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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백신을 ‘신’으로 믿는 가상의 종교 단체 하이지니언

Writer: 빠른손
하이지니언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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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그래픽 디자이너 빠른손이 가상의 종교 단체를 위한 디자인을 작업했어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백신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 속에서 사람들의 연대를 유지하는 종교인데요. 백‘신’을 믿는 가상 종교단체 HYGIENIAN에 대해 살펴보시겠어요? 개인 위생을 중시하는 단체의 룰에 맞춘 여러 작업을 아티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YGIENIAN›에 대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하이지니언HYGIENIAN’은 위생을 숭배하는 가상의 종교 단체입니다. 백신vaccine을 하나의 ‘신God’으로 믿으며 나, 너, 우리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입니다. 이들은 COVID-19 바이러스의 위협에서 안전을 꾀하기 위해 온라인에서만 활동합니다. 디지털 매체 중 파급력이 가장 큰 인스타그램을 주요 플랫폼으로 삼습니다.

작업하게 된 계기와 콘셉트가 궁금합니다.

작업을 시작할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 앞에서 다들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계속 집에만 있어야 하는 현실에 화가 나기도 했어요. 게다가 백신을 맞을 수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성과 함께 언론에서 만들어내는 공포감 때문에 기분도 썩 좋지 않았죠. 비록 사회적 거리두기로 서로 떨어져 있지만, 사람들과의 연대를 유지하면 결국 이겨낼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을 말하고 싶었어요. 이런 상상이 자연스럽게 종교와 이어져서, 백신을 ‘신’으로 믿는 가상의 종교 단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청결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각자의 청결에 집중하는 행위는 종교 수련과 맥을 같이 하며 인스타그램으로 활동하는 걸 단체의 시작으로 삼았습니다. 인스타그램이란 플랫폼에서 가장 주요한 매체 형식은 이미지와 영상이고, 수많은 이미지와 영상이 스쳐 지나가며 빠르게 바뀌는 피드 속에서 눈에 띄게 포교 활동을 하려면 시각적으로 이목을 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다소 과격해 보이거나 기괴한 모습을 표현하는 데 ‘HYGIENIC HIPSTER’란 이미지를 주요한 스타일로 설정하고 이에 따라 활동가를 위한 의복을 디자인하고, 화보 이미지와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검정 부츠를 신은 사람이 서있다.

HYGIENIAN © bbareunson

검정, 초록 옷을 입은 사람이 있다.

HYGIENIAN © bbareunson

작업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무엇일까요? 재미있는 점도 좋습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좌우로 슬라이드할 때 생기는 가짜 공간감을 그대로 캡처하고, 이어지는 이미지를 패턴으로 만들어 옷감에 인쇄했습니다. 스토리 기능은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 공유하는 게 주된 목적인데요. 그러나 현실에서는 밖에 나가기 힘들기 때문에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이어진 가상의 공간감을 활용해 구성원 또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스토리처럼 함께 연대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또한, 바깥을 돌아다닐 때 존재감을 강조하기 위해 마치 문신처럼 옷 전체에 패턴을 이어붙여 당당함을 표현하려 했는데요. 위아래가 이어지도록 로고를 배치하고, 그 안에는 마스크, 백신 병, 주사기 같은 방어 수단에 목업(mock up)한 이미지로 패턴을 구성한 점이 볼거리입니다. 의상의 구조 또한 독특합니다. 병균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소매마다 스토퍼를 3개씩 달았고, 길게 늘어뜨려 포인트 요소로 더욱 강조를 꾀했습니다. 후드 뒤쪽으로 포니테일 머리를 빼낼 수 있게 설정해 화보 촬영 시 머리카락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손 부분에도 시보리 원단을 이용해 장갑 같은 형태를 만들어 몸 끝까지 보호할 수 있는 상태를 보여주려 했습니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어떤 점이 기억에 남나요?

새로운 매체를 활용해 그래픽 디자인을 시도한 점이 즐거웠습니다. 주로 종이나 웹사이트처럼 평면에 붙어 있거나 스크린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니라, 사상을 표현하는 도구로 문신과 옷을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직접 입고 만지는 물성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냈으니까요.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다각도로 신경 써야 하는 점이 힘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장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검정 초록 옷을 입은 사람이 고글을 쓰고 있다.

한 사람의 창작자로서 기본적으로 갖는 태도나 관점이 궁금합니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대부분 클라이언트가 존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곤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좋아 보이는 것과 클라이언트의 취향, 그리고 프로젝트의 목표가 이루는 삼각형에서 균형을 잡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안을 잡을 때도 모든 시안의 내러티브와 시각화 방법, 그래픽 시스템 등을 최대한 제 마음에 들고 스스로 설득될 때까지 만들어보는 편입니다. 매번 마음에 들 수야 없지만, 앞서 말한 삼각형의 균형을 맞추는 게 저 자신이 이상적으로 바라는 목표이자 창작자의 태도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창작하면서 가장 기쁠 때는 언제인가요?

제가 만든 시스템이 잘 유지되고, 사용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브랜딩 작업의 경우, 고객들이 굿즈나 애플리케이션 작업을 들고 다니는 장면을 목격할 때죠. 웹사이트의 경우, 기능적으로 구동이 잘 되고 업데이트를 통해 지속해서 잘 사용할 때 굉장히 흡족하고 뿌듯합니다.

한국에서 창작자로 살아남기란 참으로 힘든데요.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현재 대학원 생활과 1인 스튜디오 운영을 병행하고 있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주 힘든데요. 정해진 마감 기한에 맞춰 일을 끝내려고 마음대로 쉬지 못하고 버티는 게 참 힘든 부분으로 다가옵니다. 건강이 나빠지기도 하고, 평일과 주말, 공휴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어요. 이러다가 정말 큰 일이 날 것 같아, 이제는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을 정하고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일찍 일어나는 날에는 아침에 운동하기도 하고요. 이제 대학원 마지막 학기라서 요일을 나눈 후 논문과 작업에 배분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걸 오래도록 지속하려면 버티는 힘이 절실합니다. 버티는 노하우를 공유해주세요.

작업을 지속해서 하기 위해서는 작업 중 어떤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지 잘 알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 과정을 제 장점으로 밀어붙이고, 저만의 무기로 만들어서 지칠 때마다 버틸 수 있으니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과정과 어떤 결과물로 만들어낼지 상상하는 과정에서 오는 희열이 커서 계속 재미있게 작업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웹 개발을 할 때는 한 페이지의 구조를 머릿속에 그리고, 이를 손으로 입력하면서 소위 ‘노가다’를 하는 것처럼 머릿속 이미지를 프로그래밍 언어로 바꾸는 순간이 즐겁습니다. 이런 재미로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습니다!

Artist

빠른손(김도현)은 서울을 기반으로 그래픽 디자이너와 웹 퍼블리셔로 활동하는 창작자다. 2019년 서울시립대학교 시각디자인 전공으로 학사를 따고 현재 동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 중이다. 웹이란 도구를 활용해 그래픽 디자인의 문법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지난 2015년 시작한 ‘전주국제영화제’의 부대 전시 «100 Films 100 Posters»에 지금까지 출품한 약 600점의 포스터를 그래픽 기법에 따라 분류한 웹 프로젝트 ‹100 Posters 100 Trends›를 기획, 디자인, 개발했고, «OB/SCENE FESTIVAL 2020» 웹사이트를 디자인 및 개발했다.

기획, 그래픽 디자인, 영상 디자인, 사진: 빠른손

모델: 강나해

의상 기획: 빠른손, 강해찬, 임채민

메이크업: 말리

현장 도움: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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