벽한 파티 코스다. 키아프리즈 기간에는 국내외 미술 관계자에게 선보이기 위해 1년 중 가장 힘을 준 중요한 전시가 열리게 되니, 미술 문외한이라고 해도 꼭 가볼 것을 권한다. 수십 개 전시 중에서 분명히 마음에 울림을 주는 작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혹시 아무 감흥이 없더라도 괜찮다. 맛있는 술과 음식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새 친구도 사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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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f X 마리끌레르 아트버스 A 데이 & 나잇 2025», 신라호텔 영빈관 전경 ©Kiaf 

«Frieze LIVE», Yagwang ‹Raw Proof› 퍼포먼스(프리즈 서울 아트페어 및 도산공원), 장영혜 ‹climb, fronthook, angel, invert, daphne, figurehead, scorpion, fall, gemini, princess, chopstick› 퍼포먼스(국제갤러리 K2), 2025 ©Frieze

2025 프리즈 서울 삼청나잇 ‹선혜원 × 포도뮤지엄›, ‹호흡—선혜원› 전시 관람 대기줄 2025 ©선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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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프리즈 서울 삼청나잇 ‹선혜원 × 포도뮤지엄›, 신박서클 공연, 2025 ©선혜원

물론 갤러리와 미술관이 대중을 위해 무제한 술과 음식을 제공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날은 일 년에 단 하루 전시장의 육중한 문을 활짝 열리는 날이기에 대중에게 현대미술의 매력을 알릴 수 있다는 찬사도 공존한다. 그와 함께 이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주요 브랜드도 협업에 나서며 경제ㆍ문화적 나비 효과를 일으킨다는 것. 해외 VIP는 아트페어에서 미술 작품을 구입하가 위해서라기 보다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경우가 많다. 파티에 가면 미술가, 전시 기획자뿐 아니라 사업가와 명사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음악과 드라마가 세계를 점령하고 있기에 K스타를 만나고 싶어서 한국을 찾는 VIP도 줄을 선다. 단순한 향락이 아니라 가치 있는 네트워크가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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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센터 삼청나잇 파티», 2025, 사진 남서원 ©아트선재센터

올해 삼청 나이트의 하이라이트는 새로 생긴 선혜원이었다. 한미사진미술관 인근에 문을 연 선혜원은 SK 창업주의 사저였다. 1968년부터는 그룹 인재를 교육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올해 리노베이션을 거쳐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현대 건축 위에 3채의 한옥이 조화를 이룬 선혜원의 첫 전시는 포도뮤지엄의 김희영 디렉터가 맡아 진행한 김수자 작가의 개인전 《호흡—선혜원》을 선보였다. 

김수자 작가는 선혜원 경흥각의 문을 여는 순간 서울 설치 작업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지난 20여 년간 해외에서만 거울 설치 작업을 이어온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는데, 한옥 고유의 아름다움, 빛과 공기의 흐름 그리고 역사적 장소성이 이번 작업을 진행하게 됐어요. 경흥각 바닥을 거울로 채우면서 관람객이 거울 위를 걸으며 시간과 공간, 실제와 허상이 겹쳐지는 장면을 경험하기를 기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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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호흡—선혜원›, 2025, 거울 패널을 이용한 장소 특정적 설치, 가변 사이즈 ©선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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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연역적 오브제—보따리›, 2023 전시 전경 ©선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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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김수자, ‹연역적 오브제—보따리›, 2023, 백자, 37×48×48cm 


(가운데) 김수자, ‹연역적 오브제—보따리›, 2023, 백자, 45×40×40cm 


(오른쪽) 김수자, ‹연역적 오브제—보따리›, 2023, 백자, 40×44×44cm ©선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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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김수자, ‹땅에 바느질하기: 보이지 않는 바늘, 보이지 않는 실›, 2023, 백자, Bisque porcelain, 57–58×70×2.1 cm

(가운데) 김수자, ‹땅에 바느질하기: 보이지 않는 바늘, 보이지 않는 실›, 2023, 백자, Bisque porcelain, 57–58×70×2.1 cm

(오른쪽) 김수자, ‹땅에 바느질하기: 보이지 않는 바늘, 보이지 않는 실›, 2023, 백자, Bisque porcelain, 57–58×70×2.1 cm ©선혜원

《호흡‒선혜원》전시는 김수자를 대표하는 오브제 ‘보따리’의 건축적 해석이다. 한옥을 하나의 보따리로 보고, 거울이 공간을 완성하는 중심이 되는 의미 있는 전시다(10월 19일까지). 주요 미술 공간이 모여 있는 삼청동에 이런 멋진 문화공간이 생겼다는 것은 서울의 아트 신(Art Scene)이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에 반갑다. 삼청 나이트에서는 밤 10시까지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으며, 잔치 음식과 함께 신박서클, DJ 레이든이 즐거움을 더했다. 이 전시는 미술 잡지 <아트 아시아 퍼시픽(Art Asia Pacific)>의 ‘프리즈 서울 10 에디터스 픽’으로 선정될 정도로 화제를 모아 지금까지 연일 매진 행렬이 이어지며 방문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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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혜원 아트 프로젝트 1.0 «호흡—선혜원» 전시 전경, 김수자 작가의 대표작 ‹보따리›가 놓여져 있다, 2025 ©선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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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혜원 아트 프로젝트 1.0 «호흡—선혜원» 전시 전경, 김수자 작가의 대표작 ‹보따리›가 놓여져 있다, 2025 ©선혜원

또 다른 인기 파티는 갤러리현대와 아트선재, 국제갤러리였다. 갤러리현대는 국가무형유산 서해안 배연신굿과 대동국 전승 교육사인 만신 김혜경의 <대동굿-비수거리>를 선보였다. 1990년 백남준이 이 마당에서 동해 안별신굿 세습 무당과 함께 요제프 보이스를 추모하는 굿 퍼포먼스 <늑대의 걸음으로>을 펼친 바 있기에 더욱 관심을 모았다. 각국의 예술 애호가가 모인 삼청 나이트에서 백남준의 실험 정신을 계승하는 한국 미술계를 응원하고, 현실과 영적 세계를 오가는 모든 존재의 평안을 빌었다. 굿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발 디딜 곳 없이 사람들이 꽉 찬 마당은 그 자체로 볼거리였다.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김민정의 개인전과 이강승·캔디스 린 작가의 2인전도 덩달아 주목받았다.

만신(萬神) 김혜경, ‹대동굿 – 비수거리(작두굿)›, 갤러리현대 마당, 2025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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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萬神) 김혜경, ‹대동굿 – 비수거리(작두굿)›, 갤러리현대 마당, 2025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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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萬神) 김혜경, ‹대동굿 – 비수거리(작두굿)›, 갤러리현대 마당, 2025 ©갤러리현대

개관 30주년을 맞은 아트선재센터는 미술관 전체를 폐허로 만든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전시 《적군의 언어》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한 아트선재는 국제갤러리 K2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MZ세대 여성 성소수자의 작품을 모은 《오프사이트 2: 열한 가지 에피소드》도 열었는데, 삼청 나이트에는 장영해 작가가 퍼포먼스를 펼쳐 여성과 퀴어의 교차점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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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 설치 전경, 아트선재센터, ©아트선재센터

«아트선재센터 삼청나잇 파티», 2025, 사진 남서원 ©아트선재센터

국제갤러리에서는 루이스 부르주아와 갈라 포라스 김의 개인전을 밤 12시까지 감상할 수 있었고, 갈라 포라스 김의 아티스트 토크도 열렸다. 와인·케이터링과 함께 DJ mogwaa의 퍼포먼스가 열기를 돋웠다.

이렇듯 삼청 나이트의 시작은 선혜원이었다. 선혜원에서 걸어 내려오면 PKM, 국제갤러리, 학고재, 국립현대미술관, 현대갤러리 등이 쭉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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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부르주아와 갈라 포라스-김이 대담을 나누고 있다, 2025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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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에서 삼청나잇을 맞이해 파티가 열리고 있다, 2025 ©Kukje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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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프리즈 서울 삼청나잇 ‹선혜원 × 포도뮤지엄›, 디제이 레이든 공연, 2025 ©선혜원

올해 삼청 나이트를 방문하지 못했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내년 9월에도 키아프리즈는 열리고, 삼청 나이트는 더욱 화려하게 개최될 테니 말이다.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축제, 삼청 나이트를 2026년 가을에는 꼭 경험해 보자. 해외 컬렉터들도 비행기 타고 올 만큼 매력적인 파티임에 분명하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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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이소영(@soyoung_lee_art)은 문화 전문 기자다. 멤버십 매거진 «스타일 H», «더 갤러리아»에서 기자로 활동했고, 최근에는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서울, 그 카페 좋더라』, 『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전통혼례』의 저자이며, 『노래하지 않는 피아노』, 『와인과 사람』, 『미국에서 서바이벌하기』 등을 기획·편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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