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드리언 쳉Adrian Cheng이란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그는 홍콩 4대 재벌인 쳉 가문의 공식 승계자입니다. 쳉 가문의 재산은 알려진 것만 해도 30조원이 훌쩍 넘죠. 우리나라 최고 부호인 삼성가보다 많답니다. 그는 예술과 문화를 엮은 다양한 공간을 홍콩과 중국 본토 각지에 구축하는 젊은 기업가이자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트 컬렉터이기도 합니다. 크리에이터를 중시하는 기업가정신을 기반으로 전 세계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그를 «비애티튜드»가 서울에서 단독으로 만났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리치 아시안Creative Rich Asian’의 대명사, 에이드리언 쳉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확인해보세요.
About the interviewee
에이드리언 쳉Adrian Cheng은 홍콩 최고의 부호 중 한 명인 고(故) 청유퉁의 손자로 태어났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하고 2006년 가문의 주력 기업이자 홍콩 최대 부동산 회사 중 하나인 뉴월드개발에 입사해 현재 CEO 겸 부회장을 맡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보석 브랜드 중 하나로 중화권을 대표하는 저우다푸(周大福)의 전무 이사이기도 하다. «블룸버그»가 추산한 쳉 가문의 재산은 230억 달러가 넘는다. 2008년 K11을 시작하며 이듬해 세계 최초의 뮤지엄 리테일 스토어 ‘K11 Art Mall’을 오픈했다. 현재 홍콩 및 중국 각지에 문을 연 K11 Art Mall은 예술과 문화를 커머스와 엮은 흥미로운 리테일 공간으로 에이드리언 쳉의 앙트레프레너십을 잘 보여준다. 2010년 설립한 K11 Art Foundation은 아시아, 유럽, 미국을 잇는 광활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동시대 중국 아티스트를 후원하고 새로운 전시와 행사를 기획한다. 2017년 홍콩 최연소로 프랑스문화예술훈장 오피시에Officier를 수훈했고, 2020년 영국 미술 잡지 «아트리뷰»가 선정한 ‘세계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12위로 꼽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비애티튜드» 독자를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해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에이드리안 쳉입니다. 저는 사업가이자 크리에이터입니다. 소셜 이노베이터Social Innovator와 자선가로서 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기도 해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아트 컬렉터이기도 합니다. 직업이 꽤 많은 편이죠. (웃음) 저는 2008년 론칭한 K11을 통해 문화와 예술을 커머스와 접목하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가문의 부동산 개발회사를 운영하며 아파트, 호텔을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부동산과 문화를 엮어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더 나아가 사회 혁신 플랫폼으로 도움이 필요한 분을 지원해요. 특히 사회로부터 정신적인 학대를 받는 어린이에 관심이 많아요.
에이드리안 쳉은 권위 있는 동시대 미술잡지 «Art Review»가 선정하는 ‘세계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리스트에서 2014년 이래 빠지지 않고 있다.
에이드리언, 사실 우리가 구면이잖아요. (웃음) 지난 2017년 진행한 인터뷰가 벌써 5년 전이네요. 그 사이에 팬데믹이 터졌고, 세상은 ‘뉴노멀’을 맞게 됐어요. 다시 인터뷰하는 소감이 어떤가요?
당신 얼굴이 똑같네요. 하하. 서울을 예로 들어볼게요. 5년 전과 비교해 서울이라는 도시는 확실히 많이 변했어요. 특히 예술과 문화 쪽으로요. 전보다 더 많은 디자이너와 크리에이터가 활동하고 국제적인 면모도 갖췄답니다. 로컬에서 글로벌로 이동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도시를 감싸는 에너지와 분위기를 통해 느낄 수 있어요. 특히 서울 곳곳에 흥미로운 콘셉트를 가진 구역이 많이 생겨나서 기쁘네요. 성수동이나 한남동을 보면 알 수 있죠. F&B 쪽도 더욱더 풍부해졌고요. 예전보다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진 점도 서울이 국제적으로 변모했다는 사실을 잘 알려줘요.
홍콩 카오룽반도에 위치한 ‘빅토리아 독사이드’ 프로젝트 전경 사진. 총 3조원이 넘는 자금이 들었다.
당신은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뉴월드그룹의 부회장이자 CEO이고, K11의 창립자이며, 저우다푸의 전무 이사에요. 직함으로는 변화가 없지만, 지난 5년간 굉장히 많은 일을 했다고 들었어요. 간단히 얘기해줄 수 있나요?
뭔가 딱 집어서 말하기가 힘든데요. (웃음) 먼저 2019년 ‘빅토리아 독사이드Victoria Dockside’ 프로젝트를 완료했어요. 총 26억 달러를 들여 홍콩 침사추이 지역의 유서 깊은 부둣가를 재개발했죠. 그 시작을 알리는 건물은 ‘K11 MUSEA’에요. 쇼핑, 미식,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복합 공간입니다. 빌딩 일부는 홍콩 야경을 코앞에서 즐기는 최고급 주거시설인 ‘K11 ARTUS’로 개발했어요.
복합 문화 공간 K11 MUSEA의 외관은 카오룽반도에서 단연코 눈길을 사로잡는다.
K11 MUSEA 내부 공간은 홍콩 건축사무소 LAAB가 디자인했고, 내부 구조물은 홍콩 아티스트 윌리엄 램이 담당했다.
K11 ARTUS 테라스에서 바라본 홍콩섬.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환상적인 야경을 집에서 즐길 수 있다.
더불어 홍콩에서 8번째로 높은 빌딩도 세웠고요. 여기에는 프라임 오피스인 ‘K11 ATELIER’와 세계적인 럭셔리 호텔인 ‘로즈우드호텔Rosewood Hotel’이 들어왔어요. 넓은 부지에 다양한 용도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죠. 혹자는 ‘홍콩의 허드슨 야드Hudson Yards’라고 부른답니다.
홍콩에서 8번째로 높은 빌딩은 프라임 오피스 ‘K11 ATELIER’와 세계적인 럭셔리 호텔 ‘로즈우드호텔Rosewood Hotel’로 쓰이고 있다.
요즘에는 ‘11 SKIES’에 집중하고 있어요. 홍콩 최대 규모의 리테일 엔터테인먼트 복합시설인데요. 홍콩 국제공항 인근에 자리 잡은 터라 홍콩, 마카오를 비롯해 중국 광둥성 주요 도시에서 접근하기 쉬워서 기대가 커요. 엔터테인먼트 시설, 아쿠아리움, 키즈 콘텐츠 및 프라임 오피스와 의료시설이 들어가고 120개 이상의 F&B를 포함해 800개가 넘는 브랜드를 유치할 계획이에요.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새로운 개념의 복합시설이 될 거예요.
홍콩 국제공항 인근에 자리 잡은 11 SKIES 조감도.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홍콩의 명물 극장인 ‘스테이트 씨어터State Theatre’를 보존한 일도 빼놓을 수 없네요. 홍콩 노스포인트에 자리 잡은 이 극장은 1952년에 개관했어요. 70년이란 세월을 지탱한 역사적 건물에서 어떤 점을 개선하고 보존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던 헤리티지 프로젝트입니다.
70년 동안 자리를 지킨 ‘스테이트 씨어터’의 과거와 현재 모습. 포물선 지붕 뼈대의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홍콩의 1등급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애티튜드»는 크리에이터, 아티스트, 크래프트맨십에 관심이 많아요. 이처럼 일상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모습을 ‘아티스틱 라이프스타일Artistic Lifestyle’이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당신이 K11을 운영할 때 중시하는 방침과 여러모로 겹치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저희는 ‘아티스틱 무브먼트Artistic Movement’를 강조해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모든 스태프를 한 명의 아티스트로 간주하고, 그들이 시간을 쏟아부어 좋은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장려하는 거죠. 그 대상이 아파트든, 호텔이든, 리테일 스토어이든 말이에요.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고객을 향합니다.
아티스틱 라이프스타일이 소수가 즐기는 영역을 넘어 비즈니스적으로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예술은 이미 소수가 즐기는 영역을 벗어났어요. 예술과 관련한 컬래버레이션이 우리 주변에 정말 많이 보이잖아요. 미술, 음악 그리고 패션은 서로 융합해 긴밀히 협업하며 대중에 스며들고 있어요. 지난 14년 동안 K11이 바로 이런 일을 해왔던 것이고요. 사람들이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예술의 민주화’를 시도했죠. 비즈니스 측면에서 팁을 드리자면,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해요. 크리에이터 혼자 좋다고 생각하는 예술을 지양하고 관점을 바꿔보세요. 구매자의 입장을 꼭 염두에 두세요.
K11 MUSEA에 설치한 에르빈 부름Erwin Wurm의 작품. K11에 방문한 사람은 쇼핑과 예술을 함께 누릴 수 있다.
(위) K11 Craft & Guild Foundation이 기획한 중국 전통 공예 전시회. (아래) ‘K11 상하이’에서는 중국 최초의 모네 전시회가 열리며 큰 화제를 모았다.
예전에 ‘스스로 아티스트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한 명의 크리에이터라고 믿고 있다’란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생각은 지금도 동일한가요?
음… 저는 이제 스스로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대신 큐레이터라고 생각해요. 크리에이터는 말 그대로 창조에 집중하는 사람이잖아요. 실제 저는 지난 10여 년간 많은 것을 창조해왔어요. 특히 K11을 만들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이제는 큐레이터로서 제품을 통한 경험의 여정을 설계해 고객에 선보이고 있어요. 다른 크리에이터가 창작한 산물을 큐레이팅하며 스케일이 커지는 거죠. 이를 위해 크리에이터가 지속해서 활동할 수 있는 더 좋은 플랫폼을 구축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저는 늘 어떤 로맨스, 기억, 노스탤지어를 생각하며 세상을 바라봐요. 동시에 즉흥적이며 자연스러운 행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죠. 정교한 계획은 늘 필요해요. 하지만 사람들이 즉흥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백의 공간 또한 존재해야만 하죠. 결국 균형을 잘 맞춰야 해요.
홍콩은 오랜 기간 동서양 문화가 만나는 혼재된 공간이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뒤섞인 다양한 시간이 공존하는 도시다. 에이드리언 쳉은 여기서 어떤 로맨스, 기억 그리고 노스탤지어를 추출하며 세상을 바라본다.
21세기를 사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으로 창의성을 꼽는데요. 정작 그 대표 주자인 크리에이터와 아티스트는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이런 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간극이 발생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창작물을 제대로 접할 기회가 자주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둘 사이를 잇는 다리가 필요해요. «비애티튜드»같은 온라인 매체가 Z세대를 비롯한 젊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창작물을 살펴보며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다만 콘텐츠와 관객이 서로 매치가 안되는 경우에는 공명이 일어나지 않아요. 마치 서로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것과 비슷하죠. 만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해 접근한다면 사람들은 분명 좋은 반응을 내비칠 거예요. 그런 면에서 저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NFT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NFT는 디지털 형태의 자산이면서 유니크해요. 더불어 도구이기도 해서 사람들이 사용할 수밖에 없어요. NFT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크리에이터는 이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기존과 다른 채널에서 작품을 보여주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요.
요즘 모든 기업과 브랜드의 화두는 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거예요. 당신도 사업가로서 늘 고민할 것 같은데요. 이들을 타깃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일은 왜 중요한가요?
답은 간단해요. Z세대는 미래니까요. 그러니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걸 필요로 하는지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할 수밖에 없죠. 지금 사회에는 너무나도 많은 세대가 공존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Z세대의 말은 묵살되곤 하는데요. 미래의 주역이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가치를 알아보며 이들이 생각하는 앞으로의 10년이 어떨지 체크하는 거죠. 사회를 이끌 다음 세대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 스스로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 Z세대는 탈중앙화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그들을 관리하거나 어떤 일을 하도록 강요하기보다 자율권을 갖고 창의적으로 행동하도록 권장하고, 대화와 리뷰를 통해 도와주는 게 좋다고 봐요. 지시 내리는 태도로 접근하면 창의력을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죠. 예전 세대와는 접근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달라요.
에이드리언 쳉은 다양한 매체의 커버를 장식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많은 이에게 꾸준히 알려왔다.
‘에이드리언 쳉’이란 존재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죠. 당신은 이를 어떻게 활용하나요?
제가 가진 영향력과 목소리를 유용하게 사용하면 다음 세대에게 자율권을 줄 수 있어요. 여기에서 말하는 다음 세대는 아티스트, 디자이너를 비롯해 크리에이티브 분야에서 활동하는 모든 이를 지칭하죠. 플랫폼을 통해 크리에이터를 인큐베이션하고 대중에게 선보이는 기회를 넓힐 수도 있을 거예요. 결국 창의적인 사람 모두를 돕는 건데요. 이런 사람이 한데 모이면 우리 사회를 전보다 더욱 창의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홍콩을 시작으로 K11은 중국 본토 곳곳으로 진출하며 예술과 문화를 결합한 새로운 공간으로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다. (시계 방향으로) K11 광저우, K11 상하이, K11 선양의 모습.
여러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당신의 행보가 마치 거대한 판을 바꾸려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혹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나요?
제가 가진 철학을 정확히 파악하셨네요. 저는 장벽을 허물고 경계선을 없애는 일을 해요. 더 중요하고 거대한 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요. 위대한 성취에는 당연히 어려움이 따르고 문제도 많이 생겨요. 특히 많은 사람을 설득해 제가 믿는 비전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건 정말 쉽지 않죠. 하지만 지난 14년 동안 제가 매일 해온 일이기도 해요. 우리 사회에는 저 같은 사람이 한 명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렵고 힘들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끝없이 벽을 부수는 사람 말이죠. 그러지 않고서는 사회가 앞으로 계속 전진하고 진보를 멈추지 않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을 거예요.
요즘 당신이 관심을 쏟는 대상이 궁금해지네요.
피지컬과 디지털의 관계가 참 흥미로워요. 예를 들어 NFT가 제품이 되는 과정, 웹 2.0과 웹3.0에 물리적인 장소가 합쳐지는 것 말이죠. 지속가능성과 ESG에도 큰 흥미를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도 늘 생각한답니다.
사람은 마음의 평안을 얻을 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은 순수하게 살아갈 때, 의식이 열린 상태를 유지하며 깊은 이해심을 발휘할 때,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 무언가를 사랑할 때도 행복하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 행복해요. 다만 인간이 완벽한 행복을 누릴 수는 없죠. 저를 포함해 다들 행복을 향해 노력하는 거니까요. 결국 자기 마음과 생각이 중요하다고 봐요. 제가 죽은 후 “에이드리언은 세상에 무엇을 남겼지?”라고 누가 물을 때 그간 수많은 장벽을 허물고 다양한 창작을 위해 시도했던 노력이 꼽혔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사랑과 따뜻함을 세상에 널리 남겼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네요. 그거면 만족해요.
Editor
전종현은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하고 한국문화관광연구원 RA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간 디자인» «SPACE 空間» «노블레스»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디자인매거진 «CA»와 «허프포스트코리아»에 다양한 칼럼을 썼다. 주거 건축을 다루는 «브리크» 부편집장, 편집위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지냈다. 현재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로 «조선일보» «디에디트» «LUXURY» 등에 글을 기고한다. «비애티튜드»의 편집장이기도 하다.
이현구는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홍콩대학교에서 문화연구 석사 과정을 잠시 진행했다. 현재 «비애티튜드» 프로젝트 매니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