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오브서울: 강아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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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ce of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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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nterview

다채로운 대화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피스오브서울Piece of Seoul’은 대중음악평론가 김윤하 님이 최근 새롭게 발매한 한국 대중음악 앨범 중 가장 인상 깊은 피스를 꼽고, 해당 뮤지션과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피스오브서울에서 피스는 조각(piece)이면서 동시에 평화(peace)를 뜻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태어난 새로운 음악의 조각과 여기에서 길어 올린 마음의 평화를 뮤지션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세요. 다섯 번째 피스는 사람을 너무나도 좋아하고 사랑해서, 마치 호흡하듯 자연스럽게 사랑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표현하는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이 5년 만에 발표한 정규 4집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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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드물게도 깨끗하게 정리된 빈 책상에 앉아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의 신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를 틀었다. 첫 번째 트랙인 ‘어떤 겨울은’의 기타 첫 음이 울리는 순간, 꼭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솔이라는 뮤지션을 안 지 벌써 10년. 이번 신보처럼 창작자의 지난 시간이 꾹꾹 눌러 담겨 있다는 느낌이 드는 앨범은 처음이었다. 강아솔답게 여전히 따뜻했지만,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싸움을 어렵게 끝낸 이의 얼굴에 떠오를 법한 쓸쓸한 미소가 앨범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실제로 강아솔은 이 앨범을 두고 ‘정말 긴 터널을 통과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강아솔의 네 번째 정규 앨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는 제목 그대로 서사를 전개하는 앨범이다. 사랑이 전부였던 한 사람이 그 전부를 잃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났다가 다시 모두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이야기. 무척 사적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 같기도 한 여정을 뮤지션 특유의 포근한 터치로 그려낸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 무작정 떠난 삿포로행 기차에서 태어난 연주곡(‘어떤 겨울은’)으로 시작해 결국 다시 사랑을 부르며(‘사랑을 하고 있어’) 마무리되는 앨범은 태어나서 처음 겪어봤다는, 그의 생애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서 길어낸 혼돈과 어둠의 기록이다. 그런 앨범이 이토록 푹신하고 따뜻할 수 있다니. 다 무너져 다시 돌아온 곳에서, 그를 기꺼이 기다려준 모두의 품에서 그만의 사랑이 다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기 때문일 테다. 언제나처럼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분명 전과는 다른 사랑일 거라는 강아솔과 새 앨범에 관한 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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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솔 4집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 커버

얼마 전 ‘제주도 홍보대사’가 되면서 입신양명하게 되었어요. 소감부터 들어볼까요?

정말 한 번도 예상한 적 없던 일이라서 너무 얼떨떨해요. 도지사님께 임명장을 받고 2년 동안 제주도 홍보대사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제 행보를 저도 모르겠어요. (웃음) 앞으로 더 노골적으로 제주도를 노래할까 봐요. 가문의 영광입니다.

‘제주’는 꽤 오랫동안 강아솔을 대표한 키워드였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자부심이 있죠? 제주도에서 찍은 ‘온스테이지’ 영상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아직 많잖아요.

이런 기분이 들어요. 해외에서 큰 상을 받으면 국내에서 화제가 되잖아요? 육지에서 열심히 해서 제주에 역수입된 거죠. (웃음) 정말 과거급제 느낌이에요. 고향 친구에게도 축하 많이 받았습니다.

본격적인 새 앨범 얘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5년 만의 정규앨범이에요. 그런 것치고는 곡 숫자가 좀 적어요. 예전에 발표한 ‘사랑을 하고 있어’를 포함해 총 일곱 곡이잖아요.

정규로 내겠다는 말을 너무 오래 해와서, 중간에 EP로 바꾸거나 싱글을 낸다고 할 수 없었어요. 그러면 정말 새빨간 거짓말쟁이가 돼버려서요. 더불어 이 앨범은 정규로밖에 묶을 수 없는 마음의 크기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앨범 제목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잖아요. 긴 호흡의 장편 소설처럼 가고 싶었어요. 좀 무겁다면 무겁고, 내밀한 얘기가 많거든요. 계속 무겁기만 하면 힘드니까 좀 더 편안한 곡을 몇 곡을 더 넣어볼까 했는데 잘 안 써지더라고요. 이렇게 저렇게 정리하다 보니 일곱 곡밖에 남지 않았네요. 죄송합니다.

사과를 유도한 질문은 아니었어요. (웃음) 이전 앨범보다 완결성 있는 앨범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맞아요. 예전 앨범은 맨 마지막에 앨범 제목을 지었는데, 이번에는 이미 중간을 넘어갈 때 정할 수 있었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딱 정해져 있었거든요. 주제를 먼저 놓고 이에 맞춰 곡을 모은 건 이번 앨범이 처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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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정해진 순간을 기억하세요?

저는 보통 앨범을 만들 때 주위에 앨범 얘기를 많이 해요. 사람들 만날 때마다 내가 이런 걸 준비하고 있고, 요즘 이런 마음이고, 이런 걸 쓰고 있다는 얘기를 끊임없이 하거든요. 그러다가 이 문장이 나왔어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 가는 이야기야.” 말하는 순간 굉장히 직관적이고 누구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따로 메모를 해놨어요. 이후에도 제목을 생각했는데, 이보다 더 좋은 후보가 없더라고요. 완전히 확정한 건 앨범과 함께 발간한 책의 원고를 청탁하면서였어요. 작가님들께 이번 제목 한 줄만 보내드렸거든요. 사실 제게도 이 문장이 가진 힘이 굉장히 컸어요. 길었던 여정이 자연스럽게 딱 정리가 되더라고요. 다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하다가 결국 다시 모두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되잖아요. 우리는 이 문장을 계속 반복하며 살아가는구나 싶었어요.

앨범을 책과 함께 발매한 점도 독특했어요.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책을 먼저 구매했는데, 더 풍성하게 앨범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사실 이 정도 규모로 일을 키울 생각은 없었어요. 처음 계획은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들께 짧은 글이라도 받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최근 노래를 낼 때 작가님들께 앨범 소개 글을 받았는데 그게 너무 좋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은 정규앨범이니까 내가 곡을 쓸 때 의지하던 작가 여러 분을 모아서 글을 받아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거죠. 원래는 브로슈어처럼 만들어서 무료로 배포하려 했는데요. 출판사 ‘픽션들’의 이아립 님에게 아이디어를 말했더니 이런 작가분들이랑 하는 거라면 규모가 너무 아쉽다면서 아예 책을 만들자고 먼저 제안을 해주셨어요. 청탁 메일 담당은 저였는데, 다들 너무 흔쾌히 하겠다고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출판사와 작가님들께 다시 한번 너무 감사해요. 그래서 이 책이 앨범 홍보 목적으로 쓰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예술 장르로 존재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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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소개 © 픽션들fictiondle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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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책 표지

결국 제목과 커버만 동일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커버는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목정원 작가님의 작품이에요. 사실 앨범 커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번 앨범과 책 디자인을 도와준 픽션들 아립 언니가 목정원 작가님 작품 몇 개를 제안했어요. 작가님도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죠. 사실 커버 디자인도 재미있는 구석이 있어요. 작품 원본은 사람들이 왼쪽으로 가는데요. 책 커버에서는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앨범 커버는 위쪽으로 움직여요. 해가 뜨는 곳, 해가 있는 곳으로 가는 사람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2019년에 발표한 노래 ‘아무 말도 더 하지 않고’가 앨범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당시 겨울에 떠난 삿포로 여행이 큰 모티브였는데, 벌써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네요. 그때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어요.

해당 곡을 만든 건 2018년이에요, 너무 힘든 시기였어요. 노랫말 그대로 처음으로 누군가를 너무 미워하면서 나도 미워졌어요. 말도 안 통하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어요. 제가 눈을 좋아해서 한겨울의 홋카이도가 바로 떠오르더라고요. 그때 혼자 참 많이 걸었어요. 혼자 등산하고, 혼자 걷고, 진짜 하염없이 걸으면서 계속 자책했어요. ‘내가 왜 그랬지, 내가 믿는 사랑이 뭘까, 내가 하던 사랑이 진짜 사랑이었을까?’ 모든 게 다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어요. 제가 사람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사람 좋아하고 사랑 좋아하고 누구를 믿는 걸 너무도 좋아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모든 의미를 잃은 거예요. ‘아무 말도 더 하지 않고’ 노래를 보면 ‘불을 밝히지 말아요 어둠을 해치지 말아요 환한 불빛만이 모든 슬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건 아니에요’라는 가사가 있거든요. 정말 혼자, 완벽한 어둠에 있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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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며칠을 보내니 좋아하는 친구들, 행복했던 기억이 막 떠오르는 거예요. 고민과 어둠이 무색하게요. 제가 직접 쓴 가사는 아니지만, 노래 ‘사랑은’에 보면 ‘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거’라는 대목이 있는데, 그때 제 마음 그대로였어요. ‘사랑은 어쩔 수 없는 거구나, 다들 진짜 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다시 서울로 돌아왔어요. 물론 돌아왔다고 바로 벌떡 회복하지는 못했죠. 이후로도 침잠의 시간을 오래 겪다가 새 친구도 사귀고 주위의 돌봄도 받으면서 자연스레 치유했어요. 어느 순간 사람들에 둘러싸여 맛있는 밥 먹고, 수다 떨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제가 있더라고요. 그때 이제 비로소 아무도 없는 곳에서의 여행이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부족하지만, 어서 빨리 앨범을 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정말 긴 터널을 통과한 기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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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앨범 마지막 곡명이 ‘사랑을 하고 있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네요.

정확해요. ‘나 이제 돌아왔어, 괜찮아’라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어요. 다음 앨범 기대하셔도 좋아요. 원래 아픔을 딛고 쓴 사랑 노래가…(웃음) 비록 제 힘든 시간을 잔뜩 담았지만, 이번 앨범이 저는 너무 좋아요. 그만큼 작업 과정이 충만하고 행복했거든요.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들을까, 고민하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만 이렇게까지 집중한 건 이번 앨범이 처음이에요. 정말 건강하게 사랑받으면서 태어난 앨범입니다. 저는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이 제 곡을 좋아할 때가 제일 행복한데요. 프로듀서 전진희 씨도 그렇고 권영찬 씨를 비롯한 연주자분들도 다들 작업을 좋아해 주시니까 너무나도 행복하고 고마웠어요. 정말 아무것도 무섭지 않더라고요. 앞으로 그분들에게 평생 순종하고 은혜를 갚으면서 살 생각입니다. (웃음)

앨범에서 깊은 허무와 슬픔만큼 따뜻함과 사랑까지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유를 이제 좀 알 것 같네요. 앨범 제목만큼 제 마음을 울린 게 타이틀곡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의 첫 소절이었어요.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다 / 나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되었고 / 모두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려다 / 나는 나를 외로이 버려두었지.’ 으아, 정말 이런 가사는 어떻게 쓸 수 있는 거죠?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은 앨범 첫 곡인 ‘어떤 겨울은’과 함께 삿포로에서 쓴 곡이에요. 말씀하신 딱 그 부분만 써놓고, 3~4년 동안 묵혀놨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나머지를 써보려고 한참을 고생했는데요. 와, 도저히 안 되더라고요. 그 구절만으로 이미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고생고생하다가 실제로 완성한 건 1년도 채 안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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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델리 스파이스도 ‘차우차우’를 그렇게 완성했나 봐요.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웃음)

진짜 별생각을 다 했어요. 뒷부분을 다 허밍으로 정리하라는 말도 들었는데 그럴 배짱은 없더라고요. (웃음)

앨범을 들으면서 ‘이렇게 감정만으로 이루어진 앨범은 정말 오랜만이다’라는 감상이 들었어요. 특히 최소한의 단어로 이루어진 시적인 노랫말 때문에 그렇게 더 느꼈던 것 같아요.

실제로 가사에 신경을 정말 많이 써요. 저를 포크 뮤지션으로 많이들 말씀해 주시는데, 보통 포크하면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음악으로 이해하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포크는 이야기 같아요. 삶의 이야기를 진하게 풀어내는 게 포크라는 장르인 것 같고, 그래서 저는 제가 포크 뮤지션으로 불리는 게 너무 자랑스럽고 계속 그렇게 불리고 싶어요. 제 정체성이 포크이기에 내 이야기를 음악에 솔직히 잘 담아내야 한다는 책임감, 사명감 같은 게 있답니다. 그래서인지 같이 작업하는 분들조차 가사에 있어서는 기다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줘요.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죠. 제 가사 초고를 보시면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시간을 들일수록 나오는 케이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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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에 공을 얼마나 들이는지 마음으로 느껴지네요.

발음도 엄청 중요해요. 저는 단어 하나하나 사전으로 다 찾아보는데요. 의미는 좋은데 발음이 애매하다 싶으면 유의어와 반의어를 검색하고, 사전적 의미로 풀어낸 문장도 다 체크해요. 거의 집착 수준이죠. 가사든 산문이든 글을 읽다가 걸려 넘어지는 단어들도 최대한 수집하고요. 예를 들어,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에서 ‘나를 키운 건’이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어느 날 ‘키우다’라는 단어가 엄청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그럴 땐 관련 단어를 있는 대로 모아놓고 하나씩 지워나가며 작업해요. 진부하지 않으면서 쉽고, 남용하지 않는 표현을 쓰고 싶어서 정성을 많이 들여요. 가사에 욕심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저도 퇴고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라, 지금 엄청나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고민한 시간이 쌓여서 결과가 된다는 말을 믿어요. 예를 들어, ‘사랑한다’라는 말을 쓸 때 그냥 무작정 ‘사랑한다’라고 쓰는 것보다 뭔가 다른 표현이 없을까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다시 돌아와서 쓴 ‘사랑한다’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 사이에 단어가 품고 있는 게 달라져 버린 거죠. 그런 단어를 모아 부르면, 문장의 두께도 달라져요. 이런 집착 때문에 진희가 애를 많이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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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마침 전진희 씨 얘기를 하려는 참이었어요. 이번 앨범에서 대활약하셨더라고요. 프로듀싱도 담당하고, 4번 트랙 ‘헤어지지 말아요’는 물론 앨범 전반의 피아노 연주도 하시고, 편곡자 명단에서도 이름을 찾을 수 있었어요.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특별한 애정을 드러내셨는데, 이 자리를 빌려 공식적으로 고백 한 번 더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웃음)

저는 지금 이 자리에 불러서 마주 앉아서도 바로 고백할 수 있어요. (웃음) 진희는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친구이자, 정말 존경하는 뮤지션입니다. 작업도 무척 열심히 하고, 자기 색깔도 뚜렷하고요. 무엇보다 제 앨범을 자기 앨범 대하듯이 만들어줬어요. 실제로 작년에 진희의 앨범도 나와 버리는 바람에 ‘내 앨범 하나 더 만드는 것 같다’는 말을 할 정도였죠. 진희의 피아노 연주도 정말 좋아해요. 아름답잖아요. 진희가 피아노를 쳐 준 ‘헤어지지 말아요’는 처음 데모를 듣자마자 ‘이건 연주가 아니다. 전진희의 피아노가 나와 같은 목소리의 하나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목에 ‘with 전진희’라는 표기를 꼭 하고 싶었죠. 이외에도 정신적으로도 의지를 많이 하고 있고요. 제가 갑자기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여서 ‘안 돼. 안될 거 같아’라고 하면 진희가 옆에서 ‘아니야. 어렵지 않아. 쉬워’하면서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돌봐줬어요. 앨범과 관련된 일이라면 녹음에서 사적인 것까지 항상 도와줬죠. 누구보다도 애정을 가지고 제 앨범을 지지해 준 사람이에요. 심지어 작업하면서 서로 싸운 적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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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한 번도 없어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보통 앨범 작업을 함께하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자주 대립한다고 하던데, 저희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우선, 제가 프로듀서 말에 좀 순종하는 타입이긴 해요. 절대복종. (웃음) 물론 아무한테나 그러는 건 아니고 이 사람과 하기로 했으면 그 사람을 100% 신뢰해 버려요. ‘이 사람 말고는 나를 위해서 더 무언가를 해줄 사람은 없다’라는 마음으로 프로듀서 말을 하나하나 새겨듣죠. 진희가 ‘프로듀서 할 맛 난다’라는 말도 했다니까요. 무슨 말을 해도 우선 고민해 보겠다는 자세가 너무 좋다면서요. 그런데 문제는 그 피드백이 한 1년 뒤에 오는… (웃음)

강적이네요. (웃음) 그러면 혹시 서로 조율하는 경우도 없었어요?

그건 자주 있었죠. 예를 들어서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이 제게 일종의 도전 같은 곡이었어요. 대부분 어쿠스틱 악기로 시작하는 경향과는 다르게, 이 곡은 앰비언스도 있고 일렉트릭 피아노로 시작해서 제게 굉장히 낯선 편곡이었어요. 그 얘기를 좀 깊게 했던 걸 제외하면… 제가 사실 전진희를 정말 사랑하거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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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고백이 끊이지 않네요. (웃음) 이쯤에서 사랑하는 분이 더 나올 때가 됐거든요. 앨범의 또 다른 with의 주인공, 안미옥 시인님이요.

피지컬 앨범에는 lyrics로 표기되어 있어요. 전부 lyrics로 하고 싶었는데 유통사에서 음원 사이트 시스템상 표기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부득이하게 with로 바꿨어요. ‘사랑은’이라는 곡의 가사를 의뢰할 때는 그래도 에세이보다 구체적이었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앨범을 만들 때 저는 당시까지 내린 인생의 정의에 대한 의심과 무너짐을 경험하고 있었어요. ‘도대체 사랑이 뭘까’, ‘내가 아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쏟아지니까 아예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곡을 하나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이미 무너졌으니까요. 그래서 ‘우우우우 사랑은, 우우우 사랑은’ 이런 식으로 데모를 녹음해서 미옥 언니에게 드렸어요. 사랑에 대해 제가 생각하던 추상적인 말들도 다 모아서 함께 전달하면서, 언니한테 ‘언니, 잘 써주세요’ 했어요. 나빴죠? (웃음) 그런데 언니가 가사와 시는 완전히 다르다면서 너무 힘들어하는 거예요. 별별 방법을 써봐도 안 돼서, 문장 써놓은 거를 다 받으니까 A4 2장 분량이었어요. 거기에 있던 문장을 조합해 지금의 가사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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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지, 묘하게 강아솔의 가사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저도 그게 재미있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도 은근히 비슷하면서, 달라요. 저와 색깔이 맞지만,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글이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평소에 언니 시집을 보면서 자주 작업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녹음 엔지니어분도 귀신같이 ‘사랑은’을 콕 집어서 가사가 너무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안미옥 시인님과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6년 전쯤 행사를 하나 같이 했어요. 그 뒤로 제가 언니를 너무 좋아해서 따라다녔고요. 밥도 먹고, 차도 마시다가, 언니가 너무 좋아서 ‘어떻게 하면 더 자주 만날 수 있지’ 고민해 보니 같이 작업하면 되겠더라고요. 정말 좋아하는 시인이자 언니예요.

사람을 정말 좋아하시네요.

맞아요. 처음엔 작품으로 좋아하다가도 나중에는 그냥 사람 그 자체를 좋아해 버려요. 사람은 다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 아름다움이 하나하나 다 사랑스러워요. 누가 예쁘다 못생겼다, 이런 것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사람 너무 좋아’ 인간입니다. (웃음) 제가 평생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살아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정말 도움을 많이 받거든요. 좋은 사람들이 항상 곁에 있었고, 그래서 사람을 좋아할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놀고 수다 떠는 게 정말 너무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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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데,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은 시기가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네요.

돌이켜 보니까,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진짜 힘들었어요. 정말 사랑해서 정말 미워했어요. 태어나서 처음 겪는 감정이었어요. 마음에서 독이 피어나는 게 이런 거구나 했죠. 그렇게 변한 상황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주체가 바로 저였어요. 진짜 미칠 것 같은 거예요. 미움이라는 게 결국 사랑에서 오는 거잖아요. 사실 이 사람은 정말 고맙고 좋은 사람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내게 너무 상처를 줘서 미운데요. 그렇다고 미워할 수만은 없어서, 한마디로 속 시원하게 마음껏 미워하지 못하는 저 자신 때문에 더 힘들었어요. 그런 게 이번 앨범에 다 담겼어요. 성숙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아픈 성장 같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강아솔의 앨범에서 ‘사랑’은 언제나 중요한 테마예요. ‘이렇게 시작된 사랑’, ‘이게 바로 사랑’, ‘사랑은’처럼 제목에 사랑이 들어간 곡도 많고요. 정규 3집 앨범도 ‹사랑의 시절›이었죠. 이번 앨범에는 제목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멀리 떠났던 강아솔의 사랑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리는 느낌이었어요. 지금까지 강아솔이 부르던 사랑 노래의 에필로그 같은 앨범이랄까요.

에필로그라는 말이 정말 딱 맞는 것 같아요. 앨범을 완성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쭉 듣는데, 처음 들었던 생각이 ‘내가 진짜 많이 아팠고, 많이 슬펐구나’였어요. 스스로 짠했어요. 작업하면서 울컥했던 가사가 있거든요. ‘모두가 있는 곳으로’이란 곡의 ‘발길을 돌려 걸어가네 / 내가 있을 곳으로 / 모두가 있는 곳으로’였어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썼던 곡들을 정리하는 단계에서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네가 있을 곳은 여기야’라고 얘기해주는 친구들이 있구나.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엄청나게 크게 다가왔어요. 그때 비로소 실감했던 것 같아요. ‘아, 내가 정말 모두가 있는 곳으로 왔구나. 힘든 시간을 잘 통과했구나. 사랑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사랑하고 싶은 사람으로 거듭났구나.’

20, 피스오브서울, 강아솔, 사랑의-시절

강아솔 3집 ‹사랑의 시절› 커버

앨범에서 느낀 안심과 안도감이 착각이 아니었네요.

저도 제 노래를 들으면서 안심했어요. 다음에는 지금의 나를 노래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얼마나 따뜻한 마음들이 노래에 배어 나올까, 저도 기대돼요. 이제 새해잖아요. 그래서 올해에는 곡을 많이 쓰려고 다짐하고 있어요. 지난 몇 년 동안은 회피하고 싶은 감정을 곡으로 쓰는 게 괴롭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똑바로 마주 봐도 행복한 감정밖에 없어서 덜 괴롭게 곡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혹시 힘들 때 만든 노래로 라이브 하기가 힘들지는 않나요?

그냥 ‘노래 잘 썼네’, ‘가사 좋네’ 해요. (웃음) 앨범 발매 전에 진행한 단독 공연에서 이번 앨범 수록곡을 들려 드릴 기회가 있었는데요. 따지고 보면 ‘제가 이렇게 아주 힘들었답니다’라는 걸 처음으로 밝히는 자리잖아요. 그래서 관객분들이 다 제 친구들 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냥 ‘얘들아. 나 이렇게 힘들었다’라는 마음으로 편하게 칭얼댔어요. 오래 담아온 마음을 풀어내는 자리이다 보니까 벅차기도 했고요. 오히려 제 친구들이 가끔 놀려요. “너 이런 사람 아니잖아!” 그럼, 제가 말하죠. “니들이 뭘 알아!” (웃음) 제가 하는 창작 활동이 대부분 내밀하고 밀도 있는 일이다 보니, 일상에서는 명랑하고 단순하고 가벼워지고 싶어요. 다만 음악 할 때만큼은 진중하고 깊어지지요. 그래서 음악은 제 삶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존재 같아요. 

‘밸런스 강’, 강아솔의 2024년 계획을 알려주세요.

올해에는 연주곡을 많이 만들어 보고 싶어요. 연주곡 만들기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앨범마다 연주곡을 수록하기도 하고요. 원래 저는 작곡가 지망생이었어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싱어송라이터로 살고 있는데, 아직 연주곡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답니다. 이번 앨범 첫 곡 ‘어떤 겨울은’이 제가 처음으로 발표한 기타 독주곡이기도 해요. 올해는 그런 곡을 많이 작업해 볼까 합니다. 다른 기타리스트분과 협업 계획도 세웠어요. 진행 중인 멜론 스테이션 팟캐스트도 계속 이어갈 것 같고요. 얼마 전부터 와우산 레코드와 함께하기로 해서 회사 분들과 재미난 계획을 도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든 기쁘게, 또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마지막으로 이거 하나 물어보고 싶어요. 강아솔이 생각하는 ‘사랑’은 뭔가요?

‘라디오스타’ 식 진행이네요. (웃음) 강아솔에게 사랑이란 ‘매일 하는 것’입니다. 일상이나 호흡처럼요. 사랑이라는 말을 저는 정말 매일 쓰거든요. 친구, 연인, 지인 누구에게나 사랑을 입 밖으로 소리 내어 표현해요. 그냥 그게 제 사랑인 것 같아요.

21, 피스오브서울, 강아솔

Artist

강아솔은 포크 싱어송라이터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2012년 그 동안 만든 노래를 모아 정규 1집  ‹당신이 놓고 왔던 짧은 기억›을 발표한다. 앨범에 담긴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는 목소리와 노래가 진심 어린 음악을 찾아 헤매는 이들을 빠르게 끌어당겼고, 강아솔은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정규 2집 ‹정직한 마음›(2013), 정규 3집 ‹사랑의 시절›(2018)을 비롯해 싱어송라이터 수상한 커튼, 이아립과 함께한 ‹우리의 만춘›(2019), 피아니스트 임보라와 호흡을 맞춘 EP ‹유영›을 발표하고, 다수의 싱어송라이터가 모인 음악동아리 ‘작은평화’를 결성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치열한 시간 중 저만 알고 있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결국 다시 빛을 찾은 여정 끝에 2023년 5년 만의 정규작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를 발표했다.

Writer

김윤하(@romanflare)는 K팝에서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관해 쓰고 이야기하는 대중음악평론가다. 다양한 온오프라인 매체에 글을 기고하거나 출연하면서, 가끔은 작가 겸 기획자, 음악 콘텐츠 프로듀서로 일한다. 2023년 TVING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K-POP GENERATION›에 스토리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현재 «한국일보»«국민일보»«시사IN»«채널예스»에 칼럼을 연재하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랑과 음악이 끝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다.

피스오브서울: 힙노시스 테라피 ‹PSILOCYBIN›

김윤하, 힙노시스테라피, HypnnosisTerapy
Piece of Seoul

김윤하, 힙노시스테라피, HypnnosisTerapy

Special Interview

다채로운 대화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피스오브서울Piece of Seoul’은 대중음악평론가 김윤하 님이 최근 새롭게 발매한 한국 대중음악 앨범 중 가장 인상 깊은 피스를 꼽고, 해당 뮤지션과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피스오브서울에서 피스는 조각(piece)이면서 동시에 평화(peace)를 뜻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태어난 새로운 음악의 조각과 여기에서 길어 올린 마음의 평화를 뮤지션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세요. 네 번째 피스는 ‘한국에서 약을 왜 하나요? 이들의 음악이 바로 저세상 텐션인데!’라는 반응을 부르는 정말 미친 사람들, 제이플로우와 짱유, 짱유와 제이플로우가 합체한 전자음악 듀오 힙노시스 테라피의 정규 2집 ‹PSILOCYBI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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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노시스 테라피의 제이플로우(위), 짱유(아래)

이 사람들은 정말 미쳤다. ‘힙노시스 테라피HYPNOSIS THERAPY’를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생각이다. 이들의 폭발적인 미친 에너지는 앨범이나 라이브 같은 매체의 성질을 타지도 않았고, 신인 뮤지션 선정을 위한 다소 딱딱한 자리나 어둑한 해외 클럽까지 무대도 가리지 않았다. 그곳이 어디든, 이들 앞에 누가 있든 제이플로우Jflow와 짱유JJANGYOU, 짱유와 제이플로우가 있는 곳 자체가 힙노시스 테라피의 한 판 난장이었다. 미친 척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다 같이 미쳐버리는 중심에 늘 이들이 있었다. 힙합 그룹 ‘와비사비룸Wavisabiroom’을 통해 한 번 호흡을 맞춰 보았던 프로듀서 제이플로우와 래퍼 짱유는, 부산에서 활동하던 아마추어 시절부터 이어진 서로에 대한 깊은 믿음과 존중을 힙노시스 테라피라는 듀오로 승화시켰다.

시작이 힙합이었기에 이들을 힙합 듀오로 소개하는 사람이 많지만, 첫 앨범 ‹HYPNOSIS THERAPY›을 지나 정규 2집 ‹PSILOCYBIN›을 발표하며 이들을 전자 음악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힙노시스 테라피의 음악은 우리가 흔히 A와 B를 쉽게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장르’라는 알량한 단어 아래 숨겨진 음악이라는 예술 자체의 원류를 찾아간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음악을 파고 또 파고 들어가 그 속에 숨은 뿌리를 찾고, 그렇게 찾은 뿌리와 뿌리를 연결해 새로운 나만의 것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제이플로우의 꼼꼼한 지도로 태어난 힙노시스 테라피만의 음악은 ‘말만 할 줄 알지 동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짱유의 파괴적인 퍼포먼스와 함께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그 무엇으로 완성된다. 앨범 ‹PSILOCYBIN›은 그 에너지를 최소한의 손실로 담은, 마치 지적인 동물 같은 앨범이다. 1세대 일렉트로닉 뮤지션과 종로, 힙합과 정글이 공유하는 음악적 유래가 마구 섞이고, 이윤정에서 이무기까지 ‘제대로 음악하고 예술한다’ 싶은 사람들의 이름이 득시글댄다. 이게 바로 환각버섯을 주요 생산품으로 삼는, 힙노시스 테라피의 살아 있는 정글이다.

김윤하, 힙노시스테라피, HypnnosisTerapy

힙노시스 테라피 2집 ‹PSILOCYBIN› 커버

새로운 앨범, 축하드립니다. 발매 전후로 스케줄이 많으셨어요. 호주 투어도 있었고, 얼마 전에는 햄버거를 테마로 독특한 팝업 스토어도 여셨잖아요.

제이플로우: 감사합니다! 발매하기 전에 다녀온 호주투어가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디제잉 쪽으로는 호주 로컬 클럽에서 현지 DJ가 음악을 고르는 느낌이나 플레이 방식 등을 많이 배웠어요. 아무래도 동양인과 서양인이 모여 사는 곳이라 모두를 만족시키는 음악을 플레이하는 게 호주만의 스타일이라고 느꼈어요. 그런 부분에서 진짜 좋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것에 춤추고 행복해하는지 제대로 본 거 같아요. 그리고 공연을 하면서 ‘아! 우리가 쓰는 언어가 다르더라도 그들은 우리의 에너지와 음악을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오히려 더 신선하게 느낀다’고 생각했어요. 팬들도 많이 만들어 왔답니다. (웃음) ‘SXSW SYDNEY’에 참여하며 1tbst, Flyana boss, Fcukers, Lunadira 등 여러 해외 뮤지션과 친구가 되기도 했고요. 그들이 우리 공연을 보고, 우리도 그들의 공연을 보고, 서로 얘기 나누며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었습니다! 이게 가장 큰 에피소드 같아요!

김윤하, 힙노시스테라피, HypnnosisTerapy

힙노시스 테라피 호주 투어

짱유: 정말 영감이 샘솟는 이벤트였어요. 아직도 감정의 여운이 남아있을 정도로 뜻깊은 날들이었고, 제이플로우 형과 전자 음악으로 소통하는 주파수를 더욱더 맞닿는 계기가 된 여행이었죠. 호주에서 느끼고 배운 감정을 한국 클럽에서 디제잉으로 풀었을 때 관객들이 똑같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 저희가 가야 할 길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햄버거를 소재로 한 팝업 스토어도 앞으로 우리가 움직여야 할 상식 밖의 이벤트에 대한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 것 같아요. 앞으로 힙노시스 테라피의 움직임에 대해 기대 가득입니다. ^_^

김윤하, 힙노시스테라피, HypnnosisTera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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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를 모았던 힙노시스 테라피의 햄버거 팝업 스토어

‹PSILOCYBIN›은 지난해 데뷔 때 선보인 ‹HYPNOSIS THERAPY› 이후 1년 만의 정규 앨범입니다. 어느 정도의 기간과 어떤 방식, 그리고 우리 음악 석박사님들의 어떤 연구를 거쳐 앨범 작업을 진행했는지 알려주세요. (웃음)

제이플로우: 데뷔작을 내면서 저희의 중요한 로고인 버섯 심볼을 공개했고, 2집에서는 그 테마를 더욱더 파고들어 버섯의 성분을 이야기하는 스토리로 앨범을 진행했어요. 사운드적으로는 일렉트로닉의 세부 장르까지 전부 디깅하면서 모든 정보들을 흡수해 제한 없이 만들었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 1세대 일렉트로닉 뮤직을 다 들어보고 그들의 행보까지 쫓아보는 움직임을 펼쳤어요. 

타이틀곡 ‘JONGNO’에 등장하는 한국인 내레이션은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1990년대 영상에서 1세대 일렉트로닉 DJ 류재현 님의 목소리를 저희가 샘플링한 결과입니다. 사실 이 곡은 해당 영상을 보면서 모티프를 잡았거든요. 제가 음악을 하면서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아카이빙인데요. 뭐든 뿌리가 깊지 않으면, 위에서부터 휘청이게 됩니다. 그래서 더 병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아, 참고로 말씀드린 재현 님의 목소리가 들어간 영상은 바로 여기 있어요. 모두 감상해 보세요. 진짜 멋집니다.

짱유: 2집의 비트는 1집을 내고 난 후 제이플로우 형이 한두 달 만에 전부 완성했어요. 엄청나죠 후덜덜… @_@ 원래 2집 발매 시기를 7~8월로 잡고 여름철을 겨냥해 준비했는데요. 제가 가사를 쓰는 데 걸리는 기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우연히도 1집 발매일과 동일한 10월 27일에야 신보를 발매하게 됐어요. 제이플로우 형이 만든 음악들이 워낙 고차원이고, 보컬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상태라서 제 보컬과 효과적으로 시너지를 내기 위해 어려움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왠지 가만히 나눠도 좋은 음악을 제 보컬이 망치는 느낌이 계속 드니까, 제이플로우 형의 수준에 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나날이었습니다.

김윤하, 힙노시스테라피, HypnnosisTera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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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노시스 테라피 1집 ‹HYPNOSIS THERAPHY› 커버

힙합과 전자 음악 사이에서 여러 가지를 실험하던 1집에 비해 이번 앨범은 압도적일 정도로 전자 음악적 색채가 짙은 앨범이란 느낌입니다. 1집 이후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변화가 드러난 건가요?

짱유: 힙노시스 테라피를 시작하고서 동시에 디제잉도 시도하고, 여러 클럽을 돌아다니며 플레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댄스 플로어에 대한 저희의 이해도가 높아졌어요. 그래서 전자 음악과 좀 더 깊게 맞닿을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제이플로우: 저희가 워낙 본능적으로 음악을 만드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삶이 주는 영향력이 무척 큽니다. 사실 요즘 둘 다 전자 음악만 주구장창 듣다 보니 자연스러운 터치들이 음악에 나타나는 것 같아요. 뭐든 억지로 하면 어색하잖아요.

정글, 드럼앤베이스, 애시드, 덥 같은 다양한 전자 음악을 앨범에 담았습니다. 평소에도 연구 및 탐구의 자세로 음악을 대하시는데요. 실제 음악을 만들 때 장르적 접근을 기본으로 삼으시나요, 아니면 완전히 동물적으로 작업하는 편인가요?

제이플로우: 장르적 접근을 테마로 끌고 가는 건 아니에요. 일단 먼저 장르적 특성을 파악하고요. 그 장르에서 사용하는 리듬과 신디사이저…기용 방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암튼 거기에 저희 팀의 색채를 녹여냅니다. 그래서 사실 저희 음악을 듣고, “이거 완전히 정글인데?”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항상 음악을 만들 때 제 것이 되길 바라거든요. 예를 들어, 어떤 곡을 들어도 특정 장르로 인식되기보다는, ‘아, 이건 힙노시스 테라피의 전자 음악이지’ 반응하길 바라요. 그래서 이런 접근 방식으로 작업을 자주 진행합니다. 그 대신 정말 많이 듣고, 적당히 차용해야만 하지요.

짱유: 저는 그저 말만 할 줄 알지, 그냥 동물이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힙노시스 테라피의 앨범을 들을 때 가장 압도적인 부분은 무대에서 폭발하는 에너지가 앨범이라는 매체에 거의 최대치라고 말해도 이견이 없을 만큼 제대로 담긴다는 점이에요. 보통 언더그라운드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뮤지션은 이런 한계를 넘지 못하고 끝내 실패하는 경우가 잦거든요. 힙노시스 테라피만의 숨은 원천 기술은 무엇일까요?

짱유: 숨은 원천 기술이라면 제이플로우라고 할 수 있죠. 저희의 히든카드입니다!

제이플로우: 공연에 최적화된 음악을 만들려고 항상 노력해요. 무엇보다 짱유의 엄청난 재능이 더욱더 폭발하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크죠. 그래서 따로 말은 하지 않지만, 짱유가 그렇게 따라오게끔 잘 컨트롤하면서 만드는 중이에요. (웃음)

힙노시스 테라피는 두 분의 시너지가 모든 걸 이끌어 가는 그룹 같아요. 서로의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 가장 공들이는 부분이 있다면요?

제이플로우: 에너지를 최대치로 끌어내는 방법은 결국 단단한 루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을 살아야 하고, 그 안에 어떻게든 일을 끝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누구도 벗어날 수 없죠. 그래서 저는 밥 먹는 것조차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감수해야 할 것들 모두 사정 범위에 넣습니다. 이 단단한 루틴을 항상 지키며 살려고 노력을 정말, 정말, 정말로 많이 해요. 예를 들면, 컨디션 좋은 운동선수의 정신과 몸을 항상 유지해 놓는 거죠. 최선의 에너지로 작업에 임할 수 있도록요. 저는 음악을 하면서 항상 그런 마인드로 지내는 것 같아요.

짱유: 딱히 공들이는 부분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저 각자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닐지 싶어요.

김윤하, 힙노시스테라피, HypnnosisTerapy

© STILLM45 & VINPRESS

힙노시스 테라피는 결국 라이브를 봐야 완성되는 팀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두 분은 라이브와 레코딩 중 무엇을 선호하세요?

제이플로우: 전 둘 다 좋습니다! 음악을 만들 때 뭔가 명상하는 느낌이 드는데요. 무대는 그 명상에서 얻은 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느낌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둘 다 희열감이 아주 큽니다.

짱유: 저는 아무래도 라이브가 더 편하고, 즐겁죠. (웃음) 무대 위에서는 욕하거나, 뭘 부셔도 퍼포먼스로 받아들여져서 모든 스트레스를 다 풀고 내려오는 것 같아요. 레코딩도 딱히 어렵지는 않은데요. 레코딩을 들어가기 전 음악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항상 즐겁지만은 않다 보니, 라이브가 훨씬 편한 것 같아요. 하지만 라이브를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음악을 만들어야 하니까 결국 모든 과정이 즐거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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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유 님은 라이브마다 ‘ㅈ된다!’라고 외치시잖아요. 공연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힙노시스 테라피 혹은 짱유의 라이브를 대표하는 제스처처럼 느껴지는데, 혹시 언제부터 시작된 전통인가요?

짱유: 모르겠네요… 관객들이 제 무대를 보고 진심으로 ㅈ대버린 건가… ㄷㄷㄷ

제이플로우: (웃음)

이번 앨범 제목의 뜻이 ‘환각버섯’이에요. 앨범에 담긴 곡들도 제목을 그대로 구현해 보겠다는 결기를 느낄 정도로 일관되고 파워풀한데요. 처음부터 테마를 정해놓고 시작한 작업인가요? 혹시 작업의 시발점이 된 곡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이플로우: 사실상 환각버섯의 한 성분을 표하는 앨범입니다. 정규 1집에서는 버섯을 노출했고, 2집은 그 버섯 안을 들여다보는 순서죠. 제목 정하는 게 고민이긴 했어요. 강렬한 앨범 제목 때문에 감상도 말려버리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저희는 건강한 음악을 추구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사실 이번 타이틀이 지닌 긍정적인 효과를 먼저 찾았습니다. 환각버섯이 우울증 완화 등을 위한 약재로도 쓰이거든요. 저희 앨범이 담은 메시지의 정수는 ‘사람들이 항상 느끼는 불안감, 우울감 같은 부정적이고 억압된 여러 감정과 그로 인해 부정적으로 이어지는 에너지에 대해 힙노시스 테라피의 음악을 거름망 삼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싶다’입니다. 그래서 환각버섯을 실제 의료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엄청 많이 찾아봤어요. 이게 통했는지, 최근 저희 앨범으로 우울증이 완화되었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답니다. 앨범에 담은 메타포를 그 어디에서도 말한 적이 없었는데, 실제로 저희가 원하던 움직임이 진짜 일어나는구나, 싶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긴 앨범이니 꼭 탐구해 보세요. 앞으로 나올 MV에서도 조금씩 소스들을 노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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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노시스 테라피 심볼

첫 곡 ‘ACID RAIN’부터 ‘리스너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웃음) 소개 글에 적은 것처럼 “동공이 확장된 상태”로 바로 본론을 시작하는데요. 어쩌다가 이게 첫 곡이 되었나요?

제이플로우: 저는 1번 트랙이 앨범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담긴 소리가 어느 공간에서건 울리기만 하면 그곳을 가득 채우고, 공기를 바꿀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 후로는 끝까지 들을 수밖에 없는 거죠. 음악이 이미 입자가 되어 그 공간과 한 몸이 되고, 리스너와 하나가 되었을 테니까요. 음악은 신비롭게도 눈앞에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파동에 의해 공간을 떠다니며 그 공간 안에서 부딪히고 끝없이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저희 음악에서 가장 소스가 많고 가장 많은 파동이 일어날 곡을 선택한 것도 있습니다. 듣는 사람을 저희가 다 품을 수 있길 원했어요.

짱유: 가장 큰 이유는 ‘ACID RAIN’의 인트로 아닌가 싶어요. 명상을 깊게 공부한 친구에게 내레이션을 부탁해 명상에 대해 읊조리는 내용인데, 눈을 감고 마음을 비운 채로 이번 앨범을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LEPHANT’는 힙노시스 테라피의 최대 히트곡 ‘+82’가 떠오르기도 하더라고요. ‘앞으로 앞앞으로’ 같은 중독적인 후렴구도 그렇고, 힙노시스 테라피의 (일종의) 시그너처 사운드이자 대중과의 접점을 가장 쉽게 만드는 포인트 같아요. 혹시 작업하면서 그런 부분을 의식하기도 하나요?

제이플로우: 이 곡은 제가 ‘ELEPHANT’라는 제목을 짓고 짱유에게 줬는데, 짱유가 딱 제가 원하는 무드를 만들어 줘서 아주 만족스러웠던 트랙이에요! 물론 모든 트랙에 대해 다 만족하지만요. (웃음) 제목이 ‘ELEPHANT’인 이유는 킥 소스가 마치 코끼리 걸음 같은 느낌이라 그렇게 제목을 정했어요. 모두에게 함께 정진하자는 의미가 있습니다! 짱유가 연기하듯 뱉어내는 벌스verse도 재미있는 포인트에요.

짱유: 그런가요…저는 너무 난해해서 라이브 할 생각도 안 하던 노래였어요. 물론 제이플로우형이 하자고 해서 한번 해봤다가 사람들이 잘 따라와 줘서 지금은 재밌게 공연하고 있지만요. 사실 ‘앞으로 앞앞으로’라는 가사는 ‘ACID RAIN’에 먼저 썼다가 안 어울려서 ‘ELEPHANT’에 그냥 한번 써본 건데요. 대중과 접점을 이룬다고 느껴졌다면 저로서는 무척 행운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거든요!

제가 이런 질문을 꺼낸 이유는 모 인터뷰에서 ‘당연히 대중적인 음악을 하고 있고, 하고 싶다’라고 말씀하시며 어쩐지 모두가 웃어버린 웃픈 기억이 떠올라서 그래요. 일반적으로 힙노시스 테라피의 음악이 쉽거나 대중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하기엔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요. 혹시 두 분이 생각하는 ‘이게 바로 힙노시스 테라피 궁극의 대중력이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제이플로우: 힙노시스 테라피는 결국 공연으로 소통하는 팀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대 위에서는 음악 자체를 뛰어넘어 다른 부분까지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사실 음악 자체만으로 많은 분들이 저희를 이해하고 편하게 즐기는 일은 약간 힘들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음악 소스만 봐도 저희가 마니악한 것을 워낙 사랑해서 이를 중심으로 많이 녹여내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 스스로 나름 대중적이라고 더 자주 소개하며 많은 사람에게 친절하게 비추려고 노력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

짱유: 80억 4531만 1447명, 지구의 인간 모두를 겨냥하는 힙노시스 테라피!!! 저희가 대한민국 사람이기 때문에 우선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건 맞지만, 대한민국 안에서만 통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은 넓습니다!!

두 분이 함께 작업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는 요소가 있다면요?

제이플로우: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항상 부족하기에 다 잘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삶입니다. 어떻게 사느냐… 그게 내 음악이 될지니…

짱유: 사랑과 열정 그리고 꿈.

음원 서비스나 유튜브 반응을 보면 “잘 모르거나 안 듣는 장르인데 중독돼서 듣고 있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분들을 코어 팬으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한 결기찬 한 마디를…

제이플로우: 저희가 클럽 공연하거나 무대에 설 때 꼭 놀러 오세요. 더 맛탱이 가게 해드릴게요.

짱유: 감이 좋으시네요. 乃乃乃乃 뭘 해도 대성할 분이십니다. 乃乃乃

김윤하, 힙노시스테라피, HypnnosisTerapy

앨범을 정주행하면서 ‘WDW’에서 ‘FUZZ’로 넘어갈 때 희열이 장난 아니었어요. 힙노시스 테라피 음악에서는 드물게 드럼과 베이스 같은 리얼 악기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곡 작업에 대한 스토리를 알려주세요.

제이플로우: ‘WDW’는 ‘Whole Different World’의 약자입니다. 말 그대로,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는 음악이라는 거죠. 전반부 내레이션은 미국 스케이트보드의 전설 제이 애덤스Jay Adams의 목소리입니다. 이 사람이 살던 동네를 둘러보는 영상에서 ‘어렸을 때 친구들과 이웃집의 물 없는 수영장에 무단으로 침입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놀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 일반적인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있었던 것 같다‘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해요. 해당 멘트를 따오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메타포를 가진 곡을 만들게 됐습니다. 저희가 생각하는 음악적 모티브와도 맞닿아 있어서 너무 좋아하는 곡이에요. 그렇게 완전히 다른 세상에 있는 아티스트는 누가 있을까, 하다가 재키와이가 딱 떠올라서 바로 연락했죠. 피쳐링 받기 엄청나게 어려운 친구인데, 정말 흔쾌히 함께 해줘서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FUZZ’는 저희가 1집 준비할 때 만든 곡을 변형한 거예요. 짱유와 매주 만나 비트를 만들면서 제가 베이스로 록킹한 라인을 쳤는데, 그게 너무 좋아서 미디로 만들어 놓은 드럼과 직접 친 베이스로 곡을 만들었어요. 근데 확실히 리얼 악기를 사용하다 보니 사람의 손을 탄 느낌이 많이 들어서 1집과는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수록하지 않았죠. 근데 2집을 준비하다 보니 ‘WDW’의 사운드 맥락과 이어지기도 하고 짱유가 쓴 가사와도 맞닿아서 이번 앨범에 수록했습니다. ‘WDW’와 마찬가지로 곡의 완성도를 더욱더 높이려고, 드러머 김형균 형님과 베이스 황성욱 형님을 섭외했고, 전 뒤에서 사운드적으로 폭파될 수 있도록 신시사이저를 도맡았어요. 만약 풀 라이브가 가능한 채널이 있다면 이 포맷 그대로 꼭 라이브로 하며 찍어놓고 싶은 노래이기도 합니다.

타이틀 곡 ‘JONGNO’가 정말 재미있어요. 잠시도 눈과 귀를 뗄 수 없는 곡이잖아요. 사운드와 메시지 모두에 정글, 레이브, 드럼앤베이스 등 아무튼 넣을 수 있는 건 모조리 들어간 데다, 제목과 MV를 통해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종로의 이미지까지 더했어요. 이 모든 것의 연결고리는 어디서부터 시작됐나요?

제이플로우: 짱유가 일단 종로에 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서울에서 가장 멋지고 유서 깊은 동네가 종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지 그 동네를 갈 때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요. 기운이 좋다고 할까요? 자주 가진 않지만요. 아무튼 이건 여담이고, 일단 ‘JONGNO’는 1990년대 종로 트럭 레이브 행사 영상에서 시작됐어요. 그래서 모든 게 그냥 술술 뱉어내듯 비트로 나왔고, 사운드에도 시대적 배경을 담고 싶어서 90년대 영국에서 파생되기 시작한 장르인 정글을 가져왔죠. 정글은 영국에 정착한 흑인 이민자들이 만든 장르로, 샘플링 기반의 음악입니다. 그래서 힙합과 정말 정말 많이 맞닿아 있어요. 정글에서 쓰는 샘플링 장비들도 힙합에서 다 사용하고, 작법도 유사하고요. 그래서 흥미롭죠. 그리고 사실 한국 1세대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어요. 영상에 출연한 분들, 올려주신 분들 모두 수소문해서 인사드렸고, 저희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큰 귀감이 되어주셔서 감사하다고요.

짱유: 모든 건 제이플로우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비트면 이윤정 님이 한 번 나와줘야 하는데…’ 생각하는 순간 윤정 님이 등장해서 깜짝 놀랐어요. ‘SEOUL HOUSE’의 윤정 님과는 어떻게 함께하게 됐나요?

제이플로우: SEOUL HOUSE는 ‘서울에서 탄생한 하우스’라는 의미도 있지만, 서울이 우리 집이라는 의미도 있어요. 그래서 가사가 심오한 편이죠. 윤정 님께서 일 때문에 미국으로 잠시 떠나셨다고 들어서, 이 피쳐링에 너무나 적합한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짱유와 상의해, 짱유가 연락을 드렸습니다. 정말 존경하는 분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짱유: 윤정이 누나는 밴드 ‘넘넘numnum’ 때부터 인연이 되어서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요. 마침 윤정이 누나와 함께 할 수 있는 곡이 나와서 부탁했더니 흔쾌히 해주셔서 정말 고마웠어요. 여담으로 미국으로 이사 가신 지 얼마 안 돼서 짐도 못 풀고 아이폰으로 녹음해 주셨는데, 역시 O.G!!! 덕분에 좋은 음악이 나와서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_^)(_ _) 꾸벅

이외에도 재키와이Jvcki Wai, 그로브Grove, 이무기imugi, 한스Hans. 등 여러 뮤지션과 함께했습니다. ‘HIGHWAY’로 이미 한 번 호흡을 맞춰본 한스를 제외하면 힙노시스 테라피와 처음 작업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1집에 비해서 피쳐링 지분도 높아진 것 같은데, 섭외와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셨어요?

짱유: 제이플로우 형이 모든 섭외를 진행했어요.

제이플로우: 다 저희 음악에 영향을 주고 재미있을 거 같은 아티스트로 섭외했습니다. 저는 피쳐링이 앨범에서 팀의 목적과 방향을 잘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말 고민을 많이 하고 연락드렸습니다. 모두 흔쾌히 작업에 임해주었고, 특히 그로브는 함께한 ‘PATOIS’를 정말 사랑해 줬어요! 녹음하는 영상도 따로 보내줄 정도였거든요. 이 친구는 공연 에너지가 또 장난이 아니라, 다음에 영국 가서 공연하게 되면 같이 맛탱이 가는 공연을 해보려고요. 이무기는 대부분 베드룸 인디 아티스트로 알고 계시지만, 워낙 음악적인 스펙트럼이 넓은 친구라서 평범하지 않은 특이한 작업을 꼭 함께 해보고 싶었어요. 워낙 자연인 스타일로 사는 타입이라 연락이 잘 안 닿아 힘들었지만, 결국 받아냈습니다. (웃음) 한스는 우리의 진정한 친구이자, 정말 고마운 친구예요. 저희 앨범을 저희보다 많이 홍보해 주고 항상 서포트하고 있어요. 사랑합니다, 한스. 참여한 아티스트 모두 우리가 원하던 역할을 멋지게 해주셔서 진짜 감사하다고 이 자리를 통해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김윤하, 힙노시스테라피, HypnnosisTerapy

힙노시스 테라피 2집 ‹PSILOCYBIN›

김윤하, 힙노시스테라피, HypnnosisTerapy

힙노시스 테라피 2집 ‹PSILOCYBIN›

후반부 트랙 두 곡은 제목을 이모티콘으로 정하셨어요. ‘@_@’(헤롱헤롱)과 ‘^_^’(하하하)인데요. 제목에 대한 최종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나요?

짱유: 제가 ‘헤롱헤롱’, ‘하하하’라는 가제를 정했고, 제이플로우 형이 한 번 더 꼬아서 이모티콘 형태로 곡을 발매하게 됐어요.

제이플로우: 원래 ‘헤롱헤롱’과 ‘하하하’로 가고 싶었지만, 헤롱헤롱을 영어로 표기할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던 찰나에, 예전에 쓰던 이모티콘이 떠올라서 바로 제목으로 지었죠. 이 곡의 제목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너무나도 적합한 제목이었어요!

‘^_^’에서는 짱유 님이 ‘웃으면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으로 시작하는 내레이션으로, 랩 할 때와는 다른 뭔가 좀 사랑스러운(웃음) 모습을 보여주셨는데요. 이런 내레이션을 넣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제이플로우: 짱유가 2절에 대한 고민에 빠진 상태였을 때 제가 아나운서처럼 웃음에 대해서 설명하면 재미있을 거 같다고 아이디어를 제안했어요. 좀 더 직관적이고 좋을 거 같더라고요. 상상만큼이나 너무나 잘해줬습니다. 그리고 이 앨범이 웃으면서 끝나는 아주 큰 이유가 숨어 있어요. 의미를 잘 찾아보세요, 여러분!

김윤하, 힙노시스테라피, HypnnosisTerapy
김윤하, 힙노시스테라피, HypnnosisTerapy
김윤하, 힙노시스테라피, HypnnosisTerapy

음악과 이미지만 보면 매일 밤이 파티일 것 같지만, 사실 두 분은 그 누구보다 건강한 삶을 살고 계신다는 걸 제가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힙노시스 테라피가 더욱더 매력적이고요. (웃음) 두 분의 하루 루틴을 간단히 알려주시겠어요?

제이플로우: 오전 10시에 일어나 헬스장에 가고 12~1시에 나와 집에 돌아온 후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음악 작업을 시작해요. 작업시간은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은데 가능한 저녁 8시 이전에 끝내려고 노력해요. 이후 취미 생활인 게임(오직 NBA 2K! 다른 건 절대 안 함), 독서, 영화 등을 즐기다가 마지막으로 강아지 저녁 산책 후 잠에 듭니다. 완벽한 하루쓰…

짱유: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11~12시쯤 클라이밍 장에 갑니다. 가서 도파민 좀 분출하고, 집에 와서 씻고, 음악 좀 듣다가, MV 좀 보다가, 작업에 돌입해요. 그러다 저녁 7~8시쯤 첫 끼를 먹어요. 간헐적 단식이 몸에 좋다길래요.(웃음) 이후로 작업을 좀 더 하다가 유튜브나 넷플릭스 보다가 자요. ZzZz

마지막 질문입니다. 힙노시스 테라피와 이번 앨범 ‹PSILOCYBIN›을 처음 접하는 분도 많을 것 같아요. 우리는 이런 팀이고 ‹PSILOCYBIN›는 이런 앨범이다, 한 마디로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이플로우: ‹PSILOCYBIN›은 저희가 심볼로 삼은 버섯에 포함된 하나의 요소입니다. 이제 더 큰 음악 세계를 경험시켜 드릴게요. 같이 떠납시다!

짱유: 실로시빈이라는 성분은 겉으로 보기에 그저 마약, 나쁜 물질이라고 여겨지곤 해요. 하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쓰이며 긍정적인 면모를 발전시키고 있고, 대중화되고 있어요. 이처럼 저희 음악도 겉으로 보기엔 그저 어렵고, 공격적인 형태로 보일 수 있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긍정적이고, 건강한 저희 모습을 바라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윤하, 힙노시스테라피, HypnnosisTerapy

Artist

‘힙노시스 테라피HYPNOSIS THERAPY’(@hypnosistherapy_)는 제이플로우Jflow와 짱유JJANGYOU로 이루어진 전자음악 듀오다. 일렉트로닉 장르를 중심에 두고 힙합, 얼터너티브 등

장르적 요소를 적절히 잘 녹여낸 힙노시스 테라피는 번뜩이는 사운드와 재치 있는 가사, 젊음, 서브컬처를 기반으로 작년 정규 1집 ‹HYPNOSIS THERAPY›을 공개하며 신선한 충격을 불렀다. 그 후 정규 1집의 리믹스 앨범에서는 한국 전자음악가들과 호흡을 맞추며 새로운 움직임을 선보였고, EP ‹DANCE THERAPY›를 통해 힙노시스 테라피가 단순히 래퍼와 프로듀서로 구성된 팀이 아니라 두 명의 프로듀서로서 활동이 가능한 팀이라는 가능성을 내비치며 더욱 진한 전자음악을 리스너들에게 선보였다. 2023년 10월 27일(정규 1집 발매일 딱 1년 후다) 정규 2집 ‹PSILOCYBIN›을 선보였다. 최근 호주 투어를 비롯해 국내외로 멋있는 움직임을 계속 펼치고 있다.

Writer

김윤하(@romanflare)는 K팝에서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관해 쓰고 이야기하는 대중음악평론가다. 일간지, 주간지, 라디오 등 온오프라인 매체에 글을 기고하거나 출연하고 있으며, 가끔은 작가 겸 기획자, 음악 콘텐츠 프로듀서로 일한다. 티빙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에 스토리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현재 KBS2 ‹케이팝 메이트›, 지니뮤직 ‹케이팝 탐사대› 진행자이자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랑과 음악이 끝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다.

피스오브서울: 한로로 ‹이상비행›

Piece of Seoul

Special Interview

다채로운 대화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피스오브서울Piece of Seoul’은 대중음악평론가 김윤하 님이 최근 새롭게 발매한 한국 대중음악 앨범 중 가장 인상 깊은 피스를 꼽고, 해당 뮤지션과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피스오브서울에서 피스는 조각(piece)이면서 동시에 평화(peace)를 뜻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태어난 새로운 음악의 조각과 여기에서 길어 올린 마음의 평화를 뮤지션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보세요. 세 번째 피스는 돌려 말하지 않는 진심으로 데뷔 때부터 동 세대 청춘의 공감을 이끈 싱어송라이터 한로로의 첫 EP 앨범 ‹이상비행›입니다.

속수무책. 한로로가 노래하는 모습을 본 내 마음에 처음 떠오른 표현이었다. 그날 무대에서 한로로가 부른 노래는 ‘입춘’이었다. 단정하게 잘 만든 곡이라고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조금 투박하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다. 한동안 까맣게 잊고 살던, 투박함이 진심과 무척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날이었다. 첫 싱글을 내고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여자아이가 키보다 훨씬 커 보이는 스탠드 마이크에 매달리다시피 한 자세로 자기 안의 모든 걸 쏟아내고 있었다. 설익었지만 저건 분명, 진심이었다. 한로로는 결국 경연대회의 예선을 통과했고 일 년에 여섯 팀만 올라갈 수 있는 결선 무대까지 진출했다. EBS ‘헬로루키’였다. 그 뒤로도 한로로는 승승장구했다. ‘2022 올해의 헬로루키’ 결선 진출, 네이버 ‘온스테이지’ 출연,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 노미네이트. 데뷔한 해 주목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곳에 이름을 올렸다.

아직 앨범 하나 내지 않은 신예에 너무 과한 스포트라이트가 아닌지 의심하는 목소리들 사이, 한로로의 첫 EP ‹이상비행›이 드디어 세상에 떨어졌다. 지난해 3월 데뷔 싱글 ‘입춘’ 발표 이후 1년 5개월 만에 선보이는 첫 앨범에는 그동안 사람들이 들어왔고 말해 온 한로로가 압축되어 담겨 있었다. ‘해초’나 ‘자처’처럼 공연에서 이미 자주 들려준 곡도 있고, 촌스러울 정도로 진실한, 특유의 음악 맛이 앨범 곳곳에 배어있는 점도 여전했다. 한로로의 이전 작업과 비교해 다른 부분이라면 여섯 곡을 묶은 ‘앨범’ 형태로 발매되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뿐이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발표한 지난 싱글들이 한로로라는 싱어송라이터의 색깔을 잡아가기 위한 예행연습 같은 구석이 있었다면, 이번엔 본격적인 실전이었다. “제대로 보여줄 기회에 대충 하고 싶지 않았다”는 한로로의 말처럼 앨범은 이륙에서 착륙까지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음악가의 여정을 차분히, 그러나 힘차게 따라간다. 여섯 곡이 흐르는 동안 한로로의 돌려 말하지 않는 펀치 라인이 곳곳에서 터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실한 건 투박하다. 그리고 투박함은 의외로 힘이 세다.

한로로 EP ‹이상비행› 커버

드디어 첫 EP가 나왔어요. 발매한 지 딱 일주일 정도 지났네요. 지난 일주일은 어떻게 보냈나요?

내기 전에는 ‘이제 시작이다~ 이왕이면 많은 사람이 들어 줬으면 좋겠다!’ 딱 이 정도였어요. 앞서 기대하지도, 걱정하지도 않으려고 했어요. 덤덤하게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를 스스로 쭉 해 왔던 것 같아요. 내고 나니까 제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분이 들어 주셨고, 더 좋아해 주셔서 놀랐습니다. 노력을 알아봐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해요.

데뷔 후 처음으로 발표하는 앨범 단위 결과물이에요. 앨범을 내기까지 꽤 신중하게 고민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내도 되겠다’고 결심한 구체적인 계기가 있을까요?

싱글과는 다르게 앨범에는 더 확실하고 깊은 메시지를 담아내려 노력했어요. 끊기지 않는 메시지의 흐름, 기승전결이라 해야 할까요? 그걸 완성하기 전까지는 앨범을 내고 싶지 않았어요. 영화 한 편을 다 보고 나서 ‘음~’ 이렇게 소리 내는 것처럼, 수록곡을 모두 듣고 나서 깨달음이 남는 앨범이 되길 원했거든요. 어떻게 보면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이는 제 첫 작품이니까요. 시간에 쫓겨 대충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어요.

앨범에는 총 여섯 곡의 노래가 담겨 있어요. 최종 후보에는 몇 곡이 올랐나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1절 분량의 데모곡이 다양하게 있었어요. 이번 앨범에 싣지 못해 아쉬운 곡도 분명 존재했지만, 저는 이번 앨범이 대중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와 완벽히 부합하는 곡들로만 구성하고 싶었어요. ‹이상비행›은 지금의 여섯 곡이 아니면 안 됐어요. 이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번 앨범을 작업하며 ‘이상비행’이라는 제목을 가진 한 편의 영화 느낌을 내고 싶었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한로로가 각본, 주연, 감독한 영화 ‹이상비행›의 시놉시스는 어떨까요?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던 주인공이 오직 본인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처음으로 용기를 낸다. 그 용기 덕분에 닿게 된 이상에는 사랑이 가득하다. 이상을 잔뜩 누리다 현실로 돌아가야만 하는 주인공은 품에 따뜻한 사랑을 가득 안은 채 착륙한다. 그는 현실로 돌아왔지만 이제 행복하다.’

현실과 이상의 대립에 놓인 주인공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그토록 바라던 이상에 도달하여 후련해하는 주인공, 본인의 용기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주인공을 통해 앨범을 듣는 분에게도 이상을 좇는 용기를 드리고 싶었어요.

앨범에 담긴 여섯 곡은 시놉시스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까요?

‘이상비행’은 이상을 위한 이륙 직전을 나타내는 곡이고요. 이어지는 ‘해초’는 새로운 모험(처음으로 이상을 좇는 행위)의 진행 과정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화해’는 이상에 거의 다다른 상태에서 세상(현실)을 내려다보며 ‘이 세상을 사랑하리라!’ 따뜻하게 다짐을 품는 곡이고요, ‘금붕어’는 앞선 과정을 한 번에 담으면서 끝내 이상에 성공적으로 도달한 행복함을 표현해 주는 곡이에요. ‘자처’는 지난번 싱글로 냈을 때의 분위기와 비교해 앨범 안에서 조금 다르게 작용할 것 같습니다. 싱글로 냈을 때는 후회 가득한 상태로 ‘내가 다 자처한 일이지… 어쩌겠어’라는 느낌이었다면, EP 수록곡으로서 이 곡은 ‘제가 다 자처했습니다. 후회는 없어요’ 느낌이랄까요? 마지막 곡 ‘사랑하게 될 거야’는 이상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착륙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상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일은 다소 우울할 수 있는데요. 이를 고려해 EP의 마무리를 최대한 사랑스럽게 풀고 싶었어요.

앨범을 들으면서 ‘이상(理想)’을 ‘이상(異常)’하게 보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반항 같은 앨범이란 느낌이 들었어요. 이상을 꿈꾸는 사람을 현실 모르는 철없는 몽상가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싫어하거든요. 이상도, 이성도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는데 말이에요. 한로로가 품은 ‘이상(理想)’은 어떤 모양과 색깔을 띠고 있나요?

제 이상의 모양과 색깔은 마치 물과 같다고 생각해요. 물방울 하나라고 생각하면 그 원형은 투명하고 동그랗겠죠. 그렇지만 가지각색의 물감에 따라 색이 변할 수 있고, 다양한 용기에 담겨 모양이 변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자꾸 궁금하고, 갈망하고, 마침내 이루어 낼 때 더 벅찬 거 아닐까, 싶어요.

그런 반항의 기운을 가장 강하게 느낀 곡은 ‘해초’였어요. 답답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항해를 시작한 화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불안하면서도 부푼 기대가 강렬한 록 사운드에 감싸여 휘몰아치기 때문에 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곡이 아닐지 싶었거든요.

이 곡은 각종 경연, 공연에서 빼놓지 않는 노래예요. 무대에서 꽤 강렬한 사운드를 들려드렸더니 록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이 ‘해초’ 대체 언제 나오냐고 매번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이전에 선보였던 무대와 최대한 유사하게 음원을 제작하려고 했어요. 보컬의 단단함을 잃고 싶지 않아서 화음 없이 녹음을 진행했던 기억도 나네요. 스스로 휘몰아치는 시원한 파도 위를 서핑하는, 다소 불안하지만 ‘알 게 뭐야? 가보자!’ 외치는 해초가 되는 것만 같아서 부를 때마다 벅차고 신나는 곡이에요.

공연장이나 SNS에서의 사람들 반응이 한로로의 음악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나요?

‘해초’와 ‘자처’를 제외하고는 공개되지 않은 곡이기 때문에, 공연에서의 직접적인 반응이 영향을 주진 않았지만, 공연에서 사람들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간주 구간이라든지, 위로되는 가사 등에 관해서 앨범을 만들 때 좀 더 신중하게 논의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한로로의 음악을 좋아해 주시는 분은 록 사운드와 서정적인 가사가 취향일 테니까요! 그 취향을 제대로 간파하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웃음)

‘화해’와 ‘금붕어’ 두 곡을 더블 타이틀로 택했어요. ‘화해’는 포근한 발라드풍이고, ‘금붕어’는 멜로디도 상당히 다이내믹하면서 동시에 한로로 특유의 얄개 같은 분위기가 잘 녹아난 곡인데요. 두 곡이 가진 각자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원래 타이틀곡은 ‘금붕어’ 하나였어요. 근데 ‘화해’ 마스터본을 들은 소속사 분들이 발매 몇 주 전에 ‘이건 더블 타이틀곡이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화해’를 워낙 아끼는지라 금방 찬성했고요. 아무래도 포근한 멜로디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솔직한 가사 덕분이지 않나 싶어요. 이번 EP에서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키워드는 용기와 사랑인데요. 용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 ‘금붕어’, 사랑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화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본인의 이상을 좇아 역동적으로 치솟으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데, 가사나 사운드 면에서 ‘금붕어’가 그걸 잘 표현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런 용기를 뜬구름 잡는 것처럼 보던 화자가 ‘이제는 그러지 말고 세상을 사랑해야지’ 반성하고 다짐하는 곡이 ‘화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화해’의 하이라이트에 ‘행복해요’라는 구절이 나오잖아요. 수록곡 ‘자처’의 ‘그리워요’나 ‘입춘’의 ‘도와줘요’도 그렇고, 에두르거나 피하지 않고 지금 느끼는 감정을 정확한 언어로 꽂히듯 말하는 게 한로로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지 생각해요. 가사를 쓸 때 이런 직설적인 감정 표현을 즐기는 편일까요?

딱히 판단해 본 적은 없는 데 자주 쓰는 걸 보니 저도 모르게 좀 좋아하나 봐요. (웃음) 보통 제 음악을 들어주는 분들의 공감 여부를 생각하면서 가사를 써 내려가요. 아무래도 감정은 둘러대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해야 듣는 사람도, 표현하는 사람도 서로 힘들지 않으니까요.

처음 한로로의 음악을 들었을 때 굉장히 ‘직선적’이라고 느꼈던 이유도 어쩌면 그런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잔재주 없이 딱 떨어지는 밴드 사운드도 그렇고요. 그리고 그런 느낌의 8할을 이끄는 건 역시 로로 님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창법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한로로의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 전반에서 느낄 수 있는 ‘직구 매력’은 어디에서 비롯할까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사실 평소 목소리는 꽤 작고 소극적인데, 음악을 할 때만큼은 180도 변하는 것 같아요. 필사적으로 의도하진 않지만, 음악을 통해 제 이야기를 정말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야 제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이야기하다 보니 제 직구 매력의 원천은 ‘현실 도피’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웃음)

요즘도 계속 보컬 레슨을 받는다고 들었어요. 보컬 선생님에게 들었던 최고의 칭찬과 따가웠던 지적을 꼽아본다면요?

최고의 칭찬은 ‘노래에 감정이 잘 담겼다’였어요. 지적은 제가 소속사 들어온 후 처음으로 진행한 레슨에서 들었던 말인데요. “너 가진 게 아무것도 없구나?”였습니다. 진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시절이라 당연한 말이었지만, 적잖이 충격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그렇지만 그런 말을 듣고 나서 더 열심히 연습할 수 있었어요. 진짜로 뭐 하나라도 가져보고 싶었거든요. 지금도 부족한 점이 정말 많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정말 달라졌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로로 님의 인터뷰를 읽다가 바네사 칼튼Vanessa Carlton의 ‘A thousand miles’를 좋아했다는 지점에서 무릎을 ‘탁’ 쳤어요. 그 곡이 지니고 있는 무한히 달려 나가는 자유와 청춘의 느낌이 로로 님의 음악에서도 분명히 느껴졌거든요. 개인적으로도 참 좋아하는데, 꽤 옛날 곡이잖아요. 어떻게 좋아하게 됐어요? 이외에도 로로 님 취향의 근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음악이 또 있을까요?

오 정말요?! 중학교 등교 시간에 우연히 들은 이후로 쭉 사랑하고 있어요. 이 노래를 들으며 걸을 때면 마음속 복잡한 게 훨훨 날아가는 벅참이 항상 느껴져요. 제가 곡을 만들 때 가사에 힘을 주는 것처럼, 좋아하는 곡의 가사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고요. 분위기가 편한 듯 뭔가 벅차오르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곡을 좋아하죠. 코난 그레이Conan Gray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에요. 특히 ‘The story’가 정말 좋아요.

자우림의 김윤아 님이나 이소라 님을 아주 좋아한다고 알고 있어요. 특히 김윤아 님 같은 경우에는 이야기를 자주 듣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혹시 이런 비교가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진 않나요?

오 전혀요! 오히려 정말 정말 감사하죠.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말을 간혹 듣는데, 제가 이런 호평을 들어도 되나 싶어요. 그만큼 누구나 닮고 싶은, 너무나도 멋있는 대선배님이시니까요. 경력을 계속 쌓으면서 저만의 무언가를 생성할 수 있을 텐데요. 앞으로 제1의 한로로가 되겠습니다!

취향과 추천곡을 보면 1990년대 곡이 많은데요. 로로 님 음악을 듣다 보면 그 시절 감성이 진하게 묻어나서 깜짝깜짝 놀라곤 해요. 게다가 지금의 재해석이 아닌 그 시절이 그대로 돌아오는 느낌이 드는데, 로로 님이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기잖아요! 혹시 1990년대를 좋아하시나요? 어느 부분에서 좋으세요?

확실히 엄마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엄마가 자주 거실에 나와서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셨어요.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 다시’, 원준희의 ‘사랑은 유리 같은 것’ 등의 옛 가요였죠. 엄마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며 자연스레 마음에 스며들지 않았나 싶네요. (웃음) 더불어 제가 실제로 살아보지 못한 시기라서 1990년대가 좋기도 해요. 엄마와 아빠만 아는 그 시절의 낭만과 사랑을 상상하는 일 자체가 즐겁죠. 이런 즐거운 상상을 도와주는 매개가 제게는 1990년대 음악이에요.

홍콩에서 찍은 뮤직비디오가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나 봐요. 홍콩영화가 한국의 청춘에게 인기를 끈 게 1990년대, 더 넓혀도 2000년대 초반이니까요. 홍콩을 로케이션 장소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촬영은 어땠어요?

‘정류장’부터 시작한 해외 로케이션은 소속사 분들이 제안하셨어요. ‘금붕어’ 뮤직비디오는 복잡한 현실에서 이상을 좇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잘 풀어내고 싶었는데요. 이런 복잡한 현실을 한눈에 보여주는 특별한 곳을 찾다 보니, 홍콩이 나왔던 것 같아요. 홍콩이라는 도시 특유의 분위기가 정말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고, 다행히 실제로도 무척 잘 어울렸죠. 다만 저희가 홍콩에 간 게 6월이었어요. 홍콩 방문 시즌은 11월에서 4월이거든요. 날씨가 너무 덥고 습해서 숙소 밖에 나가기만 해도 땀이 주룩주룩 흘렀어요. 현지 사람은 자연스레 웃옷을 벗고 돌아다니더라고요. 하지만 홍콩 음식이 정말 맛있어서 힘든 기억이 싹 날아갔어요. 딤섬에서 에그타르트까지! 너무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영상이 잘 나왔기 때문에, 지금 웃으면서 얘기하는 것 같아요. (웃음)

‹금붕어› MV 스틸컷

앨범을 관통하는 여러 감정과 사색을 거쳐 그토록 찾고 싶던 이상이 결국 사랑이라는 사실이 당연하면서도 재미있었어요. ‘화해’도 그렇고 앨범의 마지막 곡인 ‘사랑하게 될 거야’에서는 아예 제목에다 ‘사랑’과 강한 확신을 담은 ‘MUST’를 붙였잖아요. 한로로가 ‹이상비행›으로 이상(理想)하는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요?

무조건적으로 보듬어 주는 사랑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저는 서로가 서로를 너무 미워하지만 않았으면 해요. 본인과 다른 이를 ‘틀렸다’고 막연하게 정의한 후 그 사람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끌어오는 일에 시간 쏟는 건 정말 쓸모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방법을 통해 본인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절대 아니라고 봐요. 아주 옛날부터 제 좌우명은 ‘사랑받고 싶으면 먼저 사랑하라’였어요. 지금도 변하지 않은 그 마음으로 ‹이상비행›이라는 앨범을 만들 수 있었어요.

집은 집주인에 어울리는 디자인과 그에 알맞은 온도로 짓잖아요. 집주인이 아닌 사람이 울타리를 무작정 부수고 들어가면 무서운 도둑 취급을 받을 테도, 그렇게 부서진 울타리를 손보는 집주인의 마음을 고치는 건 하루 이틀 걸리는 일이 아니에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 사랑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의 영역을 마구 헤집어 상처 주지 않는 것. ‘집을 신기하게 지었네요. 멋있어요.’라고 직접 말하지는 못해도, 울타리 너머로 따뜻한 미소를 보내주는 것. 울타리를 부순 행위를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며 마침내 집주인의 초대를 받는 것. 다름을 이해하며 서로의 영역에 서서히 스며드는 것. 그렇게 다 같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그게 제 이상 같아요. 너무 낭만적인가요? 그렇지만 낭만적이기 때문에 이상이라고,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대 이상으로 힘차고 사랑스러운 대답이었어요. 저까지 힘이 나는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올해도 벌써 2/3가 지났어요. 남은 기간에 준비하는 계획이 있을까요?

일단 9월 23일, 24일 단독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 후로도 각종 페스티벌에 얼굴을 비출 거예요. 그 이후의 발매 계획은 아직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지만, 귀가 심심해질 때쯤 귀신처럼 등장할 참입니다. 그리고 음악 외의 다른 계획이라면, 지금 대학교 마지막 학기라서 슬슬 졸업 준비를 하고 있어요. 올해 안에 얼른 꼭 졸업 성공해서, 음악에 제 모든 힘을 쏟고 싶어요!

Artist

한로로(@hanr0r0)는 한국의 싱어송라이터다. 2022년 3월 발표한 첫 싱글 ‘입춘’이 동 세대의 큰 공감을 끌어내며 데뷔 직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후 ‘거울’, ‘비틀비틀 짝짜꿍’, ‘당신의 밤은 나의 밤과 같습니까’, ‘정류장’ 등의 싱글을 꾸준히 발표하는 가운데 ‘2022 올해의 헬로루키’ 결선 진출, 2023 제20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과 ‘최우수 모던록 노래’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계속 화제의 중심에 놓였다. 2023년 8월, 데뷔 1년 5개월 만에 ‘금붕어’와 ‘화해’를 더블 타이틀로 내세운 첫 EP ‹이상비행›을 발표했다.

Writer

김윤하(@romanflare)는 K팝에서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관해 쓰고 이야기하는 대중음악평론가다. 일간지, 주간지, 라디오 등 온오프라인 매체에 글을 기고하거나 출연하고 있으며, 가끔은 작가 겸 기획자, 음악 콘텐츠 프로듀서로 일한다. 티빙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에 스토리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현재 KBS2 ‹케이팝 메이트›, 지니뮤직 ‹케이팝 탐사대› 진행자이자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랑과 음악이 끝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다.

피스오브서울: 전유동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러 자주 안 쓰는 말이지만›

Piece of Seoul

Special Interview

다채로운 대화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피스오브서울Piece of Seoul’은 대중음악평론가 김윤하 님이 매달 새롭게 발매한 한국 대중음악 앨범 중 가장 인상 깊은 피스를 꼽고, 해당 뮤지션과 이야기를 나누는 콘텐츠입니다. 피스오브서울에서 피스는 조각(piece)이면서 동시에 평화(peace)를 뜻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태어난 새로운 음악의 조각과 여기에서 길어 올린 마음의 평화를 뮤지션의 목소리로 직접 들어봅니다. 두 번째 피스는 ‘자연주의 싱어송라이터’로 불리는 전유동의 정규 앨범 2집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러 자주 안 쓰는 말이지만›입니다.

전유동 정규 앨범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러 자주 안 쓰는 말이지만› 커버

종종 주위 사람들과 ‘멸종위기종’이란 단어로 농담하곤 한다. 그 대상은 바로 우리. ‘이래서야 살아는 남겠냐?’는 소리다. 주류를 향하는 사람이 드문 생태계에 머물다 보니 자조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매사 이상적이어서, 자본주의 구조에 반(反)해서, 심성이 약지 못해서, 요령이 없어서, 사람을 잘 믿어서. 날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사회를 한탄하는 건지, 그것에 순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비꼬는 건지 모를 말속에서 전유동의 음악도 둥둥 떠다녔다. 정작 뮤지션 입장에서는 질색할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음악을 듣고 읽는 때 탄 도시인 1의 입장에서는 그런 반응이 당연히 나오고도 남았다. 고요하고 맑게 울리는 멜로디와 노랫말에 지친 마음을 기대며 괜히 중얼거렸다. ‘이렇게 투명해서, 이래서 어쩌지. 이렇게 선해서, 이렇게 순정해서 어쩌지…’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다’는 예술가 걱정을 하는 사이, 전유동은 두 번째 앨범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러 자주 안 쓰는 말이지만›을 뚝딱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역시 남 걱정은, 특히 잘하는 남 걱정은 하는 게 아니었다. 프로듀싱을 맡은 단편선에서 연주자까지 첫 앨범 ‹관찰자로서의 숲›의 정신과 정서를 그대로 이어받은 듯한 이번 앨범은 그새 부쩍 자라있었다. 부스러질 정도로 섬세하지만 쉽게 구부러지거나 꺾이지 않는 음악은 그대로인 채, 전유동은 그 어느 때보다 자기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며 하고픈 노래를, 말을 모조리 뱉고 있었다. 오래 잔잔할 것만 같던 깊은 강 밑바닥을 긁어 흙바람을 일으키는 첫 곡 ‘강변’부터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사적 경험을 명랑하면서도 아프게 털어놓는 ‘어떤 변명’까지, 앨범에 담긴 노래들은 그의 음악이 겉보기보다 훨씬 강하다는, 멸종은 꿈도 꾸지 말라는 의지의 표현처럼 느껴졌다. 인터뷰 답변도 마치 그 노래처럼, 앨범을 만드는 내내 똑바로 바라본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했다.

앨범을 위해 춘천에서 한 달간 머물렀어요. 그때의 기억과 추억을 조금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미묘한 감정을 밀고 당기면서 지냈던 것 같아요. 곡을 써야 한다는 목적을 지우는 게 목적이었어요. 앨범 준비를 위해 곡을 써야 했지만, 거기에 매몰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고 느꼈거든요. 홀로 지내며 자연스레 곡을 쓰고 싶었어요. 곡을 쓰는 태도가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숙소에서 40분을 걸어서 북한강과 이어진 의암호에 들렀어요. 그곳에서 새들을 만나고, 바람에 퍼지는 물결을 보면서 복잡한 마음을 비우곤 했습니다. 외롭지만 따뜻하고 초조하고 복잡하지만 상쾌했던 한 달이었어요.

감사하게도 제가 이번 앨범의 소개 글을 담당했어요. 고맙습니다. 글을 쓰면서 메인 키워드로 잡았던 단어는 ‘마음’이었어요. 유동 님은 여전히 자연의 커다란 품 한가운데 있지만, 자연에 투영해 하고픈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고백하던 예전과 달리 자연을 직접 마주한 채 속마음을 고삐 없이 풀어놓는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더군요. 스스로 전작에 비해 훨씬 자기 고백적이라고 이야기했는데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계기는 뚜렷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다만, 자연이라는 주제에 너무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아 미약하더라도 음악으로 옮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죠.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는 바꾸지 않고 화자의 위치만 바꾸고 싶었던 것 같아요. 춘천에서의 한달살이도 자연보다는 저 자신을 충분히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어요.

그렇게 한 번 시원히 털어놓고 난 후의 심정이 궁금해요. 1집 ‹관찰자로서의 숲›을 발표했을 때와 비교해 2집을 발표하고 느끼는 감정에 차이가 있나요?

아직 다 시원하게 털어내지는 못한 느낌이 들어요. 여전히 감춰야 하거나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일이 매번 일어나니까요. 그래서 감정의 차이는 크게 없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앨범 발매 쇼케이스 공연을 했는데요. 첫 번째 앨범 쇼케이스를 진행하며 가졌던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새롭게 시작해 보자.” 2020년 진행한 첫 쇼케이스 때보다 지금은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모두 솔직하게 털어놓을 용기가 아직은 부족한 것 같아요.

© 김도균(@foto.mooool)

© 김도균(@foto.mooool)

그동안 ‘전유동’이라는 이름에 붙는 ‘자연주의’나 ‘유기농’ 같은 키워드가 부담스럽던 적은 없었나요?

특별한 부담감은 없는 거 같아요. 평소에도 분리수거 더 잘하고, 쓰레기도 줄이려고 노력하거든요. 제게 부여된 이미지 덕분에 자기검열을 더 열심히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다만 음악을 만들 때 이런 이미지에 굳이 맞추려고 하지는 않아요. 창작에 족쇄가 될 거 같아서요.

이번 앨범에서도 프로듀서 단편선과 호흡을 맞췄어요. 전유동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이래 쭉 함께하고 있는데요. 전유동의 음악에서 단편선은 어떤 존재인가요?

제가 처음 단편선 님에게 프로듀싱을 부탁드릴 때는 음악적인 계산을 하지 않았어요. 그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도움이 필요했거든요. 그렇게 모든 것을 믿고 맡긴 끝에 첫 번째 정규앨범 ‹관찰자로서의 숲›을 발표하게 되었죠. 단편선 님 덕분에 처음 해보는 게 정말 많았어요. 제게는 고마운 은인이자 든든한 음악적 동료입니다. 냉철한 피드백도 차갑지 않게 건네주고 제 음악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며 존중해 줘요. 단편선 님을 보면서 ‘나는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자주 생각해요.

첫 번째 정규앨범 ‹관찰자의 숲›

그래서인지 유동 님의 앨범을 듣다 보면 두 명의 뮤지션이 동시에 느껴져서 늘 재미있어요. 굳이 비유하자면 식물과 동물, 초식과 육식처럼 완전히 다른 성향을 가진 두 개의 영혼이 음악이라는 세계에서 마구 뒤섞인다는 느낌이랄까요. 무대 위에서도 그렇고요. 이번 앨범에서는 물을 다룬 두 곡, ‘강변’과 ‘호수’를 들으며 특히 그런 생각이 났어요.

‘호수’는 처음으로 작곡할 때부터 밴드 사운드를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에요. 2020년부터 함께 해온 연주자분들(단편선, 파제, 복다진, 박재준, 송현우)이 이번 정규 앨범에도 참여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곡을 지었죠. 그래서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연주하는 ‘호수’가 낯설어요. 다른 곡은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연주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거든요. ‘강변’의 경우, 단편선 님이 도입부에 앰비언트 사운드를 넣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춘천에 다시 가서 녹음해 왔는데요. 바람이 많이 부는 바람에 소리가 깔끔하지 못해서 바람이 안 불 때 녹음한 부분만 편집해서 곡에 넣었어요. 당시 한달살이하던 춘천은 정말 추웠는데 그날은 이례적으로 밖에 사람들이 많이 계셨어요. 녹음한 부분 중에서 아이들 웃음소리를 특히 좋아해요.

싱어송라이터 해파 님과 함께한 ‘참, 맞다’가 앨범에서 갖는 울림이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이렇게 은근한 ‘어른의 매력’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전유동의 노래가 지금까지 있었나 싶었거든요.

은근한 어른의 매력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웃음) 해파 님과 함께하게 된 계기는 치밀하지 않아요. 그냥 잘하는 분과 함께 하고 싶었어요. 오래전부터 제 노래에 다른 뮤지션의 목소리를 담고 싶었는데 ‘참, 맞다’를 통해 작은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래서 단편선 님께 말씀드리고 다행히 좋아하셔서 아주 손쉽게 조율이 되었어요.

‘토마토’와 ‘어떤 변명’의 깔끔한 팝 터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토마토’에서 수없이 부르는 “아주 그리워하게 될” 전유동의 “지금”이 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앨범을 작업하며 단편선 님에게 자주 했던 말이 있어요. “눈 뜨면, 쇼케이스 공연하고 있으면 좋겠어요.” 제작 과정이 힘들어서 나온 농담이었는데요. 사실 다른 의미로는 지금도 눈을 뜨면 서울에서 진행한 첫 번째 쇼케이스 공연장이었으면 좋겠다는 뜻이었어요. 마지막으로 ‘토마토’를 부를 때 함께 노래하는 관객분의 표정을 잊을 수 없어요. 이들과 함께했던 즐거운 시간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요. 무대 위에서의 실수를 되돌릴 수 없다 해도요. 

© 김도균(@foto.mooool)

‘어떤 변명’은 경쾌한 곡이지만 실은 앨범에서 심리적으로 가장 날카롭게 벼린 작업이기도 합니다. 앨범 발매 전 싱글로 공개하면서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아픈 기억을 털어놨어요. 이렇게 사적인 경험과 이야기를 노래에 직접 담는 일이 힘들거나 어렵지는 않나요?

불편한 기억을 꺼내는 게 유쾌한 결과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뮤지션이라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런 지점에서 연계되는 고해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변명’에 담긴 아버지와의 감정은 그 어떤 경우보다 꺼내놓기 힘들었어요. 아주 작고 미약한 저 자신을 명료하게 마주 보지 않으면 곡을 만들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곡의 분위기를 밝게 가져갔어요. 곡을 완성하고 보니 제가 마냥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더군요. 덕분에 곡의 하이라이트에는 앨범 녹음에 참여한 분들의 즐거운 대화를 담았어요. 곡을 발표한 이후로 ‘어떤 변명’을 부를 때나 들을 때나 힘들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Arrive’와 ‘아름 아름’, ‘이름들 얼굴들’이 이어지는 구간이 무척 좋았어요. 호수에 치는 파도를 종일 겨우 이겨내고 수면 위에서 평화롭게 바라보는 밤하늘에 소중한 이름과 얼굴을 하나씩 띄워보는 아름다운 풍경이 절로 떠오르더라고요. 곡을 작업하면서 어떤 풍경과 심상을 자주 그렸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곡을 쓸 때 머릿속에 장면이 그려져야 한다는 고집이 있어요. ‘Arrive’에는 송도 람사르 습지를 배경으로 점차 좁아지는 도래지를 찾아오는 철새의 마음을 담았고, ‘이름들, 얼굴들’은 지리산에서 지나간 인연들을 생각하며 쓴 곡이에요. ‘아름 아름’, ‘이름들, 얼굴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는 똑같은 장면에 놓아야 했기에 화자가 어떤 배경에서 노래를 들려주는지 고민해 봤어요.

표제곡인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러 자주 안 쓰는 말이지만’은 어찌 보면 전유동의 음악에서 사람들이 가장 쉽게 기대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면서도 “네가 있어 참 다행”이라거나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러”라는 뚜렷한 메시지를 담은 곡이기도 하죠. 작업이 술술 풀렸나요, 아니면 속을 좀 썩이던가요?

이 곡은 멜로디와 가사가 빨리 나왔어요. 근데 단편선 님의 프로듀싱 없이 혼자 편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힘든 면도 있었죠. 처음에는 경쾌한 리듬이었지만 성장하기 위해 관성에서 벗어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결과적으로는 에너지도 많이 들어가고 애착이 많이 가는 곡 중 하나가 됐습니다.

이야기하다 보니 앨범에 수록된 여덟 곡의 면면이 더욱더 다채롭게 느껴지네요. 한 장의 앨범으로 묶기에 쉽지 않았겠다 생각이 드는데요. 곡 순서를 정하거나 마지막 엔트리를 정할 때 어땠나요?

곡 순서는 프로듀싱을 맡은 단편선 님이 정했기 때문에 사실 저는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단편선 님이 곡 순서에 신경을 많이 쓰셨죠. ‘아름 아름’과 ‘이름들, 얼굴들’, 이 두 곡은 순서는 물론이고 곡들이 연결되는 부분에서 디테일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셨어요. 그렇게 완성한 정규앨범은 곡끼리 연계되며 보이는 흐름이 참 마음에 들어요. 최종 단계에서 총 세 곡이 빠졌는데요. 두 곡은 시간이 촉박해서 편곡하지 못했고, 한 곡은 녹음 중에 빠졌어요. 앨범 내 서사가 더 깔끔해져서 딱히 아쉬움은 없어요.

이번 앨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가사 한 줄이 있다면 어떤 곡의 무엇인가요?

두 개 선택해도 되나요? 첫 번째는 ‘강변’의 “장갑 한 짝 / 나를 세는 단위들 / 이어진 침식”이고, 두 번째는 ‘어떤 변명’의 “소금이 묻은 실수들을 / 풀벌레들이 노래하는 밤”이에요. 두 노랫말은 제 감정을 굉장히 잘 표현한 문장이에요.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거예요.

앨범을 발표하고 반응이 확연하게 다른 곡이 있나요? 예를 들어 ‘이 곡은 노렸는데 완전히 다른 반응이 온다’, ‘어려운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팬들이 좋아한다’ 같은 의외의 곡들이요.

‘어떤 변명’의 노랫말이 사실 엄청 친절하지는 않아요. 곡을 풀어보면 그리 즐겁지도 않고 리듬과 분위기만 명랑한 이상한 곡이거든요. 이런 지점을 놓치지 않은 단편선 님의 편곡이 크게 빛났다고 생각해요. 정규앨범 수록곡 중 가장 나중에 써서 이전과는 풍경이 다른 곡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쇼케이스 공연 때, 예상보다 관객분들이 즐겁게 노래를 들어주시더라고요. 제가 신나게 불러서 그런가 싶다가도, 오히려 관객의 표정을 보면서 들떴어요. 곡에 담긴 아픔까지 함께 공명할 수 있다는 점을 쇼케이스 공연 전까지 모르고 있었던 거죠.

© 김도균(@foto.mooool)

칠곡, 대구, 인천을 근거지로 생활하다 서울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어요. 1집을 기준으로 하면 이제 3년 정도 지난 셈인데요, 지역 출신의 독립 뮤지션이 서울에서 활동하기엔 상황이 어떤가요?

‹인천의 포크›로 발표한 노래 ‘주안’에 나타난 정서와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러 자주 안 쓰는 말이지만’의 노랫말처럼 “항상 어중간”하다고 생각해요. 지역성을 가지고 있는지, 지역을 대표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인프라와 공연장이 서울에 밀집돼 있고, 인천은 서울만큼 활동 환경이 구축되지 않아서 인천보다 서울에서 공연을 많이 하게 돼요. 그래서 이번 2집 발매 기념 전국 투어 공연에 인천을 넣었어요. 인천에서도 자주 하고 싶거든요. 제가 있는 곳이 저의 자리니까요. 그리고 대구에서도 자주 하고 싶고요. 대구 무대에서 만나는 가족, 지인, 동료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픈 마음이 항상 있어요. 그냥 진짜 어중간한 사람이에요. 이 사실을 알고 있어서 정말 다행인 거 같아요.

한 장의 앨범을 더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어떤 앨범인지 살짝 힌트를 주실 수 있나요?

이번 정규 앨범에 수록하지 못한 두 곡이 나갑니다. 그리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여기까지입니다. (웃음)

올 한 해 무엇보다 성실하게 다작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 전유동의 ‘각성’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각성이라기보다는 올해 예상치 못하게 작업을 많이 발표하게 됐어요.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힘든 일이지만, 그만큼 감사한 마음이 커요. 그리고 사실 다작보다는 성실한 발표를 주요 목표로 두고 있어요. 이번 두 번째 정규앨범 발표를 기점으로 하고 싶은 일도 더 많이 하고 저의 가능성도 더 많이 발견하고 싶어요.

Artist

전유동(@jeonyoodong)은 한국의 싱어송라이터다. 2015년 ‘클라우즈 블록Cloud’s Block’이라는 이름으로 고향 대구에서 활동하다 서울로 올라왔다. 이후 2020년 본명인 전유동으로 활동명을 바꾸고 첫 번째 정규앨범 ‹관찰자로서의 숲›을 내며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자연을 유달리 사랑해 자연에 관한, 또는 자연에 다른 무언가를 빗댄 곡을 많이 쓴다. 별명은 자연주의 싱어송라이터. 2022년 2월 춘천에서 한달살이하며 써낸 곡들을 바탕으로 2023년 두 번째 정규앨범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러 자주 안 쓰는 말이지만›을 발표했다.

Writer

김윤하(@romanflare)는 K팝에서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관해 쓰고 이야기하는 대중음악평론가다. 일간지, 주간지, 라디오 등 온오프라인 매체에 글을 기고하거나 출연하고 있으며, 가끔은 작가 겸 기획자, 음악 콘텐츠 프로듀서로 일한다. 티빙 다큐멘터리 ‹케이팝 제너레이션›에 스토리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현재 KBS2 ‹케이팝 메이트›, 지니뮤직 ‹케이팝 탐사대› 진행자이자 ‹네이버 온스테이지› 기획위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랑과 음악이 끝내 세상을 구할 거라고 믿는다.