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윤 작가의 작품을 보면 이질적이면서 관능적이라는 감탄사가 나옵니다. 마치 유기물이 연상되는 형태와 금속이 서로 결합해 만들어내는 오묘한 긴장감 덕분인지 마치 자신을 만져보라고 유혹하듯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해요. 조각이 지닌 촉각성과 생성적인 특성을 통해 보는 이와 상호주체적 관계를 맺는 작업이라고 부르는 이유예요. 그는 자기 자신과 가장 친하게 지내라고 귀띔해요. 어떤 것을 관찰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욕망을 지니고 있는지, 자신에 대해서 가장 잘 알면 알 수록 자기다운 작업이 가능하니까요. 평소 작업할 때도 손과 눈과 머리의 직관적인 대화를 통해 아슬아슬하게 의견을 맞추며 작업을 완성하는 그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은 중요하답니다. 혹여나 마음이 무겁고, 두렵거나, 조급해질 때마다 스스로 되물어보거든요. “내가 중시하는 게 뭘까? 나는 왜 작업을 하는 걸까?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언제나 궁금하고 흥미로운 작업을 하는 작가, 무해한 인간이자 유쾌한 창작자를 꿈꾸는 현정윤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만나 보세요.
어머니가 미술을 전공하시기도 했고 저 또한 미술을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가까이 접할 수 있었어요.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시점을 명확하게 말하긴 힘들 것 같아요. 작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계속 ‘좋은 작업을 하고 싶다. 좋은 작업은 대체 뭘까?’ 고민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지금 작업실은 봉천동에 있어요. 작년 금천레지던시에서 나오면서 친분과 애정을 쌓은 옆방 작가님과 함께 공간을 마련했어요. 원래 커다란 통짜 공간이었는데 중간에 벽을 올려서 나눴죠. 지금은 다른 분과 함께 쓰고 있는데요. 작업실을 구한 첫해에는 함께 쓴 작가님뿐 아니라 저 또한 전시 준비로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작업실 동료로서 의지한 덕분에 외롭지 않았어요.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영감이라고 표현할 만큼 거대한 순간은 아니지만, 저는 제 기준에서 귀엽다고 생각하는 것을 발견하면 일상적으로 사진 찍는 습관을 지니고 있어요. 가끔 그 이미지들을 펼쳐두고 제가 관찰한 걸 다시 눈여겨보며 제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계속 발견해 나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예전에 진행한 작업에 대해 이해력이 높아지는 순간이 오거든요. ‘아, 내가 이때 이런 작업을 하고 싶었던 거구나?’ 새롭게 이해하거나 발견할 때 또 다른 영감으로 작용한답니다.
사실 저는 뭘 하고 싶은지 완전히 모르는 채로 작업할 때가 잦아요. 언어로 정리할 수 없으니 작은 버전의 조각을 만드는 과정을 포함해서 드로잉을 여러 번 하며 어렴풋이 제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조각의 감각과 태도를 익힙니다. 그 후 작품이 되는 조각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드로잉을 통해 사실상 추상적인 감각을 익힌 거지, 구체적인 청사진으로써의 드로잉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서 조각을 실제 만드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은데요. 보통 감각을 포착한 손이 형상을 만들어 내다가 눈과 머리에게 “이게 맞아?” 물어보면, 눈이나 머리가 “아니, 아니, 여기가 좀 더 이~~렇게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면 손이 “하…내가 다시 해볼게. 봐봐”하는 과정을 반복해요. 이렇게 서로 끊임없이 논쟁하고 싸우다가 어느 순간 다 같이 “오…이게 맞는 것 같은데?”라고 합의를 보거나 의견을 맞추는 순간이 찾아온답니다. 주로 아주 아슬아슬하게 데드라인에 맞춰서요. (웃음)
최근 뉴스프링프로젝트에서 열린 «UNBOXING PROJECT 3: Maquette (언박싱 프로젝트 3: 마케트)»에 참여했어요. 모든 작가가 벽에 걸리는 작은 규격의 좌대와 드로잉 종이를 동일하게 받고 작업을 시작했는데요. ‹Watch me move›는 토르소처럼 완전하지 않은, 절단된 신체를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에요. 뒤로 젖힌 동세를 지닌 신체의 부분으로 볼 수도 있고, 알 수 없는 어떤 생명체나 덩어리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요. 섹슈얼리티 혹은 섹슈얼리티들을 지닌, 계속해서 자라나고, 분화하고, 변화하는, 살아있는 신체를 상상하며 만들었습니다. 조각이 지닌 촉각성과 생성적 특성을 통해 관객이 조각을, 대상을 새롭게 마주(encounter)하길 바라며 작업했어요.
작년에는 아트선재센터에서 여름에 시작해 겨울까지 이어졌던 전시 «오프사이트»에 참여했는데요. 평소 전시 공간으로 쓰지 않는 미술관의 기능적 공간을 전시 장소이자 재료로 삼아서 재구성하는 전시였어요. 제 작업이 위치한 공간은 미술관 지하 아트홀의 백스테이지와 분장실이었죠. 백스테이지에 있었던 ‘Dancing Spiral’이란 이름으로 시작하는 연작 세 점은 철 구조물을 마치 세포 분열하듯 타고 자라나는 덩어리의 생성적인 힘이 곧은 철을 변형해 두 몸체가 함께 유연하고 관능적인 곡선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이리저리 꼬인 철 파이프와 덩어리로 이루어진 조각은 각각 여러 몸을 합친 몸체일 수도, 서로 연결-접합할 수 있는 한 몸체의 부분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분장실 선베드 위에 놓은 실리콘 조각 ‹Feeling you and Feeling me›는 철망에 끼어 자라며 형상이 변형된 채소를 보고, 그 이후의 삶을 상상하면서 만든 작품이에요. 원형에서 변형된 몸체를 가진, 굴곡진 두 개의 조각이 하나의 선베드 위에 함께 올라가서 분장실 거울에 다각도로 반사되는, 이질적이고 생경한 상황을 자아내고자 했습니다.
미술과 관련한 일상―작업하기, 전시 보기, 가르치기― 외에는 보통 멍때리고, TV 보고, 가끔 낮술 하면서 프리랜서 같은 삶을 자축, 자위하기도 해요. 조카들, 친구들의 아기들과 노는 것도 좋아합니다.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최근 그리기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생기고 있어요. 아직 적극적으로 시도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현재 갖고 있는 궁금증과 표현하고자 하는 에너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마음이 무겁고, 두려움에 휩싸이고, 조급해질 때는 중요치 않은 것에 주의를 빼앗겼거나 휩쓸린다고 생각하며 다시금 저 자신에게 되물으며 마음을 다잡아요. ‘내가 중시하는 게 뭘까? 나는 왜 작업을 하는 걸까?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그렇게 마음을 가볍게 하고 평정심을 찾으면 다시 재밌게 작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현정윤은 공간에 쓰인 보이지 않는 힘의 관계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존재의 양태를 참조해 작업으로 만든다. 그는 조각에 모종의 태도를 부여하거나 조각의 물성을 통해 신체의 의지를 드러낸다. 조각이 공간에 어떻게 위치하는지에 따라 조각이 무엇을 바라보는지, 즉 조각의 시선과 역할을 설정하는 일을 즐기며 제시되는 정지된 조각의 상태를 통해 관객이 조각에 있었을 법한 일과 조각이 할 수 있는 일 등을 상상할 수 있길 기대한다. 개인전으로 «See you down the road»(팩토리2, 2021), «울며 수영하기»(송은아트큐브, 2020), «You Again»(OS, 2019)등을 열었고, «오프사이트»(아트선재센터, 2023), «젊은 모색 2021»(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021) 등 다수의 그룹전과 금천예술공장(2022),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21) 등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