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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눈(目)의 놀이터를 만드는 사람

Writer: 홍자영
header_홍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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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홍자영 작가는 스스로를 ‘눈(目)의 놀이터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해요. 눈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 기관인데요. 그는 바라보기를 통해 발생하는 연상 작용이 미술이 만들 수 있는 큰 즐거움이라고 믿습니다. 서로가 동일한 시공간에 존재한다는 믿음을 드러내는 팝업 신전인 전시를 꾸미는 여러 방법을 고민하고 있답니다. 그는 다양한 시대와 문화권에서 영감을 받으며 ‘보는 관점’을 다루는 다양한 작업을 시도해요. 내부가 있는 조각, 풍경을 만드는 조각 등이 대표적입니다. 번역할 수 없는 걸 기깔나게 번역하는 초월 번역의 권능을 미술이라는 시각 언어로 정교하게 풀어내는 걸 즐기는 작가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호기심과 타인을 환대하는 태도를 중시합니다. 아, 그리고 한 끗 차이를 알아보는 눈도요. 김윤신 작가와 정영선 조경가를 롤모델로 삼아 미래를 꿈꾸는 홍자영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하세요.

_A Piece of Ceiling_(2022)
«Peer to Peer»설치전경 , 온수공간 , 2022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눈의 놀이터를 만드는 홍자영입니다. 바라봄의 행위를 통해 발생하는 연상 작용을 미술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믿으며 이를 끌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전시는 동일한 시공간에 존재하는 개인의 믿음을 드러내는 장이자, 서로가 같은 곳에 발을 딛고 있음을 확인하는, 일종의 팝업 신전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바탕으로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자연과 인류에게 변하지 않는 공통된 원리와 유사성이 있다고 믿고, 다양한 시대와 문화에서 발견한 요소들을 작업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집에서 멀지 않은 지식산업센터의 상가 공간을 쓰고 있어요. 천장이 매우 높고 베란다가 있는 게 나름의 특징입니다.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도시의 오피스 걸물이라 미술 작업실과는 영 거리가 먼 느낌의 공간인데, 그래서 오히려 좋은 점도 있어요. 중앙 시스템으로 냉난방을 가동하기 때문에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까지만 혜택을 볼 수 있어요. 야작을 잘 안 하게 되고, 덩달아 직장인처럼 작업 시간을 그때로 맞추게 됩니다.

Kak_JayHong-09
«각(Kak)» 설치전경, 하이트컬렉션, 2022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박물관, 앤티크 숍, 유적지를 보는 걸 좋아해요. 다양한 시대와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유물에서 공통점을 찾고, 작업으로 풀어내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과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요. 그때 나눈 대화나 상황, 우연히 들른 장소에서도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이에요.

아프로디테 송가Ode to Aphrodite(2021) 샌드캐스팅한 소이왁스

‹아프로디테 송가Ode to Aphrodite›, 2021, 샌드캐스팅한 소이왁스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거미가 그물망을 치는 것처럼 관심을 쫙 벌려놓고 진동이 크게 오는 곳으로 가요. 저는 주제, 소재, 조형적인 레퍼런스가 다 따로 있어요. 주제로는 시선(시점), 놀이터, 프레임, 여성주의, 소재로는 정원, 동굴, 고대 유물 등을 꼽을 수 있고, 조형의 경우 작업마다 사용하는 재료의 특성에 기반해 그때그때 찾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면 가끔 제가 사용하는 조형적 재료 기법과 소재가 맞을 때도 있고, 재료나 소재가 주제랑 맞을 때도 생겨요. 이런 여러 갈래가 동시다발적으로 계속 뻗어가며 하나가 앞서기도, 서로 연결되기도 하면서 작업이 진행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평소 웹서핑을 하거나 여행을 다니면서 ‘어라, 이거랑 비슷한 걸 내가 가진 재료로 한번 만들어볼 수 있겠는데?’ 생각이 들면 시도하는 거죠. 그러면서 재료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고, 이에 맞는 레퍼런스를 찾아보고 적용해 보고, 그러는 사이에 머릿속에 섞인 다양한 이미지가 재료라는 물질과 현실이라는 우연을 만나서 결과물로 구현되는 느낌입니다. 뭔가 요리하는 과정과 비슷한 거 같기도 해요.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지난 9월부터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신한갤러리에서 박주원 님의 기획으로, 안민환, 정원 작가님과 함께 «상응»이라는 전시를 진행 중이에요. 풍경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보는 이의 관점이 있다는 점을 다루는데요. 저는 주제에 맞춰 시점(view point)을 만드는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The Gate of Wind and Water›(2023-2024)는 문 형태의 구조물을 만들고 파도, 구름, 산의 형상을 그린 청화 타일을 붙였어요. 전시장 입구에 배치해 그 너머로 세 작가의 작업들이 하나의 장면처럼 보이도록 의도했습니다. ‹Layers Tunnel› 시리즈는 터널처럼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으면서도 구멍 너의 풍경 또한 함께 볼 수 있는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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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응(Correspondences» 설치전경, 신한갤러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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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ate of Wind and Water›, 2023-2024, 세라믹 타일에 왁스, 40 × 40 cm(32), 160 × 160 × 40 cm 

지난해 미국의 1세대 큐레이터 루시 리파드Lucy Lippard의 책을 읽은 후로는 ‘은신처 조각’의 개념을 참고해 ‘내부가 있는 조각’ 만들기를 시도 중이에요. 보통 조각은 외부를 강조하기 때문에 내부를 볼 수 없는 반면, 건축처럼 주거 기능이 있거나 그릇처럼 무언가를 담는 대상은 내부를 강조하잖아요. 그래서 동굴, 그릇, 조개 등이 내부가 있는 조각의 원형이라고 생각하며 소집한 조개를 재료로 사용하거나 도자 공방을 다니면서 도자 작업도 병행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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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ered Tunnel(Glacier)›, 2024, 파라핀, 37 × 40 × 37 cm

지난 8월 챔버CHMBR에서 열린 단체전 «Firsthand shop»에서 선보인 ‹물에서 온 여신상›(2023)은 고대 모계사회 때 제작한 여신상이 해저에서 발견됐다는 상상 아래 만든 조각인데요. 선사시대의 여신 숭배에 대해 조사하면서, 지금과 같은 종교가 존재하기 전에는 대부분 여신을 숭배하는 사회였다는 걸 알았어요. 어느 문화권이나 신의 역할은 생명을 창조하는 것이고, 이는 곧 여성이니까요. 저희는 현재의 시점에서 당시의 조각을 발굴하기 때문에 여성의 신체와 닮은 조각상을 발견할 때만 여신상이라고 유추하는데요. 만약 여성이 신이고 지도자인 사회가 지속됐다면 신의 형상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어요. 생명을 잉태하는 자궁을 본떠 수직적인 인물상이 아니라 자연 혹은 빈 곳에 가까운 형태라고 상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공간을 품은 세 개의 산봉우리가 모인 형태를 만들고 여신상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13.Firsthand Shop(2024)-18

«Firsthand Shop» 설치 전경, 챔버CHMBR, 2024

thumb_홍자영

‹물에서 온 여신상›, 2023, 철망, 석고붕대, 제스모나이트, 갑오징어 뼈, 조개껍데기, 돌, 40 × 25 × 28 cm

최근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지난 10월 12일부터 파주 헤이리에 있는 포네티브 스페이스에서 첫 개인전 «Between Lying Columns»를 열고 있습니다. 한 점, 한 점 독립된 형태로 조각이 존재하기보다, 서로 모여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첫 번째 개인전은 보통 입지 좋은 곳에서 해야 한다고들 말하는데요. 저는 작업 맥락상 공간 자체의 특성과 규모가 중요해서 서울에서는 적합한 공간을 찾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서울 근교에 재미있는 공간이 있길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1층으로 들어가면 마치 선큰sunken처럼 난간을 통해 지하를 내려다볼 수 있고, 거대한 시멘트벽을 중심으로 기둥을 나열해 로마식 열주 정원을 콘셉트로 떠올리게 됐어요. 뷰 포인트가 많은 덕분에 ‘보는 관점’에 대한 부분을 다룰 수 있었고, 지하에 꾸린 정원으로서 무덤과 정원의 중간 같은 느낌을 내려고 노력했어요.

Between Lying Columns 설치전경
«Between Lying Columns» 설치전경, 포네티브 스페이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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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것과 죽은 것들의 케이터링›, 2024, 혼합재료, 가변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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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ument of Original Leader›, 2024, 세라믹, 물, 워터 펌프, 21 × 47 × 58.5 cm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최근 전시 준비할 게 많아서 그냥 출퇴근하듯 작업실만 오가며 살고 있어요. 여유가 있을 때는 작업실 10분 거리에 어머니가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하는 주말농장 텃밭이 있어서, 점심을 같이 먹고 오기도 해요. 테라스에 파슬리, 딜 같은 허브를 심어서 작업실에서 간단하게 요리하기도 합니다. 스터디 모임을 통해 여러 작가님과 미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교류하는 것도 중요한 일상입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미술의 언어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가 소위 ‘초월 번역’이라고 하는 것들, 즉 번역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걸 무척 알맞게 번역했을 때 재미와 쾌감을 느끼듯이, 미술도 하나의 언어니까 어떤 걸 미술이라는 시각 언어로 정교하게 풀어낼 때 재미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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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The Angel went to a Masquerade›, 2021-2024, ‹Angels Under the Roof›, 2021, 발포세라믹으로 캐스팅 한 가면, 57 × 33 × 25 cm

(우) ‹석등(yin)›, 2024, 샌드캐스팅한 시멘트, 70 × 35 × 35 cm

(상) ‹The Angel went to a Masquerade›, 2021-2024

(하) ‹석등(yin)›, 2024, 샌드캐스팅한 시멘트, 70 × 35 × 35 cm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저희 집 가훈이 ‘정신줄을 놓더라도, 유머줄은 놓지 말자’인데요. 유머는 여유에서 나온다고 믿어요. 그래서 어느 상황에서도 늘 여유와 재미를 잃지 말자고 생각하며 그런 부분이 작업에 담기기를 바라요. 그리고 인간으로서, 특히나 여성으로서, 제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유와 존엄입니다. 이 두 가지를 지키려면 주체성을 가져야 하므로, 보는 행위를 통해 감각할 수 있는 주체성을 작업으로 다루는 것 같아요. 항상 스스로 선택한 것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고, 그런 믿음과 태도가 작업에 잘 묻어나면 좋겠습니다.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아직 슬럼프라고 할 만한 시기가 온 것 같지는 않아요. 너무 무기력하거나 힘들 때는 요리를 하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일상을 재미있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제 삶을 먼저 가꾸면 다른 것도 함께 괜찮아지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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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ssil Pond›, 2024, 도자, 물, 생화, 36 × 34 × 7 cm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제가 작업을 입체로 풀어내다 보니 언제나 작품을 보관할 공간이 고민거리에요. 최근 전시 두 개를 준비하면서 공간이 부족해지자 같은 건물 아래층 공간을 두 달 단기로 임대했는데요. 하필 다른 곳에서 임대를 확정하는 바람에, 전시가 끝나면 작품을 어디로 보낼지 알아봐야 합니다.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세상을 이해하려는 호기심, 타인의 세계에 기꺼이 들어가고, 타인을 나의 세계로 기꺼이 초대하겠다는 환대의 태도.

12개의 산 9개의 돌 6리터의 물,2020, 혼합재료, 가변설치

‹12개의 산 9개의 돌 6리터의 물›, 2020, 혼합재료, 가변설치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저도 늘 고민하는 부분인데요. 최근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을 보면서 기본기와 경험치가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 다진 기본기, 기준이 높은 주변 동료, 그리고 좋은 작업을 알아보는 안목까지 제가 좋은 걸 만들기 전에 정말 많은 걸 보고 경험하는 게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동양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깨달은 부분은 본질을 알아보는 눈이에요. 이는 풍수, 관상, 산수화, 서예에 모두 통용되는 부분입니다. 수많은 훈련으로 단련한 미세한 한 끗 차이를 알아보는 눈. 이게 있으면 자연스레 제 기준도 높아지고, 자신을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게 돼요. 그래서 당장 작업이 좋아지길 바라지 않고, 좋은 작업과 전시에 자신을 길들이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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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ain Tureen›, 2024, 도자, 물, 안개 발생기, 17 × 35.5 × 30 cm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본인의 삶을 재미있게 살고, 그게 작업으로도 드러나는 사람.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요즘 두 분의 작가를 롤모델로 삼아 미래를 꿈꾸고 있어요. 바로 김윤신 작가님과 정영선 조경가님입니다. 제가 근 1년간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얘기인 것 같은데요. 작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렸던 김윤신 작가님의 아티스트 토크에 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작품도, 그의 삶도 아닌 바로 그의 제자들이었어요. 한 분은 최근에 수양딸로 호적에도 들어가셨다는데, 작가님을 따라 아르헨티나까지 가셨고, 한 분은 기록 담당으로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모습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카메라에 담으시더라고요. 그가 꾸린 비혈연의 여성 공동체가 너무 아름답고 멋있었어요. 그게 진짜 업적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요. 두 명의 제자가 정말 온 마음으로 따르고 평생을 헌신한 걸 생각해 보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계속 생각하게 돼요. 정영선 조경가는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게”라고 늘 말씀하시는 바가 제가 추구하는 미학과도 맞고, 저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조경이기도 한 터라 그 나이까지 그런 작업을 지속한다는 게 너무 멋졌습니다.

4.사진_고정균
<山水彫刻>, 2023, 모래조각을 3D스캔하여 PLA프린트, 7.5 ~ 41 × 22 ~ 40 × 18~32 cm

Artist

홍자영(@jayhongoung)은 정원 양식과 옛 놀이 방식을 통해 인류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을 탐구한다. 자연을 재현하기보다 재료의 특성에서 자연과 유사한 형상을 발견하고, 놀이처럼 다룬 재료의 흔적을 조각의 장식으로 물화한다. 그가 추구하는 열린 구조의 조각은 시선을 내부로 이끌고, 그 너머를 상상하게끔 돕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고, 개인전으로 «Between Lying Columns»(포네티브 스페이스, 파주, 2024)를 열었다. «상응»(신한갤러리, 2024), «Firsthand Shop»(챔버CHMBR, 2024), «조각모음»(문래예술공장, 2023), «Peer to Peer»(온수공간, 2022), «무위로 살아가는 방법»(서교예술실험센터, 2022), «The…Saver»(시청각, 2022), «각(KAK)»(하이트컬렉션, 2022) 등 다양한 단체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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