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Project
아티스트와 나눈 깊은 대화를 시리즈로 만나봅니다
아티스트 프로젝트 02: 람한
«비애티튜드»는 특정 아티스트와의 심도 깊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작업 세계와 창작에 대한 태도를 공유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Artist Project’를 선보인다. 그 두 번째 주인공으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람한을 선택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람한에게는 어린시절부터 연필보다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더욱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일러스트레이터로 데뷔한 후 사람들의 폭넓은 공감을 이끄는 요소에 주목해 아름답게 왜곡되는 기억과 추억을 주제 삼아 시각적인 자극을 강조하는 디지털 페인팅을 선보였으며 동시대 디지털 네이티브의 환호를 기반으로 미술 신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우리는 그가 작업을 시작하고, 전개하며 완성하는 과정과 그 태도에 주목하며 총 세 편의 인터뷰를 발행한다.
Part 1.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
Part 2. ‘소닉 노스탤지어’에 관한 문답
Part 3. 창작자로서의 애티튜드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다른 창작자가 다양한 영감과 정보를 얻고, 서로의 입장과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지속가능하고 흥미로운 창작 생태계가 구축되길 응원해본다.
Part 3 : 람한이 숨겨둔 이야기들
인스타그램 팔로우가 8만 명에 육박하는 인플루언서 람한. 하지만 공개된 인터뷰는 적고, 질문은 표면을 겉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창작자로서 지닌 생각과 태도, 그리고 사소한 사연까지 람한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파고드는 질문과 조금씩 조금씩 내어놓는 속 깊은 답변을 공유해본다.
커머셜 작업과 개인 작업 모두 활발히 병행하고 계시는데요. 두 카테고리를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있을까요?
이상적으로는 각 작업의 성격을 구분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저는 개인 작업을 할 때도 일단 관람객을 떠올려요. 작업이 걸릴 공간에 대해 고민하며 어떻게 보일지 구체화하죠. 그런 면에서는 커머셜 작업과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다른 점은 있죠. 제가 일관적으로 말하고 싶은 부분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랄까요. 근데 커머셜 작업에서 클라이언트의 피드백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단계는 이제 지났다고 생각해요. 개인 작업에서 가지고 오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드래프트 스케치 등을 보여주며 설득하고, 이런 부분은 이렇게 보여주고 싶다고 의견을 내면 오히려 클라이언트 분들이 좋아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제 나름의 해석을 기대하며 일을 의뢰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그런 것 같아요. 여기에는 함께 일하고 싶은 클라이언트에 대한 기준을 세워놓은 것도 한몫하는 느낌입니다.
보통 1년에 평균 20개의 프로젝트를 소화한다고 하셨지요. 커머셜 작업을 받아들이는 기준이 더 명확하게 있을 것 같은데요.
아, 20개 정도의 프로젝트를 소화한다는 건 이런 의미에 가까워요. ‘일을 쳐냈다고 생각했는데도 예상보다 많이 했네. 내가 이렇게나 많이했단 말이야?’ 제가 일에 소모되지 않으려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수동적으로 끌려다니기보단, 제가 원하는 비주얼을 주도적으로 제시할 때 이를 함께 고민해줄 수 있는 클라이언트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요. 더불어 상대방 쪽에 이런 소통을 뒷받침해주는 아트 팀이 존재한다면 더욱 일하기가 쉽고요. 아트 팀의 특징에 따라 작업의 성격이 정말 많이 달라지거든요. 근데 제가 매번 미리 알고 대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결국 제안이 들어왔을 때 시간과 일의 규모,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게 확실한지 아닌지 정도를 먼저 체크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럼 커머셜 작업을 진행할 때 정말 중요하게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결국 무엇일까요?
정리해보면 먼저 개인 작업과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작업인지가 중요해요. 그림이 너무 확 변하지 않으면 좋겠고, 만일 변하더라도 제가 동의하는 방향이나 해보고 싶던 방향으로 바뀌는 걸 선호하고요. 결국 제가 동의하지 않는 걸 원하는 클라이언트와는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죠.
클라이언트를 바라보는 기준에 도덕적인 관점도 들어간다는 의미겠죠?
네. 도덕적인 것뿐만 아니라 미적인 부분으로도 동의할 수 있느냐 여부도 중요하다고 생각되고… 여러모로 단칼에 정의하기 힘든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작업 제안 메일만 받고서 제가 모든 걸 파악할 수는 없으니까요.
요즘 괜찮았던 클라이언트를 꼽아본다면요?
최근에 공개된 작업인데요. ‘더보이즈THE BOYZ’라는 아이돌 그룹의 앨범 아트워크가 기억에 남아요. 그 분들이 절 자유롭게 놔주시면서 필요한 소스를 빠짐없이 챙겨주시고 원하는 방향성도 명확하게 제시해주셨어요. 그 정도 수위의 피드백이 작업하는 데 무척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잘 나온 앨범 아트 워크였다고 생각해요.
‘더보이즈’를 위한 앨범 아트워크. EXECUTIVE PRODUCER: CRE.KER ENTERTAINMENT, CREATIVE DIRECTION: HAUS OF TEAM.
보통 대중에게 잘 알려진 작업은 소수로 압축되는데, 람한 님 같은 경우는 어떤가요?
『보건교사 안은영』 넷플릭스 특별판 리커버가 제일 잘 알려진 것 같아요. 파급력이 셌어요. 베스트셀러 1위에도 오르고.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 주셨어요. 책 표지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지만 『보건교사 안은영』 표지를 작업한 이유는 출판사 때문이었어요. 민음사 책은 별색이나 판형 등 디자인이 예쁘게 나올 거란 확신이 있었거든요. 책이 아름답게 제작되는 건 중요한 문제죠. 북디자인에 대한 제 생각을 잠깐 이야기 하자면요. 단순한 배경에 타이포그래피만으로도 아름다운 표지를 만들 수 있고, 저 또한 그런 책을 좋아하는데요. 제 작업이 아름답게 나오지 않으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제 일러스트 작업을 고수할 필요가 없어져요. 효과가 반감되니까요.
『보건교사 안은영』 표지 풀 버전
이전에 창작자의 ‘궁핍 구간’에 대해 말한 게 무척 기억에 남는데요.
프리랜서는 일하다가 끊기는 지점이 있고 갑자기 많이 들어오는 지점이 있는데 그 완급조절을 제대로 못 하면 분명 궁핍해지는 시기가 온다는 이야기예요. 그 궁핍 구간을 잘 넘기려면 통장에 돈을 항상 모아놔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거죠. 그리고 심리적으로 조급해져서 추후에 시간 조절을 못 할 정도로 많은 일을 수락하는 실수도 이때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혹시 궁핍 구간을 슬기롭게 넘기는 노하우가 있을까요?
궁핍 구간은 정말 너무 어려워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는 것 외에 답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요. 지금은 형편이 상대적으로 좋아졌지만, 부모님 돈 말고도 친구들에게 밥도 많이 얻어먹었고 제 동생이 월세를 대신 내준 적도 있었죠. 사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정산이 되지 않거나, 일이 아예 안 들어오면 답이 없어요. 부업이라도 찾아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죠. 저도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기 전에는 스톡 이미지 라이브러리에 컷당 3만 원 받고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는 부업을 했답니다. 되게 단순하면서 통장에 돈이 바로 들어올 것 같은 작업이죠. 하지만 결국 개인 작업에 대한 갈증이 폭발하게 하는 반발 심리 덕분에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정말 열심히 일하자고 다짐한 계기가 되긴 했지만요. 프리랜서로 일하시는 분들은 수입의 일정 부분을 꼭 통장에 모아놓는 게 필요해요. 병원 갈 일이라도 생기면 정말 난감해요.
유용한 말씀이네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까요. 창작자로서 어떨 때 기쁨을 느끼시나요?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실 때 너무 기뻐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 기뻐하는 내적인 천성 때문인 것 같아요.
‘안다’는 것에도 편차가 있잖아요. 람한이란 ‘사람’을 아는 것부터 ‘작업’에 대한 친근함을 표시하는 것까지요.
저는 다 좋아요! 같은 창작자분들이 저를 인정해주시는 것도 무척 기쁘고, 대중들이 제 작업을 알아봐 주는 것도 너무 좋습니다. ‘이 그림 너무 좋다’까지 가지 않고, ‘ 나 이 그림 알아’ 하는 정도도 저한테는 너무나 큰 의미인 것 같아요. ‘이거 어디서 봤어’ 이렇게 인지도를 갖는 정도도 너무 힘든 게 현실이니까요. 제 그림이 뭔가 하나의 카테고리로 여겨진다면 얼마나 뿌듯할지…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네요.
반대로 슬플 때는 언제일까요?
음. 더 잘하고 싶을 때 슬픈 것 같아요. 창작자들이라면 한 번쯤 ‘하… 왜 나는 여기까지밖에 안 될까’라며 좌절할 때가 있죠. 보편적인 얘기 같지만 제일 솔직하게는 이게 맞는 거 같아요. 좀 더 설명하자면, 동경하는 대상과 관련 있다고 할까요. 아득할 정도의 밀도로 가득 찬 작업이나 그걸 만든 창작에 진심인 사람을 보면 상대적으로 더 슬퍼져요. ‘더 열심히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네’ 이렇게 개인적인 한계를 느낄 때예요. 사람과 작업이 연결되어 감동이 퍼지면서 압도당하고 동시에 살짝 슬픈 그런 느낌이 있답니다. 최근 8~9월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이수경 작가님의 개인전 «달빛 왕관»을 보면서 슬펐어요. 너무 좋아서요. 그분 작업을 실제 처음 봤는데, 공간에 들어가서 작업을 보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게 이런 거구나’란 생각과 함께 무척 좋으면서 슬퍼졌죠.
이수경 개인전 «달빛 왕관» 포스터
이수경 개인전 «달빛 왕관» 포스터
어떤 부분이 그렇게 좋으셨어요?
제가 고민하던 지점과 맞닿아 있어서요. 평면에서 구조물도 활용해보고, 넓은 공간이 필요한 작업을 계속하고 싶었는데 못하고 있었거든요. 스터디도 하고, 작업실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도 되고, 여러 사람과 협업해서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데 말이죠. 이수경 작가님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작품을 엄청나게 꼼꼼히 해내는 여정이 보였어요. 거기서 진심이 느껴졌어요. 작업의 조형미도 너무도 아름다웠고요. 그런 작업을 연이어 보니까 제 스스로가 ‘너무 일러스트레이터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남몰래 생각하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렸어요. ‘내가 왜 이리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까? 내가 잘하고 있는 걸 충분히 더 잘해서 자신 있게, 밀도 있게 하면 되는 걸…’ 하는 생각이 제 고민을 깨주더라고요. 깊이 감동하면서, 그분이 전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고민하던 부분에서 충돌이 생기니까 슬픔도 찾아오더라고요. ‘아, 내가 왜 이렇게 못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이요. 복잡하죠. (웃음)
창작자의 건강 관리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세요?
생활 패턴을 유지하는 게 정말 중요한데 그게 정말 마음대로 잘 안 되죠. 사실 제일 좋은 건 수면이라고 봐요. 자는 시간을 최대한 지키려고 합니다. 특히 심리적인 조절이 무척 중요하다고 느껴요. 마음이 확 불안해지거나 우울한 기분이 바이오리듬처럼 올라갔다가 훅 떨어지는 구간들은 반복적으로 존재하거든요. 그 부분이 항상 어려워요.
추천할 만한 노하우가 있을까요?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업할 때 너무 파고들면서 생각을 하면 힘들어져요. 막연하면서 피상적이면서 이상한 느낌이 올 때가 있거든요. 예컨대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해?’ ‘내가 하는 작업이 소모적인 건 아닐까?’ ‘내가 지금 누구한테 이용당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바보가 된 건 아닐까?’ 등등.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최대한 잊어버리려고 노력하고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 ’그걸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행위적인 질문을 던져요. 결국 답이 없는 고민이긴 한데 반복적으로 환기를 시켜주는 게 필요해요.
람한 님은 인스타그램을 전시장처럼 쓰시는데요. 사실 인스타그램이 창작자에게는 계륵 같은 플랫폼일 때가 왕왕 있잖아요. 특히 소비된다는 지점에서요. 인스타그램은 람한 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플랫폼이 생긴 초반에는 남들도 다 하니까 아이디를 만들었죠. 사진과 낙서를 올리다가 작업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인스타그램에 대한 애증이 생겼고요. 인스타그램이 필요 없는 작가분들도 많아요. 그런 분들에겐 인스타그램이 계륵이겠지만, 저는 인스타그램이 제 작업을 알리는 시작이었기 때문에 고민할 여지가 적었어요. 여기서 작업 연재를 시작했죠. 동생이랑 진로에 대해서 고민할 때 동생이 하루에 한 개씩 그림을 그려서 올려보라는 말을 했거든요. 사실 동생이 저보다 그림을 더 잘 그려요. 애니메이션 감독이거든요. 팔로우 수도 저보다 훨씬 많았어요. 심지어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올려보라는데 너무 힘들어서 못 하는 거예요. 근데 당시 동생은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동생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 제 작업을 인정받기 위해 시작한 플랫폼이 인스타그램이었기 때문에 다른 방도에 대해서는 아예 몰랐어요. 맨땅에서 시작했고, 작업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인스타그램 이외에는 아이디어가 없어서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플랫폼이 된 거죠. 더구나 되게 즉각적인 반응이 오니까 이를 통해 제가 성장한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시각적인 ASMR’을 추구하는 것도 소셜 미디어가 무한정으로 쏟아내는 이미지의 자극에 자연스레 노출된 상태가 아니었으면 생각하지 못했을 거고요. 지금도 저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상호 간의 영향을 주고받는 상태예요.
람한의 인스타그램
람한의 인스타그램
작업에 임하기 전에 ‘재밌겠다’라고 시작 주문을 외우면 더 몰두할 수 있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창작자 입장에서 재미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믿으시나요?
네.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지가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요소예요. 사람들이 재밌다고 느끼는 부분들은 조금씩 다른데, 저는 재미있는 지점을 잘 찾아야 일을 재미있게 잘 끝낼 수 있는 편이거든요. 예를 들어, 예전에 전시 제안이 들어왔는데 빨간 카펫이 있는 공간에서 작업을 전시한다는 거예요. 그게 저는 무척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빨간 카펫이 있는 공간에서 전시한다니! 그 장면을 너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전시가 바로 ‘타이포 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중 ‘밈의 정원’입니다. 문화역서울 284 건물 내에 있던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당 자리라고 해요. 상상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순수한 재미로서도 중요하지만 어떤 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 내가 좋아하는 지점이 뭔지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어서 재미는 무척 중요하게 살펴봐야 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혹시 그 재미가 배신할 때는 없나요?
많죠. (웃음) 재미라는 게 결국 기대와 연관되는데, 재밌겠다는 기대감이 있어도 결과적으로 재미가 없는 경우가 있죠. 그래도 작업을 여러 번 해보니까 재밌겠다 싶은 부분은 재미있더라고요.
이제 인터뷰가 막바지에 이르렀어요. 연속 질문을 던져볼게요. 먼저 계속 창작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삶의 위안이 되는 건 무엇일까요?
근본적인 질문이네요. 위안은 사실 되게 작은 즐거움에서 오는 듯해요. 그때그때 숨통을 트게 해주는 것들이요. 산책 갔다 오고, 요가 갔다 오고, 중간중간 좋아하는 게임하고, 고양이 챙겨주고, 남편이랑 놀고. 회복을 짧게 짧게 자주 해주는 게 좋아요. 크게 고생한 다음 크게 회복하면 걷잡을 수 없이 느려지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회복의 폭을 좁히려고 해요. 최대한 짧고 얇고 자주. 앞으로 지속할 수 있는 창작을 위해 필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리고 그토록 힘든 걸 감수하면서까지 창작에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항상 하고 싶었던 상태였기 때문이죠. 저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게임을 하면 게임을 만들고 싶고, 뜨개질을 보면 뜨개질을 하고 싶었죠. 게임을 하더라도 ‘마인크래프트’처럼 뭔가를 만드는 게임을 좋아해요. 만드는 행위 자체를 사랑합니다.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가장 익숙하고 가까운 만들기가 그림이었기 때문에 평생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이 되었죠.
그러면 무엇이 창작 활동을 지속하게 만드나요?
제가 앞으로 기대하는 것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걸 계속 보고 싶어서 하고 있어요. 이번 작업을 하면 다음 작업에 어떤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쉬운 점도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럼 그걸 보완하고 싶고, 어떤 걸 더 해보고 싶고 이런 마음이 드니까 계속 다음 창작으로 이어지죠.
와. 심지어 성실하기까지 하시네요!
어휴, 아니에요. 마음은 이렇지만, 엄청 놀고 싶고 게으른 사람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창작자로서 가져야 하는 애티튜드가 궁금해요.
저는 뭔가를 보거나 듣거나 어떤 자극을 받을 때 좋은 걸 먼저 보려고 노력해요. 좋은 것에 대해서 먼저 생각을 하고, ‘이게 왜 좋을까?’ 고민하고, 싫은 게 있다면 ‘이건 왜 싫을까? 내가 왜 하기 싫을까?’ 이런 식으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두 번씩 하다 보면 좀 더 솔직한 작업을 하게 돼요. 솔직한 작업이라고 해서 지극히 개인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남들에게 공감도 받고 이해도 얻을 수 있는 작업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인터뷰 3부작, 대단원이 끝났네요. 어떠셨나요?
이렇게 꼼꼼히 질문해주셔서 놀랍고 기대돼요. 글이 어떻게 정리되어 나올지… 정제된 언어로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지는 않았던 편이거든요. 이번 기회를 통해 여러 방면으로 말하고 설명할 수 있어서 혹시 제게 궁금한 점이 있었다면 조금이나마 풀렸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아티스트 프로젝트 02: 람한
Part 1. 작업 세계에 대한 이야기 <디지털 페인터, 그 이름은 람한>↗
Part 2. ‘소닉 노스탤지어’에 관한 문답 <람한과 기억 그리고 소리(ft. 노동요)>↗
Part 3. 창작자로서의 애티튜드 <람한이 숨겨둔 이야기들>
Artist
람한(한지혜)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서울을 기반으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디지털 페인터다. 디지털 페인팅을 주요 매체로 사용하며 현재와 과거의 팝·서브 컬처와 미디어에 주입된 체험적 판타지를 그린다. 대중매체 안에서 복제되고 열화되어 진위가 모호한 유사 기억을 잘라 붙여 왜곡된 제3의 장면을 소환하고, 그것을 수용자의 체험으로 치환시키는 행위에 흥미를 느낀다. 국내외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협업해 아트워크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작가로 전시에 참여하는 걸 병행 중이다.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디뮤지엄, 시청각, 우정국, 갤러리 휘슬, 스티브 터너 갤러리, 리처드 헬러 갤러리 등에서 작업을 선보였고 2020 부산비엔날레의 초대 작가였다. 2022년 두 번째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Edito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WWD 코리아» «LUXURY» 등 다양한 매체에 디자인, 건축, 공간, 라이프스타일 관련 글을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Photographer
김영훈은 2006년부터 사진 커리어를 시작해 2008년 미국 뉴욕의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 사진 전공 최우수 장학생으로 입학해 4년간 공부와 전시를 병행하며 2012년 Honor Student로 졸업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2013년 솔트 스튜디오를 열고 비주얼 아트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NYLON» 포토 디렉터를 지냈으며, 현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IKEA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의 제품과 라이프스타일을 사진이라는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