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99프레스는 한 사람의 갈증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재영 디자이너는 시중에 나온 책들을 보면서 자신이 알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회에 꼭 필요한 시선이 서점 매대에 존재하지 않는 기분이었죠. 그래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이야기를 찾고 적절한 디자인을 잘 엮어서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필요한 말, 해야 할 말, 중요한 말을 하고 싶어 큰따옴표에 착안해 스튜디오 이름도 ‘6699프레스’로 지었답니다. 이야기는 사회를 개간할 수 있고, 이를 시각 언어로 갈무리하는 게 디자이너의 존재 이유라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안녕하세요.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저는 6699프레스를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이재영입니다. 6699프레스의 작업은 두 가지 영역으로 나뉘어요. 그래픽 디자인 영역, 그리고 6699프레스가 주도적으로 기획하는 출판 영역입니다. 우선 그래픽 디자인 영역에서는 책·인쇄물·브랜딩 등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디자인 작업을 다루고 있어요. 출판의 경우, 마이너리티·문화·예술 영역에서 중요하게 다룰만한 발언으로서의 디자인을 목표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시중에 책들이 많지만 정작 내가 궁금했던 이야기, 필요하다 생각한 시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있었어요. 혹 그런 이야기가 존재하더라도, 적당한 디자인을 만나지 못해 세상과 공유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봐왔죠. 이런 갈증에서 시작한 출판 활동이 제 디자인과 맞닿아 실물의 책으로 탄생한 것 같아요. 6699프레스는 필요한 말, 해야 할 말, 중요한 말을 하고자 큰따옴표에서 착안해 지은 이름이에요. 그만큼 고민을 행동으로 옮기는, 말하는 디자이너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생명도서관, «타이포잔치 2021», 문화역서울284
생명도서관, «타이포잔치 2021», 문화역서울284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 궁금해요. 편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작업실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빛이었어요. 남서향이라 오전부터 밝은 햇살이 잘 들어와서 식물이 잘 자라고, 여름이면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창밖을 채워준답니다. 작업실 공간은 나무로 가구와 벽면을 만들고, 오래된 건물의 테라조 바닥을 살려 꾸몄죠. 작업실 위치도 맘에 들어요. 작업실은 마포구 성산동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도로변에 있는 건물이라 클라이언트나 친구들이 찾아오기 쉽고, 맛있는 식당과 서점이 지척에 있어서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평소 찍어 뒀던 사진을 과거순으로 살펴봐요. 사진 앱에서 분류된 방식, 예를 들어 연도, 도시, 색상, 스크린샷, 삭제된 사진, 추천된 사진 등에 따라 훑어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걸 좋아합니다.
작가님의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주시겠어요?
6699프레스 설립 10주년을 맞아 출간한 『1-14』를 소개하고 싶어요. 10년을 돌아보며 그동안 세상에 내어놓은 14권의 책이 발화한 중요한 목소리(텍스트)를 모았습니다. 우선 표지 위 흩어져 있는 숫자들은 열네 권의 책을 의미하는 동시에 목차 역할을 맡아요. 내지는 옅은 주황 색지로 구성했는데요. 여백의 공간을 정교하게 안배해, 발화자에게는 공명의 공간이며 독자에겐 실천적 생각의 장으로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쪽 번호를 180도 기울였어요. 66쪽이 99쪽처럼 읽히도록 했는데, 이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반가웠습니다.
『1-14』표지, 6699프레스
『1-14』내지, 6699프레스
2022년 가을에는 현대백화점 그래픽 작업을 맡았습니다. ‘책의 계절’을 드러내기 위해 책을 디자인하고, 점차 쌓이는 모듈을 활용한 그래픽으로 계절을 표현하고자 했던 작업입니다.
최근 좋아했던 영화의 각본집과 아카이브 북의 디자인을 맡기도 했어요. 플레인아카이브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 15주년 기념 특별판, ‹고양이를 부탁해› 20주년 아카이브 북,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해피아워› 각본집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작업인데요. 스토리텔링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감독의 의도 또한 그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작업입니다. 이야기를 가진 영화를 만드는 일과 물성을 가진 책을 디자인하는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다시금 느꼈어요.
현대백화점
‹고양이를 부탁해› 20주년 아카이브북
‹시간을 달리는 소녀› 15주년 기념 특별판
‹시간을 달리는 소녀› 15주년 기념 특별판
최근 진행한 작업에서 작가님이 만족하는 부분과 불만족하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대부분 불만족합니다. 완성된 결과물을 마주할 때면, ‘다음엔 더 잘해야지’라고 생각하며 다음 작업을 시작합니다.
평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집에서 간단히 밥을 차려 먹어요. 가능하면 제 기준에서 건강한 식단으로 조식을 해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작업실에 출근하면 라디오를 켜고 책상에 앉습니다. 저는 해가 떠 있을 때 작업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일몰 전에 작업을 마치려 해요. 퇴근하면 운동을 하는 편이죠. 이렇게 루틴을 만들어두니, 야근도 줄어들고 업무 효율도 늘릴 수 있더라고요. 몸이 건강해야 디자인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건강한 삶을 추구하려고 노력할 것 같아요.
『뉴노멀』
『뉴노멀』
작가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작업에 어떻게 묻어나나요?
주제에서 맥락과 논리를 구조화하고,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으로 표현하려 합니다. 그래픽 디자인 표현에 있어서는 구조를 단단하게 만드는 편집 디자인을 선호하죠. 콘텐츠가 지면에만 머물지 않고 물성과 잘 어우러지도록 돕는 만듦새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는 6699프레스가 중요하게 여기는 활자의 짜임(조판)을 잘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별안간 티가 잘 나지 않는 사사로운 일에도 디자이너의 눈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완성도에 시간을 들이는 편인데요. 활자로부터 시작해 사람의 손이 닿기까지, 보이고 읽히는 과정과 방식을 의도하고 설계하는 데 즐거움을 느낍니다.
전기가오리 일력
혹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아직 슬럼프가 오지 않은 것 같아요. 만약 온다면, 제 상태에 대해 괴로울 정도로 깊게 마주하며 극복하지 않을까요? 결국 또 찾아올 문제라면 피하지 않고 느긋한 마음으로, 슬럼프를 겪는 시간을 즐기는 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웃음) 아니면 여행을 떠날 것 같아요.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어요. 특히 시티라이트 서점, 밀밸리 국립도서관에서 책과 책을 다루는 사람을 보며 많은 위안을 얻었죠. 생각해보니 결국 마음의 문제 같네요.
작가님이 중시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함께, 건강하게, 좋은 디자인하기.
샌프란시스코 citylight서점 (좌)
밀밸리국립도서관 (우)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주신다면요?
노하우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 것 같고요. (웃음) 제 경우를 돌아보면, 같은 주제의 연속선상에 있는 책을 만들면서 얻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새로운 인식이 큰 선물이라 생각하며 작업해요. 책을 만들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이야기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깨달아 버렸거든요. 이야기는 사회를 개간할 수 있고,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언어화하는 것은 디자이너가 존재하는 이유라 믿습니다. 여기에 존재를 대상화하지 않고 수평적 관점에서 관심을 두는 것, 그리고 지면을 야욕으로 낭비하지 않고 화자의 목소리를 변질하지 않도록 활자를 사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Artist
이재영은 6699프레스를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6699프레스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출판사로, 2012년부터 기업, 미술관, 출판사, 예술가, 시각 문화 전반의 다양한 그래픽 디자인 협업을 지속하고 있다. 『New Normal』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되었으며, 『서울의 목욕탕』, 『너의 뒤에서』, 『한국,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11』 등을 기획 및 출판했다. ‘국제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타이포잔치’에 큐레이터(2021)와 작가(2019)로 참여했으며,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에서 출판국장을 역임하며 『글짜씨』를 기획하고 디자인했다. 현재 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와 북 디자인을 강의한다. 6699pres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