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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Portfolio

건축의 영역을 넓히는 창작자

Writer: 이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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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흥미로운 작업을 파고듭니다

이용주 작가의 직업은 건축가 겸 교수입니다. 그런데 건물이나 주거 공간을 설계하는 보통의 건축가와는 조금 많이 다른 느낌이에요. 작업을 보면 마치 설치 작품처럼 실험적인 느낌이 물씬 나거든요. 실제로도 건축의 영역을 넓히는 창작자라는 생각을 갖고 다양한 매체와 아이디어로 작업한답니다. 이를 위해 뻔한 공간에서 영감을 얻기보단 소설, 영화, OTT를 보며 창작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 새로운 세계와 순간적으로 쑥 빨아들이는 가상의 뒤틀린 이야기에서 헤엄치며 사유합니다. 그는 새로움과 모험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갖고, 철저히 개인적인 생각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창작자의 삶을 추구하는데요. 천재가 아닌 이상, 현재 재미있는 구석을 어딘가에서 찾아야만 한다고 느낍니다. 정색한 채로 일에 접근하는 게 그의 본성과 맞지 않기도 하고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들의 반응을 일으키는 작업을 하다가 종국엔 자신이 설계한 괴상한 건물 1층에서 핸드드립 내려주는 카페 사장님 겸 건물주가 되고 싶다는 이용주 작가의 흥미 돋는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 보세요.

공포가변2

‹공포가변›, 2021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용주건축스튜디오의 소장이자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인 이용주입니다.

지금의 창작자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렴풋이 영화가 모든 예술의 총합이라고 여기며 그걸 만드는 사람이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장래에 대해서 그렇게 대담한 결정을 하지는 못했어요. 대신 영화와 유사해 보이면서 공학과 미술 중간 어딘가라는 느낌으로 건축을 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어떤 계기를 갖고 무언가를 한다기보다는, 학부와 대학원 때 배운 것을 아직까지 하는 것에 가까워요.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건축의 영역을 넓히는 창작자라는 생각으로 작업 중입니다. 보통 건축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공학으로 여기며 작업하는 편이에요. 감성적인 접근보다 이성적인 방향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공포가변1

‹공포가변›, 2021

작업 공간에 대해서 편하게 소개해 주시겠어요?

주로 학교에 있는 연구실과 산업용 로봇이 설치된 ‘로보틱 패브리케이션 스튜디오Robotic Fabrication Studio’라는 실험실이 주된 작업 공간이에요. 설계사무소 공간도 외부에 따로 있지만, 요즘은 바빠서 자주 가진 못해요. 주로 컴퓨터로 작업하기 때문에 랩톱을 가지고 장소 가리지 않고 일합니다.

맞춤집-Robotic Fabrication Studio

Robotic Fabrication Studio에서 작업 중인 ‹맞춤집›

분해농장-Robotic Fabrication Studio

Robotic Fabrication Studio에서 작업 중인 ‹분해농장›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다른 건축가나 디자이너가 만든 공간에서 영감을 얻는 것 같지는 않아요. 거의 매일 새로운 소설과 영화, OTT를 봅니다. 창작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SF와 호러 장르, 순간적으로 집중되는 가상의 뒤틀린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런 이야기나 영상에 나오는 이상한 이미지에 흥미가 가면서, 이런 생각과 모습을 입체에 적용하면 어떤 모습일까, 자주 생각합니다. 저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고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작업하실 때 어떤 창작 과정을 거치시나요?

머릿속에 수많은 레퍼런스를 수시로 넣고 상황에 맞게 꺼내는 방식 같아요. 가능하면 초기 콘셉트가 나름의 논리를 거쳐서 구현되는 과정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과정이 그대로 결과물에서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과 입체인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제 작업이 2D로 읽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스케치를 거의 하지 않고 바로 컴퓨터로 작업을 많이 합니다. 3D 모델링과 알고리즘을 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시간이 좀 되긴 했지만, 가장 많이 알려진 작업은 ‹뿌리벤치› 같아요. 한강 공원에 만든 지금 30m 크기의 조형물 겸 벤치인데요. 중심에서 뻗어나가는 뿌리를 알고리즘을 활용해 형상화했어요. 최근에는 산업용 로봇을 이용한 작업을 많이 하는데요. ‹분해농장›은 열선으로 가공한 스티로폼에 밀웜 애벌레를 놓아 건축을 분해하려는 공간 실험, ‹맞춤집›은 전통 건축의 목재 맞춤을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변형한 후 로봇팔로 가공해 짜맞춘 파빌리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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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벤치› 도면

뿌리벤치-도면

‹뿌리벤치› 도면

분해농장1

‹분해농장›,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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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해농장›, 2022

‹맞춤집›,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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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집›, 2023

작업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일반인은 건축이라고 하면 부동산, 인테리어, 전원주택 등을 떠올리는데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많은 한국인이 놀랍도록 미니멀하고 심하게 무겁고 심각해 보이는 공간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할 때나, 공간의 효율성만을 따질 때 안타까워요. 더불어 영화에 나오는 미래 공간이나 소셜미디어에 출현하는 멋진 공간이 여전히 1920~30년대 나온 모더니즘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기운이 빠집니다. 우리는 모더니즘이 만든 콘크리트 건물에 살고 있지만, 건축은 그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봐요. 사회의 광범위한 관심사를 공간으로 통합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드러내려고 노력합니다.

Filament Mind 2013 와이오밍공립도서관 설치물

‹Filament Mind›, 2013

Filament Mind 2013 와이오밍공립도서관 설치물-단면도

‹Filament Mind› 단면도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건축이 아닌 것을 전공한 적이 없는데, 주로 들어오는 의뢰가 미술 전공자에게 갈 만한 프로젝트라는 점이랄까요. 제 관심사 안에서 작업할 수 있으면 딱히 나쁘지는 않은데요. 가능하면 스케일이 큰 일을 다루는 걸 선호합니다.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보통의 삶을 살아요. 나중을 위해 뭔가를 준비한다기보다는, 지금 즐거워지려고 노력합니다. 괜찮은 커피를 마시고, 괴상한 영화를 보고, 운동을 합니다. 그렇다고 소확행을 추구하는 건 아니에요. 지금 먹고 보고 듣고 입는 모든 게 창작에 영향을 미친다고 봐요.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좀 더 직접적으로 환경 관련 내용을 디자인에 넣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아까 말한 밀웜도 그렇지만, 유기체를 건축적으로 활용하는 걸 시도 중인데요. 지금은 균사체와 이끼를 로봇과 결합해 무언가를 해보려 해요. 디자인과는 별개로 가장 미니멀한 매체인 문자를 사용하는 창작 작업인 글쓰기를 잘하고 싶어서, 한국어와 영어로 글을 많이 쓰려 노력합니다.

SEAT 2012 아틀란타공원설치

‹SEAT›, 2012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매사에 너무 심각하거나 진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작업에도 드러나는 것 같아요. 정색한 채로 일에 접근하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런 결과물에 약간 거부감을 느끼기도 해요.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일에 대한 의뢰가 들어오지 않는 게 슬럼프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근데 그냥 계속하는 거지 딱히 슬럼프를 느끼거나 극복할 만큼 극적인 삶을 사는 것 같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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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동 앵커시설›, 2019

회현동앵커시설 2019대한민국공공건축상2

‹회현동 앵커시설›, 2019

회현동앵커시설-단면도

‹회현동 앵커시설› 단면도

최근 들어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무엇인가요?

점차 건물을 만들지 못하는 건축가가 되는 것 같아서, 현재 한국 건축계와 조금 멀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의 태도와 철학을 알려주시겠어요?

사람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걸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나아가 어느 정도 사회 시스템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모든 창작자가 그러기를 바라는 것까지는 아니에요. 창작자는 철저히 개인적인 생각을 기반으로 어떤 매체를 통해 표현하며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를 설득하는 건 힘들지만, 절반의 호응이라도 얻자는 생각으로 작업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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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목119안전센터›, 2017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려는 다른 창작자에게 건네고 싶은 노하우나 팁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현재가 중요하다고 봐요. 일 자체든, 그 외의 취미든, 꾸준히 재미있는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천재라면 반짝이는 센스로 짧게 작업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를 포함해 천재가 아닌 사람들이 길게 보고 일하려면 현재 재미있는 구석을 어딘가에서 찾아야만 한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창작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저를 기억하진 않아도 돼요. 건축이나 예술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 지나가다 “저건 뭐지?” 하고 한 번쯤 돌아볼 수 있는 걸 만들면 매우 만족할 것 같아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들의 반응을 일으켰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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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모양›, 2019

현재 품고 있는 이상적인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내가 설계한 괴상한 건물 1층에서 핸드드립 내려주는 카페 사장님 겸 건물주.

Artist

이용주(@yongjulee.arch)는 공간과 관련한 모든 부분에서 실험성을 추구하며 여러 스케일과 다방면의 매체로 일상을 자극하는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2021년 미국의 건축 잡지 «Architectural Record»에서 차세대 세계 건축을 리드할 10명의 건축가를 선정하는 ‘디자인 뱅가드Design Vanguard’에 뽑혔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뉴욕현대미술관(MoMA),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등에 참여했고, 대한민국공공건축상, iF 디자인 어워드 등 국내외 다수의 디자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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